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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고구려의 불교 수용과 불교 전파

 

고구려의 불교 수용과 불교 전파

2년 여름 6월에 진나라 왕 부견이 사신과 중 순도를 파견하여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다. 왕은 사신을 보내 답례하고 토산물을 바쳤다. 태학(太學)을 세우고 자제(子弟)를 교육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소수림왕 -

고구려본기(삼국사기)에 이런 말이 있다. 소수림왕 즉위 2년 임신(372)년에 전진왕 부견이 사신과 중 순도를 시켜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다. 또 4년 갑술에도 아도가 동진에서 왔다. 이듬해인 을해 2월에는 초문사를 지어 순도를 그곳에 머물게 하고, 또 이불란사를 지어 아도를 있게 하였는데 이것이 고구려 불법의 시초인 것이다.

- 삼국유사 3권, 순도조려 -

8년 봄에 사신을 신라에 보내 우호를 약속하니, 신라왕이 조카 실성을 인질로 보내왔다. 3월에 교서를 내려 불교를 믿어 복을 구하게 하였다. 담당관청에 명하여 나라의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수리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양왕 -

진나라 지둔법사(동진의 고승 지둔도림)가 망명(고구려 승려로 추정)에게 글을 보내 이렇게 말하였다.

<상좌 축법심은 중국 유공의 제자로서 성품이 곧고 빼어나 도와 속을 종합하였고, 지난날 서울이나 시골에 있을 때 법강을 유지함으로써 나라 안팎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도를 크게 한 거장이었다.>

둔공(지둔도림)은 중국에서 덕망이 뛰어난 분으로 둔공과 더불어 말을 나누고 사귀는 이들은 반드시 훌륭한 인재와 뛰어난 학자들이었을 텐데, 망명이 외국 선비로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 같은 글을 보냈으리요. 또 불교가 이미 중국 진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퍼졌으니, 송나라와 제나라 사이에도 당연히 호걸들이 많이 있어 함께 때를 떨쳐 일어났을 텐데, 아쉽게도 기록해놓은 책이 없으니 슬프기만 하다.

- 해동고승전 권 1, 망명 -

사료해석 : 7차 교과서에 실려있는 순도에게 불교를 전파받아서,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였다. 라는 대목의 근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