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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퀴즈 - 세계사 0914

역사퀴즈 - 세계사 인물 일화 퀴즈 0914

오늘은 서양 역사 위인들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든 퀴즈입니다.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만을 이용해 주시고, 채점 및 오답확인 버튼 눌러주세요!!

1.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그는 영국 르네상스와 해외 진출 시대를 지휘한 엘리자베스 여왕 시기에 경제 고문(16세기)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금융'이란 무엇인가를 여왕에게 강의했으며, 런던거래소를 만들어 '증권'과 '주식'에 대해 새 장을 열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을 딴 대학을 설립해서 유명해지기도 했었다.

그가 남긴 명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경제 이론에 대한 일화이다.

만약에 똑같은 100원짜리 동전이 있지만, 하나는 은이 많이 함유된 신권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한 구권이라면 사람들은 어떤 돈을 쓰겠는가?

또 만약 깨끗한 돈과 낙서가 된 돈이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돈을 더 빨리 쓰려고 하겠는가? 만약 같은 가치의 돈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가치가 다르다면 좋은 돈(양화)는 집안에 꼭꼭 숨겨둘 것이고, 나쁜 돈(악화)는 시중에 계속 돌게 될 것이다. 결국 나쁜 돈이 좋은 돈의 유통을 막고 그것을 저장하게 하므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이것을 바로 그의 이름을 따서 ______ 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 말은 1558년 그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쉬운 설명으로 경제학 충고를 하기 위해 편지를 보낼 때 제목으로 적은 말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고 독재자인 제임스, 찰스 왕가가 이어지자 이 말은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왕이 꼭꼭 숨겨두고 아껴두던 인재들은 독재자들에게 다 제거되었고, 간신들이 정치, 경제쪽에서 활개를 쳤다.

그가 죽은 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간신배들이 설치고 숨어있던 인재들은 제거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1.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이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윌터롤리        ② 드레이크         ③ 그레셤
④ 제로섬           ⑤ 셰익스피어      ⑥ 스펜서    ⑦ 베이컨

 

2.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레스토랑이나 카페같은 곳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돈이 모자란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때 쓰는 격언으로 '_____의 십오분' 이라는 말이있다.

그가 프랑스와 1세 왕의 명으로 로마에 갔다가 여비가 떨어진 적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 신분상 돈이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 때 그가 15분만에 생각한 계책은 이것이었다.

일단 자신을 저명한 의학자라고 말한 뒤, 자신이 프랑스 왕과 왕비를 독살하기 위해 독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즉, 프랑스왕을 제거해서 이탈리아의 영웅이 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경찰이 출동해서 그를 체포했고, 중대 범인으로 분류되어 파리까지 정중한 대접을 받고 여행을 하면서 프랑스와 1세 앞까지 갈 수 있었다. 그는 위트로 위기를 넘기고 국가적 망신도 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가 쓴 유명한 저서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서는 천재적인 두뇌에 매우 위트넘치는 인물인 '파뉼주'가 등장한다. 파뉼주는 매우 총명하지만, 그의 두뇌를 쓸데없는 곳에만 사용한다. 파뉼주는 사악하고 거짓말을 잘하며, 자신이 당한만큼 철저하게 복수하는 것을 매우 잘한다.

그 역시 프랑스 왕에게 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철저하게 부서버릴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다행이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그는 충신으로서 일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2. 위 지문에서 말하는 '_____의 십오분'에 들어갈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플루타르크            ② 레쉴리에            ③ 반 자크
④ 프랑수아 라블레    ⑤ 필립 시드니        ⑥ 카르멘

 

3.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정치의 꽃을 피운 인물이다. 그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그리스 동맹국들에게 아테네 여신과 아폴론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1) ____ 섬에 공동 자금을 보관해 두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는 강압적으로 공물을 받았기 때문에 아테네와 동맹국들의 동맹은 (1) ______ 동맹이라고 불리었다.

그러나 동맹이 끝난 후, 강압적인 공물 헌납으로 아테네는 주변 도시국가들의 불만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페리클레스는 (2)______ 섬에서 열리는 올림피아 제전을 누구보다 화려하게 치루기도 했다.

(2)______ 섬은 이오니아 해안의 남쪽에 있는 섬으로 이곳은 학문과 사교의 중심지이자, 제우스 신전이 있는 국제 종교회의장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열리는 경기는 그리스인의 민족적 유대를 강화하고, 모든 그리스인은 신화에 나오는 여인 <헬레네>의 후손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스스로를 <헬레네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기서 열린 올림피아 제전은 경주,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멀리 뛰기, 레슬링의 5가지 종목이었다. 이 다섯 가지가 열린 이유는 바로 다섯 가지 종목이 페르시아 등 이민족과의 전쟁 때 필요한 핵심 군사훈련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3. 위 내용을 바탕으로 빈칸에 들어갈 섬 2개의 이름을 골라주세요.(정답은 2개입니다.)
① 델로스        ② 시라쿠라        ③ 간디아
④ 로도스        ⑤ 크레타           ⑥ 파마구스타    ⑦ 살로니카

 

4.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신들은 피에 목말라 있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잉카 문명의 최후 지도자 몬테수마 1세였다. 그는 신대륙을 점령하고자 하는 에스파냐의 코르테스 장군이 성경을 앞세워 학살을 자행하자 이 말로 침략군을 비꼬았다고 한다.

3백년 뒤, 프랑스 혁명의 자코뱅파가 정권을 잡고 공포정치를 했다. 지도자인 ______ 는 길로틴 박사와 함께 단두대(길로틴)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잘랐다.

일년에 2천명의 목이 잘렸으니, 하루 평균 몇 명이 죽은 것일까? 같은 자코뱅 파의 꺄뮤 템란인간을 위한 혁명으로 '인간이 잔인하게 학살되는' 현장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는 혁명위원회가 사람들을 학살하니, 자신은 '자비위원회'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구해겠다고 선전물을 뿌린 것이다.

혁명은 아름다울 줄 알았으나, 잔인했다는 것을 깨달은 까뮤 템란은 마지막에 자신과 몬테수마 1세를 동일시 하면서 마지막 선동 문구에 이렇게 적고 체포당했다.

'신들은 피에 목마르다'

후대 소설가들은 평범한 삶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는 이들이 좌절할 때 이 문구를 애용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피에 목마른 공포정치를 했던 _____________ 도 결국은 공포정치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붙들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4. 동료에게 까지 피에 목마른 자라는 말을 들어가면서 극빈층을 위한 과격한 정책을 시도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 혁명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 나폴레옹         ② 알렉산드르 뒤마        ③ 로베스피에르
④ 숀 마리노        ⑤ 페이스트 트라토스

 

 

5.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군주는 나라의 첫 번째 심부름꾼이다.'

이 말은 18세기 프리드리히 대왕이 했던 말이다. 그는 군주란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어서 나라가 발전하는 데 첫 번째 공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국가가 발전하고 국왕과 국민이 하나가 되어 헌신하기 위해서는 특정 세력이 나라의 주도권을 갖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나라에서는 특이하게도 가톨릭에게도, 개신교에게도 어떠한 특권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가 말하는 종교정책은 바로 모든 종교가 인정되는 '관용'이었다. 당대 유럽에서는 종교 전쟁이 있었고, 어느 나라이던지 카톨릭이거나, 개신교이거나 하나의 '하나님'을 믿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종교보다는 국왕이 헌신하고, 국민이 왕을 믿는 것이 국가 발전의 선행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바로 '계몽주의' 사상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궁전에서 분수가 막혔는데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수리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왕이 분수를 바라보는 순간 기적적으로 물이 다시 솟아올랐다. 그러나 어떤 신관도 그것이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왕 자신도 '카톨릭 국가에서는 이런 것을 기적이라고 말하겠지?'라고 웃어넘겼다.

어느날 가난한 병사가 마리아의 제단에서 은그릇을 훔치다 걸렸는데, 이미 마리아가 용서하셨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왕은, '그런 기적도 있을 수 있는 일이구나' 라면서 병사를 용서했고,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두 번 다시는 마리아한테서 그런 선물 따위는 받지 말거라'

결국 그는 누가 종교를 믿던, 믿지 않던 무관심한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종교는 정치가 관여할 일도 아니며, 종교 역시 정치를 넘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훗날, 이 나라에서 출발하여 거대한 재국을 세운 재상 비스마르크는 국가 운영은 '피와 철' 만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카톨릭 세력이 국가 운영에 딴지를 거는 것을 막기 위해 종교 전쟁에 엄청난 힘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미 프리드리히 대왕이 남긴 유산 때문이었을까?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비스마르크는 카톨릭 하나를 제압하지 못하여 국내에서는 평생 하고픈 정책을 제대로 펴지 못하였다고 한다.

 

5. 위 일화 속에 나온 프리드리히와 비스마르크와 관련있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① 서러시아        ② 노브고르드        ③ 프로이센
④ 아일랜드        ⑤ 스코트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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