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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승려 혜량

 

승려 혜량

신라 진흥왕 12년(551) 신미(辛未)에 왕은 거칠부(居柒夫)와 구진 대각찬(仇珍大角瑗), 비태 각찬(比台角瑗), 탐지 잡찬(耽知?瑗) 등 8명의 장군에게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백제 군사들이 먼저 남평양(南平壤)을 격파하자, 거칠부가 거느리는 신라군은 승리의 기세를 타고 죽령(竹嶺) 이북 고현(高峴) 이남의 10개군을 점령하였다.

이 때에 혜량법사(惠亮法師)가 무리를 이끌고 길가에 나타났다. 거칠부가 말에서 내려 군례(軍禮)로 대하고 말하기를 "옛날 유학할 때에 대사님의 은혜를 입었는데 지금 뜻밖에 뵈오니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고 하니 법사가 이르기를 "지금 우리 나라의 정사가 어지러워 멸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아니하니 그대의 나라로 가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이에 거칠부가 같이 수레를 타고 돌아와서 진흥왕을 뵙게 하니 왕이 그를 승통(僧統)으로 삼고 백좌강회(百座講會)와 팔관(八關)의 법을 마련하였다.

- 심국사기 44, 열전 4, 거칠부 -

사료해석 :  신라의 진흥왕은 불교 교단을 행정구역과 일치하여 정비하였습니다. 국가, 주, 군, 현에 맞게 국통, 주통, 군통 등의 교단을 두어 불교를 적극적으로 진흥하고, 스스로 부처의 전신인 미륵이라는 사상을 내세우는 왕입니다. 즉, 왕권 강화에 불교를 최대한 이용한 왕이지요.

이러한 신라는 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 사상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백좌강회 등을 성대하게 열곤 하였습니다. 혜량의 사료는 바로 이러한 신라 불교의 위상 변화를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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