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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신라 왕실의 7가람설

 

7가람설

옥룡집(玉龍集)과 자장전(慈藏傳), 또는 제가(諸家)의 전기에 모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라의 월성(月城) 동쪽 용궁의 남쪽에는 가섭불(迦葉佛)의 연좌석(宴坐席)이 있는데, 그곳은 곧 전불시대(前佛時代)의 전터이다. 지금 황룡사의 땅은 곧 일곱 가람(伽藍)의 하나이다."

- 삼국유사 -

사료해석 :  초기 불교는 토테미즘과 샤머니즘, 애니미즘 등의 종교적 기능인 금기 기능을 수행하는 원시 종교와 섞여 발전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삼국초기에 샤먼(주술사)의 기능을 스님이 담당하여 승려가 주술을 읇고 향가를 부르는 구절이 있는가 하면, 여성 무당인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은 여왕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또 보살이 산천신의 모습이나 산신령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본지수적사상도 있었고, 오악산신의 전통신을 받드는 팔관회가 불교 행사인 연등회와 같이 개최되기도 합니다.

이중 특이한 것중 하나가 신라 불국토설입니다. 이것은 신라가 불가의 원형으로 불국토의 정통을 가지고 있다는 설인데, 신라왕족은 이것을 당연한 이데올로기로 활용하였습니다. 예들 들면 전통적으로 신성한 땅에 사원을 건립하여 그 정기를 이어받는다던가, 옛날 신성한 소도 자리에 7개의 절로 만들어 도를 닦도록 하게 한다던가 하는 전통을 만들어 내는 것 등을 말합니다.

그중 신성한 소도 자리에 7절을 만들어 불도를 닦았는데, 이것이 바로 신성한 소도인 7가람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연유입니다. 즉 신라초기의 불교 성격은 이로 비추어 다음과 같다고 볼 수 있겠네요.

1. 중앙집권의 시대요구에 따라 체제의 정비와 사회통합으로 불교를 이용하였다.

2. 샤머니즘적 성격으로 토착신앙과 융합되었다.

3. 지배층 위주의 귀족불교이므로 하생적 미륵신앙이라던가, 윤회사상, 인과응보설(업설) 등을 이데올로기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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