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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비석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62세 되는

계묘년 5월 7일 임진날에 돌아가셔서,

을사년 8월 12일 갑신날에 이르러

대묘에 예를 갖추어 안장하고 이와 같이 기록한다. .

- 무령왕 지석 -

돈 1만닙, 다음의 건.

을사년 8월 12일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앞에 든 돈으로 토지신

토왕, 토백, 토부모, 연봉 2000석 이상의 여러 관료에게 나아가서

서쪽 땅을 사들여 묘을 만들었으니 문서를 만들어 남긴다.

현 율령에 따르지 않는다.

- 무령왕비 지석 뒷면 -

참고글 : 무령왕은 22담로를 설치하고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통제를 했다는 내용이 교과서에 나옵니다. 또 중국 양과 통교를 하였는데, 사료를 보면 그 관계에 대하여 이견이 있습니다. 영과 통교할 때 영동대장군이라는 관작을 쓴다는 것으로 중국에 사대를 하였다는 증거가 되면서, 또 사후에 죽을 때는 왕이 죽었을 때 사용하는 <붕>자를 씀으로서 주체적인 국왕임을 보이기도 합니다.

무령왕릉의 지석이 큰 가치를 갖는 것은 <왕릉>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왕의 무덤인지 확인할 수 없어서 <무영총> <금관총> 등 총으로만 부르는데, <능>의 표현을 쓴다는 것은 지석에 왕의 무덤임을 알리는 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석이자, 삼국시대 왕릉 가운데 묻힌 사람이 누군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무덤입니다. 이 지석을 통하여 만든 때를 분명히 알 수 있으므로 왕릉 유적과 유물 시대를 나누는 역사 시대 구분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무령왕릉에는 매지권 개념의 토지 문제가 나옵니다. 즉, 무령왕이 토지신에게 화폐를 주고 토지를 매입하였다는 날짜, 금액, 거래일이 나옵니다. 즉, 화폐로 토지를 매입하였다는 점에서 토지 사유 관념이 나오며, 토지신에게 매입하였다는 점에서 고대 신앙이라던가 도교의 영향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현 율령에 따르지 않는다고 하니, 새로운 어떤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여 이 매입한 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겠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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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각시 2012.03.05 2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라마다 어지간한 풍상을 겪지않은 유적은 없을터이나 좁은 땅이라 그런지 호란이나 왜란
    육이오동란....이 상당수의 우리의 뿌리를 잘라갔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을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