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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러시아사 8 - 니콜라이 1세

 

니콜라이1세

19세기 러시아는 농노제적 후진사회가 계속되었습니다. 알렉산드르 1세는 이러한 러시아를 개혁할 방안을 찾았는데, 이것이 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내각제를 도입하여 새 관료조직을 마련하면 사회개혁을 될 것이다... 라는 것인데, 문제는 이것을 토지 귀족이 오히려 독점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전제적인 지배는 계속되는데, 그 형태만 바뀌어서 토지귀족이 직접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토지귀족이 관료조직을 통해 국가를 다스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유럽의 자유주의 물결은 계속 러시아로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19세기 일부 토지귀족과, 젊은 장교, 대학생 등의 지식인들은 농노제 및 전제정치 폐지를 희망하여 비밀결사조직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추진한 것이 데카브리스트의 난입니다.

이 난의 주체는 민중이 아니라 지식인 장교등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의 주요한 악이 황제와 전제주의, 농노제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르 1세가 죽고,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하자 반란을 일으켰지만, 즉위하는 니콜라이 1세에게 진압당하고 말았습니다.

니콜라이 1세는 즉위전 반란을 교훈삼아 철저한 반동정치로 일관합니다. 출판물을 검열하고, 대학도 감독하고, 비밀경찰을 투입하여 사회 곳곳을 조사합니다. 결국 지식인들은 순수한 문학이나 학문을 통해서만 사회개혁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러한 문학적 개혁주의자은 2가지 조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서유럽을 추구하는 <서유럽주이자>였고, 또 하나는 슬라브민족 고유의 것을 주장하는 <슬라브족의 벗>이었습니다.

니콜라이 1세 때에도 러시아 고유의 확장정책과 남하정책은 계속되었습니다. 일단, 크림전쟁을 통하여 흑해방면으로 남진을 시도하려고 하였고, 그로 인하여 투르크와 마찰을 빚었습니다. 러시아는 러시아 정교회를 보호하고 해협지대에서의 러시아의 특권을 요구하였는데, 이를 투르크가 거부하여 전쟁이 난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전하여 오히려 러시아는 몰다비아, 왈라키아를 투르크에 내주고, 흑해의 중립을 강요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