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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산업혁명과 자유주의 운동의 좌절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한 뒤 알렉산드르 3세는 극단적 반동정치의 강화와 자유주의의 탄압을 시도합니다.

알렉산드르 3세기는 러시아의 산업혁명기라는 사실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즉, 석탄지대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석유를 산출하였으며, 강철과 포를 생산하였고, 이러한 자원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함으로서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또 도시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가 많아져 어느 때보다 파업이 빈발하였구요.

이러한 사회변화를 통하여 러시아에 정당제가 확산됩니다. 즉, 사회민주당이 조직되어 마르크스주의가 확대된 시점이 이 때이며, 또 레닌이 볼세비키당을 만든 때도 이 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의 설립은 러시아의 분열을 초래합니다. 즉, 레닌의 볼세비키당은 중앙의 견고한 소수집단이 당을 지배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소수 멘셰비키 당은 당을 민주적으로 조직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또 입헌민주당(카테츠)가 조직되어 자유주의자들의 온건한 개혁을 대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러시아의 사회적 변화는 러시아가 근대화에 성공하여, 부강한 국가로 갈 것인가, 아니면 실패할 것인가에 대한 기로에 처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알렉산드르 2세 이후 니콜라이 2세는 본격적인 공업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부르조아지 계층이 성장하고, 노동운동도 발전하는 시기였습니다. 특히 러일전쟁에서 일본에게 밀린 러시아는 물가고와 함께 급격한 파업확산이 초래되었습니다. 1905년 민중들은 이러한 러시아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아버지>라 부르던 황제에게 진정서를 내러 갑니다. 그러나, 왕은 수도에 없었고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 잘못된 명령 전달들로 인해 왕의 친위대는 국민들에게 총을 발포하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결과 도시파업, 농민폭동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계속 진행되고, 자유주의자들은 함께 뭉쳐 전제정치에 대한 개혁을 요구합니다.

결국 <10월 칙령>으로 왕(차르)는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승인하고, 공정한 선거권을 통한 입법의회 창설을 약속하게 됩니다. 그러나, 혁명의 기운이 사그러들고, 폭동이 잠잠해지자 차르는 입헌개혁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스톨리핀을 임명하여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할 것을 명령합니다. 이것이 <국가기본법>입니다.

스톨리핀은 혁명파는 탄압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합니다. 먼저, 농업공동체(미르)를 폐지하고 자영농을 육성하려 하였습니다. 즉, 농민의 법적 지위를 시민지위와 동등하게 보장하게 한 것이죠. 또 교육개혁으로 취학률을 높이고, 점진적인 러시아 발전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좌절됩니다. 러시아 사회의 운명은 이렇게 번번이 근대화 기회를 놓쳐가면서 전제정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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