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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막부의 시대

1. 가마쿠라 막부에 대한 개관(12-14c)

일본 막부시기 700년들 통털어볼 때, 가라쿠라 막부는 12-14세기에 걸쳐 존재한 최초의 막부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 가마쿠라 막부를 잘 보면, 이 당시가 중국에서는 송나라가 북방민족의 외침을 많이 받던 시기이고, 한반도에서는 고려가 거란, 여진, 몽골 등에게 시달리던 시대였습니다. 가마쿠라 막부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혼란기와 상관없는 일본열도였지만, 이 막부가 성장하게 되는 경제적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혼란기를 이용한 무역의 호황이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고, 나중에 망하게 되는 것도 북방에서 내려온 원나라의 침입때문이니 국제 정세와 무관한 막부는 아닙니다.

이들은 무신들이 장악한 최초의 사회입니다. 우리나라 고려와 약간 비교되기에, 한번 이 막부체제를 우리 고려사회랑 비교해보았습니다.(어떤 책에도 나와있지 않지만, 제 나름대로 이러한 비교가 도움이 될 것 같기에 시도해봅니다.)

비교학습

가마쿠라 막부

고려의 무신정권

배경

귀족중심의 율령체제의 동요에 따른 호족의 성장

무신차별과 귀족체제 동요에 따른 무신들의 사회불만

무신관계

의리에 기반을 둔 봉건적 질서

무신간 귄력다툼을 통한 최충헌 독재체제의 등장

특징

쇼군은 수도가 아닌 거점에서 전국의 무사들을 지배하는 형식

수도(개경)에서 사병을 거느리고 독자적 관료기구를 만들어 권력 장악

표를 보면 이해가 가시겠지만, 일반 이들 무신이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 것은, 모두 당시 귀족사회의 지배체제의 동요와 관계가 깊습니다. 일본에서는 천황가와 귀족가의 권력다툼이 심해지면서 무사세력이 성장하였고, 고려에서는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등 당시 문벌귀족들이 동요하면서 무신정권이 성립됩니다.

그러나, 일본의 봉건제도가 쇼군과 지토를 중심으로 하는 의리 중심의 봉건질서를 확립하면서 700여년을 이끌어간다면, 고려의 무신정권은 무신간의 다툼 속에서 최충헌 정권의 독재로 이어지고 이 독재는 약 60여년 동안 그 사회를 지배하였습니다. 물론, 고려의 무신정권도 세계제국인 몽골과의 처절한 항쟁이 아니였다면 오래갔을지도 모릅니다. 동시에 출연한 두 세력을 비교하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네요.

가마쿠라 막부의 가장 큰 특징은 봉건제도의 확립입니다.

봉건제도는 앞 장에 자세히 설명했으니, 요점만 짚어봅시다. 봉건제도에서 국왕(천황가)은 존속합니다. 그러나 실권이 없고, 실권은 막부가 가지고 있습니다. 천황은 단지 신성한 하늘의 자손이라는 형식적 신성성만 가진 존재로 전락하지요. 즉, 실권은 쇼군(주군)이 가지고, 무사계급과 주종관계를 형성하는 봉건제도를 확립합니다. 일본식 봉건제도의 특징은 자세히 설명했었죠? 다시 한번 요약하자면,

치안유지와 장원 관리를 위해 쇼군이 부하 무사들을 지방에 파견하는 제도입니다. 쇼군은 슈고와 지토에게 지방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권리와 토지를 분배하고, 이들은 쇼군에게 충성과 봉사를 하는 의리 중심의 봉건제도입니다.

가마쿠라 막부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이것은 호죠씨로 대표되는 <싯켄>이 실제 권력 행사를 하는 시기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미나모토씨의 막부는 쇼군이 3대로 끝나면서, 실제 쇼군의 역할이 초기 요모토모 시기에 비해 현저히 약해졌습니다. 따라서 3대 이후 막부의 실권은 쇼군 아래에서 정치를 담당하였던 <싯켄>이 장악하였고, 이 싯켄 정치는 호죠씨 집단이 계속 세습하면서 영원할 것만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가마쿠라 막부는 원나라의 침입을 막는 과정에서 무사생활이 빈곤해지고, 막부의 재정이 바닥나서 몰락하고, 다시 귀족가문(공가)가 정권을 잡는 시기로 돌아섭니다.

2. 가마쿠라 막부 시기의 가마쿠라 6불교

가마쿠라 시기의 종교적 특징을 찾으라면 <서민적 종교>의 출현입니다. 원래 고대에서의 불교는 귀족적인 불교이거나, 천황의 신성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의 성격이 강한 불교였습니다. 서민들을 위한 구원의 불교가 유행하지 않아서, 불교는 본래의 의미보다 지배집단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성격이 강하였지요. 보통 우리 신라에서 말하는 호국불교, 왕주교종 등이 일본고대 종교에서도 통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중세로 넘어오고 귀족사회가 몰락하자 불교는 서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서민적 불교를 가마쿠라 6불교라고 합니다. 이 시대 불교의 특징은 귀족적 특징을 가진 교종 불교가 아니라, 서민적 특징을 가진 선종불교라는 특징을 가집니다.

교종불교는 귀족적 성격으로서 심오한 불교교리를 이해하거나, 강론, 강회 등에 참석함으로서 깨달음을 얻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책을 살 돈도, 공부할 시간도 없는 서민들에게는 적합하지 못하였습니다. 반면, 선종불교는 아주 간결한 깨달음으로 선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불교종파들을 말합니다. 예로 불교 경전을 몰라도 <나무아미타불>을 되새기며 마음으로 진리를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신라시대 원효스님의 말씀도 선종적인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이지요.

일본 막부시대의 불교도 이러한 선종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정토종, 정토진종, 시종이라는 막부시대 불교 종파는 <나무아미타불>염불만으로 극락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서민들에게 쉽고 간단한 불교진리를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또 임제종, 조동종이라는 선종 종파는 좌선(앉아서 계속 생각하면서 깨달음)만으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불교가 융성한 이유는 2가지 정도입니다.

첫 번째는 일본사회가 귀족사회가 몰락함으로서 새로운 계층의 새로운 종교가 필요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당시 국제적으로 중국 송나라에서 성리학, 선종불교가 유행하였고, 고려의 무신정권기에도 선종이 유행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고려 무신정권과 비슷한 상황의 일본 막부는 이들 선종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탄압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일본식 선종은 막부 시대 내내 유행하였고,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시의 에도 막부 시대에 서민 불교로서 융성하게 됩니다.

3. 가마쿠라 막부의 법

원래 무사들은 율령격식 같은 율령을 지키지 않습니다. 무사들은 법보다는 자기들만의 양심이나 <도리>, <선례>에 따라 재산을 합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이 법이며, 그들이 옳은 일을 행한다고 생각하는 무사의 실천이 곧 <정의>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가마쿠라 막부는 이러한 중구난방의 <정의>를 정리하여 성문법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법이 곧 <고세바이시키모쿠>라는 법이며, 이 법이 무가시대의 근본 법전이 되었습니다.

이 법전은 전국시대에 다시 수정되게 됩니다. 전국시대의 다이묘들은 자신의 영토에서 가신단을 통제하기 위한 법률을 새로 제정하는데 이것이 <분국법>입니다. 이 법은 고세바이시키모쿠를 반영하면서도, 가신 통제라는 중요한 목적을 반영하는 법입니다.

나머지 세세한 법, 제도, 문화, 예술 등은 별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없어서 다 생략하겠습니다. 그럼 이 쯤하고 가마쿠라 막부의 피냄새 진한 정치얘기를 한번 해보도록 하죠.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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