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지  |  모바일  |  이메일  |  블로그  | 교육연구소  |  온라인진단  |  인강사이트  |  평생교육원  | 웹하드자료실

포에니 전쟁과 속주체제, 그리고 에퀴테스의 등장

1. 1차 포에니 전쟁과 로마의 변화

로마는 이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복사업은 이미 멈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귀족들과 평민들은 더 많은 영토가 필요하게 되었고, 어떤 기회만 있으면 로마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지요. 특히 로마는 서지중해로 진출하여, 해상무역을 완전히 장악할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중해 근처에 많은 섬들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 때 시칠리아에서 그리스 식민지인 <메시나>가 시라쿠사의 공격에 시달리다가 남쪽으로는 카르타고, 북쪽으로는 로마에 각각 구원군을 요청합니다. 카르타고와 로마는 이것을 구실로 지중해 패권을 놓고 엄청나게 큰 전쟁을 치루게 되는데, 이것이 역사상 유명한 <포에니 전쟁>입니다.

카르타고는 당시 아프리카 북부와 지중해를 총괄하는 맹주국가로서 고대 오리엔트의 페니키아인들이 해상무역을 위해 설치했던 해상 기지에서 출발한 국가입니다.

로마는 <시칠리아섬> 쟁탈을 위해 카르타고와 1차 포에니 전쟁을 했는데, 이 1차 전쟁은 미리 전쟁 준비를 철저히 한 로마의 승리였습니다. 사실 포에니 전쟁 이전까지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보다는, 북아프리카의 맹주국 카르타고의 전력이 훨씬 우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차 전쟁을 로마가 이김으로서 로마와 카르타고는 대등한 전력을 보유하게 됩니다.

로마는 시칠리아를 거점으로 강력한 해군력을 마련하였습니다. 또, 시칠리아의 풍족한 곡창지대를 이용하여 시칠리아에 <라티푼티움>이라는 대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시칠리아를 속주로 만들어 1/10의 공물을 징수하기 시작합니다.

이 <속주>라는 체제는 이제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수준의 국가를 탈피했음을 의미합니다. 과거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기 전 로마는 점령지를 완전히 장악할 수가 없어서 <동맹시> 관계로 점령지를 보유하려 했습니다. <동맹시>는 로마에게 자치권만큼은 획득하였죠. 그러나 속주는 완전히 로마에 편입되는 식민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로마는 이 속주에서 착취를 하기 위해 <징세청부업자>제도를 도입합니다. 이 <징세청부업자>는 로마사회에서 새롭게 신흥계급으로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2, 3차 포에니 전쟁

2차 포에니 전쟁에서는 카르타고가 철저하게 준비하고 나와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전쟁입니다. 카르타고는 1차 전쟁의 패배가 자국의 안일함으라고 생각하면서 철저한 정신무장을 하고 전쟁에 임하였습니다. 그 유명한 카르타고의 명장 하니발은 로마의 거대한 해군력과 지중해에서 피터지는 격전을 치루는 것을 피하려고 하였습니다. 하니발은 엄청난 숫자의 코끼리 부대와 보급부대를 이끌고 아펜치노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고, 유럽을 한바퀴 돌아 로마의 북쪽 롬바르디아 평원 쪽으로 공격해 들어갔습니다. 이 대군이 알프스를 넘어 공격에 들어갔다는 자체가 발상의 전환이자, 커다란 모험이였지요. 하니발은 칸네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위풍당당하게 로마로 진격합니다.

그러나, 로마는 <동맹시>들의 활약과 전쟁에 패한 장군에게도 예우를 해 주어 사기를 올리는 등 견고한 단결력으로 카르타고의 대군과 격전을 벌였습니다. 스키피오 장군은 오히려, 군사력이 비어있는 상태인 카르타고 본국을 공격하는 작전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스키피오 장군이 지마의 결전에서 승리하고,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함으로서 로마는 서지붕해 패권을 차지하고 카르타고를 <동맹시>로서 편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로마의 동맹시가 되었다는 것에 분노하며, 다시 한번 로마에 저항하였습니다. 로마는 3차 포에니 전쟁으로 카르타고를 완전 파괴하고, 카르타고를 <속주>로서 로마영토에 편입시켜 버립니다.

3. 마케도니아 전쟁

포에니 전쟁이 로마의 아프리카 진출 및 서지중해 정악과정이였다면, 마케도니아 전쟁은 로마의 소아시아 진출 및 동지중에 장악과정이였습니다. 로마는 알렉산더 제국의 헬레니즘을 정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원정을 떠나 마케도니아의 거점지인 코린트를 파괴하고, 그리스의 폴리스들을 해방시켜줍니다. 그리고 코린트를 속주로 편입합니다.

이 마케도니아 전쟁은 로마에게 또 다른 변화를 초래하게 됩니다. 우선, 마케도니아를 정복함으로서 로마는 속주체제가 완전히 확립되어 제국화되어 갑니다. 카르타고를 점령한 후 <아프리카>라는 속주를, 코린트를 점령함으로서 <아시아>라는 이름의 속주를 만들었습니다.

또, 로마에 헬레니즘 문화가 유입되면서 로마 고유의 독창적인 문화가 그리스 및 동방문화와 합쳐저 문화가 한층 성숙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헬레니즘 문화의 특징이 향락적이고, 관능적인 부분이 많아서 로마인의 생활태도와 습관이 사치적, 향략적으로 변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로마의 대표적 보수주의자인 카토는 이것을 <로마인의 건전한 기풍이 망가져가는 과정>으로 보기도 합니다.

4. 새로운 지배층이 등장하다.

포에니 전쟁과 마케도니아 전쟁 등으로 로마에 <속주>가 생기자 이 <속주>에서 나오는 잉여생산물을 관리해야 하는 새로운 지배층이 로마에 등장합니다. 이들을 소위 <에퀴테스>라고 부르죠.

<에퀴테스>는 로마의 세력 확장과 더불어 무역, 상업, 금융에 진출하면서 형성된 새로운 세력입니다. 이들은 부유한 평민층이 대부분을 이루는데, 이들이 하는 일은 정말 다앙합니다. 해상에서의 무역, 징세청부업자, 속주에서의 토목공사, 군용물품 납부자, 군대 수송 담당자 등등 속주 관리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도맡아 합니다. 로마의 지배층은 이들을 법적인 신분으로 인정하고, 속주를 관리하기 위해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점차 대지주로 변모하며, 거대한 장원은 <라티푼티움>을 경영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로마에는 이미 신흥귀족층인 <노빌레스>가 있는데, 이들은 뭘 하길래 또다시 신흥귀족이 탄생하냐는 점이겠죠? 이전 단원에서 전술한 노빌레스는 로마의 반도 통일기에 평민세력의 성장과정에서 성장한 부유한 평민층으로 구성된 신흥귀족집단입니다. 이들은 리키니우스법, 호르텐시우스법 등 정치적인 평등권을 주장하면서 구귀족들과 투쟁하였고, 그 결과 일정한 정치집단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원로원과 최고 귀족집단들은 신흥귀족인 <노빌레스>가 더 이상 성장하는 것은 로마 지배층의 동요를 가져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빌레스는 정치분야에 진출한 배타적인 소수 정치 집단으로서, 이들이 <속주>에서의 경제력을 장악하는 것은 로마 사회에 있어 권력의 집중현상을 초래할 수 있었습니다.

노빌레스의 정권독점과 대토지 확대는 로마에서 법령으로 제한하였습니다. 노빌레스는 새롭게 영토로 획득한 속주가 있을 경우 그곳에서의 무역, 징세청부, 토목공사, 금융법 등의 경제적 역할은 전혀 할 수 없게 제한한 것이지요. 노빌레스는 이제 단순히 대토지(라티푼티움)을 소유하여 농지를 경영하거나, 정치를 담당하는등 귀족적인 소수지배집단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노빌레스는 거의 원로원에 가입하여 정치활동을 하게 됩니다. 정치 외적인 부분은 <에퀴테스>가 담당하게 되는 것이지요.

5. 자영농민이 급속도로 몰락하다.

자, 포에니 전쟁이 끝났습니다. 전쟁에 참여한 평민들은 보상으로 토지를 받고, 더욱 성장해야겠죠? 그러나, 포에니 전쟁 등 <속주> 체제가 등장하면서 로마의 자영농들이 급격하게 망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지만, 몇 가지 키워드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전쟁을 통해서 농지가 많이 황폐화 되었습니다. 따라서 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농산물의 질이 별로 좋지 못한 상황이였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에퀴테스들은 <속주>에서 아주 값싼 가격으로 곡물을 유입하기 시작합니다. 로마의 모든 사람들은 농민들의 물건을 사지 않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자영농민들은 급속히 몰락할 수 밖에 없죠.

또, 전쟁으로 아주 광대한 <속주>라는 땅이 눈 앞에 놓이자, 유력 귀족과 노빌레스, 에퀴테스 들이 먼저 덤벼들어 토지를 선점하고, 공유지를 차지해버렸습니다. 좋은 땅은 그들이 먼저 차지해버린 것이지요. 특히, 속주는 이탈리아 반도와는 다르게, 지중해나 에게해를 건너야 도달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였습니다. 자영농민들이 개간하기에는 너무 먼 그림의 떡이였지요.

따라서, 속주에서의 땅은 유력한 귀족들이 대토지를 선점하여 <라티푼티움>이라는 대농장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것은 귀족이 대토지를 혼자 소유할 수 없으며, 평민에게 분배해야 한다는 <리키니우스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평민들이 성장하면서 귀족들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법이 이제는 지켜지지도 않는 것이지요. 이제 유력한 노빌레스와 에퀴테스라는 귀족들은 엄청난 전쟁 노예를 동원하여 전형적인 고대적 생산방식으로 토지를 경영하기 시작합니다. 서양에서는 시대구분을 할 때, 전쟁 노예를 동원한 대토지 경영을 전형적 고대시대의 특징으로 보곤 합니다.

이렇게 <속주>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로마의 자영농민은 몰락합니다. 농민이 몰락하니, 전쟁에 참여할 시민은 부족해지고, 빈부차이는 심해져 로마인이라는 일체감도 사라집니다. 또, 헬레니즘 문화의 유입으로 로마 귀족들은 점차 향략적인 생활로 변해갑니다. 이제 로마의 공화정은 뭔가 대수술을 하지 않으면, 망할 것 같은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글을 퍼가실 땐 댓글을 남겨주시는 것...인터넷 문화의 기본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데이터분석 및 교육 전문기관

본 협회에서는 회원 외에는 댓글을 달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