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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중국사 이야기 3 - 중국 최초의 신성왕조 <은나라>

중국의 신성왕조 <은나라>

1. 은나라를 개관해보자!

은왕조는 중국에서 유물이 발견됨으로서 가상의 왕조가 아니라 실제 존재했던 왕조로 최근 판명된 왕조입니다. 물론, 은대 이전 상왕조가 있긴 하지만, 아직 확실한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여기서 내용을 서술할 객관적 근거가 부족한 관계로 중국의 왕조는 <은왕조(상왕조)>부터 기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상 왕조는 황하 중하류 일대의 <은허>라는 곳을 수도로 삼아 그곳에서 시작된 청동기 국가입니다. 문명 발생기에 시작된 최초의 왕조로서 그 국가의 구성은 수많은 도시 국가들이 연합한 연합왕국의 형태이지요. 그 도시 국가 중의 최고권력자가 <은>의 왕을 자임하는 형태입니다.

은 왕조의 성격은 신정정치 사회라는 점입니다. 왕은 정치와 종교를 동시에 주재하는 신관입니다.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에서 매게체의 역할을 함으로서 왕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우리가 제정일치 사회라고 하는데, 일반적인 제정일치보다는 좀더 왕의 신성함이 강조된 국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은에서는 점인이 따로 있어 점을 보긴 하지만, 그 점에 대한 판단은 왕이 자의적으로 해석합니다. 또 천신사상이나 조상신 숭배 등이 아주 중요시되는 시대였습니다. 흔히 우리는 이러한 은 왕조를 <신성왕조>라고도 부릅니다.

2. <신성함>을 매개로 뭉친 도시국가들

은은 전술했듯이 몇 개의 도시국가가 연맹한 형태로서, 유력한 도시국가가 맹주가 되어 <은>이라는 나라를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연맹국가인만큼 정치, 군사적인 중요한 일들은 하늘의 자손들(씨족집단들)이 합의하여 처리하게 되죠.

은의 국가 구성은 일단 은왕이 있는 <직할지>인 <대읍>이 있고, 나머지 지방은 <족읍>이라 하여 왕에게 충성하는 <방백>들이 관할하는 구성입니다. 초기에는 왕위세습이 형제 상속이였지만, 후기에는 부자상속이 일반화되면서 은나라는 점차 강해지는 추세로 나아갑니다. 은나라에서 왕권의 <부자상속>이 확립된 시기 무렵에는 읍제국가(도시국가)들은 은에 부역, 병역 등 의무를 이행해야 했습니다. 은 왕은 그 권력이 강해짐에 따라 도시국가의 족장들을 <후, 백>으로 임명하여 통치합니다. 이것은 서양에서의 공작, 백작, 후작과 같은 작위제로서 은대에 이미 봉건제도가 존재하였다는 증거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은왕조는 다수 도시국가의 중앙정부 성격을 갖는 봉건국가로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은왕조는 이 봉건적인 체제를 계약관계 등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신성함>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유지하려고 하였습니다. 같은 하늘의 자손들이 지배자가 된다는 개념으로 조상숭배가 강조되었습니다. 거북이 뼈나 등피를 이용한 갑골문자 등에 의한 점, 복사 등을 보아도 알 수 있죠. 또 은왕은 하늘에 의해 점지된 자로서 신성불가침이라는 <천명사상>은 은왕조를 지탱하는 끈입니다. 달력으로 사용된 은력에서도 이러한 신성함이 엿보인다고 합니다.

특히, 은왕조에서는 아주 큰 왕의 무덤들이 발견되곤 합니다. 이것은 제사의 대상으로서 조상신을 모시는 종교의례를 뜻하며, 이것으로 보아도 <신정정치>, <조상숭배>, <제정일치>의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한자의 기원이 되는 갑골문자를 보면, 우주를 지배하는 천신(상제님, 하늘님)의 뜻을 묻는 복점이 많습니다. 이 복점은 국가대사와 일상생활 등 은나라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것으로서, 신정정치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3. 그들의 단합은 <제사>, <전쟁>이었다!

은나라의 사회구조를 알기 위해 당시 지배집단을 살펴볼까요?

일단 지배계급으로는 국왕과 왕족이 있는데, 이들은 왕의 직할지인 <대읍>에 살았습니다. 지방은 제후들에게 후, 백, 방백 등의 칭호를 내려주면서 <족읍>을 분봉합니다. 대읍-족읍-소읍은 전 단원에서 자세히 다루었죠?

이러한 지배집단이 하나로 뭉치게 되는 것은 <제사>입니다. 같은 하늘의 자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제사가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다른 집단이 쳐들어왔을 때는 그것을 막기 위해 하늘의 자손들이 뭉쳐 <전쟁>을 치루게 됩니다. 따라서 은왕조에서 가장 강조된 관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제사>와 <전쟁>에 관련된 관직들입니다.

은왕조에서 피지배집단은 일반 백성들과 노예계급입니다. 일반적으로 은대 사회를 노예제 사회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노예노동을 기반으로 지배층들이 생활을 유지하였으며, 노예의 명칭이 상당히 다양하고, 순장이 발달하였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예제 사회가 아니였다는 반론도 많은데, 제가 중국사에 약해서 그 부분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은 나라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회생산 단위는 <읍>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후들에게 나누어준 <족읍>이 가장 중심인데, 족읍은 원래 혈연관계로 맺어진 씨족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사는 마을이였습니다. 즉, 읍은 혈연성이 강한 사람들이 서로 모여사는 곳으로 볼 수 있죠. 그러나, 이 <읍>이라는 구조가 대읍 - 족읍 - 소읍 등으로 구성된 만큼, 읍 상호간에 <중층적인 예속관계>가 존재합니다.

4. 수준낮은 집단농경,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

은나라에서는 농업, 목축업, 우경을 했다는 기록이 갑골문에 암시적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대의 청동기 사회는 아직 개별적인 농경이 발달하지 못하여, <집단농경방식>으로 농사를 지었을 것입니다. 씨족사회인만큼, 씨족들이 함께 경작하여 농업생계를 이어갔던거죠. 실제, 개별적으로 농사를 짓는 자영농민이 출현하는 것은 씨족공동체라는 사회 기본틀이 무너져야 가능합니다. 보통 씨족공동체가 무너지고, 실력 위주의 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개별적인 자영농민이 등장하는 것도 그 시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네요.

은대에는 또 수공업이 발달하였습니다. 기술자는 공인계층을 형성하여 관청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청동기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였습니다. 보통 우리가 은대 문화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문화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 청동기 문명 때문입니다. 청동기 물질 문화는 엄청나게 고도로 발달한 선진적 물질문명사회가 은나라인데, 그에 비해 정신 문명이 너무 뒤떨어집니다. 종교관이나 자연관 등 정신세계는 복점을 본다던가, 신의 후예들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은나라에 발달된 청동기 문명은 조상신의 숭배 정도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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