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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쿠스 형제, 마리우스, 시저, 그리고 옥타비아누스

1.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지금까지 포에니 전쟁 이후 평민 계층이 급속하게 몰락하면서 로마 공화정에 위기가 찾아온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러한 로마 공화정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평민대표인 호민관들은 다시 자영농민을 육성하고, 평민에게 땅을 돌려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이것은 로마 공화정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호민관으로서 로마 공화정을 개혁하려고 했던 사람은 그라쿠스 형제였습니다. 이들의 개혁목표는 자영농민의 생활을 안정시켜 사회불안을 막고, 로마 군사력을 다시 강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평민층에게 혜택을 줌으로서 기득권층인 귀족들과 충돌하여 결국 실패합니다.

먼저, 형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농지법>을 만들어, 개혁을 추진합니다.

농지법의 중요한 내용은, <리키니우스법>에 근거한 토지개혁입니다. 과거 로마의 평민들이 성장할 때 만든 리키니우스법은 귀족들의 대토지 소유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에니 전쟁 이후 귀족들은 이러한 리키니우스법을 무시하고, 대농장(라티푼티움)을 경영하여, 평민층 몰락을 가속화했습니다.

티베리우스는 부자들의 공유지 점유면적을 제한하고, 그로 인한 잉여 토지를 빈민에게 분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자영농 육성을 위하여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였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티베리우스의 개혁은 기존 벌족파(귀족파)들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결국, 로마는 티베리우스 중심의 평민파와, 원로원 중심의 벌족파가 대립하는 혼란 상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티베리우스는 이 와중에 암살당합니다.

얼마 후, 동생인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다시 호민관에 선출되었습니다. 가이우스는 형의 개혁 실패 원인을 <농지법>을 지나치게 추구한 것에서 찾았습니다. 즉, <농지법>으로 귀족들의 땅을 빼앗아 평민에게 분배한다는 개혁은, 벌족파의 반발이 크다는 것을 안 것이죠. 따라서 가이우스의 개혁은 <농지법>보다는 <곡물법>에 치중한 개혁이였습니다.

가이우스는 농민들이 몰락한 원인 중 하나가 속주에서 들어오는 값싼 곡물값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귀족들의 토지를 빼앗아 평민에게 주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가이우스는 빈민들을 카르타고와 같은 식민지로 이주시켜 그곳의 땅을 주고, 생산된 농산물을 싼 가격에 빈민에게 분배하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곡물법>에 의해 카르타고에 가난한 시민을 이주시켜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그리고, 이 속주에서 징세를 하거나, 무역을 할 수 있는 계층으로 <에퀴테스> 계층을 택합니다. 에퀴테스는 앞 장에서 자세히 설명했죠? 이들은 기존 귀족인 <노빌레스>와 차별화되었습니다. 가이우스는 이들 에퀴테스에게 속주의 징세권, 법정의 배심원자격 등의 특권을 부여하고, 특별한 신분이라는 표시까지 해줍니다.

이러한 가이우스의 <에퀴테스> 밀어주기와 속주 물품의 싼 값 제공은 또 다시 벌족파 원로원(노빌레스 계급)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원로원은 가이우스와 대립하였습니다.

또 가이우스는 이탈리아 동맹시에게 로마 시민권을 확대하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로마가 영토가 넓어지고 제국화로 가는 전환기였기 때문에 가이우스는 이 시대적 상황을 파악하여 동맹국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권의 확대는 가이우스를 지지하는 평민파들마저 가이우스를 떠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평민파 귀족들의 입장에서는 시민권의 확대는 로마 귀족층의 권리 제한으로 느낀 것 같습니다. 가이우스 역시 암살당하고 맙니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과 그 반대세력의 주장

<평민파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주장>

이탈리아를 위해 싸우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공기와 햇볕밖에 없으며, 집도 안식처도 없이 처자를 이끌고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부귀와 사치를 위해 싸우다 죽지만 한 뼘의 땅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벌족파인 키케로의 주장>

평민파임을 자처하면서 토지 점유자들을 내쫓기 위해 농지법을 통과시키고자 하는 자들은 공화국의 주춧돌을 깍아 없애고 있다. 귀족은 기사의 지지를 바탕으로 공화국을 수호해야 한다.

2. 군벌시대의 출현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로마의 지배층은 벌족파(옵티마테스)와 평민파(포풀라테스)로 완전 분열됩니다. 벌족파는 원로원을 중심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현 체제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반면, 평민파는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면서 자영농민에게 토지를 돌려주자라는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습니다.

이 혼란한 시기를 틈타 세력을 키운 것은 다름 아닌 군벌들이였습니다. 군벌들은 원로원이 사회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부패와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자, 그 틈에서 성장합니다. 당시 벌족파와 평민파는 상호 투쟁과정에서 수많은 장군들의 협조를 받아 상대파를 꺽으려고 했습니다. 이 속에서 성장한 장군들은 각각 벌족파, 평민파를 대변하면서 실권을 잡습니다.

가장 먼저 정권을 잡은 장군은 평민파의 <마리우스>장군입니다. 그는 몰락한 평민들에게 직업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무직자, 무산자들을 지원병으로 모집하여 직업군인을 모으는 것이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모병제도이죠. 이것은 2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빈민들은 일정한 수입을 얻는 군인이 될 수 있고, 마리우스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병>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마리우스는 전쟁에 참여한 자신의 병사들에게 전리품을 주고, 두둑한 보상금을 주며, 퇴직후에는 노후보장까지 해주었습니다. 사병들은 로마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마리우스를 위해 목숨걸고 싸우게 됩니다. 마리우스는 이 사병들을 데리고 이민족과 반란군을 격퇴하였으며, 로마 영토 확장에도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시도했다가 실패해서 암살당한 계기가 된 <로마 시민권>확대를 시도합니다. BC 91년에 이탈리아 동맹시들은 <시민권>을 요구하면서 동맹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마리우스는 그것을 기회로 모든 이탈리아 반도 안에 거주하는 로마 시민에게 시민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이러한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을 군사력을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살육했습니다. 피의 살육을 통해 마리우스는 평민파가 추구하는 정책들을 하나 하나 실현하였고, 그라쿠스 형제가 하려다 실패했던 정책들도 다시 시도하려고 했습니다.

벌족파들은 마리우스에게 대항했습니다. 특히, 벌족파 장군은 슐라는 마리우스와 계속 대립하였고, 결국 마리우스를 제거합니다. 이제 로마는 벌족파인 슐라가 종신독재관으로 취임하는 군사 독재 시대가 열립니다. 로마사 2편에서 이야기 했듯이, 로마는 독재관이여도 6개월 이상 독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슐라가 이러한 로마의 국가 원칙까지 무시하면서 집권했기 때문에, 로마는 이제 법이 아닌 군부가 다스리는 국가로 넘어간 것이지요. 로마 공화정의 국가 체제는 이로서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어졌습니다.

3. 3두 정치와 카이사르

슐라가 죽은 뒤 슐라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벌족파들이 집권을 합니다.

특히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이사르가 벌족파 원로원들의 묵인 속에서 동시에 정치를 담당하게 되는데, 이것을 역사에서는 <제 1차 삼두정치>라고 합니다.

폼페이우스는 마리우스파 토벌을 통해 성장하였고, 스파르타쿠스의 난 이후 남아있던 노예검투사들을 토벌하면서 유명해진 장군입니다. 크라수스는 슐라 밑에서 재정업무를 보면서 성장한 로마 최대의 부자였는데, 그는 스파르타쿠스 토벌에 재산과 군사력을 지원함으로서 원로원의 인정을 받은 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카이사르(시저)는 갈리아를 정복하면서 로마 제국의 대외적 영향력을 독점하였고, 로마문화를 유럽대륙에 전파하는데 큰 공을 세운 자였습니다. 사실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같은 위대한 장군이 2명이 존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였습니다. 그러나 크라수스가 가운데에서 이 둘을 잘 견제하였기 때문에 삼두 정치가 가능했었죠. 그러나 크라수스가 동방에 머물다 죽게 되면서, 삼두 정치는 깨지게 됩니다.

원로원은 확실한 벌족파 귀족출신인 폼페이우스와 평민파 성격을 가진 사병들을 거느린 카이사르 중에서 폼페이우스를 선택하려고 했습니다. 원로원은 카이사르를 갈리아에서 돌아오라고 소환합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에서 군대를 몰고 로마로 진격하여 폼페이우스와 벌족파 원로원 멤버들을 제거하고 군사력으로 로마를 장악합니다. 또, 벌족파와 손을 잡고 있던 이집트를 격파합니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이 사건 이후 로마 역사에 깊게 관여하게 되지요.

카이사르의 독재는 흔히 <빵과 서커스 정치>라는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두환 시절에 3S 정책이 있었죠. 국민들이 군사독재정권에 반항하게 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영화(Screen), 스포츠(sport), 섹스(Sex)를 국가적으로 보급하여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도록 한 정책이죠. 카이사르는 이 정책의 원조입니다. 그는 클로디우스를 등용하여 <빵과 서커스 정치>를 로마에 뿌리깊게 박아높았습니다. 특히 대외원정을 오랫동안 하면서 헬레니즘 성격의 동방문화를 많이 접한 카이사르는 <향락적이고 관능적인 헬레니즘 문화>의 성격을 제대로 알고 있었죠.

클로디우스는 정복사업에 대한 보상으로 빈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합니다. 빈민들에게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을 무상배급했죠. 그리고 경기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무료라고 선언합니다. 자유로운 성(sex)의 개방화도 추구합니다. 이러한 정책으로 로마 시민들은 카이사르 독재에 대한 반항이 거의 없었습니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종신독재관>이였습니다. 그는 평민파의 입장에서 로마의 재건과 공화정의 개혁에 착수합니다. 평민들이 억울하게 진 빚을 탕감해주고, 곡물 무상배급, 대외 식민지 건설 등을 통해 로마라는 나라를 세계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특히 카이사르는 자신의 점령지였던 북이탈리아와 갈리아 지방에도 라틴시민권(참정권이 없는 시민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시민권을 분배합니다. 이것이 카이사르의 정책이였지요.

4. 카이사르 이후 로마의 시민권은 확대되다

로마 시민권은 3편에서 자세하게 다루었습니다. 여기서는 카이사르 전후를 토대로 시민권의 확대 과정을 더 첨부해볼께요. 초기 로마시, 동맹시, 식민시에 차별적으로 적용했던 시민권은 공화정 말기 점차 확대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권이란 로마시민권(참정권이 있는 시민권)이 아니라 라틴시민권(참정권은 없이 시민으로만 인정되는 시민권)임을 명심하고 읽으세요.

BC 91년 동맹시 전쟁으로 이탈리아내의 동맹시에 시민권이 발급됩니다.

카이사르 시기에 이탈리아를 넘어 갈리아, 북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시민권이 발급됩니다.

로마 제정기(AD 3C) 카라칼라 황제 시대에는 로마 제정의 궁핍을 극복하기 위해 전 로마제국내의 모든 민족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합니다.

이것이 로마 시민권의 역사입니다. 이 시민권 확대에 맞추어 로마의 법도, 만민법, 자연법 단계의 법으로 확대되어 간답니다.

5. 2차 삼두정치

카이사르의 독재는 영원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원로원은 카이사르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밉니다. 카이사르의 양자인 브루토스를 이용하여 카이사르를 제거한 것이지요. 카이사르는 결국 가장 믿었던 양아들에게 제거 당합니다. 카이사르를 제거한 이후 로마의 실권은 당시 유력자 3인에게 다시 넘어가 제 2차 삼두정치가 시작됩니다.

이것은 레피두스의 중재 속에서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가 연합한 삼두정치입니다. 안토니우스는 이집트를 비롯한 동방지역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옥타비아누스는 시저가 남긴 유산인 갈리아를 비롯한 서방지역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삼두정치는 오래가지 않았고, 곧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역사를 건 한판 대전을 벌입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악티온 해전>이죠.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의 지원을 받은 안토니우스는, 유럽에서 사병집단을 구성한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하고 맙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정적들을 제거한 후, 공화정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실제로 독재체제를 구축해나가는 이른바 <원수정>이라는 정치체제를 만들어 로마의 제국화를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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