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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 조선의 발전과 멸망의 역사

1. 위만 조선의 발전

철기 무기를 사용하여 정권을 잡은 위만조선은 준왕을 월지국으로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자 우거왕 때에는 발달된 철제 기술을 확보하면서 남부 진국과 중국 한나라 사이에서 대동강 유역의 무역권을 이용한 중계무역으로 성장합니다.

위만조선은 진국과 압록강 중류의 예족(예군남려) 세력을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위만조선의 압박으로 예군남려는 한나라에 투항해 버리기도 합니다. 한나라는 예족의 땅에 창해군을 설치하고 예인을 이용하여 위만조선을 압박하려고 했으나, 예인들은 오히려 한나라의 강압정책에 반발하여 창해군은 몇 년 안가 소멸됩니다.

당시 중국의 패자인 한나라의 한무제는 흉노와 맞써 싸우는 일에 주력했었습니다. 초기의 한무제는 위만조선과 대립하려 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흉노를 무찌르기 위해 서역 월지국과 동맹을 맺으려 한 한무제가 장건을 파견하면서 비단길이 열리고 서역과 적극적인 무역로가 개통되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흉노는 중국과 서역의 직접 무역으로 비단값이 떨어져 경네난이 유발되자, 위만조선과의 연합을 추진하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한무제는 흉노 세력을 약화시킨 후 서방 9군을 설치하고, 고조선에도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한무제는 위만조선의 중계무역을 독점하고, 흉노와 조선의 연결을 막기 위해 대동강 무역권을 강탈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1년여에 걸친 한과 조선의 처절한 전투가 시작되었죠. 그러나 위만조선에서는 조선상 노인, 상 한음, 장군 왕협 등이 한나라에 투항하고, 이계상이 우거왕을 피살함으로서 멸망의 길을 걷습니다. 대신 성이가 계속적으로 항전했지만, 결국 기원전 108년 조선은 멸망하고 맙니다.

2. 한나라의 분열정책

한은 조선의 땅에 한4군을 설치하여 감시하였습니다. 그 목적은 적극적으로 주도 세력 성장을 방해하여 그 땡을 한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츰 군현의 주변지역까지 경제, 문화적으로 흡수하면서 옛 조선의 영토는 심각한 사회분화 현상을 겪게 됩니다. 조선 멸망 이전부터 소국으로 존재하였던 예, 맥, 한족들은 소국으로 분립되어 상호 항쟁하게 되었고, 토착사회는 60여개의 법으로도 모자랄 정도로 사회가 분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화는 2가지 문제점을 가져옵니다. 첫 번재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족장 세력들을 통합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여 자기 지배 체제로 끌어들이는 문제, 두 번재는 중국문화에서 벗어나려는 다른 새외 민족과의 충돌에서 승리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살아남은 국가들이 고대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가 됩니다.

그럼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사회분화 속에서 살아남은 초기 국가들을 살펴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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