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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은 고조선에서 나왔다. - 삼한의 역사

삼한은 고조선에서 나왔다

1. 삼한의 기원에 대한 신채호의 학설

삼한의 위치에 대해서는 자세한 역사적 기록은 없습니다. 한백겸은 동국지리지에서 마한은 경기, 충청, 전라지역이고, 진한과 변한은 경상도 지역이라고 서술한 정도입니다. 중국 삼국지에는 변진은 잡거한다고 표현하여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삼한 78개국은 제각각 왕이 있고 통치조직을 갖춘 독립국이었습니다.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는 고조선이 과거 위대한 우리 시조 국가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조선상고사를 적으면서도, 남쪽 진국의 역사는 상세히 적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우리의 과제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강조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신채호는 민족의 영광된 시기의 기원을 단군에서 찾았고, 단군으로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역사를 강조했으니까요.

신채호는 고조선이 3조선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신한, 불한, 말한이였습니다. 그 중 신한이 고조선을 이끄는 대왕의 국가였습니다. 불한과 말한은 신한의 부왕이였습니다. 이 3명의 왕이 각각 3경이 거주했답니다. 이것을 신채호는 전 3한시대라고 부릅니다.

3한은 같은 민족이였으나, 기원전 4세기 신조선은 연해주, 불조선은 요동, 말조선은 한반도를 지배하며 영역을 각각 분리하여 통치하였습니다. 신채호 이론에 따르면 진국은 곧, 말조선의 영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리되기 전의 조선을 분리된 후의 조선과 구분하기 위하여 전자를 고조선이라고 부르기로 했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조선은 보통 이성계의 조선왕조와의 구분 때문에 <고조선>이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옛날 단군의 조선이 여러 단계를 거친 국가이므로, 고조선 등으로 구분한다고 합니다.

이 3개의 조선 중, 신조선은 흉노의 침입으로 약화되었습니다. 불조선은 중국 연나라의 장군 진개에게 패하여 영토를 천여리나 잃었습니다. 불조선은 복수하기 위해 중국 진나라와 연합하여 연나라를 공격하기도 했답니다.

불조선은 중국과의 항쟁을 위해 철기를 도입하려 하였고, 중국에서 넘어온 조선 백성인 위만에게서 철기 기술을 도입하고 국방력을 강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위만은 오히려 불조선의 준왕을 공격하였고, 불조선은 위만이 다스리는 위만조선이 되었습니다.

이 준왕이 한반도를 다스리는 말조선으로 넘어와 월지국이라는 나라를 세웁니다. 그러나, 말조선의 공격으로 이 월지국은 망하게 됩니다. (제 글을 제가 받아서 인용해도 옆에서와 같이 저작권보호가 뜨는군요. 티스토리 기능에 만족!!)

2. 신채호가 서술한 남쪽의 나라 <말조선>

말조선은 3개의 조선 중 한반도를 다스린 나라입니다. 처음에는 도읍이 평양이였는데, 이후 국호를 <마한>으로 바꾸고 월지국으로 천도하였습니다. 이 월지국은 준왕이 남쪽으로 내려와 한 때 빼앗기기도 했지만, 다시 탈환하여 <마한>이라는 한반도 국가 중심체를 구축합니다.

마한은 한반도의 종주국이였습니다. 마한은 북방항쟁에서 중국에게 패한 신조선, 불조선의 유민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신조선의 유민들이 동부에 정착하여 진한이 되었고, 불조선의 유민들이 남부에 정착하여 변한을 형성합니다. 이로서 북방에서 활동하던 전삼한시대의 3개 조선은, 남방에서 다시 후삼한시대를 열게 됩니다.

이 삼한시대는 마한왕이 <진왕>이라고 자처하면서 <진국>이라는 국가 공동체를 이끌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채호의 3한 조선설은 오랫동안 우리 역사자료로 참조되어 왔지만, 근거가 빈약하다고 해서 교과서에 실리지 못하고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생각거리로 전락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신채호의 3한 조선설이 고조선의 진정한 역사와 한반도 남쪽 <진국>의 정체를 밝힐 중요한 단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대학교 출신의 역사 교수들은 이 3한 조선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고조선, 고구려사 역사 왜곡에 대항할 논리로 이 신채호 선생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그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민족주의 역사학자 박은식 선생님도 같은 맥락의 역사학을 연구한 적이 있다고 하네요.

 
고조선의 위대한 영광이 빛나던 시대에 실제 우리 민족의 주요 터전이였던 한반도의 역사는 200년 이상 아무런 자료도 없이 묻혀있다가 갑자기 삼한시대를 거쳐 백제, 신라가 튀어노왔다는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 백제의 전성기인 4c에 백제인들은 중국 각지에 진출하였고, 일본 규수 지방까지 세력을 넓히며, 고구려의 수도를 공격하기도 하는 강대한 세력이였습니다. 그러한 세력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을까요? 백제 이전의 역사인 <진국>의 역사는 밝혀져야 합니다.

3. 진국과 진왕에 대한 기록

중국측의 기록은 진국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삼한의 전신인 진국에 대한 역사는 추론으로 찾아야 합니다. 진한은 옛 진국이라는 명칭에서 나왔다라던가, 삼한 전체가 진국이다라던가, 진왕이 진한의 왕이다라던가, 진왕이 삼한 전체의 왕이라던가 하는 학설이 분분합니다. 신채호의 학설로 보면 북에서 이주한 진한, 변한인들은 마한인의 통제를 받았을 것이므로 진왕이란 마한의 왕을 뜻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삼한에서 우대받는 계층으로서 국가 정책에 참여하는 귀족을 <국인>이라고 부릅니다.

4. 진한의 건국과정은?

진한은 북에서 내려온 흩어진 유민을 묶어 탄생한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로국의 혁거세 왕을 진국의 왕으로 추대했는데, 초기의 신라는 왕이라는 칭호도, 신라라는 국호도 없이 소국들이 연합하여 합의 통치하는 6부 합의 국가였습니다. 왕이 사는 곳은 국읍이라 하였고, 족장들은 별읍에 살았습니다. 별읍에 사는 작은 족장들은 신지, 험측, 번예, 살해, 읍차 등으로 불렀는데, 그 족장의 세력 크기에 따라 이름을 차등있게 부여했다고 생각됩니다. 즉, 국왕 밑에 수많은 족장들이 있었고, 이들 족장간에도 서열이 있었다는 이야기죠. 그러나 별읍간에는 잡거 형태로 경계선이 모호했고, 국왕의 통치력은 실제 하위 별읍에는 거의 미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5. 마한의 운영

마한은 여러나라를 총괄하는 지도적 위치의 국가였습니다. 마한에서는 왕과 별도로 <천군>이라는 제사장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제사를 주관함으로서 흔히 삼한을 <제정분리>라고 합니다. 천군은 솟대를 세우고 제사를 지냅니다. 이것은 왕권이 신성하다는 것을 의례로 보여줌으로서 국읍의 왕들이 정치적 지위를 신성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도는 별읍에 설치되어 천신을 제외한 여러 신들의 제사를 지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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