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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국>의 개념을 심화해보자.

1. 국이란 무엇인가?

앞에 중국사 12장에서 은-주-춘추시대까지의 지방체제와 국, 도, 비의 개념을 심층 분석하였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이 중 현재 국가의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국>의 개념을 자세히 정리해 보도록 하죠.

국이란 원래 초기 씨족사회 및 군장사회에서 <족읍>이라는 독자적 취락을 기본으로 하던 공동체 사회를 말합니다. 주나라 시기 봉건제도에서는 이 <국>이라는 것은 왕이 하사한 봉토의 개념으로 제후가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던 곳이었죠. 그러나 사회 경제가 발전하고, 특히 철기 무기와 농기구가 등장하면서 국은 이제, 하나의 독립된 거대한 세력으로 발전합니다. 이 국이 주왕실의 <직할지> 수준에 맞먹는 생산력과 무기기술 단계에 들어서면 점차 독립하게 되는 것이지요.

은, 주 시기의 도시국가 수준에서의 <국>은 4개의 단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도>에 사는 사람들은 <도성>이라는 성을 쌓아 중심 수도를 이루었고, <국>전체에는 <외성>을 쌓아서 국과 그 밖의 지역(비읍)을 구분하였습니다. 비읍에 사는 자들은 지배층인 국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민이라 불렀습니다.

1. 국 - 내성, 외성으로 구성되어 왕에게 국을 분봉받은 제후가 거주하는 지역
   2. 읍 - 원래부터 씨족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거주하는 곳
   3. 도 - 원래 제후가 경, 대부에게 하사한 분봉 지역이었으나, 춘추시대 중기 이후 국가의 수도로 인식되는 지역
   4. 비 - 국의 외성 밖의 지역으로 작은 소읍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백지역

그리고 국의 교외에는 소읍으로 비읍이 존재합니다. 비읍이란 국과 국 사이의 공백이 되는 모든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은 야인, 비인이라 불러 국에 사는 국인과 차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비인들은 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집단적인 개간을 통해 농업을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철기 농기구가 도입되면서 집단 취락을 형성하여 생산력을 높이게 되었는데, 이로서 비읍의 생산력은 <국>의 생산력에 버금가는 생산력을 보이게 됩니다. 전국시대에 부국강병을 추구했던 각 <국>들은 이 비읍의 생산력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고, 이러한 영토분쟁은 각 <국>의 영유권 주장으로 확대됩니다. 따라서 각 국은 이 비읍을 점령한 다음 <군>, <현>을 설치하여 이 지역을 행정구역화 한 뒤 세금을 걷어 상비군과 관료제를 유지한 제원을 확보하려 하였습니다.

2. 국의 신분질서

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는 바로 제후라 불린 국군(공)입니다. 국군이란 국에서 가장 높은 군주란 명칭이고, 제후는 왕이 분봉한 땅의 주인이란 뜻이며, 공이란 주왕실이 하사한 제후의 명칭입니다.

그러나 국을 지배하는 국군은 춘추중기까지만 해도 힘이 미약했습니다. 그들은 국에 사는 지배층(국인)들의 수장이자 대표자 정도의 위치였습니다. 군사, 제사는 국인들이 공동으로 하여 읍사공동체적 성격을 유지하였습니다. 특히, 제사란 조상신이 같다는 혈연적 유대를 유지하고 종법질서를 확인하는 절차로서 춘추시대 권력의 구조는 아직도 봉건제도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춘추 5패와 전국 7웅을 거치면서 강력한 패자 중심의 정치가 진전되면서 이런 구조는 군현제도를 통한 중앙집권적인 체제로 변화됩니다.

경, 대부는 원래 제후로부터 <채읍>를 분배받아 생활하였는데, 그들은 이렇게 받은 채읍 중 중심지를 <도>라는 본읍으로 만들어 독자적인 권한을 유지하는 지배층(국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땅을 분봉받은 대가로 전쟁에 적극 참여할 의무가 있었고, 공통의 제사를 통하여 종법적 혈연 관계를 확인하였습니다.

국에서 가장 낮은 지배층 계급은 <사>입니다. 사 역시 국인이었지만, 이들은 경, 대부보다 혈연관계가 소원해져서 하위 무사계급으로 추락한 지배층입니다. 그들은 전쟁 참여를 통해 그들의 특권을 유지하였고, 특히 제후, 경대부와 함께 제 3의 세력으로서 국의 지배자 계승권 분쟁, 외교 분쟁 등에 관여했습니다. 만약 국인간에 내분이나 싸움이 날 경우 이 <사>계층이 누구편인가가 상당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이 사계급은 초기에는 몰락한 국인계급이 많았지만, 점차 부국강병을 통해 군사력이 중요해진 춘추 중기 이후에는 실력을 통해 성장한 평민층이 숫자가 많아집니다. 이들 새로운 평민 지배층은 전쟁참여의 대가로 토지를 분봉받은 영주이자, 학문을 통해 성장한 제자백가가 되기도 합니다. 또는 경, 대부로 신분상승하여 제후 밑에서 <재상>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 춘추전국시대의 많은 왕들은 현명한 인재나 강병한 장군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재상>, <장군>자리를 보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자, 맹자, 한비자 등은 각국에서 서로 초빙하려 했던 유명한 제자백가입니다.

여기까지가 지배층입니다.

이러한 춘추전국시대 지배층은 일반 백성인 농인, 공인, 상인, 천민 등과 구별되는데, 그 구별법은 <작>과 <예>라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작이란, 신 앞에서 지배층으로서의 의무를 선서해서 얻은 신분을 말합니다. 흔히 우리가 공작, 백작, 남작, 자작 할 때의 그 작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작을 행하는 의식과 예법을 <예>라고 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고결함의 상징을 이런 <예법>을 아는가로 따졌기 때문에, 이 <예>라는 의식을 행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문명인이자, 국인입니다. 이 예는 사 계층까지만 베풀어지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춘추전국시대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구별하는 방법이라고 하겠네요. 이 <예>라는 단어는 후대 <예절>이라는 뜻으로 인식되어 쓰입니다. 그리고 유가주의자들에 의해 <예>는 인간과 짐승을 구별하는 것으로, 꼭 인간에게 필요한 도덕으로 재인식됩니다.

이 글에 대한 참조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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