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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백제 부흥운동의 실패 사료

백제 부흥운동 - 내분에 의한 부흥운동의 실패 사료

복신 등은 진현성이 강에 바짝 닿아 잇는 데다 높고 험하여 요충지라 하여 군사를 증원하여 지켰다. 유인원이 이에 증원군을 주청하니, 조서를 내려 치, 청, 래, 해주(중국 지명임)의 군사 7000명을 징발하여 좌위위장군 손인사를 파견하여 무리를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웅진으로 가서 유인원을 도와주게 하였다.

이 때 복신은 벌써 병권을 모두 장악하여 부여풍과 점점 시기하여 사이가 나빠지던 터였다. 복신은 병을 핑계로 굴방에 누워서 부여풍이 문병 오기를 기다려 덮쳐 죽일 것을 계획하였다. 부여풍은 이를 알아차리고 오히려 심복들을 거느리고 가서 복신을 덮쳐 죽이고, 고구려와 왜국에 사자를 보내어 구원병을 청하여 관군을 막았다.

구당서 권 199상, 열전 149상, 동이 백제조 용삭 2년(662) 7월

얼마 되지 않아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군사를 아우르니, 풍이 이를 능히 제어하지 못하고 제사만 주관할 뿐이었다.

삼국사기 28권 백제본기 6 용삭 원년(66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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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해석 : 이 사료는 백제 부흥운동이 내분으로 몰락함을 보여줍니다.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풍이 복신을 죽이면서 부여의 부흥운동 구심점은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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