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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경덕왕 대에 안민가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경덕왕 대 안민가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1. 안민가의 내용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 하실지면
   백성은 그 사랑을 알리라
   꾸물거리며 사는 물생들
   이를 다 먹여 다스린다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랴 할지면
   나라 안이 유지됨을 아리이다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박성답게 할지면
   나라 안이 태평하리라.

삼국유사 권 2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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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해석 : 안민가를 경덕왕 대 지은 내용은 신라 사회가 점차 문란해졌기 때문입니다. 신라 중기 전제 왕권 확립 과정에서 신라의 강력한 왕인 신문왕, 성덕왕, 경덕왕 등의 전제적 성향의 왕들은 점차지지세력이었던 진골계 귀족들의 일부마저 내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진골 귀족들의 숫자가 너무 늘어 왕권에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왕에게 친위적인 진골만을 남겨주고 나머지는 신분을 강등시키려는 의도였죠.

성덕왕 때는 김유신 후손을 정권에서 배재하였고, 무열왕계의 진골 직계만을 진골세력으로 우대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무열계 진골이 아닌 진골들은 범내물왕계를 표방하면서 자신들만의 세력을 형성합니다. 이 범내물계 진골 귀족들은 자신들의 불만을 반란 등으로 해소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전제왕권에 더 큰 부담을 주게 됩니다.

경덕왕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안민가를 적극 활용한 것입니다. 안민가는 군, 신, 민의 국가 주체들의 관계를 아버지, 어머니, 자식이라는 관계와 같은 것으로 설정하여 충성, 효도라는 덕목이 결국에는 근본적인 인간의 덕목임을 강조함으로서 왕권의 안정을 강화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안만가와 같은 정의적인 면에 호소하는 노래로는 신라사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혜공왕 대에는 96각간의 난이 일어나는 등 대대적인 귀족들의 반란이 터지고, 상대등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하면서 신라사회는 중대를 마감하고 하대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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