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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병자호란 때 청 태종이 인조에게 보낸 굴욕적인 편지 내용

청 태종이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숨은 인조에게 보낸 편지 원문

1. 주요 내용

<(前略)내가 요동을 점령하게 되자 너희는 다시 우리 백성을 불러들여 명나라에 바쳤으므로 짐이 노하여 정묘년에 군사를 일으켜 너희를 정벌했던 것이다. 이것을 강대하다고 약자를 없신여겨 이유없이 군사를 일으킨 것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너는 무엇 때문에 그 뒤에 너희 변방 장수들을 거듭 타이르되, '정묘년에는 부득이하여 잠시 저들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여 화약을 맺었지만, 이제는 正義로 결단을 내릴 때이니 경들을 여러 고을을 타일러 충의로운 사람들로 하여금 지략을 다하게 하고, 용감한 자로 하여금 적을 정벌하는 대열에 따르게 하라'는 등등의 말을 했느냐. 이제 짐히 친히 너희를 치러왔다.

너는 어찌하여 지모 있는 자가 지략을 다하고 용감한 자가 종군하게 하지 않고서 몸소 一戰을 담당하려 하느냐. 짐은 결코 힘의 강대함을 믿고 남을 침범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도리어 약소한 국력으로 우리의 변경을 소란스럽게 하고, 우리의 영토 안에서 산삼을 캐고 사냥을 했으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그리고 짐의 백성으로서 도망자가 있으면 너희가 이를 받아들여 명나라에 바치고, 또 명나라 장수 공유덕과 경중명 두 사람이 짐에게 귀순코자 하여 짐의 군대가 그들을 맞이하러 그곳으로 갔을 때에도, 너희 군대가 총을 쏘며 이를 가로막아 싸운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짐의 아우와 조카 등 여러 왕들이 네게 글을 보냈으나 너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정묘년에 네가 섬으로 도망쳐 들어가 화친을 애걸했을 때, 글이 오고간 상대는 그들이 아니고 누구였더냐. 짐의 아우나 조카가 너만 못하단 말인가. 또 몽고의 여러 왕들이 네게 글을 보냈는데도 너는 여전히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었지, 그들은 당당한 원나라 황제의 후예들인데 어찌 너만 못하랴!

원나라 때에는 너희 조선이 끊이지 않고 조공을 바쳤는데, 이제 와서 어찌 하여 하루아침에 이처럼 도도해졌느냐. 그들이 보낸 글을 받지 않은 것은 너의 昏暗과 교만이 극도에 이른 것이다. 너희 조선은 遼, 金, 元 세 나라에 해마다 조공을 바치고 대대로 臣이라 일컬었지, 언제 北面하여 남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편안히 지낸 적이 있었느냐.
짐이 이미 너희를 아우로 대했는데도 너는 갈수록 배역하여 스스로 원수를 만들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도성을 포기하고 대궐을 버려 처자와 헤어져서는 홀로 산성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설사 목숨을 연장해서 천년을 산들 무슨 이로움이 있겠느냐.

정묘년의 치욕을 씻으려 했다면 어찌 하여 몸을 도사려 부녀자의 처소에 들어앉아 있느냐. 네가 비록 이 성 안에 몸을 숨기고 구차스레 살기를 원하지만 짐이 어찌 그대로 버려두겠는가.

짐의 나라 안팎의 여러 왕들과 신하들이 짐에게 황제의 칭호를 올렸다는 말을 듣고, 네가 이런 말을 우리나라 군신이 어찌 차마 들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대저 황제를 칭함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도우면 필부라도 천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이 재앙을 내리면 천자라도 외로운 필부가 될 것이다. 그러니 네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방자하고 망령된 것이다.

이제 짐이 大軍을 이끌고 와서 너희 팔도를 소탕할 것인데, 너희가 아버지로 섬기는 명나라가 장차 너희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를 두고볼 것이다. 자식의 위급함이 경각에 달렸는데, 부모된 자가 어찌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네가 스스로 무고한 백성들을 물불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니, 억조중생들이 어찌 너를 탓하지 않으랴. 네가 할 말이 있거든 서슴지 말고 분명하게 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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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문

산셩일긔 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장 필사본

 

산셩일긔 병

만력(萬曆) 십칠년 긔츅(己丑) 구월의 노라치 란 오랑로 뇽호쟝군(龍虎將軍) 이다 노라치 녀진국(女眞國) 오랑니 졔 한아비와 아비 다 다 오랑()의 죽고 노라치 동방(東方)으로 븍녁 모든 오랑 침노야 긔세 졈졈 즁고 잇다감 노략 한인(漢人)을 도로 보 즁도(中朝)의 헌튱(獻忠)더니 다 오랑 근오십 등이 싀합호 노략고 지휘 뉴부 죽이고 건(建州) 노라치 즉시 근오십 의 머리 버혀 듕됴(中朝)의 드리고 조흔 말을 공()고 졔 한아비와 아비 듕국을 위야 병화(兵禍)의 죽은 곡졀&을

알외여 (大將) 일홈을 어드니라 노라치 졈졈 강셩야 제 아 합치 죽이고 군 아오라 모든 오랑 침노더니 무오(戊午) 긔미(己未)년간(年間)의 무슌셩(撫順城) 을 함몰고 총병 쟝승 을 등이 죽고 경냑(經略) 양효 등이 대고 쳠 반춍안 등이 다 죽다 됴션국(朝鮮國) 도원슈(都元帥) 강홍닙(姜弘立) 과 부원슈(副元帥) 김셩《경》셔(金景瑞) (從事官) 니민환(李民) 쇼쟝(小將) 김응하(金應河) 등이 막아  드러가 도젹의게 되니 김응하 종시 굴치 아니코 죽으니 이 닐온 김쟝군(金將軍) 이라 됴졍이 병됴판셔(兵曹判書) 츄증(追贈)고 강홍닙(姜弘立) 이하 다 항복니라 긔미(己未)의 노라치 아국(我國)을 통코져 야 홍&닙 은

머무러 두고 민한《환》 등은 니라 오월의 노라치 국호(國號)()이라 고 황의(皇衣) 닙고 딤()이로라 며 그 후의 심양(瀋陽) 을 함몰(陷沒)니 텬(天子) 원숭환 으로 경냑(經略) 야 광녕 의 가 도젹을 막 엿더니 병인(丙寅)의 노라치 원숭환 의게 야 분통야 등챵 나 죽으니 (次子) 홍타시 셔니라 원 노라치 노다가 뫼 엽 계집이 오좀을 누고 지나가거 보니 오좀이 뫼 러 깁희 가 드러가니 노라치 긔이히 너겨 그 겨집을 다려다가  흐니 이 니 홍타시 라 뎡묘(丁卯) 졍월(正月)의 강홍닙(姜弘立) 이 홍타시 (大軍)을 니 아국(我國)을 침범 압녹강(鴨綠江) &을

어름으로 건너 이 밤의 의(義州) 엄습(掩襲)니 부윤(府尹) 판관(判官) 이 다 죽고 안(安州) 함몰니 병(兵使) (牧使) 들이 다 죽다   샹()이 강화(江華) 의 피란시고 셰 뎐쥬(全州) 로 분됴시다

초의 갑(甲子) 니괄(李适) 의 난()의 괄 의 쟝슈(將帥) 한명년(韓明璉)  도망야 오랑게 가 거즛말노 아국(我國)이 홍닙 의 일문(一門)을 다 즛지 홍닙 을 다 도젹을 인도여 오니 이의 니 됴졍(朝廷)이 홍닙 의 삼촌(三寸) 진쟝《창》군(晉昌君) 강인(姜絪) 과 홍닙 의 쳐 진쳔(鎭川) 의 보 홍닙 을 뵈니 홍닙 이 비로쇼 뉘웃고 도젹도 굿여 아국을 칠 의 업고 아국도  (使臣)을 보 화친(和親)니 젹이 허락다   샹이 노&로

더브러 피 마셔 텬디(天地) 대신(大臣) 윤방(尹昉) 오윤겸(吳允謙) 병조판셔(兵曹判書) 니셩구(李聖求) 참판(參判) 명길(崔鳴吉) 가지로 세의 니라 홍타시 홍닙 과 홍닙 의 호녀(胡女)와 한녀(漢女) 아국이 노젹을 두려 홍닙 의  의논치 못더니 미구(未久)의 홍닙 의 일문(一門)이 의논야 닙 을 가마니 죽이다 경오(庚午)의 노젹이 븍경(北京) 을 침노니 황뎨 원슝환 이 아다가 죽이시다 아국이 노젹으로 더브러 형뎨 되고 츈츄(春秋)신을 보더니(丙子) ()의 무신 니확(李廓) 과 쳠지(僉知) 나덕헌(羅德憲) 신으로 심양(瀋陽) 의 가니 홍타시 황뎨로라 칭고 국호 대쳥(大靑)&이라

며 니확(李廓) 등을 겁칙야 반녈의 니 확 등이 죽기로 듯지 아니 모든 오랑 확 등을 치며 으니 의관(衣冠帶) 여지 종시 굴치 아니니라 확 등이 홍타시 의 답셔 오다가 가마니 셩 직흰 오랑게 두고 오니 당초의 그 편지 맛다 야 됴졍이 논(論罪)니라 년의 뇽골(龍骨大) 마부(馬夫大) 두 쟝쉬 인녈왕후(仁烈王侯) 국샹(國喪)의 됴졔(弔祭)오니  아국을 탐지(探知)미라 됴졍이 야흐로 화친을  ()고 피국(彼國) 쥬샹(主上)긔 편지여시 답지 아니고 인목대비(仁穆大妃) 국샹의 오랑 와셔 됴졔(弔祭)

뎐샹(殿上)의셔 (大行禮)엿더니 이졔 당 금쳔교(禁川橋) 의 쟝()을 치고 치졔(致祭)더니 람이 부러 쟝이 열니 금군(禁軍)들이 이시믈 뇽골(龍骨大) 등이 크게 의려며 댱녕(掌令) 홍익한(洪翼漢) 과 관(館學)이 샹쇼(上疏)여 노 버혀지라 쳥니 뇽골(龍骨大) 등이 듯고 황망이 경셩(京城)이 진동고 묘당(廟堂)이 황겁야 졔신(諸臣)라 보 머믈기 듯지 아니고 도라가니라   샹이 팔방의 하됴(下詔)샤 화친을 파 을 니 날마다 드(上疏) 오랑 칠 말이라 부평(富平) 안산 의 돌이 올마 노히고 경샹(慶尙) 평안도(平安道) 의 올히 호고 대구(大邱) 의 구름이 진치고 쳥파(靑坡) 고리 호고

녜안(禮安) 의 강믈이 허지고 셔울 이 히 븕고 셩듕(城中) 스믈 닐곱 곳을 별학을 치고 큰 믈이 급히 드러와 동대문(東大門) 길이 막히고 무지게  엿더라 녕의졍(領議政) 김뉴() 등이 묘당의 이시 화친은 임의 밋을 거시 업고 호기와 직희기와 다 일 업더라 최명길(崔鳴吉) 이 샹쇼야 화(和使)  교리(校理) 오공(吳公) 과 니조졍낭(吏曹正郞) 윤공(尹公) 이 샹쇼야 명길 을 버혀지라 쳥 됴졍이 이리도 못고 져리도 못더니 김뉴() 와 명길 이 의논여 역관(譯官)을 심양(瀋陽) 의 보 노젹을 탐지 홍타시 역관 니로

"네 나라히 동지달 이십오일 젼으로 대신(大臣) (王子) 아니&면

당당이 동으로 크게 나가리라"

고 그 답셔의 여시

네 나라히 산셩(山城)을 만히 거니와 당당이 대노(大路)로 조 갈 거시니 산셩으로 날을 막을소냐 네 나라히 강화(江華) 밋거니와 팔도(八道) 젹 조고만 셤으로 님군 노 소냐 네 나라히 의논 잡으 니 다 션 가히 붓 둘너 날을 막을소냐

엿더라 묘당(廟堂)이 그 편지 보고 대신을 보고져 나 쳑화(斥和) 의논이 야흐로기의 보다가 오 후의 보 밋지 못니라 김뉴() (金自點) 이 의논야 의쥬(義州) 마산셩(白馬山城) 의 옴기고 황쥬(黃州) 젼《졍》광《방》산 듕(正方山中)의 옴기고 평산(平山) 을 쟝슈산셩(長壽山城) 의 옴기니 각&각

큰 길의셔 삼십 니()고 먼  이틀 길이라 냥셔(兩西) 큰 길이 사 히 되고 김(金自點) 이 도원(都元帥) 되여 니로

"도젹이 반 오지 아니리라"

고 사 혹 도젹이 오리라 고 셩 직흴 군 나토 더 뎡치 아니코 의쥬(義州) 져 편 뇽골산(龍骨山) 봉화(烽火) 셔울 가지 가면 소동(騷動)리라 여 도원슈(都元帥) 졍방산셩(正方山城) 가지 오게 졍엿더니 납월(臘月) 초 뉵일 이후의 년야 봉화(烽火)  뎜 이 니로

" (使臣) 불이라 엇지 도젹이 올 니 이시리오"

초 구일의 비로소 군관(軍官) 신용(申榕) 을 의쥬(義州) 의 보 젹병을 탐지 신용(申榕) 이 순안(順安) 의 니 젹병이 임의

편만(遍滿)지라 신용(申榕) 이 도라와 보뎜 이 대로여 신용(申榕) 을 버히려 더니 다른 군관 이 보니 비로소 쟝계(狀啓)니라 대 젹병이 강을 건너니 (大路)의 것칠 거시 업지라 오기 고 번의 쟝계(狀啓) 젹이 다 아 가진 고로 됴졍(朝廷)이 막연이 몰낫더라 이러므로 십이일 오후의 비로소 젹세(賊勢) 줄 알고 십삼일의 강화(江華) 의 들기 의논 김경징 으로 검찰 이고 니민구 로 부 삼다 김() 그 아 무샹믈 모로 거시 아니로 가속 피란여 경징 으로 검찰 이고   샹이 무시니() 알외 경징 이 이다 더라 십&일의

  대개(大駕) 챵황이 남대문 을 강화(江華) 로 향시더니 젹쟝 마부(馬夫大) 리고 임의 홍졔원(弘濟阮) 의 다라시니   샹이 남문의 뎐좌 황황고 셩듕의 곡셩이 텰텬더라 니판 명길(崔鳴吉) 여 젹쟝을 나가 볼 훈련대쟝(訓練大將) 신경진(申景) 으로 여금 모화관(慕華館) 의 츌진(出陣)고   대가(大駕) 싀구문(水口門) 으로 나셔 남한산셩(南漢山城) 의 드시다 명길 이 마부(馬夫大) 보고 온 연고(緣故) 젹쟝이 답왈

"네 나라히 무단이 여시 화친려 왓노라"

더라 김뉴() 니셩구(李聖求) 등이 쳥(請待) 강화(江華) 로 가시게 졍엿더니 십오일의   샹이 거러 시다가 여러

번 업더지샤 옥톄(玉體) 블평시니 도로 셩의 드시다 대쟝 신경진(申景) 이 동셩(東城)을 직희오고 대쟝(大將) 구굉(具宏) 은 남셩(南城)을 직희고 총육《융》(摠戎使) 니셔(李曙) 등은 븍셩(北城)을 직희고 슈어(守御使) 니시(李時白) 은 셔편 셩을 직희고 셩즁(城中) 군병은 셔울 과 외방으로셔 산군을 합야 겨유 일만 이쳔여 인이오 문무(文武) 관이 이 인이오 종실(宗室)과 삼의(三醫司) 인이오 모든 관원의 노봉《복》은 삼 인이라 명길 이 니경진《직》(李景稷) 으로 더브러 홍졔원(弘濟阮) 으로셔 도라오니 마부(馬夫大) 대쟝이 아니왓기로 말노 명길 을 속이고 십뉵일 식후(食後)라 남한(南漢) 의 다 셩 직흰 군고 겁야 나가 업더라 마부(馬夫大) 대신 쳥&

됴졍이 능봉슈(綾峯守) 로 대군(大君)을 삼고 형됴판셔(刑曹判書) 심즙(諿) 으로 대신이라 야 젹진의 보 심즙 이 니로

"의 말이 츙실기로 오랑도 속이지 못리라"

야 마쟝(馬將) 니로

" 대신이 아니오 능봉슈(綾峯守) 아니니라"

능봉슈(綾峯守) 니로

"진실노 심즙 이 대신이오 나 진실노 왕"

 젹쟝이 속은 줄 알고 도로 보 능봉슈(綾峯守) 와 심즙(諿) 이 도로 셩즁의 오고 마지 못야 승샹(丞相) 홍셔봉(洪瑞鳳) 과 호조판셔 김국신 을 젹진의 보 니로

" 봉님대군(鳳林大君) 과 닌평대군(麟坪大君) 이 강화(江華) 의 이시 못 보노라"

니 마쟝(馬將) 이 니로

"동궁(東宮)이 아니 오면 화친을 못리라"

좌샹(左相) 이 그져 도라오니라

그 날 밤의 녕샹(領相) 김신국(金藎國) 니셩구(李聖求) 최명길(崔鳴吉) 등이 동궁(東宮)  녜조판셔(禮曹判書) 김쳥음(金淸陰) 이 이 긔별을 듯고 비변(備邊司)의 드러와 대언(大言)

"이 의논 놈을 당당이 머리 버혀 야 한  셔지 아니리라"

더라 십칠일의 샹이 남문의 뎐좌(殿座)시고 통교(哀痛敎) 리오시니  가득 졔신(諸臣)이 아니 울 니 업더라 십팔일의 븍문대쟝(北門大將) 원두(元斗杓) 군을 비로소 모 바다 나가 도젹 여셧 죽이니라 셩듕(城中) 챵고의 피 잡곡 합야 겨유 일만 뉵쳔여 셕이 이시니 군병 만인의 일삭(一朔) 냥식은 되더라 소금 쟝 됴희 면화 병기 잡믈(雜物)이 다 니세(李曙) 쟝만여 둔

니셔(李曙) 일컷더라 십구일의 남문(南門大將) 구굉(具宏) 이 발군(發軍) 도젹 이십 명을 죽이다 이 날 대풍 블고 비오려 더니 김쳥음(金淸陰) 을 명야 셩황신(城隍神)에 졔람이 즉시 긋치고 비 아니오니라 이십일의 마쟝(馬將) 이 통 뎡명슈(鄭命壽) 화친 언약 셩문을 여지 아니고 셩 우희셔 말을 뎐다 이십일일의 어영별쟝(御營別將) 니긔튝(李起築) 이 군을 거 도젹 열아믄을 죽이고 동문대쟝(東門大將) 신경진(申景) 발군여 도젹을 죽이다 이십이일의 마부(馬夫大) 

"만일 황연이 다라 왕(王子) 대신(大臣)을 보여 화친"

   샹이 오히&려

허치 아니시다 븍문(北門) 어영군(御營軍)이 도젹 열아믄을 죽이고 신경진(申景) 삼십여 명을 죽이다   샹()(內庭)의셔 호군(犒軍)시다 이십삼일의 동셔남문(東西南門)에 영문(營門)의셔 군   샹이 븍문(北門)의셔 홈을 독촉시다 이십일의 큰 비 오시 셩쳡(城堞) 직흰 군 어러 죽은 만흐니   샹이 세로 더브러 가온 셔셔 하 비러 왈

"금일 이의 니 우리 부(父子) 득죄(得罪)미니 일셩(一城) 군민(軍民)이 무삼 죄리잇고 텬되(天道) 우리 부의게 화() 리오시고 원컨 만민(萬民)을 사로소셔"

군신들이 드시기 허치 아니시더니 미구(未久)의 비 긋치고 일긔 온화 셩즁 인민(人民)이 감읍(感泣)지 아니리 업더라

이십오일의 극한 묘당(廟堂)이 젹진의 신 보오니   샹이 오샤

"아국(我國) 화친(和親)으로 져의게 속으니 이졔 신을 보 욕될 줄 아 모든 의논이 여니 이  세시(歲時)라 술과 고기 은합(銀盒)의 실과(實果) 담아 후졍(厚情)을 뵌 후 인야 졉담(接談)야 긔(氣色)피리라"

시다 이십뉵일의 니경직(李景稷) 김신국(金藎國) 이 술과 고기 은합의 너허 가지고 젹진의 가니 젹쟝이

"군즁(軍中)의 날마다 소 잡고 보믈이 뫼 혀시니 이거 무어 리오 네 나라 군신(君臣)이 필시 굴머시리니 가히 스 도다"

고 드 밧지 아니니라 이십칠일의 날마&다

셩즁의 구완라 오 일인(一人)도 오 니 업고 강원감(江原監司) 됴뎡희《회》(趙廷虎) 본도군(本道軍)이 다 기로 양근(楊根) 의 퇴진여 후의 오리고 몬져 영쟝(營將) 권뎡길(權井吉) 여곰 녕병여 검단셩(劒端城) 의 니 봉화(烽火) 드러셔 죠응(照應)다 이십칠일의 쳬찰(體察使) () 친히 쟝(將士) 븍셩의 가 득젼 도젹이 방포소 듯고 거즛 믈너 져근 군와 우마(牛馬) 머므 이 유인 라 김() 혜아리지 못고 군 독촉야 가 치라 니 산샹(山上)의 잇 알고 나리지 아니니 김() 병방비쟝(兵房裨將) 뉴호(柳瑚) 환도(還刀) 주어 아니 나리 어지러이 즛지 군&

려도 죽고 아니 나려도 죽 비로소 려가 젹진의 우(牛馬) 젹이 본 쳬 아니타가 군리기 기다려 젹의 복병(伏兵)면의셔 닷고 믈너 나아드러 시의 우리 군 다 죽이고 졉젼(接戰) 젹 김() 화약(火藥)을 앗겨 긔 만히 주기 아니고 달 나기 주더니 이 야 화약을 밋쳐 쳥치 못고 조춍으로 셔로 치다가 니긔지 못여 죽은 부지기쉬(不知其數)라 김() 일군(一軍)믈 보고 비로소 초관(哨官)으로 여곰 긔 둘너 군나 군 시방 죽을 의 긔 엇지 보며 긔 본들 어이 밋리오 김() 초관(哨官)을 참

인인(人人)이 다 원통타 더라 김() 고 탓 곳이 업니 핑계여 니로 븍진(北陣大將) 원두(元斗杓) 셔로 구완치 아니타 야 쟝 큰 죄 주려 니 좌샹(左相) 홍셔봉(洪瑞鳳) 이 니 읏듬 쟝쉬 고 버금 쟝슈의게 죄 도라보 맛당티 아니타 니 김() 마지 못궐의 나아가 고 원두표(元斗杓) 의 즁군(中軍)을 곤쟝 팔십을 치다 건쟝 군과 효용(驍勇) 다 쳬부의 모닷더니 이 홈의 인이 죽으니 군즁이 다시 이 업 묘당(廟堂)이 젼혀 화기로 결단더라 심긔원(沈器遠) 으로 뎨도도원슈(諸道都元帥) 삼다 긔원 이 뉴도(留道大將) 으로 쟝계(狀啓) 포슈(砲手) 삼&

인으로 밤의 젹진(敵陣)을 쳐 명을 죽이다  실샹과 다 호조(戶曹) 긔믈을 삼각산(三角山) 의 두엇다가 도젹의게 다 아이고 긔원 이 젹을 피야 양근(楊根) 으로 가니 졔도 군병이 긔원 이 양근(楊根) 의 이시믈 듯고 다 양근(楊根) 으로 가 남한(南漢) 으로 오 니 업고 오직 츙쳥감(忠淸監司) 뎡셔(鄭世規) 본도군을 거 젹진을 러 광쥬(廣州) 산셩 라뵈 진 첫다가 종시 젹의게 여 셩공을 못 그 튱의(忠義) 긔특더라 이십구일의 무(無事)고 삼십일의 대풍(大風)고 일긔 더라 이날 젹이 광노 로 삼 헌능 삼노로 (行兵)여 져므도록  대풍고 젹&병의

모로 대셜(大雪) 왓기로 즁군이 들을 덥허 졈 흰 빗치 업니 그 수의 만흐믈 가히 알지라 젹은 그러고 아국(我國) 이 업니 구완은 오지 아니고 달리 일이 업셔 (行宮) 남녁 작소(鵲巢) 지어시니 인인(人人)이 다 이 라고(吉兆)야 그만 밋더라   뎡츅(丁丑) 뎡월(正月) 초 일일의 일식(日蝕)다 광(廣州牧使) 허휘(許徽) 권모(拳摸) 일긔(一個) 진어(進御)관들의게 두어 가엿더라의 션젼관(宣傳官) 으로 젹진 말을 뎐고 김신국(金藎國) 니경진《직》(李景稷) 을 보 니 젹쟝이 

"()이 어졔 나와 시방 산셩의 형세 둘너 보니 이후 일은 우리 등의 알 아니니 환진(還陣)

다시 오라"

더라 이 날 오후의 동문 밧긔 두 냥산(陽傘)과 큰 긔 세워시니 이거시 반()이러라 초이일의 홍셔봉(洪瑞鳳) 김신국(金藎國) 니경직(李景稷) 이 젹진의 가니 젹쟝이 누른 조희의 편지 샹 우희 노핫거 홍셔봉(洪瑞鳳) 몬져  후 편지 하오니 기셔(其書)의 왈

대쳥국(大淸國) 관은《온》인셩황뎨(寬溫仁聖皇帝) 됴션국왕(朝鮮國王)의게 됴유(詔諭)노라 져젹의 양합 을 칠 의 네 나라히 마치고 후의 명쥬(明主) 도와 나라  오히려 개의치 아냣더니 밋 흘 어드 셩을 초인(招引)야 명됴(明朝)의 드리니 딤이 혁연(赫然)이 노야 뎡묘년(丁卯年)의 군 치니 엇지 연고 업시 군&

혀시리오 네 엇지 도로혀 네 번신의게 닐너 결단야 츙의지(忠義之士)여곰 각각 모으로 여곰 스로 조 치라 여시니 딤이 이졔 친히 왓지라 네 엇지 번 나와 호지 아닛 딤의 졔왕이 네게 편지니 무 연고로 편지 규례(規例) 업노라 뎡묘년(丁卯年)의 네 셤 가온 라나실 젹 편지 왕 거시 졔왕이 아니가 딤의 아와 족 너만 못리오 의《외》변《번》(外蕃) 졔왕(諸王)을 막고 밧지 아니니 졔왕은 대원 황뎨(大元皇帝) 손이라 무어시 너만 못리오 대원(大元) 젹의 됴션(朝鮮)이 죠공(租貢) 긋지 아니더니 이졔 엇지 놉흔 쳬도록  딤이 이&졔

네 나라 네 더옥 여 스로 원쉬(怨讐) 되여 (生民)을 도탄의 지오고 셩곽을 더지며 궁실을 리며 분리여 셔로 도라보지 못고 일신이 산셩의 드러시니 비록 쳔 년을 산들 무어시 유익리오 뎡묘년(丁卯年) 욕을 고져 다가도 젼의 즐겁기 허러리고 후세의 우음을 기치니 이런 욕은 쟝 어이 리오 네 비록 몸을 감초아 살기 도모나 딤이 엇지 즐겨 노흐리오 딤의 졔왕과 문무 졔신이 딤을 권야 황뎨 되니 네 닐오 아 듯지 못 믄 엇지 니 황뎨 되며 아니되미 네게 잇지 아니니라 하&

도으시면 필부(匹夫)도 텬(天子) 되고 하 벌을 시면(天子)도 필뷔(匹夫) 신을 박고 명쥬(明主) 아비 셤기노라 여 날을 모니 이거시 큰 라 딤이 병을 네 나라 팔도 네 아비 셤기던 명 무어 리오 어 식이 급 아비 구치 아닐 이시리오 그러치 아니면 셩을 슈화(水火) 즁의 지오미라 네 만일 말이 잇거든 롭지 아니니라 슝뎡(崇禎) 이년 뎡월 초 이일이라

엿더라 초 삼일의 교셔관 고직 의 겨집이 젹진으로 도망여 와 니로

"그믐날과 하로날의 경셩 을 분탕(焚蕩)

인민을 노략며 인가 만히 블질넛다"

더라 홍셔봉(洪瑞鳳) 김신국(金藎國) 니경직(李景稷) 이 답셔 가지고 젹진의 가니 젹쟝이 니로

"황뎨 명 일이 이시리라"

고 답셔 아니 바드니라 초 일의 긔평군 유(兪伯曾) 이 샹쇼(上疏)야 윤방(尹昉) 과 김뉴() 의 오국(誤國)  히 닐너 다 여지라 쳥니 샹이 을 파직시다 초 오일의 남병(南兵使) 셔우갑《신》(徐祐申) 의 쟝계(狀啓) 드러오니 여시

(兵使) 와 순찰(巡察使) 민경휘(閔聖徽) 마병(馬兵)과 보군(步軍)을 거 양근(楊根) 심긔원(沈器遠) 왓노라

엿더라 븍병(北兵使) 도 오라지 아냐 다 젼라병(全羅兵使) 김준뇽(金俊龍) 이 녕병여 광교산 의 오고 감(監司) 니시방(李時昉) 은 진《직》산(稷山) 왓단 쟝계(狀啓) 드러오니라

초 뉵일의 안 아득다 평안병(平安兵使) 뉴림(柳琳) 의 쟝계(狀啓)의 젹병 오쳔여 긔 챵셩(昌城) 으로 오니 챵셩부(昌城府使) (朔州府使) 산동 죽은동 모 엿더라 강원감(江原監司) 됴졍호(趙廷虎) 의 장계의 검단 이 도젹을 만나 스로 허여지다 엿더라 초 칠일 김(金自點) 의 쟝계(狀啓)의 황(黃海兵使) 니셕달(李碩達) 노 더브러 녕병여 강《광》능 왓도라 엿더라 젼라감(全羅監司) 니시방(李時昉) 의 쟝계(狀啓)의 녕병여 양지 의 와 머무 젼라병 쟝계(狀啓)의 형세 보아 뎐지여 가리라 엿더라 여러 쟝계의 혹 군병 수도 만코 도젹을 치노라 리도 만흐 실샹과 다더라 초 팔일 아의 눈 오고 운암(雲暗)다 초구일 이후 셩 안

셩 밧기 더옥 통치 못야 쟝계(狀啓)쳐지다 십일일의 일훈(日暈)다   샹이 녜조판셔(禮曹判書) 김쳥음(金淸陰) 을 보 은조왕(溫祚王) 긔 졔시다 십일일의 의 귀옛 골 달니고 흰 긔운이 하 빗치다 녜조판셔(禮曹判書) 김쳥음(金淸陰) 이   샹긔 알외여

"면 근본의 도라간다 니 이 위급 을《 당하여 당이 숭은뎐(崇恩殿) (行祭)실 거시니이다 숭은뎐 은 괴《》원(開元寺) 니   원종대왕(元宗大王) 화샹(畵像) 뫼신 곳이라   샹이 연타 시고 평명(平明)의 츌궁(行祭) 관이 더라 됴젼의 환궁(還宮)시다 산셩의 드 가막 가치 업더니 이 만히 드러오니 사마다&라

더라 십이일의 홍셔봉(洪瑞鳳) 최명길(崔鳴吉) 윤휘(尹暉) 셔간(書簡)을 젹진의 보 국셔(國書) 뎐치 못 셔문(西門)으로 다시 오라 더라 드 젹병 슈만이 나온다 더라 십삼일의 셔남풍이 니러 홍셔봉(洪瑞鳳) 윤휘(尹暉) 최명길(崔明吉) 을 젹진의 보 뇽 마 이쟝(二將)이 국셔 밧고 연고 업시 리믈 니 명길 이 가을 두리고 머리 조아

"이거시 다 셩샹의 이 아니오 신하의 라 챵 혀 임군의 그러치 아니 줄을 히려 노라"

뇽골(龍骨大) 등이 언약 수일 회보(回報)더라 국셔의 여시

쇼방(小邦宰臣)이 국《군》문(軍門)의 편지 밧드러 품쳥(稟請)

잇더니 도라와 니로 황뎨 쟝 후명(後命) 이시라 니 쇼방군신(小邦君臣)이 목을 늘희여 날마다 기 임의 십여일의 오히려 흑니 형세 궁박야 두 번 브믈 면치 못니 오직 황뎨 피라 쇼방(小邦)이 일즉 대국(大國) 은혜 닙어 외람이 형뎨의 의탁 텬디긔 여시니 비록 히 난호여시나 졍의 간격이 업지라손 만세의  복이라 더니  아니여셔 의심 틈이 밋치여 위박(危迫) 화의 져 텬하의 웃 되니 텬셩이 유약고 졔신의게 속아 혼미블찰(昏迷不察)야 이의 니  이라

다시 무삼 말이 이시리오 다만 형이 아 죄악이 이시면 노 맛당거니와  너모 엄히 야 도로혀 형뎨의 의오면 엇지 샹텬(上天)이 고이히 너기시 되지 아니리오 쇼방의 치우쳐 바다가의 이셔 오직 시셔(詩書) 일삼고 병 닉이지 아니시니 약 항복고 져근 거 셤기기 덧덧 일이라 엇지 감히 대국으로 더브러 결우리오 다만 세 황명(皇命) 은혜 바다 명분이 뎡엿고 일즉 임진 난리의 쇼방이 망케 되엿더니 신종황뎨(神宗皇帝) 텬하 군병을 움녕을 수화(水火) 즁의 건지시니 쇼방 사&이

이졔 니 의 삭여 하리 대국의 득죄아 황명을 져리지니 이 아니라 은혜 심으기 두터이 야 사 감동믈 깁게 게 은혜 치미니 녕의 목숨을 살오고 종샤의 위면 군야 난을 구완기와 군 두로혀 보존미 그 일이 비록 다 은혜 가지라 샹년의 쇼방이 일을 그야 이의 니 군신 부 외로온 셩의 이셔 그 곤미 심지라 진실노 이 의 대국이 허믈을 리고롭기여곰 종샤(宗社) 보존고 기리 대국을 밧들게 미 쇼방 군신의 손&에

영영히 닛지 못시오 텬하의 듯 대국 위권(威權)을 항복지 아니리 업지니 이거 대국이 큰 은혜 동토의 널니 기 《소》국의 베플미라 그러치 아니코 오직 일됴(一朝)의 분 결단고 병녁을 궁진(窮盡)야 형뎨 은오고 졔국(諸國) 쳐바리면  대국의 올치 아닌 일이니 황뎨의 고명기로 념녀치 아니리오 을의 죽이고 봄의 로기 텬디 되오 약 잔잉히 너기고 망 근심 태왕 의 업이라 이졔 황뎨 야흐로 졔국을 어로만지고 큰 일홈을 세워 텬디의 도 법밧고 태왕 의 업을 널&리니

쇼방 이 허믈을 곳치고 의탁당이 즁의 잇지 아니리니 이졔 가히 존엄을 피치 못고 하 집(執事)의게 쳥명(請命)노라

엿더라 십일 김신국(金藎國) 이 냥식을 마련 날 냥식의 군병은 셔 홉식 감관은 오 홉식 감 오히려 (來月)을 다히지 못게시니 오 도젹의게 히면 아모리 될 줄 모너라 십오일의 쟝계(狀啓) 드러오다 십뉵일의 풍셜다 홍셔봉(洪瑞鳳) 최명길(崔鳴吉) 윤휘(尹暉) 젹진의 가 젼의 보 국세(國書) 회뵈 업슨 곡졀을 무 뇽골(龍骨大) 등이 져히 말을 무슈히 강화(江華) 렷노라 흰 긔의

항복 밧 방《망》월봉(望月峯) 세웟더라 십칠일의 뇽 마 이쟝(二將)이 홍셔봉(洪瑞鳳) 최명길(崔明吉) 윤휘(尹暉) 블너 답셔 주거 바다오니 셔의 왈

대쳥국(大淸國) 寬溫 관은인셩황뎨{}(寬溫仁聖皇帝) 됴션 국왕(朝鮮國王)의게 됴유(詔諭)노라 온 텬지의 여시  너모 여 도로혀 형뎨 졍의오미 샹텬이 고이히 너기미 되리라 여시니 딤이 뎡묘(丁卯) 셰로 즁히 너겨 일즉 네 나라흘 로 긔걸더니 네 샹텬(上天)을 두리지 아니(生靈)을 근심치 아니여 몬져 지라 네 나라히 용병 이 잇 줄 알고 딤이 믄득 네 신을 여 니로 네 나라히 이러시 무샹&

이졔 나가 칠 거시니 도라가 네 님군 닐너 보여시니 궤휼노 닐위연 거시 아니라 너희 리고 흔단을 내여 일을 셔히 하고 군 네 엇지 도로혀 하 거드러 강잉(强仍)야 말 여시 쇼방(小邦)이 오직 시셔(詩書) 일삼고 병 닉이지 아닛노라 여시니 져 젹 긔미년(己未年)의 네 무고이 날을 팀노 딤이 니로 네 나라히 반니라 엿더니 이졔로 보면 너의 군 닉여실지라 오히려 닉이지 아냣노라 줄을 엇지 여시리오 네 진실노 군 모화 이후의 다시 닉이미 맛&당도다

닐너시 임진 난리의 신종황뎨(神宗皇帝) 텬하 군엿다 여시니 텬하(天下)란 거시 크고 텬하 나라히 만흔지라 네 난리 구 명됴(明朝) 나라 이라 엇지 텬하 졔국 병 다 니러시리오 명됴와 네 나라히 허탄고져 거시 업셔  마아니고 이졔 임의 곤히 산셩을 직희여 목슘이 됴셕의 이시 오히려 븟그러오믈 모로고 이러시 븬 말을 무어시 유익리오 닐너시 형뎨 은오고 뎨국의 면 대국의 올흔 일이 아니니 황뎨의 고명기로 엇지 이 념녀치 아니리오 여시니 네 형뎨의 조흔 거 허러

나라흘 니 엇지 나라 은혜 베프미 이시리오 이러 네야 스로 고명미로다 닐너시 황뎨 쟝 텬디(天地)의 도 법밧고 (霸王)의 업을 널니지 아닛 거시 아니오 무고히 군 네 나라흘 멸고 네 셩을 미 아니오 졍히 곡직을 분변미라 텬디의 도() 어지 니 복을 주고 오나오 니 딤이 하 법바다 음을 기우려 명()의 도라오리고 평안케 고 명을 거 주고 완만야 순치 아닌 쟈 오잡아 굴강(屈强) 쟈로 여곰 징계고 교(狡詐) 쟈로 여곰 궁진(窮盡) 이제

딤으로 더브러 젹국(敵國)이 된 고로 흥병(興兵)여 이의 니지라 만일 네 나라히 다 아국(我國)의 들면 딤이 엇지 어린 보지 아니리오 네 말과 일이 심히 아니니 젼후 왕 문셔 어더보니 나라흘 도젹이라 여시니 몸을 감초와 가마니 가지 거시 도젹이니 과연 도젹이면 네 엇지 도젹을 잡지 못 우리 국속(國俗)은 말과 일이   뉘 너 나라쳐로 긔망교(欺罔狡詐)고 간위허탄(奸僞虛誕)야 븟그러온 줄을 아지 못고 망녕도이 말 이시리오 네 살고져 셩의 나 명의 도라오고 호고져 슈히 호라 두 군 샹젼(相戰) 샹텬(上天)이 반 쳐분이 이시리&라

엿더라 십팔일의 홍셔봉(洪瑞鳳) 최명길(崔明吉) 윤휘(尹暉) 로 국셔 가져 젹진의 보 뇽골(龍骨大) 닐오

" 마부(馬夫大) 다른 시니 밧지 못노라"

니로

" 두 날 즁의 호리라"

더라 국셔의 여시

대쳑《쳥》국(大淸國) 관은인셩황뎨(寬溫仁聖皇帝) 긔 샹언(上言) 명지 바드니 그  엄졀이 치기 지극히 미라 츄샹(秋霜)이 늠녈(凜熱) 가온 양츈(陽春)여시니 업 닑으 황감(惶感)여 몸둘 곳이 업도다 대국의 위덕(威德)이 먼리 더으고 모든 번방(藩邦)이 말가지로 야 쳔인이 도라가 큰 명이 야흐로 로옵거 쇼방(小邦)이 십년 형뎨로 도로혀

득죄니 밋지 못 뉘웃미 잇지라 이졔 원 다만 음을 긋치고 념녀 밧고와 녯 버  리고 나라흘 드러 명을 바다 모든 번방(藩邦)의 비 름이라 진실노 극진이 구완고 스롭기 시면 문셔(文書) 녜졀(禮節)연 응당 규식(規式)이 잇 강졍기 오날이지라 셩의 나라믄 실노 어진 이로 그러나 거시 플리이지 못엿고 뎨의 노야흐로여시니 이의 이셔도  죽고 셩의 나도  죽을지라 이러므로 뇽긔 라며 죽기 결단니 그 졍이  셟도다 이거시 명의 도라가미라 황뎨 야흐로 텬디 믈&노

음을 삼으니 쇼방(小邦)의 엇지 사 가온 예치 못리오 뎨덕(帝德)이 텬디 니 감히 실졍을 비왓타 공경여 은혜리노라

엿더라 이 니판(吏判) 최명길(崔明吉) 이 지은 녜조판셔(禮曹判書) 김쳥음(金淸陰) 이 비국(備局)의 드러가 이 편지 보고 손을 고 실셩통곡니 곡셩이 대 못더라 김공 이 인여 명길 니로

"대감이 아 엇지 이런 일을 "

명길 이 소 왈(潛笑曰)

"대감은 니 우리 당당이 죽으리라"

고 조희 낫낫치 쥬어 니어 붓치니라 병판(兵判) 니셩귀(李聖求)

"대감이 젼브터 쳑화(斥和)기로 국(國事) 이의 밋쳐시니 대감이 당이 젹진의 감즉도다"

김공 이 답&왈

" 죽고져  결치 못더니 만일 젹진의 보 죽을 곳을 어드면 이 은혜로다"

언필(言畢)의 햐쳐(下處)로 나가 사 통곡 마지 아니고 이 날브터 밥을 먹지 아니고 스로 죽기 긔약더라 십구일의 최명길(崔鳴吉) 윤휘(尹暉) 젹진(敵陣)의 가 국셔 종시 답셔 쥬지 아니더니 우샹 이 그져 도라오 참판 한녀직(韓汝稷) 이 니로

"국셔의  아냐시니 임의 답지 아닐 줄 아랏노라  클 거() ()니 김공 이 햐쳐의 나가시니  타 그 글 급히 지라"

명길 이 올타 고 신() () 다 젼 대(前大司諫) 윤황 이 병들믈 닐컷&고

문 밧글 나지 아니 져녁의 그  블너다가 무

"화친(和親) 일이 엇더여 가 죽으리로다"

니 윤황 은 본 쳑화(斥和)던 사으로 나종의 말이 이러니 사 다 웃더라 이 날 우샹 이 젹진의 갓실 졔 뇽골(龍骨大) 등이 니로

"대병(大兵)을 뎨도(諸道)의 보엿고 부원쉬(副元帥) 잡히고 강화(江華) 도 함몰엿다"

니 져히 말이러라 셩즁의 병드러 죽은 됴관(朝官)이 두어 사이러라 이십일 대셜대풍(大雪大風)나 우샹(右相) 과 명길 윤휘(尹暉) 젹진의 가 답셔 바다오니 셔왈

대쳥국(大淸國) 관은인셩황뎨(寬溫仁聖皇帝) 됴션 국왕(朝鮮國王)의게 됴유(詔諭)노라 네 하 어그 고로 딤이

혁연(赫然)이 노야 군 나와 치니 야흐로() 이 업더니 이졔 네 외로온 셩의 곤야 딤의 됴셔여 졀믈 보고 이의  뉘웃치니 딤이 너()야 스롭게 믄 힘이 너 치지 못 거시 아니라 너야 츌셩(出城)야 딤을 보게 나흔 네 셩심(誠心)으로 항복믈 보려 미오 나흔 네게 은혜 심거 다시 나라흘 두게 고 군 두로혀 인심으로 텬하의 뵈려 미라 만일 계교로 시면 딤이 야흐로 텬명을 밧드러 방을 어로만지니 졍히 네 야 남됴의 라믈 삼으려 미라 만일 궤휼노 너

잡을시면 텬하의 큰 거 다 궤휼노 어드랴 네 만일 의심야 츌셩을 아니면 디방(地方)을 다 즛 (生靈)이 다 즌흙이 될 거시니 진실노 일(一刻)을 머무리라 네 읏듬으로  신하 딤이 쳐음은 다 죽이려 엿더니 네 이졔 과연 츌셩여 명의 도라올진 위션 읏듬 던 두세 사 딤이 당당이 효시(梟示)야 후인을 경계리라 딤이 셧녁흐로 큰 계교고 네 (生靈)을 수화(水火)지온 거시 이 사 아니오 뉘오 네 만일 츌셩을 아니면 아모리 비러도 듯지 아니리라

엿더라   샹이 하리 쳑화신(斥和臣)으로

더브러 가지로 죽을지언뎡 엇지 가히 리오 동궁(東宮)이 졔신(諸臣)을 도라보아 오샤

" 네로 여 우리 집이 다 죽게 "

시니 졔신이 말이 업더라 이십일일 평명(平明)의 우샹(右相) 젹진의 가 국셔고 져녁의 다시 나가 답셔 바드려 니 츌셩기와 쳑화신(斥和臣) 잡아 보 일을 허치 아니키로 젹즁(敵中)야 국셔 그져 보 답지 아니터라 그 국셔의 여시

됴션 국왕(朝鮮國王) 신모(臣某) 삼가 대쳥국(大淸國) 관은인셩황뎨폐하(寬溫仁聖皇帝陛下) 긔 샹셔(上書) 신이 하  어더 됴셕의 쟝지라 비록 졍이 급박야 여러 번 글을 올녀 스롭기나 실&노

감히 긔필치 못더니 이의 은지(恩旨) 밧드러 젼(前罪)리고 츄샹(秋霜)의 엄 위엄을 눅이고 양츈(陽春)의 어진 덕을 펴 쟝 동방 슈쳔 리 (生靈)으로 여곰 슈화 가온 버셔날지라 군신부(君臣父子) 감격 뉴쳬여 갑흘 바 아지 못 신이 민박(憫迫) 졍이 이셔 폐하여 베프 동방 속이 조얍고 녜졀이 가찰야 그 님군의 거동이 간 녜롭지 아니믈 보면 놀나 셔로 보며 고이 일을 삼 만일 풍속을 인야 다리지 아니면  나라흘 세오지 못지라 금일 만셩(滿城百官)이며 모든 군민(群民)세 위박(危迫)믈 보고 명의 도라가 의논은 나 다만

츌셩기의 니로 고려(高麗) 젹브터 업 일이라 고 죽기 결단야 반 츌셩은 못리라 니 만일 대국이 독쵹 마지 아니면 타일의 엇 거시 블과 죽엄이 뷘 셩 름이라 이졔 셩즁인(城中人)이 됴셕(朝夕)의 다 죽을 줄을 아 오히려 이러믈며 다 네브터 나라히 망기 젹국의 잇지 아니니 비록 폐하의 은덕을 닙어 다시 나라흘 세우나 금일(今日) 인심을 볼진 즐겨 님군을 삼지 아닐지니 이거시 신의 크게 두리  폐하의 어엿비 너기 본심이 아니라 폐하 뇌졍(雷霆) 깁히 쳔리의 드러와 두 달이 못야셔 그 나라흘 바로게

고 그 셩을 어로만지니 텬하의 긔특 공이오 젼 엇지 구여 츌셩 니긔다 리오 셩을 치믄  치미라 이졔 임의 항복니 셩을 무어 리오 쳑화졔신(斥和諸臣)의 일은 쇼국(小國)이 예사 (大諫)이며 간(諫爭)()더니 져젹 일이 망녕되여 쇼국이 이에 니 다 그 라 샹년의 임의 젹발 쥬어 쳐시니 이졔 비록 황명이 이시나 신의 본졍이 블과 편벽되고 어두어 텬명을 아지 못고 덧덧 직희랴 미라 이졔 폐 군신대의(君臣大義) 뎐하 풍등《동》(風動)니 이 무리 맛당이 용샤(容赦)지라 업 니 폐하의 큰 도량이 텬&디

지라 임의 님군의 시면 이런 쇼신(小臣)들은 다만 쇼방(小邦)의 맛겨 다리미 더옥 큰 덕이라 신이 임의 폐하의 위엄으로 구믈 닙은 고로 셩심(誠心)으로 친고 븟조 쇼회(所懷)야 삼가 죽기 무릅 드리노라

엿더라 이 최명길(崔鳴吉) 이 지은   샹이 명길 과 대졔(大提學) 니시직 으로 여곰 다시 지이시니 비록 명길 의 글을 아니나  니시직 이 져의 글을 아닌 고로 명길 을 공치여 스로 놉은 쳬 니 사 다 웃더라 이젹의 니조참판(吏曹參判) 뎡온(鄭蘊) 이 국셔의 칭신(稱臣)믈 보고 분통야 샹쇼니 원간 뎡공 은 녕남(嶺南) 으로 남인(南人)(色目)이 잇고 역젹 뎡인홍(鄭仁弘) 이 허&명(虛名)

막 셩() 의 공이 인홍 의 오나오믈 아지 못가이 드러 문인 즁의 드럿더니 인홍 의  일이 고 광(光海君) 이 간신의 말을 드러 대비(大妃)고 영챵대군(永昌大君) 을 대비 품으로셔 셔 아 교동 귀향 보엿더니 즉시 죽으니 텬디간(天地間) 대변이라 뎡공 은 호걸이 인홍 을 리고(光海) 긔 샹쇼야 쳔만고 인륜을 븟들고 대의 히니(光海) 살피지 못야 졔 의 안치엿더니 금샹(今上)이 반졍(反正) 공을 블너 크게 이 니조참판(吏曹參判) 의 니 호종(護從)야 남한(南漢) 의 드럿더니 도젹의게 칭신(稱臣)믈 보고 분완야 샹소니 소의 왈

복이 신이 그윽이 듯오니

어졔 신이 젹진의 갈 졔 칭신기로 알외다  말삼이 잇오니 이 말삼이 진실노 그러니잇가 짓《진》짓 그러면 명길 의 말이라 신이 듯 음과  다 터지고 목이 메여 능히 소소이다 젼후(前後) 국세(國書) 다 명길 의 손의셔 이 극히  진실노 항복 편지라 연이나 오히려 신(臣字) 아냣더니 이졔 칭신(稱臣)온즉 군신(君臣)의 명분이 졍오니 쟝 지라 졔 만일 명여 나셔 항복면 뎐 븍녁흐로 가시며 복(服色)을 곳치고 술잔을 드리라 면 뎐 술잔을 드리시리잇가 만일 순종치 아니면 제 반

군신대의(君臣大義)  칠 거시니 연즉 나라히 망지라 이 지경의 니 엇지 니잇고 명길 의 번 칭신 가히 플 거시오 님군을 가히 평안이 리라 나 셜 이러여도 오히려 소인(小人)의 츙()이라 녜브터 텬하(天下) 국개(國家) 망치 아닐 이시리잇가 무릅흘 굽히고  거시 바른 거 직희고 죽니만 믈며 군신 부 셩을 등두어 호면 셩을 완젼이 도리 업지 아니리이다 아국(我國)과 즁국(中國)이 부(父子)의 은혜와 군신의 분이 이시니 엇지 가히 리오 하 업거 명길 이 둘을 들고져 셩&이

 두 님군이 업거 명길 이 님군 둘을 들고져 니 이  무삼 일을 못리오 신이 힘이 약야 비록 스로 명길 을 죽이지 못아 방셕의 셔로 용납지 못 원컨 뎐하 명길 을 나라   히시고 그러치 아니타 실진 신을 쥬쇼셔

엿더라 날이 칩고 눈이 녹지 아니니 나무 어들 길이 업셔 개원(開元寺) (行廊)과 고을 옥집을 허니라 동궁(東宮)이 군관 니로

" 임의 식이 잇고 아이 이시니 엇지 목숨을 앗기리오 여 츌셩고져 니 이 을 비변(備邊司)의 니"

비변(備邊司) 의논여 셰(世子) 츌셩(出城)을 마&시고

쳑화졔신(斥和諸臣) 잡아 보니 니조참판(吏曹參判) 뎡공 이 차(箚子)

복이(伏以) 신이 실노 명길 의 칭신 말을 막으랴 옵더니 일야 간의 믄득 그 계교 야 신이 밋쳐 막지 못야 죽기로 막지 못니 신의 크온지라 님군의 욕이 임의 급여시니 신 죽기 맛당 오히려 결치 못믄 뎐 오히려 츌셩이 업니 신이 엇지 감히 경히 죽으리잇가 다만 드 도젹이 쳑화(斥和) 심히 급히 오니 신이 비록 몬져 쳑화(斥和) 아니오나 죵시 호기 신의 일이라 만일 신이 죽고 터럭이나 국가의

유익면 신이 엇지 감히 몸을 야 님군을 위여 죽지 아니리잇고 원컨 뎐하 리 묘당(廟堂)을 명샤 신으로 도젹의 구쇼셔

엿더라 이십삼일의   샹휘(上候) 미령(未寧)시니 (內局)이 가져온 약 다만 졍긔산(正氣散) 열 텹 소입이라 졍긔산 두 복을 지어 진어(進御)시니 즉시 평복(平復)시다 젹이 쳑화신(斥和臣) 아니 보기로 화친(和親)을 허치 아니더니 쳬부(體府) 즁군(中軍) 신셩《경》인(申景禋) 과 남양군(南陽君) 홍진도(洪振道) 와 구굉(具宏) 이 젹진의 왕여 가마니 의논고 슈원(水原) 드오산 댱관(將官) 등과 훈련도감(訓練都監) 초관(哨官) 인을 부쵹야 몬져 쳬보《부》(體府)의 가 칼흘 어로만지며 궐하(闕下)로 가 쳑화신(斥和臣)

슈원부(水原府使) 구인휘(具人垕) 오 죽산부(竹山府使) 구인긔(具仁基) 오 군병(軍兵)은 구굉(具宏) 의게 속엿고 신셩진(申景縝) 은 훈련대쟝(訓練大將) 이라 금일 이 거 군병의 이 아니러라 우샹(右相) 국셔 가져 젹진의 갈 츌셩 못 말은 젼 편지와 쳑화신(斥和臣) 여쥬기 허락여시니 그 말삼의 여시

쳑화졔신(斥和諸臣)의 망녕된 말노 냥국(兩國)의 큰 계교  다만 폐하의 아쳐 분 아니라 실노 쇼방(小邦) 군신(君臣)가지로 분통 부월(斧鉞)노 죽이미 엇지 일분인들 앗가오리오 다만 슈챵(首唱) 대간(臺諫) 홍익한(洪翼漢) 을 평양셔윤 을 이여 져로 대병(大兵)을 당여시니 만일 잡히지 아&냐시면

평안도ː평양 이실지니 대군이 도라갈 길의 잡아 맛지기 어렵지 아니고 그 남은 니 길이 통치 못야 거쳐 지 못니 폐 궁극히 시면 군 도라가 날의 쳥컨야 그 사 어더 쳐분을 기리마

엿더라 김쳥음(金淸陰) 이 국셔 고 십팔일브터 밥을 먹지 아니여 졀곡 지 엿라 명(命者) (頃刻)이러니 쳑화신(斥和臣)  거조 이 날브터 비로소 음식을 먹어 니로

" 만일 몬져 죽으면 적진의 가기리라"

더라 윤교리(尹校理) 오슈찬(吳修撰) 냥인(兩人)이 년명(連名) 샹소(上疏)야 쳑화(斥和) 일노 고 젹진의 가기

니 대개 김뉴() 니셩구(李聖求) 최명길(崔明吉) 의 의논이 쳑화졔인(斥和諸人)을 다 잡아 보 미라 야 삼경(三更)의 도젹이 셧녁흘 치고 오경(五更)의 동편으로 망월봉(望月峯) 을 범여 셩즁(城中)을 침노다 이십일의 젹이 남셩을 범고 종일토록 궁을 향여 방포니 쳘환(鐵丸)이 사발 삼층 지와집을  남아 드더라 이십오일의 젹이 셔문으로 조 우리 신을 부 니덕향《형》(李德泂) 니셩구(李聖求) 최명길(崔明吉) 이 젹진의 가니 젹쟝이 국셔 도로 여주고 니로

"일이면 도라가려  만일 츌셩을 아니면 화친(和親)이 되지 못리니 이후란 다시 오지 말나"

이리 니 종일토록 방포더라 이십&뉵일

신경진(申景) 구굉(具宏) 의 쟝관이 궐하(闕下)의 와 쳑화신(斥和臣) 여주기쳥음(淸陰) 등을 니미라 쟝관(將官)들이 졍원(庭園)가지 드러가 드레기 긋치지 아니니 승지(承旨) (李行遠) 이 니로

"(大內) 머지 안닌 곳의셔 엇지 감히 니러"

군병(軍兵) 등이 눈을 브릅여 쟝 쟉난 형샹을 니 인심이 훙훙더라 일셩(一城)을 직흰 군 즁의 다만 신경진(申景) 구굉(具宏) 의 군 그리 고 다 그리 므로 사 알고 니 이시므로 븍셩 직흰 초《총》용군병(總戎軍兵)을 다 와 쳥 오직 셔녁 셩 직흰 대쟝(大將) 니시(李時白) 의 군 업더라 이 져녁의 홍셔봉(洪瑞鳳) 최명길(崔鳴吉)

김신국(金藎國) 이 젹진의 가니 뇽 마 이쟝(二將)이 강화(江華) 함몰고 대군(大君) 형뎨(兄弟)와 숙의(淑儀) 동궁(東宮) 이 임의 진()의 니럿고 대군부인(大君夫人)은 고을 사으로 여곰 (輩行)여 모 이의 니 거시오 경셩 궁궐을 블지 아니여 국왕이 츌셩 후야 다시 궐 들게 고 세(世子)와 대군(大君)만 븍녁흐로 다려가려  대군의 편지 주며 니로

"너희 대군 편지니 너희 님군긔 드리라"

가져 오 셩즁이 밋지 아니더니   샹이 보고 오샤

" 분명 대군의 친필이라 종(宗社) 임의 망케 되여시니 일 업지라"

여 츌셩 계교(計巧)시니 이십칠일의 안

지쳑을 분변치 못다가 최명길(崔明吉) 니셩귀(李聖求) 등이 국셔(國書) 가져 젹진의 가니 이 츌셩을 허 이라

신이 셩교 바드므로브터 텬디의 용납 큰 덕을 감샤야 도라가 븟조 음이 더옥 간졀 신의 몸을 도라 살피니 죄 뫼 지라 여러 날 머믓거려 더으니 이졔 폐 도라갈 날이 이시믈 드 일즉이 우러러 뇽광(容光)라지면 미 졍셩을 펴지 못라 뉘웃들 엇지 밋리오 신이 야흐로 년 종샤(宗社)와 슈쳔 (生靈)으로 폐하긔 의탁 졍세 진실노 잔잉지라 만일 그되미 이시면 칼을 드러 못&

원컨 됴셔 리와 음을 평안케 고 명의 도라갈 길을 열나

엿더라 이 날 쳥음(淸陰) 이 스로 목 거의 명졀(命絶)케 되엿더니 사 프러 노핫더니 허리로 결항(結項) 프러노코 니조참의(吏曹參議) 니경여(李敬與) 와 공()의 자졔들이 븟들고 직희여 결치 못더니 그 날 이후로 공을 잡아 젹진의 보 의논이 이시 후로 을 긋치니라 니조참판(吏曹參判) 뎡공 이 동향(同鄕) 묘문(墓文)을 쳥 니 잇더니 이 날은 글을 지어 쳡(帖子) 맛져 그 사의게() 글을 지어

님군의 욕이 임의 급여시니 신 엇지 죽기 더리오()라 나가 항&복

실노 븟그려 노라

이리 짓고 찬 칼을 혀 스 뉴혈이 침금(寢衿)의 가득엿더니 사 급히 가보니 오히려 죽지 아냐 웃고 니로

" 일즉 글을 닑으을 몰도다 녯 말의 여시 칼날이 업여야 여시니 업 오쟝이 샹여 죽을 거 누어셔 지기의 죽지 아냣노라"

더라 이십팔일의 김뉴() 홍셔봉(洪瑞鳳) 니홍(李弘) 입시(入侍)여 김()  녜조판셔(禮曹判書) 김상헌 과 니조참판(吏曹參判) 뎡온(鄭蘊) 과 젼() (大司諫) 윤황(尹煌)  윤문긔《거》(尹文擧) 와 밋 오달졔(吳達濟) 윤집(尹集) 김뉴《슈》익(金壽翼) 김익희(金益熙) 뎡뇌셩《경》(鄭雷卿) (李行遇) 홍탁(洪琢) 십인(十人)을 다 젹진의 보니 대 젹이 홍익한(洪翼漢) 밧긔

 니 업 고로 화친(和親)을 허치 아니미오 여러 사 기 어려워 고 김() 최명길(崔明吉) 노 더브러 동심(同心)고 쳥음(淸陰) 의 말삼이 김뉴() 침노 연괴러라 나만갑(羅萬甲) 이 니경셕(李景奭) 니로

"온당쟝과 이 엇지 이 이시리오"

경셕 이 답왈

" (大司諫) 이 드러오면 가지로 닷토리라"

더니 대간 박황(朴潢) 이 드러와 김뉴() 니로

"젹진의 보 비록 두어 사이라도 이 되려든 엇지 여러 사리오 교리(校理) 윤집(尹集) 이 당초의 샹소여 힘 쳑화(斥和)여시니 이 두 사 아 못 만히 보기의셔 흐리다"

 그 말을 조니라 홍셔봉(洪瑞鳳) 최명길(崔明吉)

김신국(金藎國) 이 젹진의 나가 츌셩오실 졀목(節目)을 마련 이 일이 녜브터 규례 이시니 읏듬 졀목은 참혹니 둘 졀목이 맛당도다 니른바 읏듬 졀목은 밤함을 입의 믈고 븬 관을 싯고 나가미오 둘 졀목은 군신(君臣)과 하인 합야 오 인을 거리고 위의(威儀)와 군병(軍兵)을 업시 고 그믐날 츌셩여 쳥의(靑衣) 닙으라  일은 업 명길 이 졔 짐으로 니로

"뇽포(龍袍) 닙지 못 거시니 쳥의 닙으시미 맛당니라"

고   쥬샹과 세 닙으실 쳥의도록 여 지이니라 이 날 밤의 뇽 마 이쟝(二將)이 답셔 가져오니 셔왈

관은인셩황뎨(寬溫仁聖皇帝) 됴션국&왕(朝鮮國王)의게

됴유(詔諭)노라 주문의 음을 졍히 고 명의 도라오기 간쳥여시니 딤이 거즛말가 너기 이졔 젼(前罪)리고 규례(規例) 다시 졍 네 말《만》일 허믈을 곳치고 은덕을 잇지 아니손 댱구(長久) 계교 대명(大明)이 준 바 고명(誥命)과 인신(印信)을 드리고 대명과 교통 치고 문셔(文書)의 우리 년호(年號)   볼모 삼고 졔(諸大臣)  볼모 삼고 딤이 대명(大明) 칠 졔 네 수만 긔 긔약을 어그 말며 됴총(鳥銃)과 활살을 고 대군이 도라갈 졔 호군(護軍) 드리고 셩졀과 졍됴(正朝)와 동&지(冬至)

즁궁(中宮) 쳐《쳔》츄졀(千秋節)과 태 쳔츄졀의 밋 하례(賀禮)고 됴문(弔問) 일의 대신을 명여 표() 올니고 주문(主文) 규식(規式)과 딤()의 됴셔(詔書)와 네 신으로 더브러 셔로 보기와 혹 네 뵐 젹 녜졀을 대명(大明) 젹과 달니 말고 졔신으로 더브러 혼인야 화친(和親)을 굿게 고 지 딤이 임의 죽은 몸을 오고 망 완젼케 여시니 타일의 네 손손(子子孫孫)이 신의 어그 말라 네 나라히 교 반복기로 인야 이리노라 됴공(租貢) 믈목(物目)은 황금(黃金) () 녹피(鹿皮) () 남초(南草) 일쳔 근() 슈달피(水獺皮) () 쳥셔피(靑鼠皮) 쟝 패도(佩刀) 이십뉵 병 대호지(大好紙) 일쳔 권 뇽문셕(龍紋席) 화셕(彩畵席)

십 닙 져포(白苧布) 필 각 면쥬(綿紬) 이쳔 필 마포(麻布)  필 각 세포(細布) 일만 필 뵈 일쳔 필 (白米) 일 셕을 긔묘년(己卯年) 가을브터 시작

엿더라 이 날 윤 오 이공(二公)이 쟝 젹진의 나갈이 종 영《여》샹(如常)더라   샹이 인견(引見)시고 술 먹여 니별오샤

"너희 부모 쳐 당당이 종신(終身)토록 도라볼 거시니 이 념녀치 말라"

시더니 그후 수년을 주시고 다시 은뎐(恩典)이 업더라 윤 오 이공(二公)이 젹진의 가 피화(被禍) 홍공 과 아오로 삼(三學士傳) 을 지으니라 니조참판(吏曹參判) 뎡공 이 샹쇼니 쇼의 왈

복이(伏以) 신이 졍히 오날을 아 아니보려 미러니 실

 잔명(殘命)이 삼일이로 오히려 진치 아니니 신이 실노 고이이다 명길 이 임의   뎐하로 여곰 항복시게 니 군신분의(君臣分義) 임의 명지라 님군의게  승순(承順) 분 아냐 가히 토암즉 면 가히 닷토리니 졔 만일 황됴(皇朝) 인신(印信)을 드리라 거든 뎐 당당이 다토아 오샤 조종(祖宗)으로브터 이 인()을 바다 이졔 삼 년이니 이 인을 당당이 명국(明國)의 드렴즉 고 쳥국(淸國)의 드리미 블가타 거시오 졔 만일 텬됴(天朝) 칠 군거든 뎐 당당이 닷토와 오샤()과 부 은혜 쳥국도  알지라  아비 치기 뉸긔(倫紀)의 변()&이니

다만 치 죄《》 이실 분 아니라 가  가치 아니니라 시면 져의 흉교(兇狡) 으로도 반 살필지라 원컨 뎐하 이 두 가지 일을 토아 텬하(天下) 후세(後世)의 득(得罪)시면 (幸甚)여이다 신이 명이 진케 되여 능히 대가(大駕) 로지 못니 신의 죄 큰지라 신의 벼을 가라 신으로 여곰 눈을 감게 쇼셔

엿더라 삼십일의 일(日色)이 무광(無光)다   샹이 세로 더브러 쳥의(靑衣) 닙으시고 셔문으로 조 나가실 셩의 가득 통곡여 보오니 셩즁의 곡셩이 하 못더라 한()이 삼밧 남녁 구층 단을 무으고 단 우희 쟝막을 치고 황양산(黃陽傘)&을

밧고 단 우희 뇽문셕(龍紋席)고 뇽문셕 우희 금슈교룡(錦繡蛟龍) 펴고 그 우희 누른 비단 (遮日)을 놉히 치고  황양산(黃陽傘) 셰흘 세우고 졍병 수만을 킈 크고 건쟝기 맛치 니로 각각 금슈갑옷 벌식 닙고 호위(護衛)엿더라 한()이 황금샹(黃金床) ()의 거러 안 야흐로 활을 타며 졔쟝(諸將)을 활 뵈더니 활   뎐하로 여곰 거러 드러가시게 거러 드러가샤 삼공뉵경(三公六卿)으로 더브러 졍 즌흙 우희셔 (拜禮) 군신이 돗   샹왈

"황뎨 압셔 엇지 리오"

여 세 번 졀고 아홉 번 머리 좃 시니 인도야 셤의 오&샤

셔향(西向)야 졔왕 우희 안시게 고 한() 남향(南向)야 쥬찬(酒饌)고 군악을 움이더라 한이 뎐하긔 돈피(豚皮) 두 벌을 드리고 대신 뉵경승지(六卿承旨) 벌식 주니   샹이 벌을 닙으시고 셔 삼 샤례시니 대신이  례로 샤례더라 이 날 져녁의   뎐 셔울 드러오실 닌평대군(麟坪大君) 과 대군부인(大君夫人)과 숙의(淑儀) 다 뫼셔 드러오고 동궁(東宮)과 빈궁(嬪宮)과 봉님대군(鳳林大君) 과 대군 부인을 다 쟝 심양(瀋陽) 으로 드러가실야 진즁(陣中)의 머무 젹쟝(敵將)이 명길 의 가속을 여주니 명길 이 고두샤례(叩頭謝禮)더라 이월 초 이일의 셩 다 셩의 젹병이 쳐쳐(處處)여 동셔(東西) 아&지

너라 젹벽《병》 가온 아국(我國) 흘니이니 감히 쇼고 가마니 우러 사고 혹 길의 업 형샹 면 젹이 쇠로 치더라 혹 셩젹 달니 니 이시니 평안도 녀기(女妓)러라 우《대부》(士大夫) 쳐쳡과 쳐녀들은 참앗 낫 고 머리 니 무수더라 이 날 한()이 발니   샹이 동교(東郊) 의 나가 보시다 초 삼일의 뇽 마 이쟝(二將)이 뎡명슈(鄭命壽) 궐하의 오니 녕좌샹(領左相) 이 나 () 뇽골(龍骨大) 니로

"이졔 우리 냥국(兩國)이 부(父子) 되여시니 무삼 말을 아니 드리오 이후의 남됴(南朝) 칠 졔 명 리라"

홍셔봉(洪瑞鳳) 닐오

"아국(我國)이 황금소산(黃金所産)이 아니니

()의게 주여 더러주믈 라노라"

뎡명쉬(鄭命壽) 답왈

"본국이 쳐음의 뎡탈지 아냐시니 어이 감히 뇽쟝 뇽쟝 이 엇지 한()리오 대감은 톄면을 각지 아닛"

홍셔봉(洪瑞鳳) 이 다만 올타 더라 김뉴() 의 쳡 이 피로 뇽골(龍骨大) 니로

"만일 속여올진 당당이 쳔금을 주리라"

니 일노브터 피로 갑시 즁기 김뉴() 의 말노 인니라 뇽골(龍骨大) 등이 나갈 졔 두 대신이  셧더니 김() 믄득 뎡명수(鄭命壽) 안고 귀에 다혀 니로

"이졔 판 로 더브러 일가 니 판 의 쳥을 어이 아니 드 쳥을 판 아 어이 듯지 아니리오

올 일을 판 모로미 십분 주션"

명쉬 부답 안고 놋치 아니니 명쉬 괴로이 너겨 옷 치고 가니라 초 뉵일 조식(朝食) 후의   대(大駕) 셔강(西江) 의 가시니 구왕(九王子)()의 아홉 아이라 우리 세  그 근쳐의 계시더니   샹이 몬져 세의 가 보신 후 구왕 가 보실 구왕(九王)이 즁노(中路)의셔 만나 마 마샹(馬上)의셔 셔로 읍()가지로 그 막의 가 샹여 좌졍고 시신(侍臣)은 그 뒤의 안즌 후 구왕이 쥬찬을 고 군악(軍樂)을 움즉이더니 구왕이 음식을 믈녀 그 쟝관을 주니   샹이 구왕  음식을 좌우로 주시니 시신(侍臣)이 오히려 주렷다가 달게 먹더라 초 팔일의

샹이 세(世子) (行車)시려 챵능(昌陵) 길가로 나가시더니 머《멈》츄고 말신 후 세의 드 후   샹과 빈궁과 대군 부인은 막의 드시고 밧긔 계시더니 군신이 졀야 하직니라 세 봉님대군(鳳林大君) 으로 더브러 발시니 빈궁 시비 여셧시오 대군 부인 시비 네히 조찻더라 일시의 브지져 우니   샹이  쳬루(涕淚) 금치 못시더라 샹이 그 형샹을 아 보지 못샤 대로암지 아니고 뫼흘 의지문으로 환궁시다 월 십구일의 (使臣)으로 표() 밧드러 한()의게 샤은고 방믈을 밧칠 황셰져포

삼십 필 세져포 이십 필 (白木) 일쳔 필 뇽문셕(龍紋席) 이 닙 황하셕(黃花席) 일 쟝 만화셕(滿花席) 이십 쟝 화셕(彩畵席) 십오 쟝 표피(豹皮) 십 쟝 수달피(水獺皮) 삼십 쟝 면지(白綿紙) 일쳔 권 뉵쟝 부유둔 삼 쟝 쟝 부유둔 삼 쟝 황모초필 일 병 진묵(眞墨) 오십 뎡 건시(乾柹) 삼십 졉 황뉼(黃栗) 십오 두 대젼복(大全鰒) 일 졉 이()의게 보 즁궁의게 녜믈은 홍세져포 이십 필 세져포 삼십 필 (白布) 이십 필 (白木) 오십 필 만화셕(滿花席) 십 쟝 화셕(彩畵席) 십 쟝 황모필 십 병 진묵(眞墨) 십 뎡이러라 읏듬 쳑화신(斥和臣) 홍익한 을 쳐음의 젹병을 막으라 평양셔윤 을 시기니 길이 통치 못 쳔신만고여 겨&유

임쇼(任所)의 니 셩을 진무더니 그리로셔 잡혀가니 사 통셕(痛惜) 러라 뎡츅(丁丑) 십일월의 한이 뇽 마 이쟝(二將)을 보 로이 아국(我國) 쥬샹을 봉야 죠션국왕(朝鮮國王)을 삼아 인신(印信)과 고명(誥命)을 보 별노 검은 녀희 가죽 벌과 돈피(豚皮) 쟝 준마(駿馬) 일 필 녕농(玲瓏) 안쟝(鞍裝) 나흘 보 삼공뉵경(三公六卿)우《대부》(士大夫) 집이 져와 혼인고 졀(絶色) 시녀(侍女) 드려 보엿더라 뇽골(龍骨大) 등이 아국(我國)의 와 작폐(作弊)야 방기 드리라 니 원졉 쳐음은 막다가 됴졍(朝廷)의 품니 됴졍이 막지 못야 허니 각 관 기(妓生)이 다 방기되고 셔울 은 의녀(醫女)와 무당(巫堂)이 드러와 아니면 우《대부》(士大夫)

치기 노복(奴僕) 니 병조졍낭(兵曹正郞) 변호길 이 뇽골(龍骨大) 의게 죽으니라 삼공뉵경(三公六卿) 우《대부》(士大夫)들이 쟝 도젹으로 더브러 결혼랴 졍고 긔별엿더니 한()이 니

"먼리 오기 유폐니 말나"

다 가도() 열아믄을 국(國擇)여 시녀로 보엿더니 그후의 다시 보 말나 엿더라 젹이 삼밧개 셔 승젼(勝戰)고 항복(降服)바든 고로 숑()() 세우라 지라 아국(我國)이 즉시 강가의 각을 짓고 놉흔 비 세우고 대졔(大提學) 니경셕(李景奭) 을 명야 비문(碑文)을 짓고 참판(參判) 오준(吳竣) 참판(參判) 녀이증(呂爾徵) 이 젼(篆字) 삭이니 기문(其文)의 왈

대쳥(大淸) 숭덕(崇德) 원년(元年) () 십이월의 황뎨 화친(和親)을 허러리기&

우리로브터 샤 혁연(赫然)이 노야 바로 두 동녁흐로 오시오니 가히 항거(抗拒) 지라 우리 과군(寡君)이 남한(南漢) 의 늠늠(凜凜)야 봄어름 거의 오십 일이나 더니 동남(東南) 졔도(諸道) 군병이 니음다라 허여지고 셔븍 군 협즁(峽中)으로 다 능히 거름도 나오지 못고 셩즁(城中)의 냥식이 진니 이야 대병(大兵)으로 셩을 치기 셔리와 람이 플닙흘 거두치고 화로블이 기럭의 털 오기 황뎨 죽이지 아니키로 위엄을 삼고 오직 덕() 펴기 몬져 야 이의 칙셔(勅書) 리와 개유(開諭) 오면 딤이 너 완젼케 고 아니오면 즛치리라 야 뇽 마 졔(諸大將)&이

황명(皇命)을 밧드러 길 셔로 다하시니 이의 우리 과군(寡君)이 문무졔신(文武諸臣)을 모화 닐너 화친(和親)방의 의탁연 지 십년이라 혼혹기로 말암아로 하 야 만셩(滿城)이 어육(魚肉)되미 라 황뎨 오히려 즛치지 아니야 글노 (開諭) 엇지 공경야 밧드러 우흐로 종샤(宗社) 완젼케 고 아 (生靈)을 보존케 아니리오 대신(大臣)이 합야 도으니 드 슈십 긔로 조 군문(軍門)의 가 니 황뎨 이의 녜(禮待)고 은혜로 어로만져 번 보 심복으로 밀위라 고 샹 은혜 총신(寵臣)의게 밋며 녜 즉시 우리 과군(寡君)

도셩(都城)으로 드려보 군병이 남으로 나린 쟈 즉시 브 셔로 두로혈 오나온 거고 농야 원근(遠近) 허여진 쟤 다 져 잇든 도라오니 동토(東土) 수쳔리 강산이 즉시 의구(依舊)지라 셔리와 운()이 변야 양츈(陽春)이 되고 가믄 거시 도로혀 시우(時雨)가 된지라 임의 망얏다가 다시 엇고 임의 쳐졋다가 다시 니으니 이 실노 녜 업 일이라 한강 샹뉴 삼밧개 남녁흔 곳 황뎨의 머무시던 곳이라 단이 이시니 우리 과군(寡君)이 공조(工曹)야 단을 더 놉히고 크게 며 돌을 버혀 비() 세워 길고 오도록 드리워 황뎨의 공덕(功德)이 바로 조화로 더브러 가지로

히니 엇지 다만 우리 쇼방(小邦)이 셰셰의 기리 힘닙을 이리오  (大朝)의 어질고 위엄 졉기 일노브터 말암은지라 도라보건 텬디(天地)의 큰 덕과 일월의 그림으로 그리 족히 방블치 못 거시로 략을 긔록노라

()

샹노 리오시니 이의 싁싁고 이의 니도다 오직 황뎨 이를 법바드니 위덕(威德)을 베프도다 황뎨 동녁흐로 치니 그 군 십만이로다 은은(殷殷)고 굉굉(轟轟)니 범 며 금() 도다 셔녁 변방(邊方)과 븍녁 부탁이 챵을 고 압셔 모니 그 위령(威令)이 혁혁(赫赫)도다

황뎨 심히 어지러 은혜의 말을 리오니 열 줄이 도로혀 엄 온화도다 쳐음의 미혹(迷惑)여 아지 못고 스로 근심을 깃쳐더니 황뎨 명이 이시니 도다 우리 님군이 공경야 항복니 셔로 거 도라가도다  위엄을 져허 분이냐 오직 덕을 의지도다 황뎨 아국(我國)을 아름다이 너기샤 덕이 흡족고 녜쉬 넉넉도다 이의 깃거며 이의 웃고 병쟝기 뭇도다 무어 준고 조흔 이며야온 옷시로다 도인(道人)(士女)들이 이의 노도다 황뎨 군 두로혀 농(農事) 권&도다

 의 두 번 이 나고 이운 플의 다시 봄이 되도다 돌이 이셔 의의(猗猗)니 큰 강가이로다

엿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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