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보는 한국사 (2)

우리 고대 역사에서도 화폐가 존재했을까?

1. 고조선에서 화폐를 사용했을까?

이제, 우리 역사에서 사용한 화폐들을 한번 짚어볼께요.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돈>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문헌은, 한서지리지에 나오는 <고조선의 8개조 법>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과연 고조선 시대에 화폐를 사용했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교과서에서는, 고조선 시대의 화폐 주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화폐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부족하고, 화폐를 만드는 틀(거푸집)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화폐를 주조해서 사용했건, 중국의 화폐를 사용했던지 간에, 고조선의 <8조법>에는 <50만전>이라는 화폐단위가 나오기 때문에, 일단 고조선에서 화폐를 사용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또,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철전인 <자모전>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에 대한 해석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답니다. <자, 모>란, 글자체계에서 말하는 자음과 모음을 말할 수도 있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위계질서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조선에서 만든 우리 화폐와 우리 글자체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반면, <자모>라는 것이 일반적인 한자의 번역이라면, 명도전같은 중국 돈은 청동식 자모전, 철기시대의 돈은 철기식 자모전 등으로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돈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혹은, 자전, 모전과 같은 소액 화폐들과, 기타 돈들을 묶어서 자모전이라고 불렀다고 보기도 합니다. 뭐, 기록이 없으니 가설이 몇백개가 있어도 증명은 안되겠죠. 결국 결론없이 넘어갑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명도전>에 대한 해석 문제입니다. 명도전은 일반적으로 중국 돈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유물이 발견되는 지역은 고조선, 고구려의 영역이 많다는 점에서, 고조선의 화폐로 봐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제도전이나, 조도전 등은 제나라, 조나라 등 국가의 명칭을 사용했지만, 연나라는 연도전과 달리, 명도전이 또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 것이죠.

최근, 명도전의 가치를 다시 조명한다거나,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강역을 다시 생각해보는 연구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항하기 위해 최근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집권당인 한나라당에서, 역사왜곡에 대항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 동북아 역사재단에 대한 지원 비용을 20% 삭감하고, 동북공정에 대한 관심에서 빠이빠이~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뭐, 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기존 정치인들의 인식이 거의 비슷비슷하다는게 더 큰 문제죠.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한 비용을 4대강 사업에 투자하고, 한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지정하는 나라에 살고 있어서 우린, 아니 중국과 일본 사람들은 참 행복하답니다. ㅋ

반면, <도전>은 다른 화폐와 달리, 국가 권력이 직접 개입해서 권력을 상징하는 상징물(칼) 모양으로 만든 화폐이기 때문에, 중국 화폐가 확실하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아직 알수 없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넘어가기로 합시다. 그런데, 사진으로 보여줄 자료가 너무 없네요. 우리 스스로 만들어 사용한 화폐의 흔적이 없기 때문에, 앞에서 보여드린 자료에 몇 가지를 더해 보여 드립니다.

이 중국 화폐들은 고조선과 고구려에서도 충분히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화폐들입니다. 고조선은, 위만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남방의 진국과 중국 한나라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무역을 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의 화폐를 사용했겠죠.

다음은, 당시 중국의 진나라, 한나라에서 사용했던 화폐를 만드는 틀입니다. 이런 틀이 팍팍 나와준다면, 고조선에서도 화폐를 주조했다는 증거가 되겠죠? 실제, 내몽골 자치구 지방에서 이런 화폐 주조 틀들이 나오긴 하지만, 고조선에서 화폐를 주조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지는 않는답니다. 아마, 고조선도 화폐 주조를 했겠지만, 유물은 발굴되지 않았다... 정도의 가설 수준이죠.

2. 삼국시대, 남북국시대에도 화폐를 사용했을까?

삼국시대에, 국가가 공식으로 주조한 뒤 유통시킨 화폐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단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기록으로 미루어 곡물이나 직물이 <유사한 화폐기능>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또, <변한> 지역에서 철이 많이 생산된다는 역사 기록이나, 금, 은, 옥과 같은 것들을 보물로 여겼다는 것으로 미루어, 이러한 광물들이 화폐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삼한 시대에, 무덤 밑에서 일정한 규격을 갖춘 철조각(철정 : 鐵鋌)이 발견되는데, 철이 많은 지역에서는 철을 가지고, 무기, 농기구, 화폐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중국의 동북공정과 역사왜곡에 대응하는 연구를 하던 중, 발해의 화폐가 발굴되었고, 진품인지 규명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화폐가 진품이라는 증거를 밝히는 작업이 쉽지 않을 뿐더러, 진품이 아니라는 증거를 밝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랍니다. 발해에 대한 역사서는 물론, 유물이나 유적조차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지요.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은 발해이기에, 왕계표를 만드는 작업조차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이제, 백날 이야기 해도,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 고대 화폐 이야기는 이 쯤에서 접고, 다음 장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실제 사용된 화폐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화폐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돈으로 보는 한국사 (1)

인류가 화폐을 사용하기 시작하다.

1. 인류가 돈을 사용하기 시작하다.

오늘 이야기 하려는 부분은, <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개화기 이후 일제시대부터 광복이후 현대사회까지의 돈들을 보면서 <돈>으로 역사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자, 그럼 돈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요?

일반적으로 <화폐>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곳은, 세계 4대 문명 지역이었습니다. 즉, 최소한 청동기 시대이후, 돈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화폐라는 것이 등장하려면, 일단 화폐를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마을은 존재해야 하고, 그 마을들간에 장사가 이루어져야 하겠죠? 또, 장사를 할 때,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은, 마을 전체를 세력권으로 삼아서, 강제적으로 화폐를 써라... 라고 말할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해야 합니다.

따라서, 화폐라는 것을 사용한 지역을 보면, 역사상 최초의 문명지역이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국가들, 황하문명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 이집트 지역과 소아시아 국가들, 그리스와 로마 문명 지역에 고루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답니다.

그럼, 돈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당시에 살아보지 않아서 확실한 이유는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인류는 국가가 생기기 이전부터, 서로에게 필요한 물품을 물물교환 하였을 것입니다. 콩과 물고기를 바꾸기도 했을 것이고, 동물 가죽과 기름을 바꾸기도 했겠죠.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서로 부족했기 때문에, 거래를 통해 서로 원하는 물품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4대 문명에서, 문명, 도시, 국가라는 것이 출현하면서, 이러한 물물교환 체제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보통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물품을 교환하였겠지만, 일부 지배자 계급은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재산을 축적할 목적으로 물건을 모을 때, 물물 교환은 한계에 부딪히게 된답니다. 부피가 크거나, 빨리 썩어 버리는 물건은 물물교환으로 적합하지 않고, 보관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개껍질과 같은 유사화폐를 사용하기도 하고, 금이나 보석과 같은 광물을 교환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했죠.

특히, 조개껍질은 단단하면서도 모양이 아름답기 때문에, 기원전 3천년전부터 화폐로 이용되었습니다. 한자에서 돈을 뜻하는 단어에는 대부분 조개 패(貝)자가 부수로 들어가 있는 있답니다. 그런데, 이 조개화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부터, 중앙아시아, 중국, 한반도까지 널리 발견됩니다. 고대에 일반적으로 쓰인 화폐였다는 증거죠. 특히, 기원전 7세기경 낙타 대상인들은 조개 껍데기를 실이나 가죽으로 100개씩 묶어서 물품 교환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화폐로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일정 단위의 화폐로 이용한 것이죠.

하지만 이런 유사 화폐들도 큰 단점이 있었답니다. 먼저 철이나 보석은 멀리 이동할 때 너무 무거웠답니다. 만약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돈을 모은다고 생각해보세요. 몬스터를 1000마리 때려잡고 아이템을 얻었는데, 그 아이템을 다 들고 다닌다면? 게임에서야 인벤토리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답니다.

또, 돌, 뼈, 조개껍질과 같은 유사 화폐는 오래 이동할수록 파손될 확률이 높습니다. 아름다운 모양을 가치로 하는 화폐일수록 기간이 오래될수록 화폐로서의 가치는 점점 사라지겠죠?

그래서 옛 사람들도 모양이 변하지 않고도 아름다우며, 이동할 때 보관이 용이한 형태와 모양의 화폐를 생각하기 시작했답니다. 그것을 세계 최초로 실현한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터키지방(리디아인) 사람들이에요.

위 화폐가 바로 최초의 화폐인 일렉트럼 코인입니다. 이 화폐를 만든 왕국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고대 왕국이었던 리디아랍니다. 이 동전은 천연의 금과 은을 합급해서 만든 것인데, 금 75%에 은 25%를 섞은 합급을 <일렉트럼>이라고 불렀답니다. 이 화폐는 달걀모양의 타원형으로, 실제 크기는 강낭콩만하답니다. 화폐에는 정복전쟁을 상징하는 사자가 새겨져 있고, 금속의 무게와 비율이 적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인장이 찍혀있습니다.

이 화폐를 본 고대 그리스인들이, 주조 방법과 용도에 감탄해서 화폐를 만들기 시작했고, 훗날 로마까지 화폐 주조법이 유행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동전(코인 : coin)은 리디아 화폐를 본따 만들었지만, 둥근 모양과 다양한 상징물을 넣어서 서양 동전의 원형이 되었답니다. 이들은 리디아인의 일렉트럼 기법을 사용하여 금과 은을 합성해서 동전을 만들었는데, 이 합금을 <호박금>이라고 불렀습니다. 보통,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과 함께 신성을 상징하는 조류(새), 지배자의 얼굴을 넣었습니다. 이후, 헬레니즘 시대가 되면서 알렉산더 대왕 사후, 각국의 지배자들이 스스로를 찬양하는 동전을 많이 만들었답니다.


이 헬레니즘의 화폐들이 로마로 이어지면서, 로마 제정시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자신의 얼굴을 화폐에 집어넣으면서 로마 화폐가 황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유통됩니다. 물론, 황제가 바뀔 때마다 황제 스스로가 자신의 얼굴을 화폐에 집어 넣으면서 화폐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게 되었죠.

그런데, 로마 제정이 점차 문란해지고, 게르만 용병들이 늘어나는 시기가 되면 화폐 역시 문란해진답니다. 화폐가 민망해지는 정도로 로마 사회가 점점 타락해가는 것을 수준을 알 수 있답니다.

자, 위 화폐는 로마의 공식 화폐는 아니지만, 일부지역에서 공공연하게 유통되었답니다. 로마가 몰락할 무렵, 군인황제들이 서로 죽이고, 죽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 이 화폐들이 유통되었죠. 

  우리나라에서도, 전두환과 같은 군인이 정권을 잡았을 때, 3s 정책을 했었죠? 군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sport, screen, sex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책 말이죠. 로마 사회에서도, 군인 황제 시기에 극도로 사회가 문란해지면서 이런 화폐가 등장할 수 있었답니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했던 황제가 바로 <디오클레티니아 누스> 였죠. 이 황제는, 국가의 공식 화폐가 아닌, 식민지(속주)의 문란한 화폐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가고 있었죠.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이런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경건하면서도 문란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을 체제에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사회 정화 사업을 하였답니다. 그 결과, 이런 불량 화폐들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죠.

이야기를 하다보니, 서양 화폐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었군요. 그럼 다음 장에서는, 우리 역사에 등장한 동전과 지폐들을 이야기하면서, 화폐로 알 수 있는 역사 이야기들을 전개해 보겠습니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질 문 자 료 실

조일수호조규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까지의 조약 이야기 (3)

1.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자, 지금까지 조일수호규칙과 부록 등 일본과 맺은 조약을 확인하고, 조미통상조약의 핵심내용을 보았죠? 이제서야, 원래 다루려고 했던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하, 조청장정)을 이야기하겠네요.

그럼, 먼저 이 길고 긴 이름부터 한번 살펴볼까요?

조청장정에는 청나라가 장정을 맺기 위해 의도한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름만 보아도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답니다.

한마디로, <조선과 청나라간에 장사꾼들이 개인적으로 장사하는 데 있어서, 육지든, 바다든, 모든 곳에서 무역을 할 때 적용되는 것들을 정리해서 조선에 통보한 규정> 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죠? 장정(章程)이란, 글로 적어서(章) 올리면 그냥 법도가 되는 것(程)을 말합니다.

그럼, 내용을 보면서 정리해 볼까요?

먼저, 전문을 보면 위와 같은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본문보다 앞서 다급히 적은 <전문>이네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조선은 대대로 우리 중국이 주도권을 가진 국가니깐, 그것부터 좀 인정해줄래?>입니다. 따라서, 중국과 남다른 관계인 조선이기에, 제국주의 국가와 맺은 최혜국 대우 따위의 특권은, <조선과 청국 사이>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거죠. 최혜국 대우는 국가와 국가간 대등한 관계인 <조약>에서 발휘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조약이 아니라, 청이 은혜를 베풀어 마련한 <장정>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조약의 하나 하나를 파헤칠 것인데, 조약 전체를 보고 싶으시다면, 제 블로그에 있는 아래 포스트를 참조해주세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의 전체 내용 보기 : http://historia.tistory.com/2223

자, 그럼 가장 핵심 내용인 4조를 제외하고, 나머지 1-8조의 핵심 내용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자, 먼저 1,2,3,5조의 내용입니다. 1조를 보면, 딱 조약의 성격이 나오죠? 황제와 국왕이 대상이 된 국가간의 <조약>이 아니네요. 어디, 일개 대신이 와서 국왕이랑 맞먹는다니요. 대신과 국왕이 대등하다는 것을 바꿔말하면, 청국의 황제와 조선의 국왕은 상하관계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2조와 3조, 5조는, 장사를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조선에서 미국도 장사하고, 일본도 장사하는데, 경제면에서 조선과 우방 + 속방 + 보호국을 자청하는 청나라 역시 그보다 더한 <불평등 조약>이 있어야 조선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겠죠?

즉, 청나라 상인들이 조선에서 자유롭게 무역하겠다. 육지까지는 아니지만, 바닷가에서는 자유롭게 물고기를 잡고, 사고 팔겠는 것입니다. 또, 중국과는 고려시대부터 국경 무역을 해왔으니, 그 무역을 더 활성화 시키고, 합리적인 세금안도 마련하겠다. 뭐 이런 것들이죠. 나머지 6, 8조는 뭐 세금은 몇 %를 붙이겠다니, 홍삼을 팔겠다느니 하는 것들입니다.

7조는 좀 눈에 띄는데, 청나라 병선, 즉 전쟁을 할 수 있는 배가 조선 연해에 왕래할 수 있다라는 조항입니다. 이건, 일본 때문에 들어간 내용이죠.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이 장사꾼들을 조선에 보내면서, 장사가 원할하지 않을 경우, 개항장에 군함을 떡~ 들이대면서 협박아닌 협박을 하고 있으니, 청나라 역시 일본에 맞춰 무력 시위가 필요했을 거에요.

자, 그럼 조청장정의 <핵심포인트>.... 제 4조를 한번 볼까요?

자, 4조의 내용은 먼저 <개잔무역>이란 말을 한번 볼께요.

원래, 일본이나 미국과 맺은 통상 조약에서는 항상 <개항장>이 문제거리였습니다. 개항장, 즉 항구를 얼마나 많이 열고, 항구에서 장사할 수 있는 거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조약을 맺을 때, 서로 신경쓰는 부분이었죠.

지난 장에서 조일수호조규의 부록 내용 중 <간행이정 10리>라는 내용 기억하시나요?

간행이정은 개항장에서 몇 리까지 일본인들이 활동할 수 있느냐에 대한 규정이었습니다. 일본은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 인천, 원산(3개 항구)를 열었는데, 항구를 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항구에서 얼마까지의 거리까지 침투해서 장사를 할 수 있냐였죠.

조선 정부와 줄다리기 협상끝에 간행이정이 10리로 일단 확정된 것이랍니다. 그럼 이게 뭐 그리 중요하냐구요?

간행이정은 조선 상인들의 밥줄과 관련있답니다. 만약 항구에서 100리까지 일본인들의 장사범위를 넓혀준다고 생각해보세요. 농촌의 물건을 사서 도시에 팔거나, 도시의 물건을 사서 항구에 파는 조선의 상인들은 10리, 20리라는 범위 하나로 죽고 산답니다.

예로, 조선시대에 항구나 포구에서 중계무역 같은 것을 하던 객주, 여각 같은 전통 상인들 있죠? 일본인들이 직접 내륙에 무역을 한다면 이들 중계상인은 모두 몰락합니다. 또, 조선 내륙에서 물건을 가져와 수출상인에게 팔던 보따리 장수(보상), 등짐장수(부상)들도 망하겠죠. 보상과 부상을 합쳐 부보상, 또는 보부상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망하면 조선 유통업은 완전 몰락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튼, 조청장정 4조의 그림을 다시 보세요. 개항장이 아니라, 북경(청국 수도) - 양화진(서울 마포, 즉 조선의 수도)에서 청국인이 점포를 개설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있죠? 즉, 청나라의 장정은 개항장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서울로 치고 들어온다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것을 막기 위한 내용이 바로 <내지채판>입니다. 내지채판이란, 양국의 상민들이 절대, 지정된 거리보다 더 내륙으로 들어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청나라 상인들은 양화진, 즉 지금의 마포 근처의 나루터에서만 장사를 하고 점포를 열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조선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안전 장치였답니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여행이 꼭 필요한 경우, 육지에서 장사를 꼭 해야만 하는 특별한 경우에 <호조>라는 것을 발급해 줍니다. 호조는 <여행증명서> 같은 것이죠. 요즘으로 따지면, 다른 나라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단기간 여권>이라고 할까요?

이 호조를 가진 상인은, 개항장을 벗어나 내륙에서 장사를 하고, 바닷가에서 연안무역을 할 수 있게 된답니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호조를 확보하는 것으로서 조선 내륙 무역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1년뒤, 영국과의 조약에서 간행이정이니, 내지채판이니 하는 것들이 전부 다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답니다. 이유는 조영통상조약의 내용 때문이었어요.

자, 이제 간행이정이 확대되면서 조선 상인들이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조청장정으로 청국은 서울(양화진)에 점포를 세우고, 조일부록으로 일본은 강행이정이 10리로 한정되었죠? 그런데, 영국과 맺은 1883년의 조약에서 양화진도 개방하고, 간행이정도 100리로 확대되면서 난리가 난거죠. 영국과 맺은 조약은 청국과 맺은 <장정>이 아니라 공식 조약이었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최혜국 대우라는 조항이 모든 다른 조약에서 똑같이 발동된답니다. 최혜국 조항에 의해 다른 모든 국가와의 조약에 영국과 맺은 조약의 내용이 추가되면서, 조선의 상인들은 몰락하게 된 것이지요.

자, 그럼 여기까지 마무리하면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까지의 조약 내용을 훝어보았습니다. 그런데, 1883년의 2차 통상장정이나, 이후에 일본과 맺은 조약들은 빠져있죠? 모든 부분을 다루기엔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답니다.

제가 10월 이후에 적을 고려사 노트를 끝내면, 조선사 노트, 근현대사 노트를 언젠가(?) 적을 텐데, 그 때에 모든 조약을 자세하게 다뤄 볼께요. 혹시, 특별히 꼭~ 알고 싶은 조약이 있으시면, 방명록이나 질문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질 문 자 료 실

조일수호조규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까지의 조약 이야기 (2)

1.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으로 가는 과정....

지난 장에서,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의 부록과 규칙의 내용을 통해 일본이 조선을 경제적으로 침탈하려는 의도를 알아보았습니다. 지난 장에서 다룬 내용들을 더 세심하게 보고 싶으시다면, 제 블로그에 있는 다음 내용들을 참조해 주세요.

지난 장의 내용 다시 보기 : http://historia.tistory.com/3476

조일수호조규 및 <규칙>, <부록> 원문 보기 : http://historia.tistory.com/2223

조일수호조규의 규칙을 통해, 무관세 조항과 곡물(1차 상품) 및 면직품(가공제품)의 부등가 교환이라는 부분을 설명했습니다. 부등가 교환이란, 공정한 가격에 거래되지 않는 물품의 교환을 뜻해요.

우리 나라도, 지금 시골에서 열심히 쌀 농사를 지어도, 같은 부지의 땅에서 공장을 짓고 컴퓨터를 만들어 파는 사장님보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죠? 상대적으로 1차 상품은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에 비해 제 값을 받지 못한답니다. 같은 가치를 같지 못하는 품목을 서로 교환하는데, 관세(세금)이 공정하게 붙지 못한다면, 당연히 곡물 농사를 짓는 조선의 농민, 상인들이 몰락할 수밖에 업답니다.

따라서, 조일수호규칙의 핵심 내용은, 곡물 교환 부분과 관세 부분이었어요.

조일수호조규의 부록에서는 일본 화폐의 한반도 통용이라는 핵심 내용을 다루었죠? 한반도 경제를 장악하기 위해 일본 화폐의 침투를 용이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랍니다.

암튼... 지난 장의 내용 정리는 이쯤에서 끝내고...

자, 이렇게 되자 급한건 <청나라>였습니다. 중국은 대대로, 조선의 제 1 무역국이었고, 조선과 조공 무역 및 민간 무역을 해왔던 나라였죠. 그런데,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의 부산, 인천, 원산 등 핵심 항구들이 개항되어 버리고, 일본과의 무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에서 일본 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 시장이 작아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청나라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바로 조선과 <미국>이 장사할 수 있도록 주선함으로서, 성장하는 일본 세력의 기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죠. 바로 그것이 1882년, 조미통상조약입니다. <통상(通商)>이란, 말 그대로 <장사를 통하게 하다>라는 뜻이죠? 이 조약 역시 핵심은 <경제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간단히 내용을 볼까요?

조미통상조약은, 조일수호규칙의 단점을 보완하는 내용들이 첨가되어 있답니다. 조일수호규칙에서 관세권 개념이 없던 조선이 관세도 못 받아먹고, 곡물도 제 값을 못받고 팔게 되었죠? 한번 당하고 나서야, <아~ 이렇게 조약을 한번 맺으면 평생 당하고 살겠구나~> 하고 깨달은 거랍니다.

그래서 미국과의 조약은 이 두 가지를 확실히 해결하면서 맺었습니다. 최소한의 관세권도 인정받았고, 조선의 곡물 수출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어두었답니다. 조선 정부는, <우리가 이제 좀 조약 맺는 스킬이 늘었어!!!>라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천만의 말씀.... 미국에게 더 큰 거 하나를 당하고 맙니다. 일본과의 조약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최혜국 대우>라는 항목을 포함한 채, 떡~ 하니 도장을 찍어 버렸답니다.

최혜국 대우란, 다른 나라가 조선과 조약을 맺었을 때, 어떤 <특권>을 가질 경우, 그 혜택을 나눠가지겠다는 뜻입니다. 이 조항이 문서에 들어갈 경우, 조선이 다른 나라에게 특권을 주면 그 특권이 고스란히 미국에게도 적용됩니다. 이 조항 하나로, 조선 정부는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을 때마다 곤란에 빠지게 되죠.

문제는 <청나라>였답니다. 청나라가 미국과 조선의 통상조약을 주선한 것은 일본을 견재하기 위해서였거든요. 그런데, <미국>과의 조약에 최혜국 대우가 떡~ 하니 들어가 버리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똥개 한 마리 견제하려다가 호랑이를 부른 셈이지요.

그래서, 청나라는 임오군란이라는 조선의 혼란한 상황을 이용해서, <조미통상조약>과 같은 해에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그 <장정>에 나오는 내용은, 다른 나라가 절대 가질 수 없는 <청나라의 특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미국의 <최혜국 대우>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뉘앙스의 선언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사실이 하나 있네요. 이름이 뭐 이리 길죠? 조청 + 상민 + 수륙 + 무역 + 장정.... 조약 하나가 5가지 내용을 포함하고 있네요. 다른 건 다 넘어간다고 쳐도, <장정>이란 말은 보고 가세요. 일본과는 강화도 <조약>이죠? 미국과도 조미통상<조약>입니다. 근데, 청나라는 <조약>이 아니라 <장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답니다.

자, 그럼 <장정>이란 말에서, 청나라의 의도를 알 수 있겠죠? 청나라는 <조선은 청나라의 소유물이다> 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미국에 과시하기 위해 <조약>이 아니라 <장정>이란 말을 쓴 것입니다.

그럼, 청나라의 이 행태를 본 일본은? 당연히 일본도 조선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장정>이란 말을 써야겠죠? 그래서, 전에 맺은 조일수호조규에 붙은 규칙을 통상장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청나라와 맺은 1882년의 장정이 나온 1년 뒤, 새로운 조약을 <개정 통상장정>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조규라고 해놓고, 규칙과 부록을 넣었다가 장정이라고 했다가... 이 것들이 역사 공부하기 귀찮게 지들 멋대로 불러대네요. ㅋ

제가 오늘 집안행사가 있는 관계로 여기까지... 다음 장에서 마무리 할께요. 다음 장은 조청무역장정의 내용과 그 이후의 조선의 경제 부분... 그리고, 질문하신 내지채판에 대한 부분입니다. 깊은 밤, 좋은 꿈 꾸세요.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질 문 자 료 실

조일수호조규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까지의 조약 이야기 (1)

1. 개잔이란 무엇일까?

이 포스트는 rladudghl@hotmail.com 님이 질문게시판에 남긴 개잔무역과 내지채판에 대해 답변해드리기 위한 글입니다. 아울러, 강화도 조약부터 조청장정까지의 전 과정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번 정리해 보는 글입니다.

 

우선, 쉬운 단어풀이부터 해드릴께요. 

물어보신 단어는, 개잔(開棧) 무역과 내지채판(內地采辦)입니다. 용어풀이부터 해드리고, 역사적 배경과 사료 해석을 해드릴께요.

먼저 개잔에서 잔(棧) 이란 단어는, <놀던 장소>를 말합니다.

혹시 객잔(客棧)이란 단어 들어보셨죠? 뭐, 용문객잔이니 하는 영화에서도 나오죠. 객잔이란 중국 사람들이 쓰는 용어인데, 놀면서 장사도 하고 쉬어가던 여관을 말합니다.

즉, 잔(棧)이란 단어는 이런거에요. 중국 사람들이 바닥에다가 진을 치고, <골라 골라~>하면서 물건도 팔고, 주막앞에서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웃는, 쉼터를 상상해보시면 되요. 뭐, 고대 그리스에는 아고라 같은 광장이 있었죠? 토론도 하고 장사도 하고... 아고라에서 상업적 기능이 강화된 먹고 놀자 골목을 생각해보세요.

중국 무협지 같은 데서 많이 나오는 장면이죠? 또, 사다리를 타고 다락방에 올라가서 마작을 하는 중국인들을 상상해보세요. 그런 식으로 신나게 놀려고 판을 벌리는 것을 잔(棧) 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홍콩 영화에서 마작하는 다락방을 마잔이라고 한답니다.)

개잔(開棧)은 이렇게 설명하면 되겠네요. 객잔들이 모여있는 장소이면서 상인들이 쉬어가는 공간을 말합니다. 객잔, 즉 여관들의 입구를 개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열었다는 뜻에서 잔(장사판)을 개(열다, 개시하다)하다라고 해석하시면 더 쉽게 이해되실 거에요.

사전적 의미로 개잔을 구조화시켜 볼께요.(중국 용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세요)

결국 개잔이란 중국식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면, <시장과 저자 거리>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네요.

자, 그럼 본격적으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보면서 장정에 나오는, 개잔과 내지채판이라는 용어를 이해해 봅시다.

2. 장정은 왜 맺었을까?

청나라가 조선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하 조청장정)을 맺은 이유는, 사실 <강화도 조약> 때문이랍니다. 강화도 조약은 내용이 아주 길기 때문에 제 블로그에 있는 다음 자료를 참조해 주세요.

사이트 내 강화도 조약 검색 : http://historia.tistory.com/198

1876년 일본은, 조선과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을 맺은 후, 조선의 상권을 빠르게 먹어치우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조이수호조규을 맺고, 곧바로 같은 해 8월, 조약에 <부록>을 두 개나 떠억~ 포함시켰답니다. 조일수호조규의 부록과 규칙(통상장정)이 바로 강화도 조약의 별책부록이였죠.

그럼, 이 때 일본이 우리 경제를 삼키기 위해 마련한 별책 부록들의 핵심 내용들을 볼까요?

조일수호규칙은, 조선의 경제를 장악하기 위한 기본적인 약탈체제를 마련하기 위한 추가 조약으로, 흔히 1차 통상장정이라고 불리는 규칙(법조항)입니다.

첫 번째 핵심 내용은, <쌀>이에요.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과 같은 산업혁명 체제를 만들고 싶어했죠. 그런데, 산업혁명을 하려면 공장도 지어야 하고, 쫒겨난 소작농들 도시 노동자로 바꾸고.... 에휴, 할 일이 많네요.

그 중에서도 문제가 되는 건, 농촌 체제가 도시 체제로 바뀌면서 생기는 <식량 부족>이랍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별책부록>에 포함시킨 것이 바로 <쌀>을 매매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그 대신 일본은, 산업혁명으로 한참 수출되던 영국산 모직물을 중개 무역을 통해 조선에 내다 팔기 시작했답니다.

그럼,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수출품을 관세(세금)을 포함하지 않고 파는 거였죠. 그래서 규칙에 포함시킨 또 하나의 핵심 내용은 <무관세 규정>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별책부록은 이름 그대로 <부록>였습니다. 일명, <조일수호조규 부록>이었죠.

이 별책부록의 핵심내용은, 바로 7조에 있답니다. 일본 화폐의 한반도 통용권 부여! 한마디로, 장사할 때 일본 돈을 쓰겠다는 겁니다. 어느 나라나 무역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화폐 단위죠.

요즘도 보세요. 외국가서 돈 벌어도, 환율이 떨어졌느니, 어떤 단위의 돈으로 장사하느니.. 규제가 많잖아요. 간단하게, 걍 일본 돈 쓰겠다는 겁니다. 일본 상인들이 조선에 효과적으로 침투할 수 있는 장치를 여기서 마련한거죠.

자, 한번 봅시다. 일본 화폐가 조선에서 유통되면, 일본 은행이 조선 지점을 쉽게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일본 은행과 일본인의 상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줍니다. 그 결과, 조선의 종주국이라고 자청했던 청나라 상인들은, 일본인들에게 밀리기 시작하는 거죠.

또, 일본 은행들이 조선화폐와 일본 화폐의 시세를 조작해서, 일본 상인들의 수출과 수입을 유리하게 만들어 준답니다. 그러면, 조선 상인들 중에 몰락하는 상인들이 생기겠죠? 그 때, 일본 은행은 조선 상인에게 고리대금을 지원한다고 돈을 빌려주면서, 환율을 이용해 많은 이익을 챙기는 겁니다.

그럼 조선 정부는 <나쁜 넘의 자식들... 쪽바리들에게 속았다~!> 라고 생각하면서, 조약을 개정하려고 했겠죠? 그래서 조선 정부는 개정안을 제시한답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얻어낸 핵심은 바로, <이정 10리> 랍니다. 위에 조일수호조규부록의 4조를 보세요. <일본인의 간행이정은 10리로 한다>는 내용이 있죠? 바로 이것입니다.

일본인이 조선 내륙에 진출하여 장사할 경우, 조선의 상인들은 일본 자본에 의해 파탄나고, 조선의 경제는 외국에 종속될 것이 뻔했습니다. 조선은, 다른 것은 다 양보하더라도, 일본 상인이 개항장에서 10리 이상 벗어나 자유롭게 장사하는 것만큼은 막았답니다. 뭐, 정부 고관이 내륙을 여행하는 거야 <니 맘대로 경치 감상하세요~~> 하면 되지만, 상인만큼은 안된다는 거죠.

자, 이렇게 강화도 조약과 2개의 별책 부록으로, 일본의 경제 침투가 시작되자 긴장한 나라가 있었겠죠? 대대로, <조선의 종주국이다>라고 자부하던 세상의 중심, 자칭 중화민족인 청나라였습니다.

그럼 청나라는 어떤 방법으로 일본의 경제 침투를 막으려고 했을까요? 내일은, 청나라의 <종주권> 지키기 프로젝트를 한번 보면서, 내지채판이라는 용어를 한번 알아봅시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고려시대 이야기 노트(1)

고려시대 역사...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1)

 

이제 고려시대의 역사 이야기를 전개해봅시다.

그런데 말이죠. 먼저, 고려라는 시대에 대해서 좀 알아봐야겠네요. 왜냐면, 고려라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연구된 것은 불과 40-50년 전이랍니다.

고려시대에 대한 역사 이야기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 많고, 밝혀진 이야기들도, 몇 년 혹은, 몇 십년이 지나면, 내용이 다 바뀔 지도 몰라요.

이유는 다 아실겁니다. 우리가 일제 36년이라는 식민지배를 경험했기 때문이죠. 역사를 연구할 시간이 너무 적었어요. 또, 시간이 멀고 기록이 적은 역사일수록 최근 시대보다, 더 많은 왜곡이 생길 수 밖에 없겠죠?

예를 들어서, 고려의 대외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일제시대, 일본 및 일부 역사학자들은, 고려의 대외관계를 <만선사관>이라는 입장에서 바라보았어요. 만선사관이란, 고려의 대외항쟁 역사를 무시하고, 침략당할 수 밖에 없는 약한 민족의 역사라면서, 고려역사를 비하한 것이죠. 

뭐, 고려 시대에 수백번의 침략을 당하고, 막고, 또 당하고.... 하다보니, 독자적인 문화도 없고, 강력한 국가체제도 이루지 못했다는 거에요.

이야기가 이렇게 일본 역사학자들의 주장대로 흘러가다보니, 독립운동을 했던 민족주의 역사가들이나, 광복 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아니야!>라고 주장했어야겠죠?

그래서, 고려시대의 대외관계는 우리 민족의 <범 민족적인 항쟁> 으로, 파악되기 시작한답니다.

누군가는 위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에요.

삼별초가 제주도까지가서 목숨걸고 항쟁한 것은, 자기들이 <무인정권>이었기 때문 아냐? 자기들 정권을 빼앗길까봐 몽골이랑 처절하게 싸운 것이 왜 민족항쟁이야?

천민들, 농민들은 몽골을 막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웠지만, 그건 다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서이지,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야. 내가 노비 신분인데, 국가가 망하던 말던 무슨 <민족>을 생각했겠어? 열심히 싸운 천민만큼, 이 참에 팔자 고치자! 라고 작정하고 도망간 노비, 몽골의 앞잡이가 된 천민들도 많았을거야.

점점 이렇게, 정해진 이야기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또, 요즘에야 인터넷이 워낙 발달했으니까, 뭐 사이트 곳곳에 숨은 역사가들이 너무 많잖아요.

결국, 고려시대의 대외관계를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어떤 관계를 갖고 전개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이해한 것은 최근의 일이랍니다.

우리는, 일본이 만들어놓은 65년전의 이상한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고려의 대외관계는 <민족의 항쟁> 이라는 부분만 크게 강조해 놓고 말았어요.

교과서를 보아도, 고려의 대외항쟁은, 거란족을 막고, 여진족도 막고, 몽골이랑 40년 싸우면서도 버틴 위대한 역사처럼 되어 있거든요. 역사학자분들이 정상적인 연구를 하게 된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이랍니다.

하고픈 첫 번째 말은 이거에요. 앞으로,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적던 간에, 그건 절대적인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거죠. 연구를 시작한지 반백년도 안된 한국사는, 언제든지 내용이 바뀔 수 있답니다.

여기에 적어 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고, 교과서에 적힌 이야기도 절대적인 진리는 될 수 없어요.

역사는 항상 변한답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내일은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어요. 또, 고려사 같은 경우, 아주 적은 몇몇 자료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다보니, 자료를 해석하는 사람이 10명이면, 10개의 역사가 나올 수밖에 없답니다.

그래도, 상식적인 선에서 <이건 사실일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겠죠? 그런 부분들을 가지고,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거랍니다.

그럼, 이건 아직까지는 사실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고려시대의 역사는 무엇이 있을까요? 다음 장에서 그 부분을 이야기해볼께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 파일은 9-10월부터 시작될 고려시대사 노트를 적기 위해 샘플로 제작된 파일이에요. 아래의 부분들은 첨가, 또는 삭제될 수 있답니다.)

  1

 

(크로스 퀴즈 풀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This interactive crossword puzzle requires JavaScript and a reasonably recent web browser, such as Internet Explorer 5.5 or later, Netscape 7, Mozilla, Firefox, or Safari. If you have disabled web page scripting, please re-enable it and refresh the page. If this web page is saved to your computer, you may need to click the yellow Information Bar at the top of the page to allow the puzzle to load.

정답보기 클릭!!!

좌우 크로스

  1.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을 금나라의 본거지를 기준으로 부르던 명칭
  2.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세운 장군

상하 크로스

  1. 거란의 1차침입 때, 서희가 소손녕과 담판하여 얻은 지역
  2. 청과 조선민족은 같다는 일제시대 일본 사학자들의 사관. 조선 침략의 정당함을 위해 만들었다.

 

(확인 문제 풀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삼별초의 항쟁 때, 강화도에서 진도까지 내려가 항쟁하다가 죽은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서희    ② 윤관    ③ 배중손    ④ 강감찬    ⑤ 양규

 

(읽어주는 블로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고려시대사 이야기 1 다운로드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고려시대 이야기 노트(1)

9월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고려시대사 노트.

9월부터 고려시대사 노트를 시작합니다.

제가 요즘 바빠서 역사 퀴즈도 못 올리고, 다른 자료들도 손을 못대고 있네요. 하지만, 9월부터 올리는 고려시대 노트는 틈틈이 미리 작성한 후, 예약 포스트로 걸어서, 밀리는 일이 없이 약속한 시간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올리려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올릴 범위는?

후삼국 시대부터 조선 건국까지의 블로그에 내용을 올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후삼국과 조선 건국은 간략하게 다루고, 고려 시대 이야기가 주를 이룰 거에요.

정치사 이야기를 초반에 전개하겠지만, 정치사 이야기가 끝나면 고려라는 나라에 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합니다. 정치사를 앞 부분에 다루는 이유는 고려라는 나라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2. 이야기 수준은?

이야기는 <존대말>로 풀어가면서, 고등학교 국사를 배운 학생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적으려고 합니다. 단, 내용이 고등학교 수준은 아니에요.

내용은, 필요에 따라 초등학교 수준이 될 수도 있지만, 고려사의 전 부분을 다루려고 하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고려 경제, 문화, 사상에 대한 용어들도 나올 거랍니다.

하지만, 어떤 어려운 용어도 고등학교에서 국사를 배웠거나, 일반인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적을 거랍니다.

또, 아주 중요한 개념이나, 필요한 용어들은 아예 따로 챕터를 만들어 그 부분만 따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주제와 관련없지만, 알아두어야 할 것 같은 개념들은 따로 메모박스를 만들어서 하나 하나 다 설명하는 식으로 쉽게 쓰려고 해요.

3. 이야기 특징은?

이 이야기는, 페이지에 따라 분위기가 확 바뀔 수도 있어요. 어떤 글은 도표로 요약된 핵심 개념을 제시하기도 하고, 어떤 페이지는, 이야기 자체를 동영상이나 플래시, 사진, 지도, 도표들을 가지고, 보여주기도 할 거에요. 하지만, 문체나 줄거리는 일관성을 가지고 전개할 거랍니다. 관련 사료를 제시하거나 링크를 걸 수도 있겠네요.

아울러, 하나의 챕터가 끝나면, <읽어주는 블로그>를 이용해서 음성으로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또, 한 페이지마다 핵심 내용을 정리한 <흐름 도표>도 보실 수 있을 거에요.

   또 하나~. 각  챔터 중간이나, 끝난 부분에 해당 고려시대 내용에 대한 <온라인 역사 퀴즈>가 다양한 자료와 함께 올라온답니다. 심심할 때, 문제를 풀고, 간단한 클릭으로 점수와 오답 내용을 보면서 고려역사에 대한 내용을 정리할 수도 있어요.

혼자서 글을 쓰고, 그림이나 플래시 등을 다루는 블로그이다 보니, 내용 전개가 느릴 수도 있지만, 최소한 1주일에 1-2회는 자료가 올라올 거랍니다.

고려사에 대한 이야기는 최소 100회분량이나 그 이상을 적고 나서 마무리 될 듯 하네요. 고려사 이야기를 적다가 시간이 남을 때, 역사퀴즈나, 기타 밀려서 손을 못대고 있는 것들을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블로그에 글을 남기면서 쌓은, 컨텐츠 작성 노하우를 살려서, 블로그에서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미난 역사 이야기를 적어볼께요.

그럼 저는, 자료도 좀 모으고 당분간 블로그를 쉬면서 9월에 올께요. 9월달이 되면, 고려시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 많이 많이 놀라와 주세요.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한국 근현대사 노트 (3)

한국 근대사로의 이행 - 외부적 요인

1. 외재적 요인과 내재적 발전론

자, 그럼 한국 근현대사 이야기를 전개해볼까나?

그런데, 한국 근현대사의 시작점은 2가지 이야기를 같이 다뤄야 해. 먼저, 일본에 의해 개항한 만큼 우리의 근대사는 일본이나 제국주의 국가의 영향이 무지~ 크다는 <외부적 요인>을 이야기 해야 하지.

그런데, 이 <외부적 요인>은 의도적(?)으로 잘 다루고 있지 않아. 왜냐면, 우리 근대사가 일본의 침략적 행동 때문에 시작되었는데, 그게 근대화와 문명화의 원인이라는 것을 들춰내기엔 일본의 얄미운 발언(?)들이 좀 거슬리거든? 일본이 강제 점령한 긴긴~ 세월 동안 일본이 우리 역사를 바라보았던 관점을 한번 소설처럼 쭈욱~ 나열해 볼까?

조선애들이 무슨 단군이니 뭐니 시조를 말하는데, 호랑이랑 곰이 달래먹고 놀다가 인간이랑 결혼하는 게 말이 되냐? 일단 그건 뻥이니깐 패스~ 그러다 보면 결국 조선에서 말하는 조상신이니, 뭔 신이니 하는 건 다 일본 황국의 신을 베낀거 아냐? 결국 한반도 고대사에는 금속 시대도 없고, 석기시대, 신화시대만 있었던 거잖아? 뭐, 청동기도 없었고, 철기는 중국애들이 전파해 준거고... 한반도 남부는 우리 히미코(신공황후) 여제가 임나일본부 세워서 문명 전파좀 해주다가 발전한거구..

<단군이 뻥이면 이 인간은 어찌 되는 건가? 일본 극장 24부작 상영남인데... >

결국 한반도는 중국, 위만, 한사군, 일본 같은 외세 세력이 다 먹여 살린 거잖아? 결국 조선애들은 여진족한테 휘둘려, 거란한테 휘둘려, 몽골한테 굽신거려... 결국 얘들은 한반도에 갖혀서 역사의 주체로 나선 적이 한번도 없어. 결국 종주국인 중국을 모방만 하다가 발전도 못하고 당파싸움만 하던 애들이잖아.

그러니깐 우리 일본이 얼마나 고마워? 중세 수준의 한반도를 근대화시켜줬지. 철도 깔아주고, 문명 전파해줬지. 일본의 지배가 한반도의 복이야.. 복받은 거지 암....

   바로 이런 거다. 에도황국기원설, 일선동조론, 임나일본부설, 단군허구설, 만선사관, 반도사관, 사대주의국가론, 당파싸움론, 한반도 타율성론, 정체성론 등등 외우기도 지치게 이것절것 나열하는 일본 때문에 우리가 근대화의 <외부적 요인>을 말하기 껄끄러워 하는 거지.

일본이 워낙 헛소리를 나열해 두다 보니, 우리 교과서는 우리 근대사의 <내재적 요인>만 열심히 부르짖는거야.

일본 니들이 없었어도 우린 근대화 잘했고, 잘먹고 잘 살았을 건데, 니들이 와서 재 뿌린 거거든? 우리도 나름대로 조선 후기 실학 사상이 있었고, 외국이랑 교류도 했었고... 암튼, 일본 니들이 빼았아간걸 생각해볼래?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근대화가 가능했다는 <내재적 요인>을 교과서에 폭발적으로 나열해놓고, 밑줄 쫙쫙 친 뒤 열심히 외워서 지금까지도 수능 기출 1순위~ 용꼬리 용용~ 돼지꼬리 땡땡~ 투스타 레이스~~ 하면서 별표를 2개, 3개 마구마구 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재적 발전론>은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여기서는 일단, 잘 다루지 않고, 껄끄러운 근대화의 <외재적 요인>을 짚고 넘어가보도록 하자. 외재적 요인을 이야기하려면 중국, 일본과 관련된 19세기 침략이야기까지 두루 나열해야 할 것 같아. <내재적 발전론>은 다음 장부터 시리즈로 쭈욱~ 고고~~

2. 첫 번째 <제국주의>가 배달되었어요 :  로드 암허스트호

지난 시간에 <제국주의>가 뭔지 자세히 이야기했었지? 자, 오늘 이야기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동아시아에 와서 무슨 짓거리를 했고, 한반도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보는 거야. 그럼 시작해 볼까?

니들은 신을 믿니? 내가 믿는 신은 말이야... 아프리카라는 땅을 온통 영국의 색으로 칠해도 된다고 인정한 신이야. 우리 영국이 믿는 하나님은, 영국인들을 위해 아프리카에 물건도 팔고, 돈도 벌 수 있게 인정해 주셨거든? 문제는 같은 신을 믿는 자들이 서로 땅을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거야. 결국 모두가 자신들의 지도를 색칠하기 위해 제국주의자가 되는 거지...

뭐, <세실로즈>라는 영국산 케이프타운 총독이 위와 같은 말을 나불거렸단다. 건방진 말 같지만, 이것이 바로 19세기 현실이었지. 제국주의 국가들은, 더 많은 영토와 자원을 차지하고, 더 많은 제품을 팔아서 온 지구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고 싶어 했으니깐...

<세실 존 로스>

이 아저씨는 유명한 사람이야. 원래 남아공에서 다이아몬드 캐던 사람인데, 사업 수완이 뛰어났지. 영국을 위해 사업서를 내고 광산을 독점해서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어. 그 후 케이트타운 식민지 정치를 좌지우지 하면서, 수상에 올랐고, 아프리카의 실세가 되었지. 영국이 전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고 믿은 아저씨였어. 하지만, 보어전쟁이 일어나자 수습하려고 뛰어다니다가 건강이 악화되서 전쟁 중에 죽고 말았어.

자, 그럼 동아시아에는 영국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어떤 꼼수로 접근하기 시작했을까?

기분 나쁜 이야기 같지만, 서구, 북미 열강들이 동아시아에서 차지하고 싶은 나라 1순위는 <중국>이었어. 자원 많지, 인구 많지, 땅떵어리는 크지.... 뭐, 중국이랑 비교해보면, 조선이나 일본은 어따 써먹어? ㅋ

그리고, 유럽 애들도 19세기 중반까지, 아시아 끝에 있는 국가들을 일일이 신경쓸 처지도 못되었지. 뭐 굳이 이유를 나열하자면 이런 거야.

프랑스 : 저기, 루이 나폴레옹 때문에 재정 파탄 났구요. 겨우 7월 혁명으로 시민의 왕이라고 뽑아놓은 자식이 우리 상인들 선거권 안준다고 하네요. 우리 배 운전 안해유... 파업이랑께요.

독일 : 우리는 빈체제인가 뭣인가 그거 끝까지 사수하다가 혁명나고 뭐하고... 오스트리아랑 세트로 정신없거든? 19세기 중반부터 아시아 진출하려고 하긴 하는데, 될랑가 모르겠네. 또 뭔넘의 노동자들은 파업이 이렇게 많아? 사회주의자들 언제 청소한다냐...

미국 : 우린 카우보이들이 총들고 서쪽으로 뛰어다니기 바빠요. 요새 노예들도 말을 안들어서 조만간 남북전쟁이 터질거라고 하던데... 우리도 좀 여기저기 수습되면 그 때 진출할께요.

러시아 : 말도 마세요. 땅떵어리가 얼마나 큰지, 여기 저기 남하 정책을 다 해야 되는데... 유럽에 가면 영국애들이 시비걸지, 중국이랑도 청나라 때 국경 조약 맺어놓은게 있어서 당분간은 직접 부수러 가진 못하고, 때를 봐야죠.

이탈리아 : 저기... 통일한지 얼마 안되서 멀리는 못가요... 당분간 아프리카에서 놀아야 될 것 같거든요?

19세기 중반에, 유럽애들도 나름 사정이 있어서 <영국>을 제외하고는 좀 몸을 사리는 편이었거든. 그래서인지, 19세기 초반에 동아시아까지 와서 시비를 걸었던 나라는 영국 정도밖에 없었어. 그럼, 영국이 뭔 짓을 하고 다녔는지 살펴볼까나?

영국은 인도쪽을 점령한 뒤에 동아시아의 <중국 시장>을 노리고 있었지. 그리고, <1+1 행사>를 하듯이 덤으로 조선에도 와서 <장사하자!>라고 한번 외치기 시작하는 거야. 그게 바로 1832년 <암허스트호의 통상요구>였지.

<로드 암허스트호>는 조선과 1:1 조약을 맺기 위한 목적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였지. 말했잖아? <1+1 행사>에 걸리면 좋을 거 같아서 왔다고... 원래 동인도 회사의 상선이었는데, 동쪽에는 뭐가 있을까 하고 탐사를 한번 해본거지. 그래서 목적지를 중국에서 시작해 대만, 일본, 조선으로 잡아본거야.

<다른 지역이 너무 쉽다보니... 그 때는 조선도 너무 만만했니... 나중에 큰 코 다치지만...>

근데, 이넘의 배가 뭘 알고나 온건지... 하필이면 충청도에 있는 고대도 뒷바다에 정박했지 뭐야. 간신히, 조선 국왕에게 편지를 전달해서 <통상 조약>을 맺자고는 했는데, 당시 세도정치를 하던 정부에서는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한마디를 했지.

미안한데, 중국 황제 허락 없이는 외국과 장사할 수 없거든요... 저기 편지랑 선물 다시 가져가세요~~~

뭐, 그랬답니다. 즉, 서양 국가들은 우리와 1:1의 동등한 관계에서 무역을 하지고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아직 중국과의 조공관계를 국제질서의 핵심으로 이해했던거야. 19세기 중반까지, 우리는 영국의 통상체계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은 우리를 중국의 부속품 국가쯤으로 여겨 무역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었지.

그리고 나서, 30년 넘게 당분간 서양의 통상 압력은 없었어... 어떤 나라가 커다란 중국 놔두고 조선에 신경쓰겠어?

자, 그럼 유럽애들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다음 이야기에서 구체적으로 진행해볼까나?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한국 근현대사 노트 (2)

근대 출발기의 세상 변화 - 제국주의 이야기

1. 제국주의 시대의 도래

자, 그럼 한국 근현대사를 이야기 해 봐야겠지?

근데, 헛소리 한번만 더 하고 넘어가자. 지난 시간에 말했지? 우리 근대사의 기준이 바로 <자본주의 국가의 성립>과 <근대민족주의 국가의 성립>이라구... 그런데, 아시아의 국가들이 식민지 상태로 출발한 이상, 이 2가지 근대적 요소는 <서양의 영향력>을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 말야....

그럼, 아시아를 점령한 서양 국가들은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는 소리네? 특히, 자본주의가 최고 수준에 오른 가가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후진국을 점령하는 걸 <제국주의>라고 불러.... 그럼, 근대 자본주의를 알기 위해서 제국주의가 뭔지부터 살펴볼까?

2. 제국주의 경제적 배경 : 산업혁명

제국주의를 알려면 먼저 서양의 <산업혁명>부터 알아야 돼.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들어 봤지?

영국애들이 어느 날, 기계를 만들었어. 기계로 물건을 만들다보니, 물건이 많이 많이~ 생기는 거야.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어. 여기 저기 공장들은 많은데, 기계들이 물건을 팍팍 만들다보니 물건이 남아돌기 시작하는 거야. 영국애들은 고민에 빠지게 되지. 해결 방법은 2가지야. 첫 번째는, 경쟁력이 딸리는 공장이 망하고 돈많은 대기업이 모두 인수하는 방법, 두 번째는 인구가 엄청 많은 다른 나라에 남아도는 물건을 팔아먹는 방법....

첫 번째 방법을 사용해서 나타난 현상이 <독점 자본주의>야.

기계로 물건을 만들다보니, 물건이 너무 많아졌어. 전문 용어로 과잉공급이라고 하지. 그럼, 시장에 물건이 너무 많아지니까 서로 싸게라도 팔려고 하겠지? 물건 가격이 팍팍 떨어질거야. 가격이 떨어지다보니, 자본이 부족한 기업들이 순서대로 망하게 되지. 결국 살아남는 건? 대기업이야.

자.. 이제 대기업 혼자 살아남았으니, 시장을 독점하겠지? 원래 18세기 영국의 자본주의는 <자유 방임주의>였거든? 기업들끼리 알아서 경쟁하게 내 버려두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믿었어. 가격이 너무 비싸면 사람들이 안 사니까 가격이 내려갈거고, 가격이 너무 싸면 파는 사람들이 가격을 알아서 올릴 거구... 가격이 곧, <보이지 않는 손>이 되서 알아서 시장가격을 조절하는 거야.

그런데,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면 지 맘대로 가격을 정하고, 상품의 생산량이 지멋대로 정하게 되는거야. 이렇게 되니 국가가 기업의 눈치를 보게 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거지.

대기업은 이제 이렇게 외치겠지? 내 말 안들으면 다 <빵구똥구야~>... 내 말 들으면 친구, 아니면 적이거든... <내놔.. 내놔... 다 내꺼야...다 내꺼라구...> 하이킥에 나오는 악동 해리처럼 막무가내가 되 버린거지.

야 이 빵구똥구야... 어디서 내 물건에 손대... 다 내꺼야... 다 내꺼야...  해리 vs 신애.... ㅋㅋㅋ

<독점 자본주의>와 함께 나타난 또 하나의 현상은 <금융자본주의>야.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했으니, 물건을 더 많이 만들어 팔 <자금>이 필요하겠지? 당연히 은행, 증권회사 등은 대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이익금(이윤)을 나눠먹으려고 할꺼야. 그렇게 기업과 같이 커간 금융기관들은 기업의 주식을 사기 시작하고, 기업의 핵심 사업에 투자를 시작하지.

기업은 더 많은 물건을 만들고, 더 큰 사업을 벌이다가 해외까지 진출해서 물건을 팔아먹게 되. 은행은 끊임없이 돈을 빌려주고 기업의 주식을 틈나는대로 사게 되고.... 이렇게 사업이 커지다 보면 문제가 생겨... 갈수록 어마어마해지는 돈을 <은행>이 아니면 빌릴 곳이 없게 된 거야.

이제 기업은 큰 사업을 하나 할 때마다 은행이 돈을 얼마나 빌려줄까나... 하는 눈치를 보게 되고, 결국 은행이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등장하게 되지. 이렇게 금융자본(은행, 자사)이 산업자본(기업)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기의 독점자본주의를 <금융자본주의>라고 부르는거야.

자, 그럼 국내 시장도 독점했겠다, 든든한 은행줄도 있겠다.... 이제 국내 산업혁명을 마친 영국의 독점 기업들이 진출할 곳은? 바로, 인구가 많아서 옷을 사입을 사람도 많았고, 나름대로 아시아의 문명 지역이었던 <인도>였지. 물건을 팔아먹으려고 세운 회사가 바로 <동인도 회사>야.

결국, 제국주의를 경제적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돼.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유럽국가들이 독점 자본주의 체제를 갖추고, 후진 지역에 상품을 팔려는 거지. 근데, 아시아 애들이 유럽 물건을 잘 안사주니깐, 아싸리 식민지로 만들어서 강제 매입을 시키는 거야. 물건을 팔아먹은 뒤에, 다시 원료를 착취해서 또 물건을 만들고, 또 팔아먹고... 그러다 보니 기업이 더 커져서 다른 지역에 또 진출하고, 또 점령하고 또 팔아먹고....

경제적으로 제국주의를 정의하다 보면, 뭐든지 삼켜 버린다는 구약성경의 괴수 <리바이어던>이 생각나게 되지. 선두주자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전세계를 다 삼킬 기세였거든.

여왕 3종세트(엘리자베스 앤 + 빅토리아) : 자자... 이왕 땅따먹기 하는거 알짜베기 땅들을 우리 영국이 먼저 먹어야겠지? 어디가 좋을까?

15세기 드레이크 : 저기, 일단 돈이 좀 필요하니깐 제가 해적질좀 해올까요? 스페인 무적함대 몇대 박살내면 여행 자금좀 벌거 같은데.....

16세기 윌터롤리 : 그럼 저는 그 돈으로 황금 찾으러 신대륙 탐험좀 할께요. 뭐 <엘도라도>, <아틸란티스> 이런 데 좀 찾다보면 뭔가 금은보화가 좀 걸리지 않겠어요?

17세기 크롬웰 : 그럼 난, 요즘 세계무역에서 좀 힘좀 쓰는 네덜란드 배들 좀 몇대 격파하고, 항해조례를 만들어볼께... 이제 우리 영국의 시대가 다가오는 거 아니겠어?

18세기 멘델 : 일단, 쓰레기들좀 청소하구요. 제가 법칙 하나 만들었거든요. 우성이 열성을 지배한다물학적 칙은데유.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한다, 독점 기업이 노동자들을 지배한다.... 어디나 적용되는 만능입니다유...

19세기 스펜서 : 다원의 진화론 아시죠? 그것도 좀 적용해보려구요. 진화론의 약육강식...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사회 속의 진화론이다. 찌질이는 완소남에게 점령당할 수밖에 없다... 그럴 듯 하죠?

20세기 세실로즈 :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아프리카를 영국의 색으로 칠할 것을 인정하는 신일거야. 온 지구가 영국의 깃발로 나부끼는데, 얼마나 영광스러워? 다 영국꺼야~~~

자, 이런 이론까지 무장해서 영국은 여기 저기를 점령하고 다닌다. 그럼 어디를 점령하는 게 제일 효율적일까?

바로,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와 그 주변을 완전 정리하는 거야. 산업혁명 전까지는 세계 4대 문명 지역이 유럽에 뒤지지 않는 세계 거점지들이었지. 유럽은 그 쪽의 발달한 문명과 어마어마한 인구를 쪼옥쪼옥~ 다 빨아먹을 생각이었어.

먼저, 유럽에 문명을 전파해 준 이집트 문명... 여기를 점령해서 아프리카를 아래로 쭈욱~ 점령하려구 했어. 이것이 역사에서 유명한 영국의 종단 정책, 또는 3c 정책이지.

다음, 인더스 문명의 인도...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세웠다가 훗날 영국 직속령으로 만든 땅이지. 인도는 옷감 수요가 많아서 영국의 핵심 식민지였고, 여기를 바탕으로 동쪽으로 쭈욱 가서 미얀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을 모두 점령했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 여기는 굳이 영국 혼자 점령할 이유가 없었어. 아편전쟁으로 중국의 주도권을 영국이 가졌지만, 워낙 인구가 많잖아. 걍, 다른 서양 국가들이랑 중국을 나눠먹으면서, 중국의 왕조는 유지시켰지. 
  
  미국이 주장한 이론 중에 이런 게 있어... <공평한 점령의 원리>, 즉 <균등 분점의 원리>라는 건데... 이런거야. 너무 큰 빵을 혼자 먹으면 배탈나잖아? 그럴 땐 친구들을 불러서 파티를 하면서 나눠먹으면, 빵도 처리하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아지겠지? 중국이 그거야... 너무 크고, 인구가 많으니깐 똑같이 나눠먹자는 거지. 중국이 왕조를 유지하면서도 망하지는 않은 이유가 그거야. 중국은 여러 국가들이 나눠먹는 빵이였거든. 빵가게 사장이 있어야 약탈자들이 재미있게 즐기면서 빵을 약탈해먹을 수 있잖아. 그래서 중국은 참 다양한 나라가 여기 저기를 뜯어먹었지.

마지막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 여기는 대대로 유럽을 괴롭힌 강력한 <투르크> 족의 본산지야. 영국은 서아시아를 평정한 오스만 투르크의 광대한 제국을 끊임없이 괴롭게 하면서, 오스만의 모든 식민지를 독립시키는 정책을 사용했어. 훗날, 오스만과 이란 지역은 영국과 러시아가 나눠먹게 되거든.

3. 제국주의 정치적 배경 : 민족주의

제국주의가 19세기 전세계에 열병처럼 퍼진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민족주의> 때문이야. 말했었지? 근대화의 2가지 핵심 배경이 <자본주의 + 민족주의>라구 말야. 그럼 유럽인들이 말하는 민족주의가 뭘까?

사실 유럽 역사에서 <민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최근의 일이야. 그들이 말하는 <고대>라는 시대에는 <로마>라는 제국이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국가였잖아. 또 중세 시대에는 프랑크 왕국과 교황으로 대표된 봉건적 사회 질서가 있었구...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건 바로 <르네상스> 이후, 유럽인 스스로가 <근대인>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부터야.

그럼, 르네상스 시대에 <민족>이란 개념이 있었을까? 아니지... 당대에는 신분질서가 견고했고, 루이 14세니, 엘리자베스니 하는 강력한 절대 왕이 나타났어도, 그건 귀족과 성직자층을 대변하는 신분제 국가였지, 민족국가는 아니였거든. 뭐, 하나님이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이념이 있었지만, 그것도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불만을 희석시키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고 보면 되.

럼 <민족>이란 개념은 어디서 나타났을까? 그건, 바로 <시민혁명>이 발생하고 부터야. 우린 모두가 같은 국가안에서 살아가는 같은 <백성>인데, 왜 귀족, 성직자 니들만 잘먹고 잘사니?

그 대표적은 불만의 폭발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었지. 성직자, 귀족, 일반 시민이 공존하는 프랑스에서 1, 2계급인 성직자, 귀족만 우대받는 게 얼마나 짜증났겠어? 시민들이 다 때려부서고, <우리도 같은 인간이다>를 외쳤던 그 사건부터 <우리 모두가 같은 민족일 뿐이다>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거야.

그 개념을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면서 곳곳에 퍼뜨리기 시작했지. 프랑스에게 정복당한 민족들은 이런 생각을 했던거야.

합스부르크인 : 와... 저렇게 단합하니깐 나름 강하네... 저것들. 뭐? 귀족과 평민이 같은 세금을 내고,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돈만 있으면 되는거야? 오오.... 우리도 한번 혁명을 일으켜볼까?

프로이센인 : 아나.. 짱나... 나폴레옹 저게 뭔데 자유로운 우리 프로이센을 점령한 거야? 자, 우리 자유 프로이센 국가안의 모든 사람들이 단합해야겠다. 저 웬수같은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우리의 자유를 되찾자...

베네치아인 : 어? 동방무역으로 좀 사는 것 같은 우린데.... 프랑스 떨거지들한테 완전 밀리네. 왜지? 왜지? 그래... 우리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 국가들이 힘을 모으지 못해서 그래... 우리가 연합만 하면 저것들은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데... 우리 이제 통일해야 되지 않겠어?

바로 이런 분위기가 된 거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직접 전파했다기 보다는, 나폴레옹이 침략하자 유럽의 사람들이 프랑스인들의 <민족의 단합>을 보게 되었고, 나폴레옹과 독재 군주에게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외치기 시작한거다. 그것이 바로 유럽인들이 말하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본질이었지.

나폴레옹은 자신이 황제가 되어 유럽에 엄청난 제국을 세워서 가문의 영광을 누르고 싶어했을 거야...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지 아마? 근데, 나폴레옹은 몰랐을 거다. 불가능이란 말이 없는 사전은, 인쇄가 잘못된 불량 짝퉁 사전일 뿐이라는 것을.... 아니면, 나폴레옹의 어휘실력이 딸렸다거나... ㅋㅋ

근데, 나폴레옹의 유럽 제국은 왜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 없을까?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 제국주의가 뭔지 위에 설명했잖아? 제국주의란, <독점자본주의>체제를 갖춘 나라가 타국을 식민지로 삼는 거라구.... 나폴레옹의 어느 구석을 봐서 <자본주의>가 있니? 나폴레옹의 제국은 <민족주의>에는 일부 해당될 수 있지만, <자본주의>가 없기 때문에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가 없는 거다.

자 그럼, 나폴레옹의 유럽 지배를 벗어난, 유럽 애들의 상황을 한번 보자.

프로이센인들과 베네치아인들은 뭉쳐야 살아남는 다는 걸 뼈져리게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독일과 이탈리아는 오랜 분열을 끝내고 통일을 완성하게 된다. 뭐,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 이런거 교과서에서 본 적 있지?

결국, 나폴레옹은 유럽에 <민족>들이 뭉쳐야 살아남는 다는 걸 보여주고 만 것이다. 그리고, 통일한 국가들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지. 영국과 프랑스도 여기 저기 식민지를 늘리는데, 우리는 왜 못해?

그리하여, 독일, 이탈리아 등 후발 주자들이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면서 <민족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기 시작하는 거지. 나중에 히틀러가 이렇게 외치잖아? 우리 독일인은 게르만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게르만인이다. 우리는 바로 <아리아인>이다... 뭐 이렇게... 그리고 유태인 학살하고, 영국이랑 프랑스 애들 째려보잖아.

바로 그거다. 제국주의가 여러 나라 사이에 퍼져서 열병처럼 번진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민족의 영광과 자부심>을 알리겠다는 거였다. 특히, 이제 막 통일한 국가들은 국민들에게 <우리 민족만의 뭔가 한방>을 꼭 보여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 <한방>이 세다는 걸 보여주려고 두 국가가 같이 완전 오버했다가 나중에 세게 2차대전에서 나란히 박살나게 되지... 아시아의 오버국 일본과 함께... ㅋㅋ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1차대전은 바로 이 <제국주의> 때문이었지. 영국, 프랑스 같이 먼저 땅따먹기를 시작한 국가에게 독일, 이탈리아 등 나중에 땅따먹기에 참여한 국가들은 밀릴 수밖에 없었거든.

모로코 사건 아나? 영국, 프랑스가 아프리카를 먼저 땅따먹고 있었는데, 독일이 나중에 아프리카에 가서 <한입만~ 한입만~>을 외치면서 모로코라도 달라고 때쓰다가 영국, 프랑스 양쪽한테 맞을 뻔 했잖아...

사실, 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계속 영국, 프랑스에게 덤빌 수밖에 없었던 건, <민족주의>가 무너지면, 위대한 아리아인이라는 국가 이념이 쓰러진다는 절박감도 작용했던 거지.

4. 제국주의 사회적 배경 : 사회진화론

자, 이제 근대화의 2대 동력인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유럽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설명했다. 그럼, 다음장부터는 그 2대 동력이 아시아와 한국 근현대사에 어떻게 유입되었는지를 설명하면 되겠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를 더 알고 넘어가야되. 유럽애들이 자본주의니 민족주의니를 외치면서 아시아 각국을 점령하잖아? 근데,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무작정 쳐들어가서, 내가 니들 점령할거니까 조용히 점령당해 주세요... 우리가 니네 박살내고, 삥뜯으러 왔지만, 우리 나쁜 넘들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면 누가 좋아하겠어?

그래서 유럽인들, 특히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끝내고, 여기 저기를 점령한 영국은, 자신들의 정복사업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식민 국가에게도 도움이 되는 거라고 광고하기 시작해... 그 방법은 뭘까?

첫 번째는 종교를 이용하는 거야. 침략과 동시에 선교를 하는 거지. 니들같이 떨거지 후진국 못난이 원시인 같은 아시아인들에게 <하나님>이 누군지, <천국>이 뭔지를 가르쳐주는 은혜를 베풀고, 봉건적인 후진국에게 근대화된 서양 문물을 전파해 준다는 거지. 산업혁명 이후 개발된 선진적인 유럽문물을 접하게 되면, 당연히 유럽 사회를 동경하게 될 것이고, 식민지인들도 뭔가 배우는게 많다고 생각할 거 아냐.

두 번째는, 식민지배가  give and take 라는 걸 강조하는 거야. 영국이 아시아에 물건을 팔아먹으면, 영국도 너네한테 원료를 사줄 거고, 그럼 너네도 공장도 생기고, 산업혁명 노하우도 배우고, 서로 발전한다는 거지. 뭐 근데, 그렇게 생각한 아시아인들은 별루 없다고 보면 되지만...

세 번째는, 식민지배 자체가 당연하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사회진화론>이야. 이게 제일 중요하지. 뭐 설명보다는 그냥 영국인들이 했던 이 말들이 팍 와 닿을껄?

맬서스 : 산업혁명으로 먹을 게 좀 늘었지만, 그래도 너무 너무 식량이 모자랄 거 같은데... 식량은 산술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더 많이 많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잖아? 그럼 방법은 한가지야. 띨띨한 넘들이 좀 죽어줘야 돼. 빈민촌에 방역작업하는 건 정말 돈 낭비거든? 널리고 널린게 빈민 노동자인데, 저것들이 좀 죽어줘야 영국 사회가 발전할 거 아냐? 모자란 띨띨이들은 식민지에 널리고 널렸거든?

멘델 : 맞아. 우성의 법칙에 의하면, 열성인자는 도태되고, 우성인자가 살아남아야 되지. 원래 노동자가 가난한 건 노동자 수준의 유전자 밖에 안되기 때문이지. 어디서 감히 도시 중산층과 똑같이 선거권을 달라고 그래? 저것들... 완전 미친거 아냐?

스펜서 : 다윈의 진화론 읽어봤어? 거기 보면 이런 말도 있잖아. 약육강식, 적자생존. 그걸 세계사회에 적용하면 딱 답이 나온다구. 평생 노동자는 자본가의 밥일 수밖에 없어. 그게 세상의 진리야~ 또,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게 점령당할 수밖에 없어. 그렇다고, 영국이 나쁜 나라일까? 아니지... 사자가 배고프다고 사슴을 잡아먹는게 나쁜 걸까? 그건 그냥 세상의 이치을 뿐이야... 약한 나라는 이 진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이야... 영원히~

그래 ,바로 이거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리... 진화론을 강한 국가에게 적용시킨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 이것이 바로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국가들을 점령하고,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를 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문제는, 한국 근대사의 여러 사건에서 <사회진화론>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이 곳곳에서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갑신정변, 친일개화운동, 애국개몽운동 등등등 많은 운동들은 사실 <사회진화론>을 모델로 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려면, 사자같은 일본을 이길 원피스의 당당한 사슴 <쵸파>같이 되려면, 일본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것... 그것을 암묵적으로 깔고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일본이 나쁜 넘이라서 우리가 점령당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강했기 때문에 우리가 졌으니 일본보다 강해지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는 논리... 우리의 초기 독립 운동은 바로 이 <사회진화론>의 약육강식의 논리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인 것이다.

자 그럼, 재미없는 서양 이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마치고, 우리 근대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겨보자. 그럼 한국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쓩~~~~

http://historia.tistory.com/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한국 근현대사 낙서 노트 (1)

근대를 구분하는 기준점과 세계사

1. 시대구분은 누가하는 거야?

한국 근현대사 낙서장 첫 이야기이다. 근데 말이지,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용어부터 맘에 걸리네. <근현대사>라니... 그럼 근대, 현대라는 건 뭐고, 누가 기준을 정한거야? 먼저 근현대가 뭔지 모르고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간략하게 끄적거려보자.

뭐 역사책을 보면 흔히 고대, 중세, 근대, 현대... 뭐 이런 말들이 나온다. 근데 그건 누가 정한 거지?

사실 말이지. 시대구분이라는 것은 스스로 <근대인>이라고 생각했던 서양인들이 만들어 낸 <발명품>이야. <르네상스>라는 말은 다 알지? 미켈란젤로니, 라파엘로니, 레오 선생이니 하는 분들 나오는 서양 15-16세기 말야.

서양의 근대인들은, 15세기를 무지 자랑스러워 했어. 솔직히 중세 시대에 기사도가 어쩌구, 십자군 원정이 어쩌구, 교황이 어쩌구 말은 많이 했어도 그 시기는 <우물 안 개구리> 시대였거든. 아시아인들은 각각 무역권을 만들고, 문명간 교류도 활발히 하고 하던 시기에 유럽인들은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들끼리 죽자 살자 치고 받고 싸웠잖아.

그런데, 르네상스니, 종교개혁이니, 신항로 개척이니 하면서 밖으로 눈을 돌려보니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이거야.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믿었던 가치관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 거였지.

교황 : 야... 니들 라틴어 읽을 줄 모르잖아. 내가 성경책 읽어 줄테니 잘 들어. 하나님께서는 <면죄부>라는 티켓을 사는 사람에게 천국을 예약하셨단다. 자, 줄서... 티켓사세요.. 티켓... 교황한테 돈 바치면 천국가요... 교황믿음 만세천국 교황불신 바루지옥.....

로렌쪼 발라 : 놀구있네. 내가 조사해 봤더니, 교황이랑 황제랑 밀약맺고 둘이 해 쳐먹은 거 많던데, 이게 야~ 대체, 교황이 교지구 투기업자랑 뭐가달라? 교황이랑 랑크 제랑 따먹고, 치자금 주고 이런 거래 다메? 료 다 았다. 지금부터는 성경책 내가 직접 읽을란다. 니가 읽어주는 거 안 믿어.

루터 : 라틴어? 되었구... 지금부터는 모국어로 성경책 번역해줄테니 그거 읽으면 되겠다. 성경 직접 읽고 스스로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 힘으로 종교를 바꿔 보자구요. 일단, 교황을 좀 죽여놓아야 우리 귀족분들이 힘좀 쓰실거에요. 교황불신 귀족만세~~

갈릴레이 : 근데, 교황이 한 말을 반박해도 될까? 내가 망원경 만들어서 보니깐 지구가 돌던데.... 근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내가 안했는데... 어떤 넘이 책 팔아 먹으려고 그런 말을 써 놓았어?

콜롬버스 : 그래? 그럼 난 그 말 믿고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서 인도 가봐도 돼? 진짜 간다.. 진짜루.... 지구 반대로 갔다가 낭떠러지 만나서 죽는 거 아니지? 확실... 하지? 후덜덜...

뭐, 점차 이런 분위기가 되가는 거다. 세상이 바뀌고 세계가 넓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아시아 애들 노는데도 좀 놀아달라고 애원해보고, 무역도 같이 해보고 싶었겠지. 유럽애들도 점차 <스팩>이 되잖아~ 그래서 서양인들은 지금까지의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는 기준점을 만들어 본 거야.

과거 찬란했던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시대를 <고대>라고 기준점을 잡고, 로마 제국의 문화유산이 박살난 시대를 <중세>로, 그리고 르네상스를 겪은 자신들의 시대를 <근대>로 파악한거지. 이 시대 구분법이 여러 서양의 역사 학자들을 거치면서 <현대>라는 살까지 더해서 4단계 시대구분법이 나왔어.

그런데, 이 시대구분법은 문제가 있었지. 뭐 19세기 이후에 서구 애들이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이 시대구분법을 널리 애용하긴 했지만,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이게 너무나 안 맞는다는 거야.

영국의 스펜서 : 뭐야... 중국, 일본, 한국, 뭐 인도, 오스만 제국... 이것들은 나름대로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라면서 19세기까지 쭈욱~ 중세 봉건시대 수준이네. 그니깐 니들이 우리 서양한테 정복이나 당하지 ㅋㅋ

일본 : 되었네 이 사람아.. 아시아는 아시아 나름대로 발전과정이 있었고, 니네 발전이랑 조금 다른 면이 많거든? 우리도 <메이지 유신>으로 나름 발전했는데, 몰랐어? 니네 시대 구분이 좀 우리랑 안 맞는다. 우린 근대랑 현대 사이에 독특한 발전 과정이 있거든? 오.. 그걸 <근세>라고 부르면 되겠다...

그리하여 4단계 시대 구분법이 <근세>를 포함한 5단계 시대 구분법으로 정착된거야. 뭐, 암튼 중요한 것은 이 시대 구분이라는 것이 서구적인 것에서 출발했다는 점이지. 따라서 우리식으로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때려 맞추려고는 하는데 너무나 안 맞는다는 거야.

일단, 한국사 교과서부터 봐봐.... 뭐 고대 사회로의 발전, 근세로의 전환... 이런 거창한 제목들은 많이 나오는데, 왜 고대고, 왜 근세고... 이런 설명들은 살짝 생략되어 있거든. ㅋㅋ

그래도 나름대로 역사 학자 님들께서 고민해서 만들어놓은 시대구분이 많으니, 그걸 참조로 근현대사가 어디서 부터인지 파해쳐보자.

2. 한국 근대와 현대의 기준점

자, 그럼 한국사에서 근대사회가 언제부터인지 밝혀보자.

사실 한국사에서 근대는 서양인들이 구분하는 기준과는 완전 달라. 서양애들의 근대 기준은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잡히기 시작하는 시기야. 뭐, 칼뱅이라는 종교개혁가가 기독교인들은, <돈 잘 벌어도 천국가유~>라고 자본주의의 단서가 되는 말을 했다나 뭐래나... 또 로마제국의 울타리에서, 교황의 울타리에서 살던 유럽인들이 <근대민족국가>라는 개념을 잡고 절대왕정이라는 걸 만든 것도 바로 이 <르네상스> 이후야.

아시아의 <근대 기준>은 사실 유럽인들이 말하는 <자본주의>가 언제 생겼냐는 거야. 근데, 아시아는 대부분 유럽인들에 의해서 식민지가 되었거나, 강제로 개항했잖아.

따라서 아시아의 <근대화>란, 거의 대부분 유럽인들이 협박~해서 강제로 <자본주의>가 들어온 시기가 바로 근대란 거지.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강제적인 개방이었기 때문에 <국가>를 지켜야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생겨서 <민족의 생존>을 생각하게 된 시기를 근대로 볼 수 있어.

뭐, 유럽과 좀 다른 점이라면, 걔네들은, 다른 나라를 점령해서 민족의 영광을 널리 알리려는 거고, 아시아인들은 꼴보기 싫은 유럽민족들이 식민지를 넓히자, <니들 짱난다~>면서 저항했던 민족주의라는 거 정도지.

자, 그럼 한국사에서 말하는 근대의 기준이 감잡히지? 정치적으로는 <근대민족국가의 수립>,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국가의 수립>이 바로 근대화의 기준인 거지.

그럼, 민족국가, 자본주의 국가가 대체 언제야? 이걸 가지고 많은 학자분들께서 싸웠는데, 뭐 대충 정리하자면 이런거야.

18세기 주장파 : 일본이 안 쳐들어왔어도 우린 스스로 민족국가를 만들 수 있었거든? 특히 박지원, 박제가 등 실학파들 중에 <북학파> 있었잖아. 우리 민족이 강해지기 위해서 청나라의 발달된 문물을 배우자는 사람들. 특히, 조선후기에 영조, 정조 시기를 봐봐. 거의 서양의 루이 14세 안 부러울 도로 대군주잖아. 그 때 자본주의가 발달할 딱... 찬스였는데. 박지원의 양반전 보면 양반이 장사하는 방법도 나오구...

흥선대원군기 주장파 : 흥선대원군이 프랑스 격파, 미국 격파하고 침략전쟁을 다 막았잖아요... 일본, 청나라 간섭도 다 막아 버리고... 그것만큼 민족적인게 어디있어요? 그리고 대원군기에 국가 재정이 튼튼해지면서 서울 등 근기지방부터 자본주의가 발전하잖아요?

강화도 조약 주장파 : 그래도 확실한 것은 일본이랑 맺은 <강화도 조약>이거든? 그 조약으로 우리가 비로소 세계사에 눈뜨고, 자본주의가 먼지 경험하게 된 거잖아. 비록, 일본이 나쁜 의도를 가진 것은 맞지만, 조선이 개항하고 자본주의를 배운 건 1876년이야. 또, 일본 덕분에 외세에 저항하려는 <민족주의>가 비로소 시작되었고...

갑오개혁 주장파 : 강화도 조약은 그냥 문서일 뿐이구요. 실제로, 양반, 싱민, 노비같은 신분제도가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평등해진 건 1894년 갑오개혁 아닌가요? 모두가 평등해야 비로소 하나의 민족이죠. 솔직히 조선시대에 노비가 <우리는 같은 민족, 평등한 백성이다>라고 생각했겠냐구요. 신분제 폐지, 과거제 폐지, 정치, 사회 개혁이 선행되야 근대화든 뭐든 하죠. 그리고 갑오개혁 때 조세 개혁이 시작되면서 자본주의 발전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국가권력이 성립된 거 아닌가요?

음... 다 조금씩 맞는 말인거 같다. 하지만, 현재 교과서나 일반 서적에서는 <강화도 조약>을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 같다. 뭐... 강화도 조약을 챙기려면 서양과 일본 세력의 침략도 언급해야 하고, 그러려면 당대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도 언급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어짜피 19세기 중반으로 넘어가게 되지.

그럼 현대의 기준은 어디지?

그건, 만장일치야.... 일본이 핵무기 꽝~ 하고 맞아서 망하고, 아시아 전체가 이 날만 되면 모두 모두 기념하고 행사를 치루는 1945년 8월 15일.... 즉 광복절 날이지.

현대가 되려면 식민지 상태에서 <민족국가의 발달>이나, <독점적 자본주의>의 발달이 이루어질 수는 절대~ 없는 거잖아. 뭐... 친일파의 국가라면 모를까.... 혹... 요즘 친일을 애국으로 바꿔주시는 뉴라이트 분들이라면 새로운 시대 구분이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ㅋㅋ

자, 그럼 재미없는 시대 구분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고 본격적인 근현대사 낙서에 돌입해보자. 그럼 19세기 서양 열강의 침입과 독자적 발전을 이루려 했던 조선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http://historia.tistory.com/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