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보는 한국사 (2)

우리 고대 역사에서도 화폐가 존재했을까?

1. 고조선에서 화폐를 사용했을까?

이제, 우리 역사에서 사용한 화폐들을 한번 짚어볼께요.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돈>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문헌은, 한서지리지에 나오는 <고조선의 8개조 법>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과연 고조선 시대에 화폐를 사용했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교과서에서는, 고조선 시대의 화폐 주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화폐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부족하고, 화폐를 만드는 틀(거푸집)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화폐를 주조해서 사용했건, 중국의 화폐를 사용했던지 간에, 고조선의 <8조법>에는 <50만전>이라는 화폐단위가 나오기 때문에, 일단 고조선에서 화폐를 사용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또,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철전인 <자모전>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에 대한 해석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답니다. <자, 모>란, 글자체계에서 말하는 자음과 모음을 말할 수도 있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위계질서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조선에서 만든 우리 화폐와 우리 글자체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반면, <자모>라는 것이 일반적인 한자의 번역이라면, 명도전같은 중국 돈은 청동식 자모전, 철기시대의 돈은 철기식 자모전 등으로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돈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혹은, 자전, 모전과 같은 소액 화폐들과, 기타 돈들을 묶어서 자모전이라고 불렀다고 보기도 합니다. 뭐, 기록이 없으니 가설이 몇백개가 있어도 증명은 안되겠죠. 결국 결론없이 넘어갑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명도전>에 대한 해석 문제입니다. 명도전은 일반적으로 중국 돈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유물이 발견되는 지역은 고조선, 고구려의 영역이 많다는 점에서, 고조선의 화폐로 봐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제도전이나, 조도전 등은 제나라, 조나라 등 국가의 명칭을 사용했지만, 연나라는 연도전과 달리, 명도전이 또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 것이죠.

최근, 명도전의 가치를 다시 조명한다거나,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강역을 다시 생각해보는 연구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항하기 위해 최근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집권당인 한나라당에서, 역사왜곡에 대항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 동북아 역사재단에 대한 지원 비용을 20% 삭감하고, 동북공정에 대한 관심에서 빠이빠이~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뭐, 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기존 정치인들의 인식이 거의 비슷비슷하다는게 더 큰 문제죠.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한 비용을 4대강 사업에 투자하고, 한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지정하는 나라에 살고 있어서 우린, 아니 중국과 일본 사람들은 참 행복하답니다. ㅋ

반면, <도전>은 다른 화폐와 달리, 국가 권력이 직접 개입해서 권력을 상징하는 상징물(칼) 모양으로 만든 화폐이기 때문에, 중국 화폐가 확실하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아직 알수 없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넘어가기로 합시다. 그런데, 사진으로 보여줄 자료가 너무 없네요. 우리 스스로 만들어 사용한 화폐의 흔적이 없기 때문에, 앞에서 보여드린 자료에 몇 가지를 더해 보여 드립니다.

이 중국 화폐들은 고조선과 고구려에서도 충분히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화폐들입니다. 고조선은, 위만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남방의 진국과 중국 한나라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무역을 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의 화폐를 사용했겠죠.

다음은, 당시 중국의 진나라, 한나라에서 사용했던 화폐를 만드는 틀입니다. 이런 틀이 팍팍 나와준다면, 고조선에서도 화폐를 주조했다는 증거가 되겠죠? 실제, 내몽골 자치구 지방에서 이런 화폐 주조 틀들이 나오긴 하지만, 고조선에서 화폐를 주조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지는 않는답니다. 아마, 고조선도 화폐 주조를 했겠지만, 유물은 발굴되지 않았다... 정도의 가설 수준이죠.

2. 삼국시대, 남북국시대에도 화폐를 사용했을까?

삼국시대에, 국가가 공식으로 주조한 뒤 유통시킨 화폐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단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기록으로 미루어 곡물이나 직물이 <유사한 화폐기능>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또, <변한> 지역에서 철이 많이 생산된다는 역사 기록이나, 금, 은, 옥과 같은 것들을 보물로 여겼다는 것으로 미루어, 이러한 광물들이 화폐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삼한 시대에, 무덤 밑에서 일정한 규격을 갖춘 철조각(철정 : 鐵鋌)이 발견되는데, 철이 많은 지역에서는 철을 가지고, 무기, 농기구, 화폐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중국의 동북공정과 역사왜곡에 대응하는 연구를 하던 중, 발해의 화폐가 발굴되었고, 진품인지 규명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화폐가 진품이라는 증거를 밝히는 작업이 쉽지 않을 뿐더러, 진품이 아니라는 증거를 밝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랍니다. 발해에 대한 역사서는 물론, 유물이나 유적조차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지요.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은 발해이기에, 왕계표를 만드는 작업조차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이제, 백날 이야기 해도,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 고대 화폐 이야기는 이 쯤에서 접고, 다음 장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실제 사용된 화폐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화폐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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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보는 한국사 (1)

인류가 화폐을 사용하기 시작하다.

1. 인류가 돈을 사용하기 시작하다.

오늘 이야기 하려는 부분은, <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개화기 이후 일제시대부터 광복이후 현대사회까지의 돈들을 보면서 <돈>으로 역사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자, 그럼 돈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요?

일반적으로 <화폐>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곳은, 세계 4대 문명 지역이었습니다. 즉, 최소한 청동기 시대이후, 돈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화폐라는 것이 등장하려면, 일단 화폐를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마을은 존재해야 하고, 그 마을들간에 장사가 이루어져야 하겠죠? 또, 장사를 할 때,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은, 마을 전체를 세력권으로 삼아서, 강제적으로 화폐를 써라... 라고 말할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해야 합니다.

따라서, 화폐라는 것을 사용한 지역을 보면, 역사상 최초의 문명지역이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국가들, 황하문명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 이집트 지역과 소아시아 국가들, 그리스와 로마 문명 지역에 고루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답니다.

그럼, 돈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당시에 살아보지 않아서 확실한 이유는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인류는 국가가 생기기 이전부터, 서로에게 필요한 물품을 물물교환 하였을 것입니다. 콩과 물고기를 바꾸기도 했을 것이고, 동물 가죽과 기름을 바꾸기도 했겠죠.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서로 부족했기 때문에, 거래를 통해 서로 원하는 물품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4대 문명에서, 문명, 도시, 국가라는 것이 출현하면서, 이러한 물물교환 체제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보통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물품을 교환하였겠지만, 일부 지배자 계급은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재산을 축적할 목적으로 물건을 모을 때, 물물 교환은 한계에 부딪히게 된답니다. 부피가 크거나, 빨리 썩어 버리는 물건은 물물교환으로 적합하지 않고, 보관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개껍질과 같은 유사화폐를 사용하기도 하고, 금이나 보석과 같은 광물을 교환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했죠.

특히, 조개껍질은 단단하면서도 모양이 아름답기 때문에, 기원전 3천년전부터 화폐로 이용되었습니다. 한자에서 돈을 뜻하는 단어에는 대부분 조개 패(貝)자가 부수로 들어가 있는 있답니다. 그런데, 이 조개화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부터, 중앙아시아, 중국, 한반도까지 널리 발견됩니다. 고대에 일반적으로 쓰인 화폐였다는 증거죠. 특히, 기원전 7세기경 낙타 대상인들은 조개 껍데기를 실이나 가죽으로 100개씩 묶어서 물품 교환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화폐로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일정 단위의 화폐로 이용한 것이죠.

하지만 이런 유사 화폐들도 큰 단점이 있었답니다. 먼저 철이나 보석은 멀리 이동할 때 너무 무거웠답니다. 만약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돈을 모은다고 생각해보세요. 몬스터를 1000마리 때려잡고 아이템을 얻었는데, 그 아이템을 다 들고 다닌다면? 게임에서야 인벤토리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답니다.

또, 돌, 뼈, 조개껍질과 같은 유사 화폐는 오래 이동할수록 파손될 확률이 높습니다. 아름다운 모양을 가치로 하는 화폐일수록 기간이 오래될수록 화폐로서의 가치는 점점 사라지겠죠?

그래서 옛 사람들도 모양이 변하지 않고도 아름다우며, 이동할 때 보관이 용이한 형태와 모양의 화폐를 생각하기 시작했답니다. 그것을 세계 최초로 실현한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터키지방(리디아인) 사람들이에요.

위 화폐가 바로 최초의 화폐인 일렉트럼 코인입니다. 이 화폐를 만든 왕국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고대 왕국이었던 리디아랍니다. 이 동전은 천연의 금과 은을 합급해서 만든 것인데, 금 75%에 은 25%를 섞은 합급을 <일렉트럼>이라고 불렀답니다. 이 화폐는 달걀모양의 타원형으로, 실제 크기는 강낭콩만하답니다. 화폐에는 정복전쟁을 상징하는 사자가 새겨져 있고, 금속의 무게와 비율이 적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인장이 찍혀있습니다.

이 화폐를 본 고대 그리스인들이, 주조 방법과 용도에 감탄해서 화폐를 만들기 시작했고, 훗날 로마까지 화폐 주조법이 유행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동전(코인 : coin)은 리디아 화폐를 본따 만들었지만, 둥근 모양과 다양한 상징물을 넣어서 서양 동전의 원형이 되었답니다. 이들은 리디아인의 일렉트럼 기법을 사용하여 금과 은을 합성해서 동전을 만들었는데, 이 합금을 <호박금>이라고 불렀습니다. 보통,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과 함께 신성을 상징하는 조류(새), 지배자의 얼굴을 넣었습니다. 이후, 헬레니즘 시대가 되면서 알렉산더 대왕 사후, 각국의 지배자들이 스스로를 찬양하는 동전을 많이 만들었답니다.


이 헬레니즘의 화폐들이 로마로 이어지면서, 로마 제정시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자신의 얼굴을 화폐에 집어넣으면서 로마 화폐가 황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유통됩니다. 물론, 황제가 바뀔 때마다 황제 스스로가 자신의 얼굴을 화폐에 집어 넣으면서 화폐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게 되었죠.

그런데, 로마 제정이 점차 문란해지고, 게르만 용병들이 늘어나는 시기가 되면 화폐 역시 문란해진답니다. 화폐가 민망해지는 정도로 로마 사회가 점점 타락해가는 것을 수준을 알 수 있답니다.

자, 위 화폐는 로마의 공식 화폐는 아니지만, 일부지역에서 공공연하게 유통되었답니다. 로마가 몰락할 무렵, 군인황제들이 서로 죽이고, 죽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 이 화폐들이 유통되었죠. 

  우리나라에서도, 전두환과 같은 군인이 정권을 잡았을 때, 3s 정책을 했었죠? 군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sport, screen, sex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책 말이죠. 로마 사회에서도, 군인 황제 시기에 극도로 사회가 문란해지면서 이런 화폐가 등장할 수 있었답니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했던 황제가 바로 <디오클레티니아 누스> 였죠. 이 황제는, 국가의 공식 화폐가 아닌, 식민지(속주)의 문란한 화폐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가고 있었죠.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이런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경건하면서도 문란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을 체제에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사회 정화 사업을 하였답니다. 그 결과, 이런 불량 화폐들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죠.

이야기를 하다보니, 서양 화폐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었군요. 그럼 다음 장에서는, 우리 역사에 등장한 동전과 지폐들을 이야기하면서, 화폐로 알 수 있는 역사 이야기들을 전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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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문 자 료 실

조일수호조규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까지의 조약 이야기 (3)

1.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자, 지금까지 조일수호규칙과 부록 등 일본과 맺은 조약을 확인하고, 조미통상조약의 핵심내용을 보았죠? 이제서야, 원래 다루려고 했던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하, 조청장정)을 이야기하겠네요.

그럼, 먼저 이 길고 긴 이름부터 한번 살펴볼까요?

조청장정에는 청나라가 장정을 맺기 위해 의도한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름만 보아도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답니다.

한마디로, <조선과 청나라간에 장사꾼들이 개인적으로 장사하는 데 있어서, 육지든, 바다든, 모든 곳에서 무역을 할 때 적용되는 것들을 정리해서 조선에 통보한 규정> 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죠? 장정(章程)이란, 글로 적어서(章) 올리면 그냥 법도가 되는 것(程)을 말합니다.

그럼, 내용을 보면서 정리해 볼까요?

먼저, 전문을 보면 위와 같은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본문보다 앞서 다급히 적은 <전문>이네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조선은 대대로 우리 중국이 주도권을 가진 국가니깐, 그것부터 좀 인정해줄래?>입니다. 따라서, 중국과 남다른 관계인 조선이기에, 제국주의 국가와 맺은 최혜국 대우 따위의 특권은, <조선과 청국 사이>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거죠. 최혜국 대우는 국가와 국가간 대등한 관계인 <조약>에서 발휘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조약이 아니라, 청이 은혜를 베풀어 마련한 <장정>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조약의 하나 하나를 파헤칠 것인데, 조약 전체를 보고 싶으시다면, 제 블로그에 있는 아래 포스트를 참조해주세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의 전체 내용 보기 : http://historia.tistory.com/2223

자, 그럼 가장 핵심 내용인 4조를 제외하고, 나머지 1-8조의 핵심 내용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자, 먼저 1,2,3,5조의 내용입니다. 1조를 보면, 딱 조약의 성격이 나오죠? 황제와 국왕이 대상이 된 국가간의 <조약>이 아니네요. 어디, 일개 대신이 와서 국왕이랑 맞먹는다니요. 대신과 국왕이 대등하다는 것을 바꿔말하면, 청국의 황제와 조선의 국왕은 상하관계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2조와 3조, 5조는, 장사를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조선에서 미국도 장사하고, 일본도 장사하는데, 경제면에서 조선과 우방 + 속방 + 보호국을 자청하는 청나라 역시 그보다 더한 <불평등 조약>이 있어야 조선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겠죠?

즉, 청나라 상인들이 조선에서 자유롭게 무역하겠다. 육지까지는 아니지만, 바닷가에서는 자유롭게 물고기를 잡고, 사고 팔겠는 것입니다. 또, 중국과는 고려시대부터 국경 무역을 해왔으니, 그 무역을 더 활성화 시키고, 합리적인 세금안도 마련하겠다. 뭐 이런 것들이죠. 나머지 6, 8조는 뭐 세금은 몇 %를 붙이겠다니, 홍삼을 팔겠다느니 하는 것들입니다.

7조는 좀 눈에 띄는데, 청나라 병선, 즉 전쟁을 할 수 있는 배가 조선 연해에 왕래할 수 있다라는 조항입니다. 이건, 일본 때문에 들어간 내용이죠.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이 장사꾼들을 조선에 보내면서, 장사가 원할하지 않을 경우, 개항장에 군함을 떡~ 들이대면서 협박아닌 협박을 하고 있으니, 청나라 역시 일본에 맞춰 무력 시위가 필요했을 거에요.

자, 그럼 조청장정의 <핵심포인트>.... 제 4조를 한번 볼까요?

자, 4조의 내용은 먼저 <개잔무역>이란 말을 한번 볼께요.

원래, 일본이나 미국과 맺은 통상 조약에서는 항상 <개항장>이 문제거리였습니다. 개항장, 즉 항구를 얼마나 많이 열고, 항구에서 장사할 수 있는 거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조약을 맺을 때, 서로 신경쓰는 부분이었죠.

지난 장에서 조일수호조규의 부록 내용 중 <간행이정 10리>라는 내용 기억하시나요?

간행이정은 개항장에서 몇 리까지 일본인들이 활동할 수 있느냐에 대한 규정이었습니다. 일본은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 인천, 원산(3개 항구)를 열었는데, 항구를 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항구에서 얼마까지의 거리까지 침투해서 장사를 할 수 있냐였죠.

조선 정부와 줄다리기 협상끝에 간행이정이 10리로 일단 확정된 것이랍니다. 그럼 이게 뭐 그리 중요하냐구요?

간행이정은 조선 상인들의 밥줄과 관련있답니다. 만약 항구에서 100리까지 일본인들의 장사범위를 넓혀준다고 생각해보세요. 농촌의 물건을 사서 도시에 팔거나, 도시의 물건을 사서 항구에 파는 조선의 상인들은 10리, 20리라는 범위 하나로 죽고 산답니다.

예로, 조선시대에 항구나 포구에서 중계무역 같은 것을 하던 객주, 여각 같은 전통 상인들 있죠? 일본인들이 직접 내륙에 무역을 한다면 이들 중계상인은 모두 몰락합니다. 또, 조선 내륙에서 물건을 가져와 수출상인에게 팔던 보따리 장수(보상), 등짐장수(부상)들도 망하겠죠. 보상과 부상을 합쳐 부보상, 또는 보부상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망하면 조선 유통업은 완전 몰락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튼, 조청장정 4조의 그림을 다시 보세요. 개항장이 아니라, 북경(청국 수도) - 양화진(서울 마포, 즉 조선의 수도)에서 청국인이 점포를 개설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있죠? 즉, 청나라의 장정은 개항장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서울로 치고 들어온다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것을 막기 위한 내용이 바로 <내지채판>입니다. 내지채판이란, 양국의 상민들이 절대, 지정된 거리보다 더 내륙으로 들어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청나라 상인들은 양화진, 즉 지금의 마포 근처의 나루터에서만 장사를 하고 점포를 열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조선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안전 장치였답니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여행이 꼭 필요한 경우, 육지에서 장사를 꼭 해야만 하는 특별한 경우에 <호조>라는 것을 발급해 줍니다. 호조는 <여행증명서> 같은 것이죠. 요즘으로 따지면, 다른 나라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단기간 여권>이라고 할까요?

이 호조를 가진 상인은, 개항장을 벗어나 내륙에서 장사를 하고, 바닷가에서 연안무역을 할 수 있게 된답니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호조를 확보하는 것으로서 조선 내륙 무역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1년뒤, 영국과의 조약에서 간행이정이니, 내지채판이니 하는 것들이 전부 다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답니다. 이유는 조영통상조약의 내용 때문이었어요.

자, 이제 간행이정이 확대되면서 조선 상인들이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조청장정으로 청국은 서울(양화진)에 점포를 세우고, 조일부록으로 일본은 강행이정이 10리로 한정되었죠? 그런데, 영국과 맺은 1883년의 조약에서 양화진도 개방하고, 간행이정도 100리로 확대되면서 난리가 난거죠. 영국과 맺은 조약은 청국과 맺은 <장정>이 아니라 공식 조약이었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최혜국 대우라는 조항이 모든 다른 조약에서 똑같이 발동된답니다. 최혜국 조항에 의해 다른 모든 국가와의 조약에 영국과 맺은 조약의 내용이 추가되면서, 조선의 상인들은 몰락하게 된 것이지요.

자, 그럼 여기까지 마무리하면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까지의 조약 내용을 훝어보았습니다. 그런데, 1883년의 2차 통상장정이나, 이후에 일본과 맺은 조약들은 빠져있죠? 모든 부분을 다루기엔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답니다.

제가 10월 이후에 적을 고려사 노트를 끝내면, 조선사 노트, 근현대사 노트를 언젠가(?) 적을 텐데, 그 때에 모든 조약을 자세하게 다뤄 볼께요. 혹시, 특별히 꼭~ 알고 싶은 조약이 있으시면, 방명록이나 질문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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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문 자 료 실

조일수호조규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까지의 조약 이야기 (2)

1.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으로 가는 과정....

지난 장에서,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의 부록과 규칙의 내용을 통해 일본이 조선을 경제적으로 침탈하려는 의도를 알아보았습니다. 지난 장에서 다룬 내용들을 더 세심하게 보고 싶으시다면, 제 블로그에 있는 다음 내용들을 참조해 주세요.

지난 장의 내용 다시 보기 : http://historia.tistory.com/3476

조일수호조규 및 <규칙>, <부록> 원문 보기 : http://historia.tistory.com/2223

조일수호조규의 규칙을 통해, 무관세 조항과 곡물(1차 상품) 및 면직품(가공제품)의 부등가 교환이라는 부분을 설명했습니다. 부등가 교환이란, 공정한 가격에 거래되지 않는 물품의 교환을 뜻해요.

우리 나라도, 지금 시골에서 열심히 쌀 농사를 지어도, 같은 부지의 땅에서 공장을 짓고 컴퓨터를 만들어 파는 사장님보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죠? 상대적으로 1차 상품은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에 비해 제 값을 받지 못한답니다. 같은 가치를 같지 못하는 품목을 서로 교환하는데, 관세(세금)이 공정하게 붙지 못한다면, 당연히 곡물 농사를 짓는 조선의 농민, 상인들이 몰락할 수밖에 업답니다.

따라서, 조일수호규칙의 핵심 내용은, 곡물 교환 부분과 관세 부분이었어요.

조일수호조규의 부록에서는 일본 화폐의 한반도 통용이라는 핵심 내용을 다루었죠? 한반도 경제를 장악하기 위해 일본 화폐의 침투를 용이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랍니다.

암튼... 지난 장의 내용 정리는 이쯤에서 끝내고...

자, 이렇게 되자 급한건 <청나라>였습니다. 중국은 대대로, 조선의 제 1 무역국이었고, 조선과 조공 무역 및 민간 무역을 해왔던 나라였죠. 그런데,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의 부산, 인천, 원산 등 핵심 항구들이 개항되어 버리고, 일본과의 무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에서 일본 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 시장이 작아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청나라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바로 조선과 <미국>이 장사할 수 있도록 주선함으로서, 성장하는 일본 세력의 기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죠. 바로 그것이 1882년, 조미통상조약입니다. <통상(通商)>이란, 말 그대로 <장사를 통하게 하다>라는 뜻이죠? 이 조약 역시 핵심은 <경제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간단히 내용을 볼까요?

조미통상조약은, 조일수호규칙의 단점을 보완하는 내용들이 첨가되어 있답니다. 조일수호규칙에서 관세권 개념이 없던 조선이 관세도 못 받아먹고, 곡물도 제 값을 못받고 팔게 되었죠? 한번 당하고 나서야, <아~ 이렇게 조약을 한번 맺으면 평생 당하고 살겠구나~> 하고 깨달은 거랍니다.

그래서 미국과의 조약은 이 두 가지를 확실히 해결하면서 맺었습니다. 최소한의 관세권도 인정받았고, 조선의 곡물 수출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어두었답니다. 조선 정부는, <우리가 이제 좀 조약 맺는 스킬이 늘었어!!!>라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천만의 말씀.... 미국에게 더 큰 거 하나를 당하고 맙니다. 일본과의 조약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최혜국 대우>라는 항목을 포함한 채, 떡~ 하니 도장을 찍어 버렸답니다.

최혜국 대우란, 다른 나라가 조선과 조약을 맺었을 때, 어떤 <특권>을 가질 경우, 그 혜택을 나눠가지겠다는 뜻입니다. 이 조항이 문서에 들어갈 경우, 조선이 다른 나라에게 특권을 주면 그 특권이 고스란히 미국에게도 적용됩니다. 이 조항 하나로, 조선 정부는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을 때마다 곤란에 빠지게 되죠.

문제는 <청나라>였답니다. 청나라가 미국과 조선의 통상조약을 주선한 것은 일본을 견재하기 위해서였거든요. 그런데, <미국>과의 조약에 최혜국 대우가 떡~ 하니 들어가 버리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똥개 한 마리 견제하려다가 호랑이를 부른 셈이지요.

그래서, 청나라는 임오군란이라는 조선의 혼란한 상황을 이용해서, <조미통상조약>과 같은 해에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그 <장정>에 나오는 내용은, 다른 나라가 절대 가질 수 없는 <청나라의 특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미국의 <최혜국 대우>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뉘앙스의 선언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사실이 하나 있네요. 이름이 뭐 이리 길죠? 조청 + 상민 + 수륙 + 무역 + 장정.... 조약 하나가 5가지 내용을 포함하고 있네요. 다른 건 다 넘어간다고 쳐도, <장정>이란 말은 보고 가세요. 일본과는 강화도 <조약>이죠? 미국과도 조미통상<조약>입니다. 근데, 청나라는 <조약>이 아니라 <장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답니다.

자, 그럼 <장정>이란 말에서, 청나라의 의도를 알 수 있겠죠? 청나라는 <조선은 청나라의 소유물이다> 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미국에 과시하기 위해 <조약>이 아니라 <장정>이란 말을 쓴 것입니다.

그럼, 청나라의 이 행태를 본 일본은? 당연히 일본도 조선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장정>이란 말을 써야겠죠? 그래서, 전에 맺은 조일수호조규에 붙은 규칙을 통상장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청나라와 맺은 1882년의 장정이 나온 1년 뒤, 새로운 조약을 <개정 통상장정>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조규라고 해놓고, 규칙과 부록을 넣었다가 장정이라고 했다가... 이 것들이 역사 공부하기 귀찮게 지들 멋대로 불러대네요. ㅋ

제가 오늘 집안행사가 있는 관계로 여기까지... 다음 장에서 마무리 할께요. 다음 장은 조청무역장정의 내용과 그 이후의 조선의 경제 부분... 그리고, 질문하신 내지채판에 대한 부분입니다. 깊은 밤, 좋은 꿈 꾸세요.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질 문 자 료 실

조일수호조규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까지의 조약 이야기 (1)

1. 개잔이란 무엇일까?

이 포스트는 rladudghl@hotmail.com 님이 질문게시판에 남긴 개잔무역과 내지채판에 대해 답변해드리기 위한 글입니다. 아울러, 강화도 조약부터 조청장정까지의 전 과정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번 정리해 보는 글입니다.

 

우선, 쉬운 단어풀이부터 해드릴께요. 

물어보신 단어는, 개잔(開棧) 무역과 내지채판(內地采辦)입니다. 용어풀이부터 해드리고, 역사적 배경과 사료 해석을 해드릴께요.

먼저 개잔에서 잔(棧) 이란 단어는, <놀던 장소>를 말합니다.

혹시 객잔(客棧)이란 단어 들어보셨죠? 뭐, 용문객잔이니 하는 영화에서도 나오죠. 객잔이란 중국 사람들이 쓰는 용어인데, 놀면서 장사도 하고 쉬어가던 여관을 말합니다.

즉, 잔(棧)이란 단어는 이런거에요. 중국 사람들이 바닥에다가 진을 치고, <골라 골라~>하면서 물건도 팔고, 주막앞에서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웃는, 쉼터를 상상해보시면 되요. 뭐, 고대 그리스에는 아고라 같은 광장이 있었죠? 토론도 하고 장사도 하고... 아고라에서 상업적 기능이 강화된 먹고 놀자 골목을 생각해보세요.

중국 무협지 같은 데서 많이 나오는 장면이죠? 또, 사다리를 타고 다락방에 올라가서 마작을 하는 중국인들을 상상해보세요. 그런 식으로 신나게 놀려고 판을 벌리는 것을 잔(棧) 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홍콩 영화에서 마작하는 다락방을 마잔이라고 한답니다.)

개잔(開棧)은 이렇게 설명하면 되겠네요. 객잔들이 모여있는 장소이면서 상인들이 쉬어가는 공간을 말합니다. 객잔, 즉 여관들의 입구를 개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열었다는 뜻에서 잔(장사판)을 개(열다, 개시하다)하다라고 해석하시면 더 쉽게 이해되실 거에요.

사전적 의미로 개잔을 구조화시켜 볼께요.(중국 용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세요)

결국 개잔이란 중국식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면, <시장과 저자 거리>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네요.

자, 그럼 본격적으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보면서 장정에 나오는, 개잔과 내지채판이라는 용어를 이해해 봅시다.

2. 장정은 왜 맺었을까?

청나라가 조선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하 조청장정)을 맺은 이유는, 사실 <강화도 조약> 때문이랍니다. 강화도 조약은 내용이 아주 길기 때문에 제 블로그에 있는 다음 자료를 참조해 주세요.

사이트 내 강화도 조약 검색 : http://historia.tistory.com/198

1876년 일본은, 조선과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을 맺은 후, 조선의 상권을 빠르게 먹어치우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조이수호조규을 맺고, 곧바로 같은 해 8월, 조약에 <부록>을 두 개나 떠억~ 포함시켰답니다. 조일수호조규의 부록과 규칙(통상장정)이 바로 강화도 조약의 별책부록이였죠.

그럼, 이 때 일본이 우리 경제를 삼키기 위해 마련한 별책 부록들의 핵심 내용들을 볼까요?

조일수호규칙은, 조선의 경제를 장악하기 위한 기본적인 약탈체제를 마련하기 위한 추가 조약으로, 흔히 1차 통상장정이라고 불리는 규칙(법조항)입니다.

첫 번째 핵심 내용은, <쌀>이에요.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과 같은 산업혁명 체제를 만들고 싶어했죠. 그런데, 산업혁명을 하려면 공장도 지어야 하고, 쫒겨난 소작농들 도시 노동자로 바꾸고.... 에휴, 할 일이 많네요.

그 중에서도 문제가 되는 건, 농촌 체제가 도시 체제로 바뀌면서 생기는 <식량 부족>이랍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별책부록>에 포함시킨 것이 바로 <쌀>을 매매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그 대신 일본은, 산업혁명으로 한참 수출되던 영국산 모직물을 중개 무역을 통해 조선에 내다 팔기 시작했답니다.

그럼,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수출품을 관세(세금)을 포함하지 않고 파는 거였죠. 그래서 규칙에 포함시킨 또 하나의 핵심 내용은 <무관세 규정>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별책부록은 이름 그대로 <부록>였습니다. 일명, <조일수호조규 부록>이었죠.

이 별책부록의 핵심내용은, 바로 7조에 있답니다. 일본 화폐의 한반도 통용권 부여! 한마디로, 장사할 때 일본 돈을 쓰겠다는 겁니다. 어느 나라나 무역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화폐 단위죠.

요즘도 보세요. 외국가서 돈 벌어도, 환율이 떨어졌느니, 어떤 단위의 돈으로 장사하느니.. 규제가 많잖아요. 간단하게, 걍 일본 돈 쓰겠다는 겁니다. 일본 상인들이 조선에 효과적으로 침투할 수 있는 장치를 여기서 마련한거죠.

자, 한번 봅시다. 일본 화폐가 조선에서 유통되면, 일본 은행이 조선 지점을 쉽게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일본 은행과 일본인의 상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줍니다. 그 결과, 조선의 종주국이라고 자청했던 청나라 상인들은, 일본인들에게 밀리기 시작하는 거죠.

또, 일본 은행들이 조선화폐와 일본 화폐의 시세를 조작해서, 일본 상인들의 수출과 수입을 유리하게 만들어 준답니다. 그러면, 조선 상인들 중에 몰락하는 상인들이 생기겠죠? 그 때, 일본 은행은 조선 상인에게 고리대금을 지원한다고 돈을 빌려주면서, 환율을 이용해 많은 이익을 챙기는 겁니다.

그럼 조선 정부는 <나쁜 넘의 자식들... 쪽바리들에게 속았다~!> 라고 생각하면서, 조약을 개정하려고 했겠죠? 그래서 조선 정부는 개정안을 제시한답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얻어낸 핵심은 바로, <이정 10리> 랍니다. 위에 조일수호조규부록의 4조를 보세요. <일본인의 간행이정은 10리로 한다>는 내용이 있죠? 바로 이것입니다.

일본인이 조선 내륙에 진출하여 장사할 경우, 조선의 상인들은 일본 자본에 의해 파탄나고, 조선의 경제는 외국에 종속될 것이 뻔했습니다. 조선은, 다른 것은 다 양보하더라도, 일본 상인이 개항장에서 10리 이상 벗어나 자유롭게 장사하는 것만큼은 막았답니다. 뭐, 정부 고관이 내륙을 여행하는 거야 <니 맘대로 경치 감상하세요~~> 하면 되지만, 상인만큼은 안된다는 거죠.

자, 이렇게 강화도 조약과 2개의 별책 부록으로, 일본의 경제 침투가 시작되자 긴장한 나라가 있었겠죠? 대대로, <조선의 종주국이다>라고 자부하던 세상의 중심, 자칭 중화민족인 청나라였습니다.

그럼 청나라는 어떤 방법으로 일본의 경제 침투를 막으려고 했을까요? 내일은, 청나라의 <종주권> 지키기 프로젝트를 한번 보면서, 내지채판이라는 용어를 한번 알아봅시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