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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반대운동

(한국근현대사 5) 1860년대 이후 계속된 위정척사 운동의 흐름 1860년대 이후 위정척사는 계속되었다. 1. 위정척사란? 흥선대원군이 18363년부터 집권하여 안동김씨의 노론 세도 가문을 축출한지 10년... 1873년 민씨가 정권을 잡으면서 대원군이 실각하고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개화정책을 실시합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설명했듯이 개화정책은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조선책략이 유입되면서 구체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화 사상을 우리 전통 유교주의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당연히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반대한 이유는 아무런 근거없이 서양을 싫어해서도, 조선 왕조를 지탱하는 신분질서의 하나인 성리학을 수호하기 위해서만도 아니였습니다. 물론 통상요구가 조선의 신분제와 사회질서의 근간을 흔들기는 하지만, 조선의 유학자들은 그것을 .. 더보기
1880년 : 조선책략과 조선의 개화정책 1880년 : 조선책략과 조선의 개화정책이번 장에서 다룰 내용은 흥선대원군이 물러난 후 조선이 본격적으로 개화정책을 실시하게 된 계기와 그 내용입니다. 개화정책은 민씨정권(명성황후)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죠. 그럼 조선의 개화정책에 대해서 간단히 다뤄볼까요? 1. 수신사를 파견하기 시작하다. 수신사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을 말합니다. 강화도조약 저번에 다루었죠? 강화도 조약 2조에 보면 는 항목이 있었고, 11관에 보면 6개월 이내 양국이 다시 통상장정, 조일수호조약 조규부록을 체결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이러한 조약들에 의거하여 조선도 일본에 협상 사절단을 파견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일본의 개화수준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