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10화. 천태종과 화엄종의 라이벌 1라운드

1. <교> 사상에 치우친 삼론종 이야기

위진남북조의 길고 긴 혼란기가 끝났다. 남북조를 통일한 수나라는 모든 국가 체제를 <통일>하려고 하였다. 이민족과 한족을 하나로 통일하였고, 도량형과 문자도 통일하려고 했다. 대운하를 건설하여 강남의 경제권을 북방으로 끌어오려고 하였다. 사상 역시 통일되고 있었고, 불교의 수많은 학파들도 하나의 진리로 통일되고 있었다. 수나라의 통일된 불교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천태종>이었다.

천태종은 불교 각각의 종파 특징을 하나로 아울려 통일하려고 하였다.  <교>와 <관>을 통일한다는 것이다. <교>란 가르침, 즉 지식을 말한다. <관>이란 깨달음과 실천을 말한다. <지식>을 강조하는 종파와 <깨달음>을 강조하는 종파는 같은 불교라 해도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천태종은 <교관일치>를 주장하여 각 종파를 하나로 끌어안으려 했다.

먼저, <교>를 강조하는 종파를 한번 볼까?

혼란기 중국의 불교 학파는 어느 학파를 막론하고 구마라집의 영향을 받았다.(8-9화 참조) 최고의 고승이라 불리는 구마라집이 다양한 불경을 해석하여 다양한 학파가 탄생한 것이다.

구마라집의 제자들 중 <공> 사상을 <존재론>으로 접근하려고 했던 파가 <성실학파>이었다. 그러나, 구마라집의 정통 제자인 승조는 <공> 사상은 심오한 사상이기 때문에 <존재를 분석>해서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성실학파>는 구마라집이 아끼던 제자 승조에게 비판받게 된다.

승조는 <공> 사상 자체의 심오한 뜻을 인도철학인 <반야> 자체로 파악하려고 하였다. <삼론학파>는 <삼론종>으로 발전하였고, 주변국에 전파된다. 고구려의 <승랑>은 삼론종에 정통하였고, 안식국의 <길장>은 삼론종의 시조가 되었다.

원래 <삼론>이란 <중론, 백론, 십이문론>이라는 3가지를 지킨다는 뜻이다. 삼론종의 핵심 사상은 <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라는 인도의 <공 사상 체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다는 <공>이 무엇이지 파악하려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 언어에 집착하는가? 말이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표현하려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언어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언어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사물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집착이 사라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편안한 상태가 <공>인 것이다. <공>은 언어를 통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언어와 논리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허무한 것이다.

사물의 본질은 하나이되, 하나가 아니다. 실체가 있다고 믿는 것과 실체가 없는 것은 다른 듯 하면서도 같은 것이다. 있는 것은 어느 순간 없는 것이 되며, 생성된 것은 어느 순간 죽는다. 결국 만물은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닌 것이다. 이렇게 어느 하나를 집착하지 않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 조차 버리는 것이 바로 <중도>이다. 하나만을 강조하는 것은 <극단 : 탁자의 모서리>인 것이다.

결국 삼론종은 인도 대승불교의 <공> 사상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공>을 <인간의 지식>으로 판단하려고 한 <성실종>을 논리적으로 때려부순 것이다.

그러나, 삼론종은 큰 약점이 있었다. 첫째, 인도 불교 사상을 이해했으나, 중국적인 사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철저한 인도 불교의 <공> 사상을 이해한 것은 좋았으나, 그것이 중국인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인가? 그 고민이 부족하였다.

둘째, 너무 학문적이다. 지식체계는 훌륭하다. 그래서??? 그 다음이 없다. 지식은 곧 실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자기들까리 지식을 공유했다고 해서 훌륭한 불교 종파가 될 수 있겠는가?

셋째, 국가에 도움이 안된다.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다는 교리가 통일한 수나라의 전제왕권에 무슨 도움이 될까?

성실종과의 지식 논쟁에서 훌륭하게 이긴 삼론종이 허무하게도 천태종에게 흡수당한 것은 당시 통일된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실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훗날, 삼론종은 부활하게 된다. 그러나 수나라 시기엔 삼론종의 이론이 먹히지 않았다.

2. <선> 사상에 치우친 열반종 이야기

열반종은 지난 장에서 이야기(8화)한 도생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구마라집의 수제자였던 도생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성론>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중국 불교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럼 도둑놈도 죽기 전에 깨달음만 얻으면 부처가 되는 것인가? 도생의 이론은 범죄자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기존 <불가론자>들에게 탄압받았다.

그러나, 법현 스님(7화)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14년간 서역을 유랑하며 구해온 <대열반경>에는 어떤 사람이나 부처가 될 <인간성>이 있다고 적혀있었다. 도생은 자신의 불성론으로 <열반학파>를 창시하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열반종의 <불성 이론>은 천태종의 기본 이론으로 정착된다. 천태종은 누구나 마음을 갈고 닦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열반종은 개달음과 지식의 두 가지를 동시에 공유한 천태종에게 흡수당하게 된다.

3. <지의>의 교, 선 일치

천태교의 시조는 지의이다. <지의>는 법명이고, 천태산에서 수양을 하여 <천태대사>라고 부른다. 수양제가 시호로 <지자대사>를 내렸기 때문에 다양하게 불린다.

지의는 남북조시기 양나라에서 태어나서 7살때 불가에 입문하였다. 남북조의 전쟁시기에 그가 했던 일은 <구걸>이었다. 구걸하고 걸식하면서 도를 닦는 스님을 <탁발승>이라고 한다.

그는 23살 때 <법화경>을 공부하다가 석가의 세계에 들어가 버렸다. 꿈을 꾸는 듯한 상태에 빠졌으나 꿈은 아니며, 천년 전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는 석가모니가 법회를 여는 장면을 체험하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리를 체험하는 것을 <삼매경>에 빠졌다고 말한다. 법화경에 빠져 과거에 들어갔기 때문에 <법화삼매>를 체험한 것이다.

법화삼매는 꿈이 아니다. 꿈과 비슷하지만, 실체 과거 속에 들어간 것이다. 이것은 심령현상을 이용하여 신통력을 발휘하는 최고의 경지인 것이다.

그 이후 유명해진 그는 천태산에서 제자들과 집을 지어 <수선사>라고 부르며 수행에 정진하였는데, 이 천태산에서 그가 완성한 사상적 체계를 <천태종>이라고 부른다.

천태종은 지의가 공부한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법화경의 핵심 사상은 <일승론>이다. 초기 대승불교는 글을 읽는다는 <성문승>, 깨달음을 얻는다는 <연각승>,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한다는 <보살승>으로 나눠 이것을 <3승>이라고 했다.

법화경에는 이 3승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결국 글을 읽던(지), 깨닫던(관) 간에 결론은 부처가 되려는 것 아닌가? 결국 3승은 모두 <수행승>인 것이다. 수행을 하는 자들이 <보살>이므로, 모든 스님은 <수행승> 또는 <보살승>으로 통일하여 1승이 된다는 것이다. 즉, 지식과 깨달음은 하나이기에, 어느 하나만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종파>인 것이다.

지의 불교의 특징은 지와 관 양지를 모두 강조하는 양자적 합일점을 찾은 교파라는 데 있다. 지라는 것은 순수한 학문적 불교만을 고집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고, 관이라는 것은 수련을 통하여 불교의 참 뜻을 찾는 것을 말한다. 지의는 학문만으로 불교를 찾는 것은 불교의 참 뜻인 중생구원을 등한시 하는 것이라며 싫어했으며, 수련으로만 불교를 찾는 것은 이론적 바탕이 없는 무지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즉 이 2가지가 다 중요하다는 것이 지의의 이론인데, 이것이 천태종의 핵심이다. 천태종은 경전을 중요시하는 교종의 입장도 반영하면서, 수련을 중요시하는 선종의 입장 역시 무시하지 않는 종파인 것이다.

이 지의의 불교는 지, 관을 모두 중요시 함으로서 당시 수없이 나눠진 종파들을 통합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모든 불교의 진리들은 그것이 지(지식)이던, 관(깨달음)이던간에 원리 석가의 가슴속에서 나온 것이므로, 모두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 진리는 모두가 원래 석가의 뜻 하나였으므로 석가의 본 뜻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석가의 본뜻이 모두 지, 관을 통합하였다는 것을 <삼제원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석가의 본 뜻을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그는 석가의 말씀을 5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 석가의 말씀 5단계가 불교에서 중요시하는 각종 경전들인데, 그중 가장 중요한 석가 말씀이 바로 <법화경>이라고 주장한다.

4. 화엄인가, 천태인가?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불교에서는 어떤 대승불교 경전이 가장 부처의 말씀과 일치하는 가를 놓고 순위싸움을 하였다. 이것을 <교상판석>이라고 한다. 이건 각 불경을 중요시하는 종파간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당시 위세를 자랑하던 종교는 천태종, 화엄종, 열반종, 성실종, 삼론종이었다. 그러나, 아까 말했던 성실종, 삼론종은 천태종에 흡수당했으니 제외하자.

일단, 인도에서 전래된 <공>사상의 핵심인 <반야경>은 무조건 1등이다. 부처의 진리 자체가 들어있는 경전인데 어디 순위를 매기는가?

그럼 2등이 무엇인가가 싸움의 핵심이다. 천태종의 <법화경>, 화엄종의 <화엄경>, 열반종의 <열반경>이 순위 다툼에 들어갔다. 그런데, 열반종도 천태종에 통합될 정도로 세력이 약하니 4등으로 내려주자.

남은 것은 천태종과 화엄종의 싸움이다. 그런데 이 싸움은 쉽지가 않다. 이 두 종교는 모두 통일 종교로서 강력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통일된 수나라에서 종교 통합을 이룬 천태종과, 수나라 이후 당나라까지 전성기를 맞이한 화엄종은 모두 <지식과 깨달음>을 동시에 강조한 학파이다.

두 종교는 모두 지관일치, 즉 지식과 깨달음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식과 깨달음을 얻는 <대상>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첫째는 <불성논쟁>이었다. 화엄종과 천태종은 둘다 <모든 인간>에게 불성이 있다는 <도생>의 열반 철학을 인정하였다. 화엄종은 딱 <인간>까지 불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태종은 거기서 더 나간다. 만물은 돌고 돈다. 모든 사물은 훗날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른다. 따라서 풀과 나무, 동물들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것이다. <개미>에게도 불성이 있으므로 함부로 죽여서는 안되고, <돌맹이> 조차 불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엄종에서는 <인간>만이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불성>은 부처가 되겠다는 마음의 문제이므로, 마음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면 불성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돈오점오>의 문제였다. 화엄종의 <화엄경>은 <돈>를 강조한다. <돈>이란 깨달음을 뜻한다. 문득 깨닫음을 얻은 뒤 진리를 알았다는 기쁨을 강조하는 것이 화엄경이었다. 반대로, 법화경은 <점>을 강조한다. <점>이란 <점진적>이란 뜻이다. 즉, 깨달음을 얻는 과정 속에서 부처를 만나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럼, 깨달음의 과정과 깨달음을 안 기쁨 중 어떤 것이 우선인가? 이 문제가 해결되야 두 종교의 우위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셋째 두 종교의 차이는 <부처>의 품성 문제였다.

흔히 두 종교는 모두 <바다>에 비유된다. 다른 종파들이 물고기, 게, 미역 등 바다에 살아가는 종파라면, 화엄이나 천태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바다> 자체이다. 다른 종파가 지식, 깨달음, 수행법, 율법 등 하나를 강조한다면 화엄과 천태는 모든 것을 강조하는 통일 국가의 통일 사상인 것이다.

그런데, 그 바다를 구성하는 물이 문제이다. 화엄은 모든 것은 형태가 변하지만 결국 그 <본질>은 같다고 말한다. 바다의 물이 있다. 물은 물방울도 되고, 파도도 된다. 그러나 그 <본질>은 물이다. 따라서 어떻게 변해도 결국 물인 것이다.

반대로 천태에서는 물의 <본질>은 여러 형태로 구현된다고 말한다. 물이 화가 나면 파도가 되고, 물이 갈라지면 물방울이 된다. 본질과 별도로 물의 성격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의 품성 논쟁으로 전개된다. 화엄에서는 <물>의 본질은 결국 깨끗한 물이므로 <부처>는 선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천태에서는 <물>도 성난 파도가 될 수 있으므로, <부처>도 태어날 때 가진 악한 품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악을 누르고 선을 실현했기 때문에 더 위대한 부처가 되는 것이다.

화엄종의 논리는 부처은 이미 성불했기 때문에 더 이상 악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천태는 성불한 부처도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악한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두 종교는 이론논쟁을 계속하였다. 수나라 시기에는 <천태종>이 우세한 듯 보였다. 그러나, 당나라 시기로 넘어가면서 천태종의 힘은 약해진다. 강력한 국왕이 다스리는 현실 정치에서 필요한 것은 <돌맹이에 불성이 있다>가 아니라 <부처의 본성은 선하다>라는 것이었다.

중국에서의 천태종은 짧은 전성기를 끝내고 역사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천태종은 맹렬한 기세로 불교계를 이끌어갔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천태종과 화엄종은 라이벌로서 2라운드를 전개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필자 : 히스)

 

   - 불교사에 대한 이해 : 참고할 만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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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3화. 전통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의 대결 속에서 탄생한 석가

1. 철기 시대의 사화 변화와 <정치, 사회> 계급의 성장

최고의 계급인 브라만은 우파니샤드 철학의 이념으로 <브라만>의 정당성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의 인도는 이미 <고대 신의 신비주의> 관념만으로 지배 계급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철기가 보급되고, 생산력이 증가하였다. 따라서, 전사계급이 원하는 것은 <넓은 영토>였다. 물론, 신관들이 신의 계시를 내리고 전쟁을 도왔다고는 하지만, 전쟁에서 실제 필요한 것은 무력과 경제력이었다. 무력을 가진 자들이 왕족인 크샤트리아 계급이었으며, 재력을 가진 자들은 바이샤 계급이었다.

전쟁은 많은 민족간에 혼혈을 가져온다. 더 이상 순수한 <아리아인>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 왔다. 크고 작은 부족 국가들이 통합되면서 거대한 영토를 가진 군주국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국가가 발달하면서 엄청난 토지를 가진 귀족과 재력을 가진 상인들 역시 입김이 쎄진다. 특히, 비옥한 겐지스강 유역을 장악한 부족들은 인도 북부를 통일하겠다는 꿈까지 가진 시기였다.

<브라만>이라는 최고 계급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비옥한 겐지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점차 <브라만교 반대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 3계급은 브라만에게 반발하였다. 더 이상 특권을 유지하려는 브라만교를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었다. 특히, <제사를 지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만이 신과 접촉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었다. 제사 지내는 방법이야 누구나 배우면 되지 않는가?

브라만교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직접 제사를 지내며 스스로 교단을 만들어 버린다. 특정 종교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종교의 사상을 벗어나 독자적인 종파가 된 경우를 <사문 : samana>이라고 한다.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원래 인도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사문들은 브라만교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만들어갔다.

2. 사문들과 브라만과의 싸움

브라만교의 전통 철학은 우파니샤드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기본 원리는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과 생명의 원리인 아트만은 동일한 것>에서 출발한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중요한 점은,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이 창조주이자, 역사의 진행자이자, 생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브라만은 우주의 법칙 속에서 생명도 만들고, 죽음도 만들며, 윤회도 만든다. 우주는 브라만의 법칙에 의해 돌고 돈다. 해탈은 그 법칙을 알고 있는 <브라만>만이 가능하다.

사문들은 브라만을 반대한다. 고행을 통하여 힘든 과정을 겪으면 누구나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해탈이 가능할텐데 왜 <브라만>만 해탈한다고 하는가? 또, 착한 일을 하면 다음 생애에 <브라만>으로 태어난다고 하는데,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것이 아닌가? 지금의 선악과 내세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과격한 사문에서는 아예 <육체>가 죽으면 선악이 죽는다는 <유물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문은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적인 요소들을 거론하면서 <영혼>도 결국 물질 현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혼>이 어떻게 현실과 격리될 수 있는가? 살이있는 인간들도, 자 <영혼>을 가지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대표적인 사문인 <자이나교>의 <바르다마나>는 브라만교의 <선행> 개념 자체를 부인한다.

인도 나타족 왕자(2계급)인 바르다마나는, 착한 일을 한다면서 하늘에 제사나 지내는 형식적인 브라만들이 해탈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해탈>는 깨닫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정화>해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1계급들이 잘나서 1계급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아무도 증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해탈은 신분과 상관없이 <고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하고, 살생을 금지하며,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해탈의 기본 조건 아니겠는가?

자이나교의 교리는 단순하다. 사람은 살면서 실수를 한다. 고의든, 우발적이든 죄를 저지른다. 그래서 영혼은 더럽다. 따라서 엄격한 계율 속에서 고통스러운 <고행>을 한다면 영혼이 정화되면서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이나교는 대부분의 브라만 의식은 인정한다. 그러나, 브라만들만의 특권을 반대하면서, 모든 계층이 고행을 통해 <구원>받는 다는 교리를 설파한 것이다. 수많은 사문 중에서 지금까지 인도인들에게 살아남은 사문은 <자이나교>밖에 없다. 그 핵심은 <고행>이었다.

<자이나교-아디나타사원>

<자이살메르사원>

티르탄카라상

3. 도시 공화국에서 태어난 석가

기원전 5세기, 강력한 철기를 가지고, 인도 북부(겐지스강가)에 살아남은 국가는 모두 16개국이었다. 그러나, 강대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는 모두 <군주국>이었다.

군주국에서는 국왕과 브라만들이 독단적으로 정치를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수드라 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윤회설>을 강조하였다. 수드라인 너희가 천민으로 태어난 이유는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너희는 이번 생애 내내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이 무렵, 석가는 기원전 566년, 도시국가인 네팔(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다. 석가가 살았던 지역은 크샤트리아와 바이샤가 많았던 도시 지역이었다. 당시 도시 국가에서는 2, 3계급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공화 부족들은 군주 부족과 달리 모든 일을 부족내 유력자들이 모여 회의하고 결정하였다. 신라의 화백회의와 같은 <만장일치제>가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반면, 군주 부족들은 군주와 신관이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공화국의 부족국가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국가들에 의해 하나하나 멸망해가고 있었다. 곧, 강력한 군주가 인도 북부 전체를 통일할지도 몰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석가는 브라만 신관들의 독선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리고, 약소국가의 2계급으로 태어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을까?

4. 석가 <사문>의 형성

석가는 브라만의 가르침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단지, 브라만에서 말하는 <생명과 윤회>를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는 생로병사를 느끼고자 여러 브라만 수행자들을 만났다. 그러던 중 29의 나이로 출가했다. 그 때, 갓 태어난 석가의 아들이 <라후라>였는데, <라후라>란 <장애물>이란 뜻이다. 석가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난 것이다.

석가가 맨 처음 스승으로 모신 사람은 선정주의자들이었다. 선정주의자들은 <착한 일>을 많이하면 <해탈>한다고 말했다. 석가는 모든 이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착한 일을 아무리 해도 해탈의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길을 떠난다.

석가가 두 번째로 택한 길은 <고행>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고행을 해도 <해탈>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석가가 마지막으로 택한 길은 <명상>이었다. 보리수 밑에서 명상을 하던 석가는 35의 나이에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된다. 보리수란, 깨달음의 나무란 뜻이다. 또, 깨달은 사람을 <붓다>라고 하고, 성자를 <모니>라고도 하는데, 보통 <석가모니> 또는 <석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가 명상으로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중도>였다. 선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극심한 고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가야한다는 것이다.

석가의 <중도>사상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는 구름과도 같은 제자들을 얻어 <교단 : 승가>를 만들었다. 승가란, 모든 자들이 평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동체 집단을 말한다.

석가가 만든 승단은, 공화국 체제와 비슷하다. 바르나 제도와는 달리, 모두가 평등하며, 서열은 먼저 들어온 순서로 정한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의식으로 뭉쳐진 그룹집단인 것이다.

불교도는 네 그룹으로 이루어진다. 남성 출가자(비구), 여성 출가자(비구니), 남성신도(우바새), 여성신도(우바이) 이다. 이들간의 차별은 없다. 물론 가장 똘똘한 인물들을 10대 제자로 두긴 했지만, 그것은 어느 한 분야의 능력이 출중한 인물들을 능력별로 인정해 준 것이다.

석가 사후, 석존의 가르침은 대부분 구전이었기 때문에 정리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을 정리한 사람은 100년 후 아소카왕 시대의 제자들이었다. 부처의 가르침을 경, 율법서를 율, 주석을 논 이라고 분류하여, 경,율,론 3장의 불교 지침이 성립된 것이다.

석가시대의 가르침을 보통 <원시불교 : 초기불교>라고 말한다. 원시불교란, <암송한 것>을 기억하여 가르침을 남긴 것이다. 석가와 같이 배우고 암송한 것을 함께 기억하고 되새겨 모아 적는다. 초기 석가의 가르침은 <아함경전>에 실려있다. 훗날, <아함경>으로 불리는 경전은 중국과 한반도에도 전파되었다. 경이 가르침이라면, 율은 율법서이다. 율은 출가자들이 지켜야할 조문들을 모두 모아놓은 조문집이다. 물론 주석인 <론>은 후대에 달아놓은 것들이다.

5. 석가의 가르침

석가의 핵심 가르침은 <번뇌>였다.

번뇌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고통과 고민>을 말한다. 보통 <고집멸도>라고 불리는 이 번뇌는, 고(고통), 집(고통의 원인), 멸(고통의 소멸), 도(소멸의 법도)를 총칭한다. 이 4가지 고통을 해결하는 과정을 <4제>라고 한다.

석가는 이 고통을 없애는 방법으로 8정도를 제시하였다. 8정도란, 고통을 없애기 위해 8가지를 바르게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지침이다.

올바른 견해(정견), 올바른 생각(정사유), 올바른 언어(정어), 올바른 행동(정업), 올바른 생활(정명), 올바른 노력(정정진), 올바른 기억(정념), 정신통일(정정) - 이 8가지를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8정도를 이끌어가는 방법이었다. 브라만에서는 우주의 근원인 브라만에서 충실하기 위해서 <계급에 맞는 착힌 일>을 하라고 말한다. 반면 자이나교 같은 사문에서는 철저하게 <고통스런 고행>으로 악업을 벗어나라고 말한다. 그래야 <해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가는 말한다. 선정이건, 고행 이건 단지 하나만으로 <해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중도>를 걸어야 한다고.... 그럼 왜 중도만이 고통을 없애주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정>은 영적인 측면을 주로 강조한다. <고행>은 육체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정신과 물질이 연결되어 일어난다.

석가가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은 상호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깨닫는 다는 사실 조차,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어떤 일을 겪지 않으면 깨달음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으로 얽혀서 성립되는 것이다. 이것을 <연기>라고 한다.

우주가 단지 브라만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물 자체가 인과관계에 의해 얽혀서 움직이고 있기에 절대적인 근본이라는 것은 없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어떤 원인에 의해 존재하는데, 어떻게 아트만(생명)이라는 본질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연기설>의 핵심은 이런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존재하는 것이 같이 존재한다.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그 현상의 원인이 있다. 원인이 없다면, 현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된다. 한마디로, 만물은 서로 의존하여, 서로의 원인도 되고 결과도 되는 것이다. <연기>의 본질을 알게 되었을 때,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었을 때 <해탈>하게 되는 것이다. <중도>를 모르고 한가지 길만을 추구하는 것을 <극단 : 탁자의 모서리>라고 말한다. <극단>은 <해탈>이 아니라 자신을 망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연기>의 세계를 깨닫는가?

석가는 깨달음을 아는 방법으로 삼법인(3개의 진리의 도장)을 말한다. <연기>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원인이 되어 돌고 돌기 때문에 결국 그 본질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이라는 3개의 진리로 표현된다.

제행무상이란? 제행은 <움직여 변한다>는 뜻이다. 무상은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 움직여 변하므로 결국 인연에 의해 연결된 세계는 사간에 따라 변하게 되어 사라진다는 것이다.

제법무아란? 제법은 <율법, 진리>를 말하고, 무아는 <나란 없다>는 뜻이다. 즉, 나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나란 육체와 정신, 생각, 역사 등등이 어떤 원인과 결과로서 만들어낸 순간적 존재이다. 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나이며, 내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브라만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아트만)이란 없다. 즉, 보편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열반적정이란? 열반은 <해탈>의 불교식 표현이고, 적정은 <소멸>을 말한다. 이것은 모든 것이 <연기>로서 돌고 도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고통과 번뇌>가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8정도를 행동으로 옮기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고통>이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지면 해탈한다는 것이다.

6. 석가의 가르침을 남긴 마가다국

석가의 이러한 불교 철학과 종단(승가)은, 갠지스 강 유역에 위치한 마가다국에 의해 보호되었다. 석가는 살아 생전에 갠지스 강 유역의 마가다 지방에서 깨달음을 찾으며 고행을 했었다. 또 석가가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포교 거점으로 삼았던 지역이 마가다 왕국이었다.

마가다 왕국은 북인도 16대 강국 중의 하나라 불교, 자이나교의 발상지로 불리는 국가이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석가를 신하로 끌어들이기 위해 영토를 주겠다는 말까지 했던 왕이다.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은 그 이후 불교와 자이나교의 성지가 되었다.

갠지스 유역을 통일했던 기원전 5세기의 마가다국과 달리 기원전 4세기의 마우리아 왕조는 북인도 전체를 통일하면서 불교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마가다 왕국의 후손으로서 아리안 전통 직계인 마우리아 3대왕 아쇼카는 불교사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석가의 연기설은 당시 통일국가 이념으로도 제격이었다. 연기설이란, 모든 사물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연결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것은 각 부족별로 흩어져있던 당시 사상 체계를 통합하는데 딱 좋은 사상이었다.

개체는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의 인과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즉, 개별적인 것들은 전체적인 것의 일부이다. 따라서 개별적인 부족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들은 좋던 싫던 다른 부족과의 관계에서 살아가게 되고, 궁극적으로 통일된 전체에 의해 규제받게 된다. 전체라는 것은 개별 부족을 넘어선 중앙집권국가의 지배자를 뜻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은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국가도 인연을 맺고 있다. 강력한 국왕이 출현한 것도 그 인과 관계의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국왕은 모든 백성을 때려잡는 국왕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는 슬기로운 지배자이다. 브라만 신앙에서 내려오는 정법(정의)의 지배자를 <전륜성왕>이라고 한다. 즉, 마우리아 왕조의 절대자 아쇼카 왕이 곧, 전륜성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쇼카 왕은 이 전륜성왕의 브라만 신화와 불교를 연결시켜 버렸다. 전륜성왕의 통치를 돕기 위해 <미륵불>이 지상으로 내려와 백성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로서 <미륵불> 신앙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신앙이 등장하였다.

아쇼카 왕은 전륜성왕과 미륵불 사상을 몸으로 실천하였다. 자신이 정법을 구현하는 왕이 되어 북인도를 통치함은 물론, 자신의 분신들을 주변국에 보내 불교의 참 뜻이 무엇인지를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남부의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도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한다. 멀리는 이집트,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불교라는 종교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소카 왕 때의 불교는 <소승불교>라는 초기 불교였다. 아직 불교는 출가자들 위주의 불교였고, 국왕은 불법을 지키는 호법왕이라고 여겨졌다. 부처가 되는 것은 개인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함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전륜성왕

그러나 아쇼카 왕 사후, 기원전 2세기 무렵 불교는 또 다른 격동을 겪게된다. 아쇼카 왕이 죽은 뒤 약해진 마우리아 왕조는 서쪽에서 밀려온 이민족들에 의해 분열된다. 그리고, 만민 구원을 외치는 서방 종교와 서아시아 밀교 등이 들어오면서 <대중 전체의 구원>을 생각하는 불교가 등장한다. 이 때의 불교를 <대승 불교>라고 하며, 대승 불교는 비단길 등 교역로를 따라 중국과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

자, 그럼 다음 장에서는 대승 불교 이야기와 동아시아 불교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여기서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나라까지 들어오게 된 <한국식 불교> 이야기이다. 동남 아시아로 내려간 소승 불교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겠다. 중국과 한반도로 넘어온 종파를 위주로 <대승 불교> 이야기를 좀 하고, 중국, 한반도, 왜로 넘어간 불교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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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