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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저

고구려 부흥운동 사료 고구려의 부흥운동 사료 3월에 사찬 설오유가 고구려 태대형 고연무와 각각 정병 1만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옥골에 이르렀는데, 말갈병이 먼저 개돈양에 와서 기다렸다. 4월 4일 말갈과 마주 싸워 아군이 크게 이기고 목을 밴 것이 이러 셀수 없었으며 당병이 계속 이르니 아군은 백성에 물러났다. 고구려 수림성(水臨城) 사람인 검모잠(劍牟岑) 대형(大兄)이 유민(遺民)을 수습하여 궁모성(窮牟城)으로부터 패강(浿江)의 남쪽에 이르러 당의 관리와 승려인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여 서해 사야도(史冶島)에 이르러 고구려 대신 연정토(淵淨土)의 아들 안승(安勝)을 만나 한성으로 맞아들여 임금을 삼고 소형(小兄) 다식(多式) 등을 신라에 보내어 호소하였다. … 그리하여 신라의 문무왕은 그들을 나라 서쪽의 .. 더보기
신라의 삼국 통일 후 민족융합 정책 통일 후 민족 융합 정책 처음에 신라는 고구려·신라와 경계가 들쭉날쭉 혼란하여 혹은 서로 화친하고 혹은 서로 노략질하였는데, 나중에 당과 함께 두 나라를 쳐서 멸하여 그 지역을 평정하고 드디어 9주를 두게 되었다. 본국(신라)의 경계 안에 3주를 두고… 백제의 옛 영역에 3주를 두고… 옛 고구려의 남쪽 지역에 3주를 두었다. - 삼국사기 34, 잡지 3, 지리 1 - 22일에 왕이 돌아와 논공(論功)하였다. 백제인들도 다 그 재능에 따라 임용하였으니, 좌평(佐平)인 충상(忠常)·상영(常永)과 달솔(達率)인 자간(自簡)에게는 일길찬(一吉瑗)의 관위를 주어 총관(摠管)의 직에 임명하고, 은솔(恩率) 무수(武守)에게는 대나마(大奈麻)의 관위를 주어 대감(大監)의 직에 임명하고, 은솔 인수에게는 대나마의 관위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