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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관

신문왕의 전제왕권 2 - 중앙집권화를 위해 귀족권을 억압하다. 신문왕의 전제왕권 2 - 중앙집권화를 위해 귀족권을 억압하다. 이번 파트부터는 통일신라 전제왕권을 완성한 신문왕에 대한 포스팅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로 나누어 다양한 각도에서 포스팅하겠습니다. 신문왕을 자세히 포스팅하는 이유는 신문왕 자체가 통일신라의 문물을 정비하고, 완성한 사람이므로 신문왕을 로 하여 통일신라의 전성기 체제를 바라보면 이해가 쉽기 때문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신문왕기의 정치사를 정리해 봅시다. 1. 전제왕권의 성립 배경 지난 장에서 전제왕권을 정의내릴 때, 국왕의 1인 독재권이 아닌 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럼 이러한 중앙집권적 전제왕권이 성립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삼국통일에서 그 핵심 배경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삼국통일기 신라는 가 계속되었습니다. 고.. 더보기
통일신라의 정치사에 대한 개관 통일신라의 정치사에 대한 개관 통일신라에 대한 구체적인 포스팅을 하기 전에 통일신라시대에 대한 개관을 해보겠습니다. 1. 전제왕권이 성립하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는 국가 운영 체제와 영토의 팽창입니다. 삼국통일은 곧 영역의 확대 뿐 아니라 인구,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또 통일로 인하여 유민 세력에 대한 처우 개선, 군사력의 확보, 정치적 안정의 추구, 반신라세력에 대한 탄압 등 국가적 과제가 많았습니다. 즉, 국가적으로 팽창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과제들을 해결할 정치적 역량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신라의 왕권은 이러한 새 시대의 과업을 를 통해 효율적으로 해결하였습니다.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충신의 왕으로서 새 시대를 위한 체제 개선을 .. 더보기
김흥돌의 난과 관련된 사료 김춘추가 진골계통으로 즉위했다면, 어떤 계통인가? 신문왕 즉위년 8월 16일에 왕은 교서를 내리어 가로되,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는 것은 옛 성인에 좋은 규정이요, 죄 있는 자에게 벌을 주는 것은 선왕의 아름다운 법이다. 과인이 조그만 몸과 적은 덕을 가지고 큰 기업을 승수하여, 식사도 폐하면서 또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서 신하와 더불어 국가를 편안케 하려 노력하는데, 상중에 난이 서울에서 일어날 줄을 뉘 생각하였으랴? 적괴인 흠돌, 홍원 등은 그 벼슬이 재능으로 높아간 것도 사실상 왕의은혜로 올라간 것이지만, 시종을 삼가거나 부귀를 보전치 못하고 불인과 불의로 위복을 작하고 관료를 모만하고 상하를 속고 포악한 마음을 드러내어 흉사한 자를 불러들이고 근수와 교결하여 화가 내외에 통하고 같은 악인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