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벤나

중세 이야기 3 - 카롤링거 왕조의 성립과 로마 교황령의 시작 카롤링거 왕조의 성립과 교황령의 시작 1. 7c의 혼란 프랑크 왕국의 건국자 클로비스의 메로빙거 왕조가 성립된 후 150여년이 지났습니다. 100년 이상이 지나는 동안 프랑크 왕국은 앞 장에서 설명했듯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망하지 않고 근근히 국가 형태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7c가 되면서 프랑크 왕국은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 이유는 프랑크족의 관습때문이였습니다. 프랑크족들은 재산을 상속할 때, 장자 상속제가 아니라 균등 상속제입니다. 즉, 왕자들이 많다면 그 왕자 사이에 일정한 비율로 영지를 분할하는 것이 그들의 제도였습니다. 이것은 왕위 상속을 놓고, 왕자들간의 내분이 일어날 소지가 많은 제도였습니다. 결국 내분과 갈등이 지속되는 동안, 왕국의 실권을 잡은 것은 궁재(재상) 마르텔이였습니다. 그는 .. 더보기
유럽중세사 1 - 게르만족의 이동 게르만족의 이동과 유럽 중세의 시작 1. 게르만 족이란? 게르만족은 발트해 북유럽 연안에 살던 소수의 야만인(?)입니다. 야만인이라는 것은 당시 로마 제국의 관점이였죠. 로마는 갈리아 정복 이후 춥고, 도움이 안되는 북극쪽의 땅은 정복하지 않습니다. 실제 로마가 현재 프랑스-서부독일-에스파냐를 잇는 갈리아를 정복한 것도 갈리아 지방에 풍부한 유산이 있거나, 갈리아인들이 문명인이라서가 아닙니다. 갈리아 정복은 단지 이베리아 반도를 거치기 위해 필요한 도로를 확장하기 위함이였으니까요. 아무튼, 북유럽의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는 이방인이였습니다. 그러나 게르만족에게 평화가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경작지가 부족해졌습니다. 이것은 게르만인들이 남부로 내려오는 하나의 원인이 됩니다. 게르만족.. 더보기
최후의 철의 여제 갈라 플라키디아, 그리고 로마의 멸망 로마의 마지막 재건노력 - 갈라 플라키디아, 그러고 로마의 멸망 1. 갈라-플라키디아와 아타울푸스 갈라 플라키다아(이후 갈라)는 알라리크에 의해 로마가 함락당하고, 로마의 문명이 폐허가 되었을 때, 인질로서 잡혀간 황제의 여동생이었습니다. 황제인 호노리우스는 로마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자신이 안죽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닭을 키우고 놀았다고 전해집니다. 호노리우스는 자신의 생명보전을 위해 로마를 버리고 라벤나까지 수도를 옮긴 대단한 황제였거든요. 로마가 망하는 것은 그에게는 관심밖의 일이었습니다. 로마를 지켜줄 장군인 스틸리코를 맘에 안든다는 이유로 죽인 황제니, 그 무서움은 치밀하면서도 지독했습니다. 호노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동생 갈라가 잡혀갔다는 사실보다는 황제의 동생을 야만족인 서고트가 잡아갔다.. 더보기
라벤나의 위치와 역사 라벤나 라벤나는 이탈리아 북동부 에밀리아로마냐 지방 라벤나 주의 주도입니다. 아드리아 해 근처에 있는데, 5세기에 호노리우스 황제가 수도를 옮기면서 서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 후 서로마제국은 멸망하였고, 6~8세기 동고트족의 이탈리아 왕국과 비잔틴 제국령 이탈리아의 수도가 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입니다. 라벤나에 최초로 정착한 주민은 BC 1400년경 아퀼레이아에서 남하한 이탈리아 반도의 종족들로 추측되며 에트루리아인(人)과 갈리아인이 차례로 점령했었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이곳에서 약 5㎞ 떨어진 곳에 클라시스 항구를 건설했고 BC 1세기 경 라벤나는 로마의 중요한 해군기지였습니다. 402년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가 수도로 삼아 웅장한 기념물을 많이 세웠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