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3화. 전통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의 대결 속에서 탄생한 석가

1. 철기 시대의 사화 변화와 <정치, 사회> 계급의 성장

최고의 계급인 브라만은 우파니샤드 철학의 이념으로 <브라만>의 정당성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의 인도는 이미 <고대 신의 신비주의> 관념만으로 지배 계급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철기가 보급되고, 생산력이 증가하였다. 따라서, 전사계급이 원하는 것은 <넓은 영토>였다. 물론, 신관들이 신의 계시를 내리고 전쟁을 도왔다고는 하지만, 전쟁에서 실제 필요한 것은 무력과 경제력이었다. 무력을 가진 자들이 왕족인 크샤트리아 계급이었으며, 재력을 가진 자들은 바이샤 계급이었다.

전쟁은 많은 민족간에 혼혈을 가져온다. 더 이상 순수한 <아리아인>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 왔다. 크고 작은 부족 국가들이 통합되면서 거대한 영토를 가진 군주국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국가가 발달하면서 엄청난 토지를 가진 귀족과 재력을 가진 상인들 역시 입김이 쎄진다. 특히, 비옥한 겐지스강 유역을 장악한 부족들은 인도 북부를 통일하겠다는 꿈까지 가진 시기였다.

<브라만>이라는 최고 계급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비옥한 겐지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점차 <브라만교 반대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 3계급은 브라만에게 반발하였다. 더 이상 특권을 유지하려는 브라만교를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었다. 특히, <제사를 지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만이 신과 접촉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었다. 제사 지내는 방법이야 누구나 배우면 되지 않는가?

브라만교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직접 제사를 지내며 스스로 교단을 만들어 버린다. 특정 종교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종교의 사상을 벗어나 독자적인 종파가 된 경우를 <사문 : samana>이라고 한다.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원래 인도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사문들은 브라만교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만들어갔다.

2. 사문들과 브라만과의 싸움

브라만교의 전통 철학은 우파니샤드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기본 원리는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과 생명의 원리인 아트만은 동일한 것>에서 출발한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중요한 점은, 우주의 원리인 <브라만>이 창조주이자, 역사의 진행자이자, 생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브라만은 우주의 법칙 속에서 생명도 만들고, 죽음도 만들며, 윤회도 만든다. 우주는 브라만의 법칙에 의해 돌고 돈다. 해탈은 그 법칙을 알고 있는 <브라만>만이 가능하다.

사문들은 브라만을 반대한다. 고행을 통하여 힘든 과정을 겪으면 누구나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해탈이 가능할텐데 왜 <브라만>만 해탈한다고 하는가? 또, 착한 일을 하면 다음 생애에 <브라만>으로 태어난다고 하는데,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것이 아닌가? 지금의 선악과 내세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과격한 사문에서는 아예 <육체>가 죽으면 선악이 죽는다는 <유물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문은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적인 요소들을 거론하면서 <영혼>도 결국 물질 현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혼>이 어떻게 현실과 격리될 수 있는가? 살이있는 인간들도, 자 <영혼>을 가지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대표적인 사문인 <자이나교>의 <바르다마나>는 브라만교의 <선행> 개념 자체를 부인한다.

인도 나타족 왕자(2계급)인 바르다마나는, 착한 일을 한다면서 하늘에 제사나 지내는 형식적인 브라만들이 해탈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해탈>는 깨닫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정화>해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1계급들이 잘나서 1계급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아무도 증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해탈은 신분과 상관없이 <고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하고, 살생을 금지하며,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해탈의 기본 조건 아니겠는가?

자이나교의 교리는 단순하다. 사람은 살면서 실수를 한다. 고의든, 우발적이든 죄를 저지른다. 그래서 영혼은 더럽다. 따라서 엄격한 계율 속에서 고통스러운 <고행>을 한다면 영혼이 정화되면서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이나교는 대부분의 브라만 의식은 인정한다. 그러나, 브라만들만의 특권을 반대하면서, 모든 계층이 고행을 통해 <구원>받는 다는 교리를 설파한 것이다. 수많은 사문 중에서 지금까지 인도인들에게 살아남은 사문은 <자이나교>밖에 없다. 그 핵심은 <고행>이었다.

<자이나교-아디나타사원>

<자이살메르사원>

티르탄카라상

3. 도시 공화국에서 태어난 석가

기원전 5세기, 강력한 철기를 가지고, 인도 북부(겐지스강가)에 살아남은 국가는 모두 16개국이었다. 그러나, 강대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는 모두 <군주국>이었다.

군주국에서는 국왕과 브라만들이 독단적으로 정치를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수드라 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윤회설>을 강조하였다. 수드라인 너희가 천민으로 태어난 이유는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너희는 이번 생애 내내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이 무렵, 석가는 기원전 566년, 도시국가인 네팔(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다. 석가가 살았던 지역은 크샤트리아와 바이샤가 많았던 도시 지역이었다. 당시 도시 국가에서는 2, 3계급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공화 부족들은 군주 부족과 달리 모든 일을 부족내 유력자들이 모여 회의하고 결정하였다. 신라의 화백회의와 같은 <만장일치제>가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반면, 군주 부족들은 군주와 신관이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공화국의 부족국가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국가들에 의해 하나하나 멸망해가고 있었다. 곧, 강력한 군주가 인도 북부 전체를 통일할지도 몰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석가는 브라만 신관들의 독선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리고, 약소국가의 2계급으로 태어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을까?

4. 석가 <사문>의 형성

석가는 브라만의 가르침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단지, 브라만에서 말하는 <생명과 윤회>를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는 생로병사를 느끼고자 여러 브라만 수행자들을 만났다. 그러던 중 29의 나이로 출가했다. 그 때, 갓 태어난 석가의 아들이 <라후라>였는데, <라후라>란 <장애물>이란 뜻이다. 석가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난 것이다.

석가가 맨 처음 스승으로 모신 사람은 선정주의자들이었다. 선정주의자들은 <착한 일>을 많이하면 <해탈>한다고 말했다. 석가는 모든 이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착한 일을 아무리 해도 해탈의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길을 떠난다.

석가가 두 번째로 택한 길은 <고행>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고행을 해도 <해탈>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석가가 마지막으로 택한 길은 <명상>이었다. 보리수 밑에서 명상을 하던 석가는 35의 나이에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된다. 보리수란, 깨달음의 나무란 뜻이다. 또, 깨달은 사람을 <붓다>라고 하고, 성자를 <모니>라고도 하는데, 보통 <석가모니> 또는 <석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가 명상으로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중도>였다. 선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극심한 고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가야한다는 것이다.

석가의 <중도>사상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는 구름과도 같은 제자들을 얻어 <교단 : 승가>를 만들었다. 승가란, 모든 자들이 평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동체 집단을 말한다.

석가가 만든 승단은, 공화국 체제와 비슷하다. 바르나 제도와는 달리, 모두가 평등하며, 서열은 먼저 들어온 순서로 정한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의식으로 뭉쳐진 그룹집단인 것이다.

불교도는 네 그룹으로 이루어진다. 남성 출가자(비구), 여성 출가자(비구니), 남성신도(우바새), 여성신도(우바이) 이다. 이들간의 차별은 없다. 물론 가장 똘똘한 인물들을 10대 제자로 두긴 했지만, 그것은 어느 한 분야의 능력이 출중한 인물들을 능력별로 인정해 준 것이다.

석가 사후, 석존의 가르침은 대부분 구전이었기 때문에 정리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을 정리한 사람은 100년 후 아소카왕 시대의 제자들이었다. 부처의 가르침을 경, 율법서를 율, 주석을 논 이라고 분류하여, 경,율,론 3장의 불교 지침이 성립된 것이다.

석가시대의 가르침을 보통 <원시불교 : 초기불교>라고 말한다. 원시불교란, <암송한 것>을 기억하여 가르침을 남긴 것이다. 석가와 같이 배우고 암송한 것을 함께 기억하고 되새겨 모아 적는다. 초기 석가의 가르침은 <아함경전>에 실려있다. 훗날, <아함경>으로 불리는 경전은 중국과 한반도에도 전파되었다. 경이 가르침이라면, 율은 율법서이다. 율은 출가자들이 지켜야할 조문들을 모두 모아놓은 조문집이다. 물론 주석인 <론>은 후대에 달아놓은 것들이다.

5. 석가의 가르침

석가의 핵심 가르침은 <번뇌>였다.

번뇌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고통과 고민>을 말한다. 보통 <고집멸도>라고 불리는 이 번뇌는, 고(고통), 집(고통의 원인), 멸(고통의 소멸), 도(소멸의 법도)를 총칭한다. 이 4가지 고통을 해결하는 과정을 <4제>라고 한다.

석가는 이 고통을 없애는 방법으로 8정도를 제시하였다. 8정도란, 고통을 없애기 위해 8가지를 바르게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지침이다.

올바른 견해(정견), 올바른 생각(정사유), 올바른 언어(정어), 올바른 행동(정업), 올바른 생활(정명), 올바른 노력(정정진), 올바른 기억(정념), 정신통일(정정) - 이 8가지를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8정도를 이끌어가는 방법이었다. 브라만에서는 우주의 근원인 브라만에서 충실하기 위해서 <계급에 맞는 착힌 일>을 하라고 말한다. 반면 자이나교 같은 사문에서는 철저하게 <고통스런 고행>으로 악업을 벗어나라고 말한다. 그래야 <해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가는 말한다. 선정이건, 고행 이건 단지 하나만으로 <해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중도>를 걸어야 한다고.... 그럼 왜 중도만이 고통을 없애주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정>은 영적인 측면을 주로 강조한다. <고행>은 육체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정신과 물질이 연결되어 일어난다.

석가가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은 상호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깨닫는 다는 사실 조차,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어떤 일을 겪지 않으면 깨달음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으로 얽혀서 성립되는 것이다. 이것을 <연기>라고 한다.

우주가 단지 브라만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물 자체가 인과관계에 의해 얽혀서 움직이고 있기에 절대적인 근본이라는 것은 없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어떤 원인에 의해 존재하는데, 어떻게 아트만(생명)이라는 본질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연기설>의 핵심은 이런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존재하는 것이 같이 존재한다.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그 현상의 원인이 있다. 원인이 없다면, 현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된다. 한마디로, 만물은 서로 의존하여, 서로의 원인도 되고 결과도 되는 것이다. <연기>의 본질을 알게 되었을 때,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었을 때 <해탈>하게 되는 것이다. <중도>를 모르고 한가지 길만을 추구하는 것을 <극단 : 탁자의 모서리>라고 말한다. <극단>은 <해탈>이 아니라 자신을 망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연기>의 세계를 깨닫는가?

석가는 깨달음을 아는 방법으로 삼법인(3개의 진리의 도장)을 말한다. <연기>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원인이 되어 돌고 돌기 때문에 결국 그 본질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이라는 3개의 진리로 표현된다.

제행무상이란? 제행은 <움직여 변한다>는 뜻이다. 무상은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 움직여 변하므로 결국 인연에 의해 연결된 세계는 사간에 따라 변하게 되어 사라진다는 것이다.

제법무아란? 제법은 <율법, 진리>를 말하고, 무아는 <나란 없다>는 뜻이다. 즉, 나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나란 육체와 정신, 생각, 역사 등등이 어떤 원인과 결과로서 만들어낸 순간적 존재이다. 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나이며, 내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브라만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아트만)이란 없다. 즉, 보편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열반적정이란? 열반은 <해탈>의 불교식 표현이고, 적정은 <소멸>을 말한다. 이것은 모든 것이 <연기>로서 돌고 도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고통과 번뇌>가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8정도를 행동으로 옮기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고통>이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지면 해탈한다는 것이다.

6. 석가의 가르침을 남긴 마가다국

석가의 이러한 불교 철학과 종단(승가)은, 갠지스 강 유역에 위치한 마가다국에 의해 보호되었다. 석가는 살아 생전에 갠지스 강 유역의 마가다 지방에서 깨달음을 찾으며 고행을 했었다. 또 석가가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포교 거점으로 삼았던 지역이 마가다 왕국이었다.

마가다 왕국은 북인도 16대 강국 중의 하나라 불교, 자이나교의 발상지로 불리는 국가이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석가를 신하로 끌어들이기 위해 영토를 주겠다는 말까지 했던 왕이다.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은 그 이후 불교와 자이나교의 성지가 되었다.

갠지스 유역을 통일했던 기원전 5세기의 마가다국과 달리 기원전 4세기의 마우리아 왕조는 북인도 전체를 통일하면서 불교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마가다 왕국의 후손으로서 아리안 전통 직계인 마우리아 3대왕 아쇼카는 불교사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석가의 연기설은 당시 통일국가 이념으로도 제격이었다. 연기설이란, 모든 사물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연결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것은 각 부족별로 흩어져있던 당시 사상 체계를 통합하는데 딱 좋은 사상이었다.

개체는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의 인과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즉, 개별적인 것들은 전체적인 것의 일부이다. 따라서 개별적인 부족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들은 좋던 싫던 다른 부족과의 관계에서 살아가게 되고, 궁극적으로 통일된 전체에 의해 규제받게 된다. 전체라는 것은 개별 부족을 넘어선 중앙집권국가의 지배자를 뜻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은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국가도 인연을 맺고 있다. 강력한 국왕이 출현한 것도 그 인과 관계의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국왕은 모든 백성을 때려잡는 국왕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는 슬기로운 지배자이다. 브라만 신앙에서 내려오는 정법(정의)의 지배자를 <전륜성왕>이라고 한다. 즉, 마우리아 왕조의 절대자 아쇼카 왕이 곧, 전륜성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쇼카 왕은 이 전륜성왕의 브라만 신화와 불교를 연결시켜 버렸다. 전륜성왕의 통치를 돕기 위해 <미륵불>이 지상으로 내려와 백성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로서 <미륵불> 신앙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신앙이 등장하였다.

아쇼카 왕은 전륜성왕과 미륵불 사상을 몸으로 실천하였다. 자신이 정법을 구현하는 왕이 되어 북인도를 통치함은 물론, 자신의 분신들을 주변국에 보내 불교의 참 뜻이 무엇인지를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남부의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도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한다. 멀리는 이집트,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불교라는 종교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소카 왕 때의 불교는 <소승불교>라는 초기 불교였다. 아직 불교는 출가자들 위주의 불교였고, 국왕은 불법을 지키는 호법왕이라고 여겨졌다. 부처가 되는 것은 개인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함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전륜성왕

그러나 아쇼카 왕 사후, 기원전 2세기 무렵 불교는 또 다른 격동을 겪게된다. 아쇼카 왕이 죽은 뒤 약해진 마우리아 왕조는 서쪽에서 밀려온 이민족들에 의해 분열된다. 그리고, 만민 구원을 외치는 서방 종교와 서아시아 밀교 등이 들어오면서 <대중 전체의 구원>을 생각하는 불교가 등장한다. 이 때의 불교를 <대승 불교>라고 하며, 대승 불교는 비단길 등 교역로를 따라 중국과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

자, 그럼 다음 장에서는 대승 불교 이야기와 동아시아 불교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여기서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나라까지 들어오게 된 <한국식 불교> 이야기이다. 동남 아시아로 내려간 소승 불교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겠다. 중국과 한반도로 넘어온 종파를 위주로 <대승 불교> 이야기를 좀 하고, 중국, 한반도, 왜로 넘어간 불교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 참고할 만한 책들

인도 정통철학과 대승불교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김선근 (동국대학교출판부, 2005년)
상세보기

불교의 영혼과 윤회관(신편)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오형근 (대승, 2005년)
상세보기

상식으로 만나는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계환 (정우서적, 2007년)
상세보기

불교가 좋다(개정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가와이 하야오 (동아시아, 2007년)
상세보기

인도불교의 변천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사사키 시즈카 (동국대학교출판부, 2007년)
상세보기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오강남 (현암사, 2006년)
상세보기

인도철학과 불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권오민 (민족사, 2004년)
상세보기

불교철학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칼루파하나 (천지, 1992년)
상세보기

인도사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김진섭 (지경사, 2007년)
상세보기

출동 시간 구조대. 4: 붓다의 발자국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류가미 (삼성출판사, 2008년)
상세보기

불타 석가모니:그 생애와 가르침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와타나베 쇼코 (동쪽나라, 2002년)
상세보기

석가모니(탐구시리즈:세계의 위인 13)
카테고리 유아
지은이 김미심 (국민서관, 2001년)
상세보기

석가모니의 역사적 진실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박병역 (국학자료원, 2003년)
상세보기

위대한 비구. 1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담마빨라 (열린경전, 2007년)
상세보기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동아시아 불교 전파사 - 2장. 연기설이 등장하다

두 번째 페이지에서는 석가가 불교를 전파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인도 사회의 도시국가체제 등장>을 통해 이야기하겠습니다.

1. 씨족공동체 사회의 해체

인도에 석가가 등장했던 5세기 무렵의 사회는 인도 사회의 변혁기였습니다. 이 시기는 역사 발전 단계로 보면 원시적인 씨족공동체 사회가 무너져 가고, 도시 국가들이 등장하는 시기입니다. 그리스로 말하자면 폴리스 성립기 정도이고, 중국으로 보자면 은왕조가 도시국가들을 모아서 왕조체제를 갖추는 수준이라고 하면 될까요?

문제는 씨족공동체 사회에서 가장 큰 정치적 기능을 담당했던 <제사> 기능이, 도시국가의 <정치기능>으로 넘어가는 변혁기라는 것에 있습니다. 즉, <하늘에 반항하면 벌이 내린다>는 고대적 관념으로 사회를 지배했던 브라만들에게, 이제 크샤트리아 계급이 <현실정치의 논리>도 <신성함>과 똑같은 정치기능을 내려야 한다고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 크샤트리아 계급은 도시국가의 왕족과 귀족이었고, 이들이 성장한 것은 씨족공동체적인 부락들을 통합하면서 정복전쟁을 활발히 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 영토를 넓힌 것은 크샤트리아 계급이었고, 이 크샤트리아 계급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하였던 것은 바로 상공업 계급인 바이샤였습니다.

바이샤와 크샤트리아는 새로운 사회에 새로운 이념 수립을 원하였습니다. 따라서 기존 브라만 교는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라만 내부 개혁을 추진하는 우파니샤드 철학의 등장, 고행을 강조하는 자이나교의 등장, 평등과 자비를 강조하는 불교의 등장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계급은 바로 <크샤트리아 계급>입니다.

실제 자이나교는 나타족 왕자인 바르다마나, 불교는 카빌라 공화국 출신인 고타마싯다르타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모두가 크샤트리아 계급이지요.

약 2500년 전 인도의 석가족의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 왕자로 태어났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태어날 때, 한 선인이 찾아와 "집에 있으면 왕위를 계승하여 전 세계를 통일하는 왕이 되고, 만약 출가하면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석가모니는 태어난지 7일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에 의해 양육되어 왕족의 교양에 필요한 학문과 기예를 배우면서 성장하였다. 16세에는 결혼을 하여 아들을 두기도 한다. 왕자로서 아주 유복한 생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의 허무함과 고통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였다. 어느 날 성문 밖으로 나가 병든 사람이 괴로워하는 모습과 죽은 사람을 보고, 인생의 괴로움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 29세에 성을 나와 진리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행의 길을 떠났다. 오랫동안의 고행과 수도하면서도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여 괴로워하던 그는, 어느 날 보리수나무 밑에 앉았다. 거기서 그는 진리를 깨치지 못하면 떠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사색과 정진을 거듭하여 마침내 부처가 되었다. 그는 인간을 괴롭게 하는 모든 것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후 그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제자가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제자들과 함께 중생들의 괴로움을 덜어 주기 위한 설법을 베풀어 불교를 널리 퍼트리다가 80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 중학교 2학년 도덕 교과서, 석가모니 -

석가모니라 칭할 때, 석가(釋迦)는 북인도에 살고 있던 샤키아(kya)라 불리는 한 부족의 총 칭이며, 모니(牟尼)는 성자를 의미하는 무니(muni)의 음사이다. 따라서 석가모니는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의미이다.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그가 세상의 진리를 깨달아 성 자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며, 같은 취지에서 세존(世尊:또는 釋尊)으로도 불리는 등 많은 호 칭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것이 `붓다`인데, 중국에서는 이를 음사하여 `불타`(佛 陀)라 하고, 더 약칭하여 `불`(佛)이라고도 부른다. 불교 특유의 용어로서 붓다는 `깨달은 자 `를 뜻하며, 교리의 전개 과정에서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구제자로서 다수의 붓다를 상정하 여 소위 `부처`로 통용된다. 남방불교에서는 `고타마 붓다`라고 부르는데, 고타마(Gotama: 산스크리트로는 Gautama)는 석가모니의 성이다.

- 출처는 모르겠음, 그냥 노트속 끄적... -

석가모니가 살았던 시대 상황에서 그는 브라만교의 차별성을 반대하고, 크샤트리아와 바이샤의 신분 성장을 추진하였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는 상공업에 대하여 호의적인 입장이었고, 계급 차별을 부인하였으며, 공동체 생활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2. 석가는 공화주의자였다.

석가가 태어날 당시 기원전 5세기 정황을 볼까요? 서양은 로마( Rome)가 천하를 통일하려는 발판을 구축하던 시기였고,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동방 페르시아와 맞먹을 정도로 소아시아 진출이 활발한 시기였습니다. 이란에서는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가 있었구요.  중국에서는 공자라는 이가 출현한 시기로 중국이 혼란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5세기 무렵 인도사회는 씨족공동체 사회가 점차 통합되어 <통합 국가>가 형성되는 단계에 있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 마가다국이 대표적인 통합국가(갠지스강 유역을 통합함)였지요.

문제는 당시 도시국가체제에 대한 논쟁이었는데, 인도의 도시국가는 왕국과 공화국 중 어느 체제가 더 어울리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석가는 공화국가 체제를 지지합니다.

당시 인도는 아리아인이 내려와 바르나 제도를 성립시킨 이후, 수많은 부족들이 난립하는 씨족공동체 사회였는데, 이들 씨족 공동체 부족들은 갠지스강과 인더스강 사이에 쭈욱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이들중 갠지스강 중류에는 코살라국과 마가다국이 대립하고 있었고, 갠지스강 남쪽에는 밧사국과 아반트 국이 있었습니다. 석가의 카빌라국은 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강한 국가들 사이에서 자치세력을 형성한 공화국국가였습니다. 이것은 공화국이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생존의 방법으로 택한 공화국 형태의 자치국가였죠.

석가는 이러한 강국들 사이에서 평등한 부족적인 전통을 계승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석가모니의 불교 교단 조직인 <승가> 역시 만장일치제도의 공화국을 모델로 한 교단 조직이었습니다. 이 석가의 교단 조직 자체가 씨족적 혈연 대립 감정 보다는 동일한 불교도, 동일한 공화국인 이라는 공동체적 생활을 강조하는 것이었죠.

3. 개체는 전체속의 한 인자로서 활동한다. - <연기설>

석가의 핵심적인 교리 내용중의 하나인 연기설이 등장한 역사적 배경도 바로 이 초부족적인 부족통합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석가의 연기설은 <개체를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전체 속의 하나의 인자>로 파악하는 상대주의적 입장입니다. 즉, 개체란 홀로 존재하는 독립 존재가 아니므로 상호 연계된 수많은 생-멸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곧, 부족원들이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부족을 넘어 다른 부족과의 관계에서도 초부족적인 통합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단서를 제공합니다.

연기설(緣起說)은 직역(直譯)하면 인연(因緣)으로 일어난다(起)는 뜻입니다. 그리고 인연이란 <원인>속에서 <자연스러움>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연기라는 말 자체도 원인과 결과에 따른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것으로, 부처는 모든 생멸의 변화에는 홀로 이루어진 것이 없으며, 전체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러한 연기설은 <윤회사상>을 다시 한번 크샤트리아식으로 재해석한 사상입니다. 모든 인연이 원인과 결과가 있다면, <윤회> 역시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여기에서의 윤회란 브라만교에서 말하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윤회개념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위해 석가는 8가지 수행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것을 팔정도라고 부릅니다.

올바른 견해(正見)로 올바르게 사유(正思)하고,

올바른 말(正語)로 올바르게 행동(正業)하고,

올바른 생활(正命)로 올바르게 노력(正精進)하고,

올바른 기억(正念)으로 올바른 명상(正定)을 하라.

이러한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마음의 번뇌와 속박에서 해방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마음에 의하여 진리를 깨우치는 열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석가의 연기설은 당시 크샤트리아로서 왕권을 강화하고 통일국가로 나아가는 <새로운 도시국가>들에게 이상적으로 보이는 이론이었습니다. 즉, 초부족적인 이념으로 부족을 통합하고, 그 통합원리로서 초부족적인 정신을 키울 수 있었으니까요. 따라서 기원전 5세기 북인도 갠지스강 유역을 통합한 마가다국은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로서 불교를 보호하면서 지역을 통일하였습니다.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1. 이 글에 대한 관련 사료는 이 사이트 검색창에서 자유롭게 검색가능합니다.(관련 검색어로 검색하세요)
   2. 이 글을 가져가실 때는 반드시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3. 관련 글 모음
방 : http://historia.tistory.com/category/동양사이야기/중국사이야기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동아시아 불교 전파사 - 1장.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되다

이번 페이지는 특별 기획으로 몇 편의 시리즈로 다루어 적어보겠습니다. 시리즈라고 해보았자, 생각나는 대로 적어서 오늘 출근 전에 다 마무리 하겠지만, 그래도 양은 많으니깐 시리즈가 되겠네요. 일단, 대학 때 모아논 자료들과 틈틈이 메모해논 자료들을 모두 꺼내놓고, 불교사에 대한 <전파과정 및 생성과정>을 포스팅 하려 합니다. 순서는 인도의 불교 - 중국의 불교 - 한국의 불교 - 일본의 불교 전파 과정으로 다루어 보고, 동남아시아나 소승불교 이야기는 차후 문제로 넘기도록 하죠.

이 포스트는 불교에 대한 종교사가 아니라, 불교가 아시아에 전파되면서 어떠한 역사적 상황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관점의 포스트입니다. 예전 기독교사나 카톨릭사를 포스팅할 때 처럼 종교적 관점에서 댓글 다시면, 답변 드릴 수 없습니다. 전 항상 강조하지만 <다믿교>입니다. 다~~~ 믿습니다.

1. 기원전 10세기 : 인도에 종교다운 종교가 등장하다 - 브라만교

석가가 태어날 당시의 인도는 기원전 6세기 무렵입니다. 인도는 기원전 10세기부터 5세기 무렵까지 아리아족의 시대였습니다. 아리아족은 기원전 1500년경 인더스강 상류에서 청동기를 사용하면서 펀자브 지방에 진출하였는데, 기원전 1000년경 철기 사용이 확장되면서 갠지스 강 유역까지 진출한 민족입니다.

이들은 철기를 이용하여 기존의 <인더스 문명>을 철저히 파괴하였고, 기존의 인더스 문명인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브라만교>를 성립시켰습니다. 브라만교는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로서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라는 기본적인 계급 차별 구조를 갖추고, 이 4계의 계급을 또 다시 수십개로 세분화하여 신분차별을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계급구조를 보통 <바르나 제도>라고 하는데, 서양인들에 의해 카스트 제도라고 불리게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카스트 제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르나 = 색, 인종>이라는 뜻이 원어로 정확하다고 합니다.

이 바르나 제도의 특징은 아리아인들이 스스로 지배집단이 되기 위하여 선주민들을 차별하기 위해 등장하였습니다. 문제는 아리아인의 가장 높은 특권계급이 <브라만 : 사제계급>이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고대 사회의 특징인 <제사, 군사>개념이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만큼, 제사를 담당하는 브라만이 1계급, 정치, 군사를 담당하는 크샤트리아가 2계급을 이루었던 것이죠. 3계급인 바이샤도 상공업에 종사하면서 나름대로의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4계급으로 분류된 수드라는 아리아인이 아닌 비아리아족으로서 수공업에 종사하거나 노예계급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브라만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브라만교 포스트를 보시고, 일단 여기서는 개념만 알고 넘어갑니다.

2. 기원전 5세기 : 반브라만 운동이 시작되면서 등장한 철학은 <윤회논쟁>을 가져오다.

기원전 5세기 무렵 인도에서는 이제 <브라만의 신성성>에 대한 반발운동이 전개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신적 존재>, <신의 은총>이라는 신성성을 매개로 지배집단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선민사상>이 많았습니다. 유대교가 그러하였고, 고대 동아시아의 천손강림 사상도 그러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 발전과정에서 점차 <신성성>보다는 <현실정치의 이해관계>로서 선민사상이 극복되고, 국왕권이 강화되듯이 인도에서도 제사계급인 브라만을 극복하고 <정치세력의 결집>을 추구하는 운동들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운동들은 곧 제 2, 3 계급은 크샤트리아(도시국가 지배집단)과 비이샤(상공업 집단)의 세력 확대를 가져왔고, 크샤트리아 중심의 반브라만 운동은 인도에서 큰 이슈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 반브라만 운동이 본격적으로 성렵된 것은 철기를 사용한 정복사업이 확장되고, 정복사업 속에서 상공업 계층의 활약 무대가 넓어진 것에서 기인합니다.

그 결과 브라만교 내부에서는 <윤회나 해탈>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우파니샤드 철학이 등장합니다. 원래 브라만교에서는 <윤회>를 강조합니다. 이 윤회란, 전생에 신의 은총을 받은 자는 지배집단이나 높은 계급으로, 전생에 신에게 불경함을 지은 자는 노예로 태어나므로, 과거의 업이 모여 끊임없이 전생과 내세에 영향을 준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파니샤드 철학은 우주인 브라만과 생명인 아트만을 알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한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배집단의 논리였던 브라만교를 철학적으로 만들어주는 데 큰 역활을 합니다.

하지만, 이 철학에서 주장한 <윤회>에 대한 개념에 대하여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의 입장은 사뭇 달랐습니다. 특히 크샤트리아 계급은 브라만의 <윤회>개념이 너무 브라만 계급 위주라는 것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3. 자이나교의 등장 - 윤회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고행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이러한 우파니샤드 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윤회개념>을 종교적인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나타족의 왕자인 <바르다마나>입니다. 그는 브라만의 형식적인 제사라던가 신분차별에 반대하면서, 형식보다는 실제적 수행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그가 주장한 이러한 내용은 곧 <자이나교>의 성립으로 완성되는데, 자이나교는 3가지 내용을 통하여 브라만교를 비판합니다.

1. 인간의 구원은 형식적인 제사와 신의 은총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고행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2. 인간과 자연은 근본적으로 평등한 우주 속의 생명(아트만)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살생은 금해야 한다.
   3. 모든 인간은 자연 속에서 신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계급에 따른 불평등은 있을 수 없다

이 자이나교의 교리는 브라만의 형식적인 측면을 실제적 <수행>으로 바꾸고, 차별적인 계급구조를 <평등한 부족개념>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윤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 쯤 죄를 짓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영혼에 때가 끼게 됩니다. 단지, 그 때가 적게 끼는가 많이 끼는가의 차이로 내세에 <좋은 윤회>인가, <나쁜 윤회>인가가 결정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윤회 자체를 부인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영혼에 낀 때를 제거하여 윤회를 벗어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바로 <혹독한 수련>, 즉 고행입니다. 고행을 해야 천상세계로 올라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 현실의 고통을 참아야 합니다. 이 고통을 참는 다는 것에 <현세의 계급구조>는 더 이상 차별적일 수 없습니다. 단지, 낮은 계급은 더 많은 때가 끼었으므로 더 많은 고행을 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모두가 <해탈>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반대로 브라만교에서는 <수드라>는 절대 현세에서 해탈할 수 없으며, 수드라가 지배집단에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 세상에서 <수드라>가 아닌 다른 계급으로 윤회하여, <다다음 내세에 해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더 많은 고행>을 낮은 계급에 강조하는 것 역시 완전한 평등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4. 불교 - 윤회는 고행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교는 자이나교의 이론에서 더 한걸음 진보적으로 나아갑니다. 불교는 윤회라는 개념을 다시 해석합니다. 즉, 윤회는 영혼에 때가 끼어 가혹한 수행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의 등장이 인도 사회의 큰 충격이었던 것은 <윤회>를 깨달음을 통한 <해탈>로 규정함으로서 <현세의 신분 계급>을 부정했다는 점입니다. 원래의 윤회설은 지배집단이 수드라 집단을 지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지배집단은, 수드라 집단에게 <너희는 전생에 악한 일을 많이 해서 수드라로 태어났어. 지금 너희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어>라고 규정하였고, 수드라가 지배집단에 충성함으로서 다음 세상에서 <아주 조금>의 악업을 씻을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브라만교에서는 무서운 내세를 당하지 않으려고 체계적이고 신성적인 <제사의식>이 강조되었고, 수드라는 절대적인 복종만이 강요되었습니다.

불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크샤트리아의 반발입니다. 크샤트리아와 바이샤는 <브라만>이 아니라고 해도 모두가 똑같이 <해탈>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종교교리나 이론면에서 전문가인 브라만과 싸워 이길 길이 없는 2, 3계급은 아주 단순한 논리로 <브라만>에 저항합니다. 이론보다는 <깨달음>만 있으면 된다고....

이 깨달음의 방법이 바로 불교의 팔정도와 수행입니다. 그리고, 깨달음의 본체는 자비와 평등입니다. 이 자비와 평등을 깨달은 자는 계급적 차별이 무의미함을 알게 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인도의 불교 전개과정과 중국으로의 전파과정을 한번 볼까요?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1. 이 글에 대한 관련 사료는 이 사이트 검색창에서 자유롭게 검색가능합니다.(관련 검색어로 검색하세요)
   2. 이 글을 가져가실 때는 반드시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3. 관련 글 모음
방 : http://historia.tistory.com/category/동양사이야기/중국사이야기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