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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불교

이차돈의 순교 이차돈의 순교 예전에 법흥대왕이 자극전에서 등극했을 때 동쪽 지역을 살펴보시고 말씀하셨다. 이에 조정 신하들은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만 나라를 다스리는 대의만을 지킬 뿐, 절을 세우겠다는 높은 계책은 따르지 않았다. 이 때 사인 내양자가 있었으니, 성은 박이요, 자는 염촉 즉 이차돈이었다. 이차돈은 왕의 얼굴을 쳐다보고 심정을 눈치채어 왕에게 아뢰었다. 이에 대왕은 위엄을 갖추고 무시무시한 형구를 사방에 벌려놓고, 믓 신하들을불러 물었다. 이에 뭇 신하들은 벌벌 떨면서 황급히 맹세하고 손으로 동서를 가리었다. 대왕은 사인(이차돈)을 불러 이 일을 문책하고, 분노하여 베어 죽이라고 명하였다. 옥리가 목을 베너 허연 젖이 한 길이나 솟았다. ..... 드디어 북산 서쪽 고개에 장사하였다. 나인들은.. 더보기
신라 - 불교 전파 - 묵호자 , 아도본비 신라의 불교 전파 (1) 신라본기 4권에 이런 말이 있다. 제 19대 눌지왕 때 사문 묵호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에 이르니, 고을 사람 모례는 자기 집 안에 굴을 파서 방을 만들고 묵호자를 머물도록 하였다. 이 때 양나라에서 사신을 시켜 옷가지와 향물을 보내왔는데, 신라 임금과 신하는 그 이름과 쓰임새를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향을 싸서 널리 나라안을 다니면서 묻게 하였다. 묵호자가 이를 보고 말하였다. 이 때 왕녀가 병이 위급해서 묵호자를 불러다가 향을 피우고 소원을 말하니 병이 즉시 나았다. 왕이 기뻐하며 예물을 후히 주었는데, 잠시 뒤 묵호자가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2) 또 21대 비처왕(소지왕) 때 아도 화상이란 이가 시종을 데리고 역시 모례의 집으로 왔는데 모습이 묵호자와 비슷..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