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이야기 1> - 일본의 신화 편

신화는 역사 속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합니다. 신들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질 수도 있고, 그들의 문화 양식을 대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화가 설화와 다른 점은, 말 그대로 <신들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서 그 이야기 자체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이지요. 예로, 단군신화에서의 환인의 의미는 우리 민족과 문화의 기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역사는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신화>는 그 공동체를 <이해>하는 수단이지 신화 자체로서 이해하지는 않으니까요.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그대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푸코의 해석에 따르면 신화 속에는 그 사회상이 녹아있다고 합니다. 곰과 호랑이 이야기에는 곰부족과 호랑이 부족이라는 토템이 있고, 당시가 청동기 사회구, 농경을 했구... 어쩌고의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죠.

신화와 달리 설화는 인간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의 이야기는 신화이지만, 지상에서 국가를 세운 주몽과 온조는 역경을 딛고 영웅이 되어가는 인간의 이야기이죠. 그러나, 사실 건국이야기를 다룰 때, 신화와 설화를 굳이 구분하려하지 않습니다. 설화 속의 영웅들은 대부분 천손의 자손으로 나오거든요. 아무래도 하늘의 자손이라고 해야 뽀대가 날테니...

오늘은 일본의 신화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일본은 다른 나라와 달리 신화 이야기를 국가적 차원에서 각색한 나라입니다. 그 이유는 일본 천황가가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강림>의 이데올로기를 전 신민에게 주입하기 위해서였죠. 천황가가 구체적으로 신화를 재창조한 책이 <고사기>라는 책의 상권입니다. 그럼 내용을 한번 볼까요?

일본의 신화

세상이 시작될 때에는 하늘과 땅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탄생의 시작엔 어둠만이 있었고, 질서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죠.

어둠과 무질서는 세상에 최초의 <존재>를 만들었습니다. 그 최초의 존재가 <음, 양>이었죠. 음과 양은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의 존재가 없다면 다른 하나도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음이 없으면, 그 반대개념인 양이라는 말도 필요없으니까요.

음과 양이라는 대립되는 존재는 하늘과 땅이라는 대립되는 존재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신은 하늘에서 음과 양의 기운으로 만들어졌죠.

하늘의 천상계에서 최초로 태어난 신은 밝음의 신 3명이었습니다. 이 하늘의 신들이 이자나키라는 남자 신과 이자나미라는 여자신을 낳았습니다. 즉, 남매신이 탄생한 것이죠.

천상계에 머물고 있던 최초의 신들은 이자나키와 이자나미에게 물 위를 떠다니는 대륙을 평화롭게 만들고, 고정시켜놓으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늘 신들은 하늘의 창을 주어 그 임무를 남매신에게 맡긴 것이죠.

남매 신은 하늘의 구름다리에 서서 그 창을 이용하여 바닷물을 저어 올렸습니다. 그러자 바닷물이 창에 의해 휘감기고 떨어지면서 딱딱하게 굳어 버렸는데, 이렇게 해서 생긴 섬이 오노고로 섬이었습니다. 이것이 곧 일본이라는 나라의 시초입니다.

남매 신은 그 섬을 자신들의 터전으로 삼았습니다. 그 섬에서 하늘까지 이어지는 기둥을 세우고 큰 전각을 만들었습니다. 집을 만들자 남자신 이자나키와 여자신 이자나미는 남매가 아닌 부부로서 연을 맺고, 신성한 교접을 통해 국토를 낳기로 결정합니다.

신들이 신성한 교접을 할 때 여신은 말을 해서는 안되는데, 이자나미가 말을 하는 바람에 첫 번째 태어난 자식은 거머리였습니다. 이자나키는 아자나미를 나무라면서 다음 교접 때에는 자신이 먼저 말을 하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여자신보다 남자 신이 우월하다는 관념이 있네요. 남자 신이 정력을 다하자 제대로 된 국토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자나미가 낳으려고 한 신은 불의 신인 카구쓰치였습니다. 그러나, 불의 신의 양의 기운이 너무 강하여 이자나미는 생식기에 화상을 입게 되었고, 결국 병들어 죽게 됩니다. 일본 신화에 성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일본인들이 <성>이라는 것을 상당히 자연스런 현상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자나키는 이자나미가 죽자, 아내를 죽이면서 태어난 불의 신 카구쓰치에가 원한을 갖게 됩니다. 이자나키는 카구쓰치를 베어 죽여 버렸습니다. 불의 신인 카구쓰치가 죽자 그의 피가 튀었고, 카구쓰치의 피와 살들은 다른 신들이 되어 신들이 계속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자나키는 이자나미의 죽음을 그러워하며 실의에 빠집니다. 이자나키는 결국 이자나미를 보고자 지옥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이자니키는 이자나미가 말한 지옥의 금기를 잊어 버리고 맙니다.

이자나미는 이자나키에게 절대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만들고 지킬 것을 요구했는데, 그 이유는 죽음의 세계에 있는 그녀는 구더기로 몸이 덮혀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이자니키는 이자나미의 얼굴을 보았고, 너무 무서워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이자나미는 남편을 뒤쫒아 가면서, 이자나키가 자신을 모욕하였고 하면서 오히려 이자나키를 공격합니다.

이자나미는 도망가는 남편에게 <당신 나라의 사람들을 하루에 천명씩 저승으로 데려가겠다>라고 저주합니다. 그러자, 이자나키는 <그럼 하루에 천오백개명이 태어나도록 탄생방을 마련하겠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이후 태어남과 죽음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은 이자나미를 황천길의 신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지옥에 다녀온 이자나키는 실의에 빠집니다. 그는 지옥에서 묻은 때를 씻는 다며 목욕을 하는데, 이 때 많은 신들이 이자나키의 몸에서 태어납니다.

1번째 태어난 신은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 여신이였습니다. 태양은 대부분의 신화에서 농경과 풍요를 상징하죠.

2번째로 태어난 신은 달의 신(역법의 신)인 츠쿠요미였습니다. 양이 태어났으니, 다음은 음이 태어난 것이죠.

3번째로 태어난 것은 전투의 신인 스사노였습니다. 일본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겠네요.

이자나키는 이 3명의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버립니다. 아마테라스는 하늘과 낮을, 쯔쿠요미는 밤을, 스사노는 바다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이라는 섬은 결국 하늘과 밤, 낮, 그리고 바다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죠.

여신 아마테라스는 자애롭게 하늘을 다스렸고, 밤은 쯔쿠요미에 의해 포근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다의 신 스사노는 어머니인 이자나미가 보고 싶다며 엉엉 울었고, 바다를 성나게 하였습니다. 이자나키는 화가 나서 스사노를 추방해버립니다.

스사노는 여신 아마테라스에게 몸을 의탁합니다. 아마테라스는 스사노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스사노와의 내기에서 지는 바람에 그를 돌봐주게 됩니다.

그러나, 스사노는 점점 아마테라스의 말을 듣지 않았고, 자신의 힘을 자랑하기만 하였씁니다. 어느날 스사노는 아마테라스의 시녀를 죽여 버리기 까지 하였습니다. 여신 아마테라스는 너무 놀라 동굴 안으로 숨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가 사라지자 세상은 온통 암흑이 되었습니다. 천상계의 모든 신들은 아마테라스를 겨우 달래어 다시 동굴 밖으로 나오게 하고, 스사노는 추방해 버렸습니다.

스사노는 추방당하여 지상으로 왔습니다. 지상에서 그는 사람들을 괴롭히던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하여 지상 사람들의 영웅이 됩니다.

지상의 사람들은 스사노의 후손인 오쿠니누스를 지상의 지배자로 존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쿠니누시는 지상국가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하고 백성들을 잘 다스려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천상계를 다스리던 아마테라스는 스사노와 그 후손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테라스는 자신의 후손인 히노호니니기에게 명하여 지상을 다스리라고 하였씁니다. 히노호니니기가 지상으로 내려오자 지상의 왕인 오쿠니누시는 히노호니니기에게 국가를 물려주었습니다.

히노호니니기가 천상계의 명령을 받고 지상으로 내려온 사건을 <천손강림>이라고 합니다. 일본이라는 곳의 역사는 이 천손강림에서 비롯됩니다. 일본은 하늘의 명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며, 하늘이 아들이 이어서 지배하는 나라라는 명분이 생긴 것이지요.

이렇게 하늘의 자손의 피를 받은 자들이 대대로 <천황>이 되어 일본을 다스립니다. 일본 천황가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신화는 7-9세기를 거치면서 고사기와 일본서기 등으로 재편집 되었고, 천황가의 권력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신성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놓았습니다. 일본의 천황가는 정권이 누구로 바뀌든 간에 끝까지 지속되었고, 하늘의 후예들라는 명분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답니다.

신화의 위력이라는 것이 최소한 일본에서는 대단한 것인가 봅니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일본의 고대 역사서 - 고사기, 일본서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1.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편찬 목적은?

고사기는 최초로 일본 역사를 체계적으로 편찬한 책입니다. 고사기는 712년, 그리고 얼마후에 720년경에 일본서기가 편찬되었지요. 이 2권은 모두 덴무 천황의 명으로 제작됩니다. 덴무천황이 누구인지는 일본사이야기 7번에서 얘기했죠? 가장 유약한 왕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무력을 획득하여 일본 천황가를 중앙집권화 시킨 그 인물입니다.

보통 중앙집권화가 완성되면 그 강력한 왕권에 걸맞는 역사서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가까이 우리 나라만 한번 찾아볼까요? 신라에서 편찬된 국사는 진흥왕이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할 때 신라 왕실의 권위를 알리고, 진골귀족의 계보를 정리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고구려의 유기와 신집도 고구려의 기상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고, 백제의 서기도 백제가 동아시아 상권을 주름잡고, 중국 2군에 영향력을 펼칠 때, 왕실계보를 정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도 덴무천황이라는 가장 강력한 천황권 밑에서 편찬됩니다.(시작은 덴무찬황 때이지만, 워낙 방대한 사업이라 끝나는 것은 후대의 천황대일입니다.) 덴무천황은 황실의 계보를 남기기 위해 전승자를 찾아서 황실계보를 암기시킵니다. 이 황실 계보를 <제기>라고 합니다. 또 <구사>라고 불리는 신화와 설화도 전승자에게 암기시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암기시킨 내용이 이후 유실될 것을 염려하여 암기한 내용을 책으로 적으로 명하였는데, 이것이 <고사기>라는 일본 최초의 역사서입니다.

2. 고사기의 내용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고사기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본 덴무천황기부터 편찬하기 시작한 일본 천황가의 역사라고 보면 됩니다. 이 이야기는 3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 중, 하의 권은 각각 중심 줄거리가 있습니다. 상권은 전설속의 신들의 이야기입니다.(이 신화이야기는 일본사 이야기 2번에서 다루었습니다.) 중권과 하권은 그 신이 천손강림을 하여 지상의 천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천황가의 계보와 황태자들을 중심으로 엮은 이야기입니다. 단군신화와 비슷한 맥락으로 구성된 이야기이지요. 그러나 단군신화와 다른 점은 당시 천손의 후예라는 천황가에서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약간 객관적 근거가 없이 적었다는 점이 좀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초기에는 고사기를 사서로 다루었지만, 지금은 스스로도 상, 중, 하 전체를 한데 묶어 일본 신화이야기로 보는 관점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 고사기의 편찬 목적은 진신의 난(일본사 이야기 7편 참조)을 넘긴 덴무천황이 지방 호족들의 도전을 사전에 차단하고, 천황의 신성함을 대외에 과시할 목적으로 만들었죠. 따라서 이 책은 정사라기 보다는 천황가의 개인적 소장물로 만든 책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당시 일본이 천황권의 전성기이자, 불교문화의 전성기라는 점입니다. 특히, 한반도에서 불교를 전래한 이래로 한반도 불교에서 전래된 설화들이 일본에 많이 유입되었는데, 이러한 측면들이 고사기에는 많이 유입되어 있습니다. 또 이 고사기에 나오는 일본 신화는 각종 세계 신화적인 내용들이 많이 유입되어 있다고 일본측이 주장합니다. 즉, 중국, 한반도, 태평양, 그리스 신화의 내용과 비슷한 내용도 많다고 주장하는데, 일본이 주장하는 그리스 신화까지의 지역확대는 좀 무리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반도 설화가 재일 많다고 보는게 타당하죠.

3. 고사기의 실제 내용

상권의 내용 요약 - 일본의 신화 이야기

천지가 처음 태어날 때 시작인 어둠이었고, 무질서였다. 이 어둠과 무질서 속에서 양과 음이 생겼다. 이 양과 음은 각각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 하늘에서는 천상계가 있어 세 명의 신이 출현하였는데, 이 신들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남매 신을 낳았다.

이 남매 신은 결혼하여 새로운 섬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들이 결혼하면서 낳은 섬들이 바로 지금의 일본 열도가 되었다. 이들은 일본 열도를 만든 뒤 태양의 신(아마테라스), 달과 역법의 신(츠쿠요미), 전투의 신(스사노)를 낳았다. 이자나미는 불의 신도 낳으려 했지만, 그 뜨거운 불의 열기 때문에 호히려 죽고 말았다.

이자나기는 아자나미가 죽자 실의에 빠져 그녀를 만나러 지옥으로 간다. 그러나 지옥에서 무서운 모습으로 변해있는 이자나미를 보고는 놀라서 도망가 버린다. 이자나기는 실의에 빠져 천상계를 아마테라스에게 넘긴다.

아마테라스는 천상계를 잘 다스렸지만, 스사노가 악행을 저지르며 형의 말을 듣지 않자 분노하여 숨어 버렸다. 그래서 태양의 신이 사라진 지상에서는 밤이 계속된다. 신들은 당황해서 아마테라스에게 돌아오라고 사정하였고, 아마테라스는 신들이 주선한 잔치에 감동받아 돌아오게된다. 그리고 아마테라스는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던 동생 스사노를 천상계에서 추방하였다.

스사노는 일본열도로 내려왔다. 그는 사람들을 괴롭하던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하고 영웅이 되었고, 지상은 스사노의 후손인 오쿠니누시가 지배하게 되었다. 오쿠니누시는 지상국가 건설에 힘쓰며 백성들을 잘 다스렸지만, 천상계의 아마테라스는 그 자손인 히노호니니기에게 명하여 지상을 다스리라고 하였다. 히노호니니기는 지상으로 내려와 오쿠니누시의 국가를 물려받고 지상을 다스리게 되었다.

히노호니니기가 천상계의 명령을 받고 내려온 것을 천손강림이라고 한다. 천손강림 이후 일본열도는 하늘의 아들이 지배한다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국가를 다스리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후예가 바로 천황이다. 천황가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이 상권의 내용을 우리 나라 사람들 중에서는 한국 신화를 가져다 베낀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조신 아마테리스는 해모수로, 천상계 이야기는 환인이야기로 파악하는 것이 그것인데, 이렇게 까지 비약하는 것은 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동아시아 신화는 다 비슷비슷하거든요. 일본신화가 우리나라 신화를 베낀 것이라고 너무 강하게 주장하면, 우리 신화는 중국이나 러시아 신화를 베낀 것이 됩니다. 사실 시기를 막론하고 동아시아 설화는 다 공통적으로 천손의 강림, 인수교혼(동물과 사람이 결혼하는 것), 곰이 등장하는 설화가 대부분 다 나옵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런 설화를 유도했다고 보는 편이 좋지요. 또는 북방에서 설화가 차츰 남방으로 전승되었다는 견해도 있구요.

중권의 내용 요약 - 진무천황과 신공황후(4대 천황 ~ 15대)

중권의 내용은 천손강림 이후 4대 진무천황이 신의 후손으로서 일본열도에 실력을 행사하였고, 일본 열도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이후 천황가가 발전해 나간다는 내용입니다. 진무천황 이후 후손들 얘기는 그저 그렇고, 중요한 것은 야먀타이국의 히미코(신공황후)의 이야기입니다. 고사기에서는 진구우라는 여자로 나옵니다만, 몇 년뒤 편천된 일본서기에서 신공황후로 격상시킵니다. 신공황후는 일본에서의 강력한 세력을 구가한 이후, 중국에 사신을 보내 일본이라는 나라를 동아시아에 각인시켰고, 한반도 남부를 점령해 200년 동안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고사기의 허황된 면을 발견합니다. 일본 천황가 이야기야 허구이든 진실이든 무시하면 되지만, 한반도 자체를 일본이 점령했다는 이야기는 우리로서는 이 책이 뭐하는 책인가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충분한 소재거리가 됩니다. (일본사 이야기 2편의 야마타이국을 참조하세요)

하권의 내용 요약 - 16대 천황 ~ 33대 천황

하권의 내용은 16대 천황에서 33대 천황까지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관심가는 부분은 이 하권의 주요 줄거리가 야마토 정권에서의 천황가 이야기라는 점인데, 야마토 정권은 일본의 소국들이 뭉쳐서 만든 지방 호족들의 연합국가였다는 점입니다. 천황은 그 연합정권의 수장 성격이었지요. 따라서 천황가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 세력과의 끊임없는 사투를 벌였고, 또 지방 유력 호족의 가문에서 천황이 나오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즉, 당시 호족가문과 천황가는 권력구도에 따라 상호 결혼을 하였고, 당시 남매간에 결혼까지 있었을 정도였기 때문에 유력호족가문에서 천황과 이어지는 핏줄만 있으면 그 기문소속의 천황을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유력한 가문으로 천황가를 휘어잡고, 불교를 수용하여 강력한 유력가문이자 천황가를 겸했던 가문이 바로 소가씨였습니다. (일본사 이야기 6 - 소가씨 이야기 참조) 특히 소가씨의 33대 천황인 스이코(소가노 아마코) 천황은 쇼토쿠 태자(소가노 쇼토쿠)와 함께 아스카 문화를 주도하면서 일본 문화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후 소가논 집단의 멸망 부분은 나오지 않고 끝납니다. 다이카 개신 이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지요.

4. 그럼 일본 서기는 왜 편찬한 거야?

고사기가 편찬된 시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본서기가 편찬됩니다. 이 두 책의 공통점은 고대 신화부터 서술하여 고대 신화가 천황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 서술 방향을 잡아 천황가에 신성성을 부여해 지방호족가문보다 우월함을 과시하고, 국민을 지배함에 있어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역사책의 차이점은 정사인가, 개인적 장서인가의 차이입니다. 고사기는 천황가가 개인적으로 보존할 개인적 장서이므로, 그 후속편이 없고, 이야기도 고대신과 천황가의 족보 연결차원에서 끝납니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당시 중국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하는 분위기에서 중국식 정사와 같이 공식적으로 편찬한 책입니다. 따라서 일본서기 이후에는 속일본기, 일본후기 등등이 계속 편찬되었고, 이러한 일본의 정사들을 한번에 묶어 <육국사>라고 부릅니다. 이 책은 중국사서와 마찬가지로 편년체입니다. 일본이 중세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육국사는 <신의 책>으로 여겨지면서, 심지어 역사가들까지도 이 책을 숭상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세계 2차대전 이전까지는 이 육국사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없이 그저 신성한 책으로서 이 일본서기를 바라보게 된 것이지요. 그 이유는 일본의 천황가의 영향력이 너무 거대하고, 신성화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제는 그냥 신화수준인 고사기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수 있지만, 정사인 일본서기는 우리 한반도의 역사서술 부분에서 우리나라 및 중국측의 기록과 너무 달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본서기가 우리 역사서 및 중국사서를 참조하면서 천황가에 불리한 부분은 삭제하거나 왜곡한 부분이 눈에 많이 띄는데, 일본측에서는 그 부분에 대하여 우리 역사서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주장합니다.

5. 그럼 일본 서기에 기록된 한반도 관련 역사의 논쟁점들...

신공황후기 설화 이야기도 연대 차이가 심하다.

고대 일본 천황가의 기록들은 기원후 150년 이전의 기록들이 우리 사서나 중국사서에 비해 그 연도차가 너무 큽니다.  

삼국유사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가 일본 서기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삼국유사의 이야기에 나오는 세오녀는 잔잔한 사랑이야기 인데, 일본서기에서는 영웅의 면모를 가진 여걸로 나오죠.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기의 왕들이 서로 맞지 않습니다. 거의 50년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우리 설화에 나오는 망부석 이야기도 삼국유사와 일본서기의 기록이 200년 이상 차이나고, 신라와 일본이 전쟁을 했다는 기록들을 살펴보면 맞는 연대가 거의 없습니다. 수많은 기록들이 거의 다 연대가 안 맞습니다. 대체 이 일본서기는 무슨 책을 근거로 연대를 상정한 것일까요?

신공황후의 신라 정복설

일본 서기 신공황후기에는 일본이 신라, 백제를 평정하고 고구려가 일본에 조공을 바쳤다고 합니다. 당시 상황으로 거의 말이 안되는 해석인데요. 또, 일본은 이 기록을 신빙성 있게 하기 위하여 광개토대왕릉비문을 위조하기도 했습니다.(이 이야기는 고구려사 편에 아주아주 자세히 기록할 것이구요, 또 광개토대왕릉비 전문을 한국사 사료방에 전문 다 옮겨 놓았습니다.)

즉, 광개토대왕이 백제와 일본을 공격했다는 비석 내용을 글자 몇글자 바꾸어서, 일본이 바다를 건너 신라를 정벌했다는 이야기로 완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것을 통해 일본은 그들이 고대 한반도 남부를 200년간 경영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삼습니다. 미칠 노릇이지요.

칠지도 문제

칠지도 문제는 고대 한국과 일본사에서 큰 논점이 되는 문제중 하나입니다. 칠지도(일곱가지가 난 칼)라는 칼을 백제 부흥기 때 성왕이 일본에 전해주었는데, 이 전해주었다는 부분의 용어가 과연 <하사하였다>인가 <바쳤다>인가라는 해석을 둘러싼 논쟁입니다. 한자로 <공공>이라는 글자는 주었다라는 뜻인데, 이것은 해석하기 따라서 하사도 되고, 바친 것도 되거든요.

우리는 당연히 당시 역사적 상황으로 보아 백제가 일본에 하사한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일본에서는 이것을 당시 중앙집권화 하던 일본에 바친 것이라고 해석힙니다.

-----------------------------------

이러한 논점들을 살펴보면 고대 일본서기에서 최소한 신공황후기 이전의 기록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일본 학자들도 일본서기를 볼 때, 신공황후기 이전의 기록은 잘 인용안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라고 하는군요. 일본에서는 국가가 편찬한 정사에서 조차 고대 신화와 실제 역사가 섞여 있으니, 역사가들은 일본 사서를 읽을 때 그 내용을 잘 판단하고, 인용해야 할 듯 싶습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역사왜곡이나, 일본 사서의 문제점을 심도있게 따지지 않고, 그냥 객관적 시선에서 적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고대사편에서 다룰 때는 조목조목 학술적인 근거를 들어 아주 신~~랄하게 비판할 예정입니다. 그렇다고 환단고기와 같이 신화적 성격으로 비판하지는 않을 것이며, 역사적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잘못된 점들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겠습니다. 이만 적고 공부하러 가야겠네요... 오늘은 휴가라 직장을 쉽니다. 하하하...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글을 퍼가실 땐 댓글을 남겨주시는 것...인터넷 문화의 기본입니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신화로 본 일본과 야마타이 국

1. 일본의 신화

일본의 신화는 일본서기에 쓰여 있습니다. 일본서기는 니혼쇼키라고 일본식으로 많이 부르는데, 이 일본서기의 이야기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많고, 중국측 기록에 맞지 않는 부분도 많으며, 특히 한반도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 부분에서는 당시 한반도 정세와 너무 안 맞아서 위작이란 말을 많이 듣기도 하고, 사료의 신빙성이 없다는 말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일본의 정사인 만큼 이 책을 인용하여 신화를 서술해볼까 합니다. 어짜피 신화란 있었던 사실이라기 보다는 그 당시 사회상을 알려주는 key의 역할을 하는 편이니까요.

천지가 처음 태어날 때 시작인 어둠이었고, 무질서였다. 이 어둠과 무질서 속에서 양과 음이 생겼다. 이 양과 음은 각각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 하늘에서는 천상계가 있어 세 명의 신이 출현하였는데, 이 신들은 아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남매 신을 낳았다.

이 남매 신은 결혼하여 새로운 섬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들이 결혼하면서 낳은 섬들이 바로 지금의 일본 열도가 되었다. 이들은 일본 열도를 만든 뒤 태양의 신(아마테라스), 달과 역법의 신(츠쿠요미), 전투의 신(스사노)를 낳았다. 이자나미는 불의 신도 낳으려 했지만, 그 뜨거운 불의 열기 때문에 호히려 죽고 말았다.

이자나기는 아자나미가 죽자 실의에 빠져 그녀를 만나러 지옥으로 간다. 그러나 지옥에서 무서운 모습으로 변해있는 이자나미를 보고는 놀라서 도망가 버린다. 이자나기는 실의에 빠져 천상계를 아마테라스에게 넘긴다.

아마테라스는 천상계를 잘 다스렸지만, 스사노가 악행을 저지르며 형의 말을 듣지 않자 분노하여 숨어 버렸다. 그래서 태양의 신이 사라진 지상에서는 밤이 계속된다. 신들은 당황해서 아마테라스에게 돌아오라고 사정하였고, 아마테라스는 신들이 주선한 잔치에 감동받아 돌아오게된다. 그리고 아마테라스는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던 동생 스사노를 천상계에서 추방하였다.

스사노는 일본열도로 내려왔다. 그는 사람들을 괴롭하던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하고 영웅이 되었고, 지상은 스사노의 후손인 오쿠니누시가 지배하게 되었다. 오쿠니누시는 지상국가 건설에 힘쓰며 백성들을 잘 다스렸지만, 천상계의 아마테라스는 그 자손인 히노호니니기에게 명하여 지상을 다스리라고 하였다. 히노호니니기는 지상으로 내려와 오쿠니누시의 국가를 물려받고 지상을 다스리게 되었다.

히노호니니기가 천상계의 명령을 받고 내려온 것을 천손강림이라고 한다. 천손강림 이후 일본열도는 하늘의 아들이 지배한다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국가를 다스리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후예가 바로 천황이다. 천황가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2. 일본 고대의 야마타이국 논쟁

일본서기에는 일본의 전설적인 여왕 신공황후가 나옵니다. 원래 일본에 히미코라는 여군장이 있었는데, 일본역사책은 이 히미코를 일본의 절대군주인 신공황후로 상정한 것이지요. 이 신공황후는 야마타이국을 이끌고 있었고 야마타이 국은 곧 일본의 야마토 조정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이 야마타이국은 곧 야마토 지방(일본 나라현)에 있다고 믿은 것이지요. 전편에서 지도로 보았지요? 나라의 위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일본의 고대 강국 야마타이국이라는 여왕의 국가가 어떤 성격의 국가이며, 그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일본인들도 알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한국사에서 고조선의 정확한 위치가 요동인지, 평양인지, 아니면 수도가 이동하였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일본정사인 일본서기로 따지면 당연히 야마타이국은 야마토 정권과 연결되는 나라지방입니다. 그러나 중국책인 위지 왜인전에 기록된 일본의 위치와 방향을 따라가보면 방향이 일치하는 곳은 규슈지방(위 지도의 기타규수-나가사키 근처)입니다.

이것은 일본 고대사에 큰 숙제를 던져줍니다. 만약 야마토 지방이 일본 고대 강국인 야마타이국이라면 일본은 초기부터 여왕이 주변국을 통합하면서 중앙집권국가로 나아가려고 하는 과도기의 연맹왕국이 됩니다. 그러나 변방인 규슈가 야마타이국의 중심지라면 고대 일본은 그냥 작은 소국국가들이 있었던 수준이 되는 것이고, 야마타이국도 수많은 일본 소국 중 변방에 위치한 국가가 되는 것이지요.

일본 고대의 여왕인 히미코(신공황후)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한국사에서도 중요합니다. 왜냐면 일본서기에서는 이 신공황후가 가야를 정복하고 임나일본부를 세운 뒤 가야-백제남부-신라남부에 걸치는 영역을 200년간 지배했다고 나오거든요. 물론 허황되긴 하지만, 일본인들은 이 기록을 꽤 많이 믿고 있습니다. 또 광개토대왕릉비의 신묘년조 기사를 일본이 위조한 목적도 이 임나일본부를 정당화하기 위함입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 나오는 신묘년에 광개토대앙이 백제를 치고, 신라를 구원하며, 일본을 격파했다는 기사는 일본측에 의해 일본이 바다를 건너와 신라를 격파하였다는 것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한국 고대사에서 양국이 풀어야할 문제중 하나죠. 신묘년조 기사가 포함된 광개토대왕릉비 전문은 한국사 사료방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나중에 고구려사를 풀어 쓸 때 자세히 설명해놓겠습니다.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글을 퍼가실 땐 댓글을 남겨주시는 것...인터넷 문화의 기본입니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단군 이야기는 설화인가, 허구인가?

1. 단군이야기의 기록

단군이야기는 고려시대 일연의 삼국유사, 이승휴의 제왕운기 등에 최초의 기록이 나타납니다. 이 이야기는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의 자손이라는 선민사상, 곰 부족이라는 토템 등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고대 설화입니다. 우리는 보통 단군의 이야기를 신화라고 많이 부르는데, 신화는 실제 역사 이야기와는 별도로, 신비롭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허구적인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단군 이야기는 허구적인 이야기보다는 당시 역사상을 사회발전단계에 맞추어 설명하는 이야기이므로 신화보다는 설화가 맞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단군이야기를 허무맹랑한 신화로 보아 단군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논의는 일제시대 식민사관을 주장하는 일반학자들에 의해 조작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 일단, 일제시대 식민사관을 주장하는 일본인 학자들의 주요 주장을 적어볼까요?

2. 단군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신화일 뿐이다.

식민사관을 주장하는 일본의 논리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역사적으로 당연하다는 하나의 논리를 위해 그 <논리> 선상에 모든 한국사를 끼워맞추는 식의 주장입니다. 그 논리는 타율성론, 정체성론, 일선동조론, 만선사관 등 끝도없이 만들어졌지만, 여기서는 단군 관련 논의만 보겠습니다.

단군 시기에 대한 일본측의 가장 큰 주장은 한반도에는 청동기 시대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한반도에는 단군이라는 인물이 없었으며, 이것은 한국인들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창작물이라는 거죠. 실제 한반도는 위만조선과 한사군 등 중국의 식민지 정권에서부터 출발하므로, 한반도는 애초에 식민지 국가였다는 논리입니다. 이 것에 대한 일본인의 주장을 적어볼까요?

- 조선은 석기시대 없이 위만이라는 중국인이 건너와 중국 한사군에게 멸망하였고, 금속문명이 최초의 문명으로서 고대 조선은 식민지 상태에서 출발한다고 일본인 학자들은 주장한다. -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 출판부) -

또 일본인들은 단군신화가 만들어진 배경을 대몽항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설정합나다. 몽골침략기에 고려인들이 외세와 싸우면서 국난극복에 도움이 되는 통일 사상이 필요했는데, 여기에 부응하기 위해 단군신화라는 근거없는 신화를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보아도 일본측의 주장은 이상합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일본의 신화에는 태양신부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상한 신까지 더 황당하거든요. 일본건국신화는 더욱 역사적 근거없이 천황가의 신성성을 과시하기 위한 부분이 더 큽니다. 뭐 묻은 자들에게는 뭐 묻은 것만 보인다고, 스스로의 역사가 그런 요소를 가지고 있으니 남의 역사도 그렇게 보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부분은 역사적으로 반박해야 하므로 단군 설화가 단지 허구가 아님을 밝혀야 되겠죠?

3. 단군이야기는 사회상을 담고 있다.

푸코라는 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신의 모습이 담겨져 있어서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설화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므로 그 속에는 인간들의 바람뿐만 아니라 실제 인간들의 삶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말합니다. 단군설화는 신화를 넘어선 설화이고, 설화를 넘어서면 역사적 요소가 보입니다. 단군의 건국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인용하면, 위나라의 <위서>에서 가져온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위서가 현재 전해지지 않기에, 우리 주장이 좀더 설득력을 잃어가지만, 단군의 조선 건국은 역사적 배경을 지녔다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일본이 주장하는 한반도에는 청동기가 없었다는 것은 현재 잘못된 주장임이 밝혀졌습니다. 한반도에는 청동기 시대와 고조선의 유물 뿐만 아니라 신석기, 구석기 유물도 다수 나오고 있으니까요. 또 관자, 산해경, 위략 등의 중국 사서에 고조선과 중국이 접촉한 사실들이 많이 보입니다. 단군이 허구라면 중국 정사들도 다 허구가 되는 것이지요.

일본은 환인이라는 표현이 고조선 당시에는 없던 용어를 고려인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허구이며, 신화 구조 자체가 허구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환인이라는 표현은 고려 당시 <하늘님>을 표현할 때, 종종 쓰는 보통명사이므로, 하늘에 계신 신을 지칭하는 일반 용어일 뿐입니다. 환인은 불교식 용어로 <제석천>이라는 신을 뜻하는 용어인데, 단군신화에서는 단지 하늘에 계신 신을 부르는 용어로 사용 했을 뿐, 허구적으로 만든 말이 아닙니다. 일본의 신 <아마테라스>는 일본 고대사람들이 첨부터 그렇게 불렀을까요? 아마, 아주 고대인들은 다른 용어로 불렀을 것입니다.

또 일본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손, 사람과 곰의 결혼 등의 역사성을 부정합니다만, 일본 신화를 보면 일본이 과연 이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생각됩니다. 일본의 신들은 남매끼리 결혼하여 계속 신을 낳고, 임신하고, 또 가족끼리 결혼하기를 반복합니다. 사실, 동아시아에는 곰이 나오는 신화와 하늘에서 신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소위 <친신강림(일본 천황가가 주로 쓰는 말입니다.)>은 보편적 이야기입니다. 왜냐면, 당시 동아시아 고대 사회에서는 선민사상을 가진 부족 위주로 정복사업을 벌였고, 곰 등 토템을 가진 타부족과의 항쟁과 연합이 계속되는 역사가 있었으니까요.

단군신화에 나오는 <천강신화>는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다는 고대 보편적 관념을 따른 것입니다. <인수교혼>이라고 하는 사람과 동물의 혼인은 당시 전쟁과 연합이 계속되는 사회상을 상징하는 것 뿐입니다. 푸코는 이러한 설화의 역사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또 단군신화에는 한인, 황웅, 풍백, 우사, 운사 등 유교, 불교, 도교 사상이 들어있다고 일본측이 주장하면서, 허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적 사상을 고려인들이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풀어 쓴 것일 뿐입니다. 실제, 삼국유사의 단군이야기는 고기, 위서, 본기 등 이전 사서들을 인용하면서, 그 용어를 스님인 일연이 사는 고려시대에 맞게 수정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화는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신화구조 자체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일본학자들이 부정하고 있습니다. 단군설화는 <천강신화> - <인수교혼> - <단군의 탄생>이라는 3개의 에피소드 구조로 형성된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이것은 설화 구조 속에서 그 당시 사회상을 파악하고,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민족적 기원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지침서일 뿐입니다. 이것을 액면 그대로 곰과 호랑이가 쑥을 먹었다라고 이해해 버리면, 설화 속에 숨어있는 역사적 맥락은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4. 단군이야기는 역사적인 증거가 부족하다.

단군이야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재, 그 역사성의 고증 문제입니다. 단군의 건국은 기원전 2333년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실학자인 이익 등이 <단군의 연대는, 중국 고대 태평성대 시기의 요, 순 전설시대와 맞먹는 것이다>라는 주장에 부합하기 위해 내세운 연대인데요. 실제, 중국에서는 전설 시대인 황제, 곡, 요, 순, 하나라 시대를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지만, 하나라 정도까지만 역사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우리 역시 단군의 역사성이 아직 확연히 드러나지 못하였음은 중국가 마찬가지네요.

학교 교과서에서 우리는 청동기 시대의 상한선을 기원전 10세기라고 배웁니다. 어떤 역사학자도 청동기를 기원전 2333년까지 보진 않습니다. 그 정도 상한선의 유물은 발굴된 적이 없으니까요. 즉, 우리 민족과 관련된 청동기는 아무리 올려잡아도 고조선 건국기까지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삼국 정립기에야 겨우 고대 시기가 정착되었다고 말하며, 고조선은 고대 국가가 아니라 석기를 쓰는 원시국가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가 단군신화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발굴되지 못한 청동기 유물의 부족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고고학적 기술은 아직도 수준이 낮고, 지금까지 발굴된 것도 풍납토성 등 아주 초보적인 유물만 발굴되었습니다. 더 깊이 말하자면, 우리는 확실한 역사적 근거로 우리 역사를 복원해야 하는데, 현재 수준이 그렇지 못한 관계로 알 수 없는 역사는 비워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비어있는 부분의 역사가 많다보니 고대사에 대한 각종 루머들이 너무 많습니다. 단군시대의 족보가 나돌기도 하고, 단군시대 한반도 남부에는 전설의 고대 국가가 있었다고 까지 주장하기도 합니다. 실제, 한국사에서는 단군의 고조선 시기 남쪽 진국이라는 국가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설명조차 없습니다. 그 때 남쪽 진국은 고조선과 무역을 했다면, 뭔가 수준있는 국가였을텐데요. 우리는 단군조선이 중국 요임금기에 건설했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도, 긍정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중국에서도 증명되지 않은 전설시대인만큼, 우리 역시 차분히 다 연구하고 조사해서 진실이 숨겨져 있는 역사적 자료들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단군왕검을 보통 해석할 때, 단군은 제사장으로, 왕검은 정치적 수장으로 이해하여 제정일치의 군장 칭호라고 보통은 여기죠. 그러나 우리 고대사가 거의 가설 수준이듯 이것도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한국고대사는 역사적 사실을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여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 자료가 빈약합니다. 사람들이 고대사를 놓고 소설을 쓰는 이유가 이 증거의 부족때문이죠.

5. 단군이야기의 기록들과 주요 내용들

단군설화는 삼국유사에 나오지만, 삼국유사 역시 단군 설화를 고대 사서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고기, 본기, 위서 등에서 인용하였음을 제시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죠. 중국 사서인 위서가 단군의 존재를 주장한다면 사실일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그러나 위서는 지금 중국에 남아있지 않고, 안타깝게도 소실되었습니다.

제왕운기의 본기에서 단군설화는 삼국유사랑 조금 다릅니다. 삼국유사의 단군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이야기이고, 제왕운기는 단군설화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 차이점만 보죠.(일연은 스님이교, 이승휴는 유교영향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그 차이점이 이해됩니다.)

제왕운기에서는 환웅과 웅녀가 아니라, 단웅천왕의 손녀와 단수시이 결합하였다고 말합니다. 환웅은 단군과 연결시켜 단웅이라 적었습니다. 유학자들은 중세 유교적이고 합리적인 역사관을 추구하였던 사람들이다보니, 사람이 곰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그대로 적지 않고, 좀더 현실적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이러한 단군이야기는 그 시기나 저자에 따라 조금씩은 달라집니다. 조선시대 응제시주,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여지승람의 단군신화가 각각 조금씩 명칭이 다릅니다. 그러나, 단군이야기의 존재나 사실성을 부인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중국 산둥성의 무씨 사당은 단군신화가 중국내에서도 존재하였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그 벽화에는 삼부인이 등장하며, 풍백, 운사, 우사가 보이고, 곰과 호랑이가 등장합니다. 이 무씨사당은 기원후 2세기에 제작된 것이니, 이 무렵 단군설화의 골격이 되는 이야기는 이미 고대부터 존재하였고, 이런 기원의 설화를 가진 민족들이 시베리아 남부, 중국 대륙 일부, 한반도에 널리 분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치우설화에서도 단군과의 연계성이 잘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 책을 참조하여 서술해보겠습니다.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1권, 솔출판사 참조)

치우는 중국 3황 5제 중 맏형격 되는 황제가 신농씨를 정벌할 때 살았던 인물입니다. 용어하도와 산해경을 보면, 치우의 근거지는 난하유역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은 훗날 고구려인인 맥족 세력의 근거지입니다. 참고로 제시한 책을 보면, 치우 형제가 81인이라는 기록은 치우 세력이 형제적 질서를 가졌음을 보여주는데, 후대 고구려의 간등이 형, 대형 등 형계열의 조직과 유사합니다. 또, 고구려 말로 무신을 주류라고 하는데, 이것이 치우라는 어원이 되었다고도 주장하네요.(좀 신방성 없어보이긴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 교수님들이 이런 상상력으로 주장을 전개하시다니...)

치우설화에서는 풍백, 우사 등이 보이는데, 풍백은 공기, 우사는 물과 관련된 농경사회의 개념이라고 합니다. 특히 운사는 번개, 벼락 등의 개념으로 치우설화에서 빠진 것을 단군설화에 넣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 운사는 벼락의 개념을 통해 당시 사회가 공식적으로 형벌을 부과할 수 있는 국가 사회로 나아감을 상징한다고 합니다.(이것도, 좀 이해가 안가기는 합니다만.... 최고 교수님들이 쓴 것이니... 그런가보다하고 이해합시다.)

여기까지 제가 정리할 수 있는 단군이야기를 쭉 한번 적어보았습니다. 이제 단군신화는 그만 넘어가고, 실제 역사로 잠입해보죠... 고조선 역사로 고고!!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글을 퍼가실 땐 댓글을 남겨주시는 것...인터넷 문화의 기본입니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