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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

고려시대 교육제도 관련 사료 고려사 학습 사료 모음 고려시대 교육제도 관련 사료 (가) 서경에 행차하여 처음으로 학교를 세웠다. 왕이 정악에게 서경에 머물러 서학박사(書學博士)가 되게 하고 따로 학원을 세워 서경 육부에서 생도를 모아 가르치게 하였다. 뒤에 성과가 좋다는 말을 듣고 비단을 내려 권장하고, 또 곡식 100석을 내려 學寶를 삼게 하였다. (나) 12목에 경전에 능통하고 책을 많이 읽은 선비들을 모아 경학박사(經學博士)와 의학박사를 각각 한 사람씩 보내 가르치게 하였다. (다) 무릇 과거에 나아가려는 자는 모두 9제(薺)에 적을 두니, 이를 문헌 공도라 불렀다. 또 유신(儒臣)으로 도(徒)를 세운자가 11명이 있으니, 문헌공 최충과 아울러 세칭 12도라 하였지만, 최충의 도가 가장 성하였다. (라) 안향은 학교가 날로 쇄.. 더보기
의왕시에 있는 안자묘를 다녀오다... 안자묘를 다녀와서... 1. 성리학을 우리 땅에 알린 안향 안향은 우리 나라에 성리학을 처음으로 알린 사람입니다. 우리 나라에 성리학이 전래된 것은 송나라에서 발흥 성장한 것과 때를 같이한 인종 전후기입니다. 그러나 고려 초기, 중기의 성리학이 발전하는 것은 고려 중기에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문벌귀족이나 무신정권기에 굳이 성리학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몽골의 침략이 있은 이후, 원나라를 통해서입니다. 우리나라의 성리학은 초기 주자 성리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원나라가 중국 성리학을 변형시켜서 북방 민족적 성격을 가미한 성리학을 받아들인 것이지요. 이 북방 성리학은 송나라 주자 때의 를 강조하는 개인적인 성리학이 아니라, 즉, 사회문제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