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대 역사서 - 고사기, 일본서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1.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편찬 목적은?

고사기는 최초로 일본 역사를 체계적으로 편찬한 책입니다. 고사기는 712년, 그리고 얼마후에 720년경에 일본서기가 편찬되었지요. 이 2권은 모두 덴무 천황의 명으로 제작됩니다. 덴무천황이 누구인지는 일본사이야기 7번에서 얘기했죠? 가장 유약한 왕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무력을 획득하여 일본 천황가를 중앙집권화 시킨 그 인물입니다.

보통 중앙집권화가 완성되면 그 강력한 왕권에 걸맞는 역사서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가까이 우리 나라만 한번 찾아볼까요? 신라에서 편찬된 국사는 진흥왕이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할 때 신라 왕실의 권위를 알리고, 진골귀족의 계보를 정리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고구려의 유기와 신집도 고구려의 기상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고, 백제의 서기도 백제가 동아시아 상권을 주름잡고, 중국 2군에 영향력을 펼칠 때, 왕실계보를 정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도 덴무천황이라는 가장 강력한 천황권 밑에서 편찬됩니다.(시작은 덴무찬황 때이지만, 워낙 방대한 사업이라 끝나는 것은 후대의 천황대일입니다.) 덴무천황은 황실의 계보를 남기기 위해 전승자를 찾아서 황실계보를 암기시킵니다. 이 황실 계보를 <제기>라고 합니다. 또 <구사>라고 불리는 신화와 설화도 전승자에게 암기시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암기시킨 내용이 이후 유실될 것을 염려하여 암기한 내용을 책으로 적으로 명하였는데, 이것이 <고사기>라는 일본 최초의 역사서입니다.

2. 고사기의 내용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고사기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본 덴무천황기부터 편찬하기 시작한 일본 천황가의 역사라고 보면 됩니다. 이 이야기는 3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 중, 하의 권은 각각 중심 줄거리가 있습니다. 상권은 전설속의 신들의 이야기입니다.(이 신화이야기는 일본사 이야기 2번에서 다루었습니다.) 중권과 하권은 그 신이 천손강림을 하여 지상의 천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천황가의 계보와 황태자들을 중심으로 엮은 이야기입니다. 단군신화와 비슷한 맥락으로 구성된 이야기이지요. 그러나 단군신화와 다른 점은 당시 천손의 후예라는 천황가에서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약간 객관적 근거가 없이 적었다는 점이 좀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초기에는 고사기를 사서로 다루었지만, 지금은 스스로도 상, 중, 하 전체를 한데 묶어 일본 신화이야기로 보는 관점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 고사기의 편찬 목적은 진신의 난(일본사 이야기 7편 참조)을 넘긴 덴무천황이 지방 호족들의 도전을 사전에 차단하고, 천황의 신성함을 대외에 과시할 목적으로 만들었죠. 따라서 이 책은 정사라기 보다는 천황가의 개인적 소장물로 만든 책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당시 일본이 천황권의 전성기이자, 불교문화의 전성기라는 점입니다. 특히, 한반도에서 불교를 전래한 이래로 한반도 불교에서 전래된 설화들이 일본에 많이 유입되었는데, 이러한 측면들이 고사기에는 많이 유입되어 있습니다. 또 이 고사기에 나오는 일본 신화는 각종 세계 신화적인 내용들이 많이 유입되어 있다고 일본측이 주장합니다. 즉, 중국, 한반도, 태평양, 그리스 신화의 내용과 비슷한 내용도 많다고 주장하는데, 일본이 주장하는 그리스 신화까지의 지역확대는 좀 무리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반도 설화가 재일 많다고 보는게 타당하죠.

3. 고사기의 실제 내용

상권의 내용 요약 - 일본의 신화 이야기

천지가 처음 태어날 때 시작인 어둠이었고, 무질서였다. 이 어둠과 무질서 속에서 양과 음이 생겼다. 이 양과 음은 각각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 하늘에서는 천상계가 있어 세 명의 신이 출현하였는데, 이 신들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남매 신을 낳았다.

이 남매 신은 결혼하여 새로운 섬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들이 결혼하면서 낳은 섬들이 바로 지금의 일본 열도가 되었다. 이들은 일본 열도를 만든 뒤 태양의 신(아마테라스), 달과 역법의 신(츠쿠요미), 전투의 신(스사노)를 낳았다. 이자나미는 불의 신도 낳으려 했지만, 그 뜨거운 불의 열기 때문에 호히려 죽고 말았다.

이자나기는 아자나미가 죽자 실의에 빠져 그녀를 만나러 지옥으로 간다. 그러나 지옥에서 무서운 모습으로 변해있는 이자나미를 보고는 놀라서 도망가 버린다. 이자나기는 실의에 빠져 천상계를 아마테라스에게 넘긴다.

아마테라스는 천상계를 잘 다스렸지만, 스사노가 악행을 저지르며 형의 말을 듣지 않자 분노하여 숨어 버렸다. 그래서 태양의 신이 사라진 지상에서는 밤이 계속된다. 신들은 당황해서 아마테라스에게 돌아오라고 사정하였고, 아마테라스는 신들이 주선한 잔치에 감동받아 돌아오게된다. 그리고 아마테라스는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던 동생 스사노를 천상계에서 추방하였다.

스사노는 일본열도로 내려왔다. 그는 사람들을 괴롭하던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하고 영웅이 되었고, 지상은 스사노의 후손인 오쿠니누시가 지배하게 되었다. 오쿠니누시는 지상국가 건설에 힘쓰며 백성들을 잘 다스렸지만, 천상계의 아마테라스는 그 자손인 히노호니니기에게 명하여 지상을 다스리라고 하였다. 히노호니니기는 지상으로 내려와 오쿠니누시의 국가를 물려받고 지상을 다스리게 되었다.

히노호니니기가 천상계의 명령을 받고 내려온 것을 천손강림이라고 한다. 천손강림 이후 일본열도는 하늘의 아들이 지배한다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국가를 다스리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후예가 바로 천황이다. 천황가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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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권의 내용을 우리 나라 사람들 중에서는 한국 신화를 가져다 베낀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조신 아마테리스는 해모수로, 천상계 이야기는 환인이야기로 파악하는 것이 그것인데, 이렇게 까지 비약하는 것은 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동아시아 신화는 다 비슷비슷하거든요. 일본신화가 우리나라 신화를 베낀 것이라고 너무 강하게 주장하면, 우리 신화는 중국이나 러시아 신화를 베낀 것이 됩니다. 사실 시기를 막론하고 동아시아 설화는 다 공통적으로 천손의 강림, 인수교혼(동물과 사람이 결혼하는 것), 곰이 등장하는 설화가 대부분 다 나옵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런 설화를 유도했다고 보는 편이 좋지요. 또는 북방에서 설화가 차츰 남방으로 전승되었다는 견해도 있구요.

중권의 내용 요약 - 진무천황과 신공황후(4대 천황 ~ 15대)

중권의 내용은 천손강림 이후 4대 진무천황이 신의 후손으로서 일본열도에 실력을 행사하였고, 일본 열도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이후 천황가가 발전해 나간다는 내용입니다. 진무천황 이후 후손들 얘기는 그저 그렇고, 중요한 것은 야먀타이국의 히미코(신공황후)의 이야기입니다. 고사기에서는 진구우라는 여자로 나옵니다만, 몇 년뒤 편천된 일본서기에서 신공황후로 격상시킵니다. 신공황후는 일본에서의 강력한 세력을 구가한 이후, 중국에 사신을 보내 일본이라는 나라를 동아시아에 각인시켰고, 한반도 남부를 점령해 200년 동안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고사기의 허황된 면을 발견합니다. 일본 천황가 이야기야 허구이든 진실이든 무시하면 되지만, 한반도 자체를 일본이 점령했다는 이야기는 우리로서는 이 책이 뭐하는 책인가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충분한 소재거리가 됩니다. (일본사 이야기 2편의 야마타이국을 참조하세요)

하권의 내용 요약 - 16대 천황 ~ 33대 천황

하권의 내용은 16대 천황에서 33대 천황까지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관심가는 부분은 이 하권의 주요 줄거리가 야마토 정권에서의 천황가 이야기라는 점인데, 야마토 정권은 일본의 소국들이 뭉쳐서 만든 지방 호족들의 연합국가였다는 점입니다. 천황은 그 연합정권의 수장 성격이었지요. 따라서 천황가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 세력과의 끊임없는 사투를 벌였고, 또 지방 유력 호족의 가문에서 천황이 나오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즉, 당시 호족가문과 천황가는 권력구도에 따라 상호 결혼을 하였고, 당시 남매간에 결혼까지 있었을 정도였기 때문에 유력호족가문에서 천황과 이어지는 핏줄만 있으면 그 기문소속의 천황을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유력한 가문으로 천황가를 휘어잡고, 불교를 수용하여 강력한 유력가문이자 천황가를 겸했던 가문이 바로 소가씨였습니다. (일본사 이야기 6 - 소가씨 이야기 참조) 특히 소가씨의 33대 천황인 스이코(소가노 아마코) 천황은 쇼토쿠 태자(소가노 쇼토쿠)와 함께 아스카 문화를 주도하면서 일본 문화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후 소가논 집단의 멸망 부분은 나오지 않고 끝납니다. 다이카 개신 이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지요.

4. 그럼 일본 서기는 왜 편찬한 거야?

고사기가 편찬된 시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본서기가 편찬됩니다. 이 두 책의 공통점은 고대 신화부터 서술하여 고대 신화가 천황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 서술 방향을 잡아 천황가에 신성성을 부여해 지방호족가문보다 우월함을 과시하고, 국민을 지배함에 있어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역사책의 차이점은 정사인가, 개인적 장서인가의 차이입니다. 고사기는 천황가가 개인적으로 보존할 개인적 장서이므로, 그 후속편이 없고, 이야기도 고대신과 천황가의 족보 연결차원에서 끝납니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당시 중국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하는 분위기에서 중국식 정사와 같이 공식적으로 편찬한 책입니다. 따라서 일본서기 이후에는 속일본기, 일본후기 등등이 계속 편찬되었고, 이러한 일본의 정사들을 한번에 묶어 <육국사>라고 부릅니다. 이 책은 중국사서와 마찬가지로 편년체입니다. 일본이 중세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육국사는 <신의 책>으로 여겨지면서, 심지어 역사가들까지도 이 책을 숭상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세계 2차대전 이전까지는 이 육국사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없이 그저 신성한 책으로서 이 일본서기를 바라보게 된 것이지요. 그 이유는 일본의 천황가의 영향력이 너무 거대하고, 신성화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제는 그냥 신화수준인 고사기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수 있지만, 정사인 일본서기는 우리 한반도의 역사서술 부분에서 우리나라 및 중국측의 기록과 너무 달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본서기가 우리 역사서 및 중국사서를 참조하면서 천황가에 불리한 부분은 삭제하거나 왜곡한 부분이 눈에 많이 띄는데, 일본측에서는 그 부분에 대하여 우리 역사서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주장합니다.

5. 그럼 일본 서기에 기록된 한반도 관련 역사의 논쟁점들...

신공황후기 설화 이야기도 연대 차이가 심하다.

고대 일본 천황가의 기록들은 기원후 150년 이전의 기록들이 우리 사서나 중국사서에 비해 그 연도차가 너무 큽니다.  

삼국유사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가 일본 서기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삼국유사의 이야기에 나오는 세오녀는 잔잔한 사랑이야기 인데, 일본서기에서는 영웅의 면모를 가진 여걸로 나오죠.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기의 왕들이 서로 맞지 않습니다. 거의 50년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우리 설화에 나오는 망부석 이야기도 삼국유사와 일본서기의 기록이 200년 이상 차이나고, 신라와 일본이 전쟁을 했다는 기록들을 살펴보면 맞는 연대가 거의 없습니다. 수많은 기록들이 거의 다 연대가 안 맞습니다. 대체 이 일본서기는 무슨 책을 근거로 연대를 상정한 것일까요?

신공황후의 신라 정복설

일본 서기 신공황후기에는 일본이 신라, 백제를 평정하고 고구려가 일본에 조공을 바쳤다고 합니다. 당시 상황으로 거의 말이 안되는 해석인데요. 또, 일본은 이 기록을 신빙성 있게 하기 위하여 광개토대왕릉비문을 위조하기도 했습니다.(이 이야기는 고구려사 편에 아주아주 자세히 기록할 것이구요, 또 광개토대왕릉비 전문을 한국사 사료방에 전문 다 옮겨 놓았습니다.)

즉, 광개토대왕이 백제와 일본을 공격했다는 비석 내용을 글자 몇글자 바꾸어서, 일본이 바다를 건너 신라를 정벌했다는 이야기로 완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것을 통해 일본은 그들이 고대 한반도 남부를 200년간 경영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삼습니다. 미칠 노릇이지요.

칠지도 문제

칠지도 문제는 고대 한국과 일본사에서 큰 논점이 되는 문제중 하나입니다. 칠지도(일곱가지가 난 칼)라는 칼을 백제 부흥기 때 성왕이 일본에 전해주었는데, 이 전해주었다는 부분의 용어가 과연 <하사하였다>인가 <바쳤다>인가라는 해석을 둘러싼 논쟁입니다. 한자로 <공공>이라는 글자는 주었다라는 뜻인데, 이것은 해석하기 따라서 하사도 되고, 바친 것도 되거든요.

우리는 당연히 당시 역사적 상황으로 보아 백제가 일본에 하사한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일본에서는 이것을 당시 중앙집권화 하던 일본에 바친 것이라고 해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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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점들을 살펴보면 고대 일본서기에서 최소한 신공황후기 이전의 기록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일본 학자들도 일본서기를 볼 때, 신공황후기 이전의 기록은 잘 인용안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라고 하는군요. 일본에서는 국가가 편찬한 정사에서 조차 고대 신화와 실제 역사가 섞여 있으니, 역사가들은 일본 사서를 읽을 때 그 내용을 잘 판단하고, 인용해야 할 듯 싶습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역사왜곡이나, 일본 사서의 문제점을 심도있게 따지지 않고, 그냥 객관적 시선에서 적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고대사편에서 다룰 때는 조목조목 학술적인 근거를 들어 아주 신~~랄하게 비판할 예정입니다. 그렇다고 환단고기와 같이 신화적 성격으로 비판하지는 않을 것이며, 역사적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잘못된 점들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겠습니다. 이만 적고 공부하러 가야겠네요... 오늘은 휴가라 직장을 쉽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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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카 개신 - 토지개혁을 시도하다.

1. 6-7c 토지제도를 개혁하다.

일본 다이카 개신의 최대 핵심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당의 율령체제를 도입하였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당의 균전제도를 모방하여 토지를 개혁한 반전수수법의 시행입니다.

이 파트에서는 2번째 개혁 내용인 반전수수법과 토지제도를 이야기해 봅니다. 토지제도를 통해서도 일본 고대사의 흐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 먼저 야마토 정권부터 한번 봅시다. 야마토 정권은 지금까지 이야기 했듯이 호족들이 연합하게 만든 정권입니다. 각자 땅을 가진 호족들이 유력자를 천황으로 모셔 통일국가를 이루는 구조였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천황은 세력을 키워 중앙집권화를 추구하고 싶었고, 그래서 도입한 국가이념으로서 종교가 불교입니다. 그리고, 국가통치제도로서 수용한 것이 당의 율령제도였지요. 여기까지 이야기했었습니다.

다이카 개신으로 천황권이 강해진 일본 천황은 이제 모든 일본의 토지를 국왕의 토지로 하겠다라는 왕토사상의 이념까지 주장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7c에 발표된 <개신의 조>입니다. 개신의 조는 4개조의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그 핵심은 바로 <공지공민제도>입니다. 공지공민이란, 모든 땅은 국가의 소유이며, 모든 사람의 천황에 소속된 사람이란 뜻이지요.

이와 동시에 발표된 토지법이 바로 그 유명한 <반전수수법>입니다. 이 법은 당의 균전제도를 모방한 제도입니다. 당의 사신으로 갔다온 견당사 일행이나, 당나라에 유학다녀온 도당유학생들이 당의 선진 제도를 가져와 일본에 시행하려 했던 것입니다.

당나라 균전제는 모든 국토가 황제의 국토라는 왕토사상을 기반으로, 백성들에게 땅을 분배해주고, 이 대가로 세금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세금과 노역이 바로 조.용.조입니다.(당나라 제도편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일본은 이것을 모방하여 비슷한 제도인 반전수수법을 만듭니다. 이 제도는

1. 6살 이상의 남자에게 반전이라고 해서 토지를 줍니다.

2. 양민에게는 2단(107평)을, 천민에게는 2/3단을 주고, 토지를 준 대가로 세금을 받습니다.

즉, 반전수수법은 반전=토지, 수수=주고받다(수수료할 때 수수입니다) 라는 용어로 해석하면 됩니다. 그러나 농민들은 가혹하게 많이 걷어가는 세금이 싫어서 도망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지방 호족들은 당연히 반발했구요.

2. 7-8c 후속 조치들을 계속 시행하다.

반전수수법이 가혹한 세금 때문에 지켜지지 않자, 천황가는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법을 정했는데 그것이 <삼세일신의 법>입니다. 이 법의 내용은

1. 황폐해진 반전을 개간한 자는 평생 그 땅을 개간한 자에게 준다는 내용입니다.

2. 황무지를 개간한 자는 3대에 걸쳐 토지사유를 인정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모든 땅은 국가땅이라는 균전의 이념(왕토사상)을 버리고, 일정한 기간동안 백성들에게 토지소유권을 주는 것입니다. 문제는 백성들이 농사를 짓다가도 3대가 되어 국가에 반납할 때쯤 되면 다시 땅을 버려 황무지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죠. 국가는 또 고민합니다. 고민과 고민 끝에 <국가는 결국 토지는 국가가 소유한다>는 원칙을 버립니다.

토지를 개인이 가질 수 있다는 새로운 법을 8c의 <간전영년사재법>이라고 합니다.

3. 10c 이후 토지 사유를 통한 새로운 계층이 성장하다.

자, 이제 일본의 천황은 그토록 하고 싶었던 토지국유제도를 포기했습니다. 토지는 이제 천황의 것이 아닌 개인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 법이 일본 고대사에 끼친 영향은 무지 큽니다. 토지를 각각 가진 자들이 지방에서 활동하는 사회.... 딱 생각나는 것이 유럽이나 중국의 봉건제도 아니겠어요? 점점 일본이 봉건제 사회인 중세사회로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간년영년사 제법>으로 토지를 사유화한 계층은 귀족과 불교사원의 유력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돈 많은 농민들도 토지를 사거나 개간해서 영주가 되기 시작합니다. 돈많은 농민영주들은 가난한 농민과 농노를 부려 토지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토지를 형식적으로 귀족과 사원에 기부합니다. 진짜 주는 것은 아니고 세금을 바치겠으니, 내 땅을 지켜달라는 액션이죠. 이렇게 형식적으로 귀족에게 바친 땅을 기진지라고 하니다.

이를 통해 일본에서는 새로운 사회 질서가 생깁니다. 이 새로운 장원 질서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 돈 많은 농민은 개발영주가 되어 커다란 장원(토지)를 갖고 농노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어 돈을 번다.

2. 이 개발영주(농민지주)는 유력한 귀족에게 토지를 기진지를 바친다고 말하며 세금을 낸다. 유력한 귀족은 이 개발영주의 땅을 지켜준다.

3. 유력한 귀족들은 개발영주에게 받은 돈이나 일부 땅을 황족이나 중앙의 실력자에게 바치고, 관직이나 높은 권력을 얻는다.

자,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번 개발영주(농민지주)들은 점차 무장하여 돈을 벌게 되고, 차츰 자신의 토지를 자신이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즉, 돈이 많아진 개발영주(농민지주)들은 나중에 무사계급이 된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장원질서는 계속되어 땅을 가진 자들은 자기 윗선에 계속 토지를 형식적으로 기증하고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게 됩니다. 이것이 11c 이후 중세사회에서는 봉건제도라고 불리는 제도로 정착됩니다. 이 개발영주, 유력한 귀족, 중앙의 실력자라는 구도는 중세시대로 말하자면 무사, 슈고, 지토 등등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중세시대에서 자세히 설명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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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시대의 시작

1. 야마토 시대의 시작

야마토 시대는 그 기원이 약 3C부터인데, 이 무렵은 바로 야마타이국에서 여왕이 등장하는 시기부터라고 보면 됩니다. 청동기 야요이 시대에서의 소국(족장이 다스리는 작은 국가, 저는 보통 동네국가라고 합니다)을 강력한 여왕인 야마타이의 여왕 히미코(신공황후)가 통일한 이후 야마토 지방(나라현)의 호족들을 중심으로 뭉친 연합국가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 때 부터를 일본에서는 고대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죠.

야마토 정권이 일본을 통일했다는 증거는 확실하지 않아 논란이 많습니다. 특히, 야마타이국의 여왕이 과연 야마토 지방(나라현)에 있었냐는 것 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일본에서는 다수설로 야마타이국의 강력함을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야마타이국의 위치논쟁은 일본선사시대에서 충분히 다루었으므로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나라현의 위치만 파악하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나라에서의 정설은 초기 야마토 정권인 나라지방의 야마타이국이 있었다는 가정하에, 이 국가는 한반도의 선진문물을 수용하면서 일본 열도를 통일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일본 역시 이 주장은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한반도로부터 선진 기술과 물품을 수송하기 위하여 안전한 교통로가 필요했기 때문에 야마토라는 연합 정권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합니다.

2. 고분으로보는 일본 고대사 - 우리나라 고인돌과 비교하면 좋을 듯하네요...

특히 야마토 정권이 3-4C 무렵 일본을 통일했다는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고분>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4C 이후 일본에서는 전국적으로 공통된 모습의 고분(무덤)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그 당시 일본이 강력한 나라의 지배를 동시에 받았다는 증거가 되죠.

그런데, 이 야마토 시대의 고분 특징은, 시대가 바뀌면서 고분에 묻힌 자들의 성격도 변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고인돌과 비교해서 쉽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초기 3-4C : 매장자가 신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부장품에 구리거울, 옥이 많았다. 제정일치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초기 우리나라 고인돌처럼 유력한 제정일치 사회의 군장 무덤으로 볼 수 있다.

2 중기 5C : 매장자가 군사적 통솔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부장품에 마구, 무기 등이 보인다. 실제 정치를 하는 유력자가 묻혀있다. 전형적으로 우리나라 고인돌에서 보이는 무덤과 같다.

3. 후기 7C : 매장자가 평민으로 확대되었다. 유력농민(장원주)까지 고분을 만들어 고분수가 무지 많다. 우리나라 고인돌도 후기에 6000개 이상으로 그 숫자가 늘어나는 것과 같다. 고인돌이 점차 지배층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과 사회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7C 이후 : 고분이 거의 없다. 일본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화장의 풍습이 생겼다는 뜻인 듯 싶다. 따라서 불교가 그 사회를 점차 지배해감을 볼 수 있다.

야마토 정권에 대한 성립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하고, 이제 야마토 정권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 봅시다.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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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대사를 총체적으로 개관하고 시작힙니다.

1. 일본 고대사를 바라보는 키워드는?

일본 고대사를 정리할 때 이것으로 시작되어, 이것으로 정리된다고 한마디로 요약해봅시다. 여기서 말하는 이것이란?

답은 불교와 율령입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를 정리할 때도 불교수용, 율령반포를 고대사의 키워드로 활용하는 것처럼 일본사 역시 불교, 율령이 일본 고대사를 정리하는데에는 최고의 키워드라고 보면 됩니다. 이 두가지는 왕권강화를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진흥왕이 스스로를 전륜성왕이라고 우기면서, 부처는 곧 왕이라는 왕즉불 사상과 신라 진골귀족은 부처의 일족인 크사트리아족이라는 이념으로 백성들을 통합하고, 국가 이념을 정비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은 더 심합니다. 불교라는 종교 자체가 곧 중앙집권을 위한 기본 포석이었고, 이 불교를 통해 중앙집권이 되면서부터 <율령>이라는 법령을 통한 통치를 시작하니까요. 그리고, 일본 고대국가들이 망하는 것도 이 불교라는 종교의 신성함이 사라지고, 율령이 문란해지면서입니다. 즉, 일본 고대는 불교, 율령의 역사로 정리하면 쉽지요.

2. 일본 고대사는 어떤 정권이라고 보면 되는가?

일본 고대사는 흔히 <야먀토 정권>이라는 통일적인 성격의 국가가 일본에 등장한 뒤, 불교와 율령을 수용하여 전성기를 맞이하다가 망해간 시대라고 칭하면 됩니다. 야마토 정권은 6C 백제 성왕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하는데, 이 불교가 일본에 융성할수록 왕권이 강화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왕즉불 사상을 통해 왕이 곧 부처라는 이념은, 지방 호족들이 감히 왕에게 덤빌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이니까요. 야마토 정권에서 특히 불교를 숭상하여 진호국가(부처를 국가적으로 숭상하는 국가)가 된 시기가 7C 나라 시대인데, 이 시대 가장 불교가 융성했습니다.

그러나 8C 이후 승려들이 정치가와 유착하고, 불교가 부패하게 되면서 794년 간무천황은 수도를 헤이안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 시대를 헤이안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대의 특징은 불교가 부패하고, 율령체제가 흔들리면서 왕권이 약해진다는 점입니다. 왕권이 약해지자 호족들은 불교를 대신하여 밀교, 아미타 신앙 등을 도입하면서 혼란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천황은 이러한 지방 호족들을 막기 위해 독실한 불교 승려를 <승병>으로 만들어 부처의 힘으로 호족들을 탄압하려 했습니다. 호족들은 부처의 천벌을 무서워해 감히 천황과 맞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호족들은 부처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병들을 등용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이 바로 사무라이(무사)들입니다. 이들은 돈만 주면 승려과 부처고 없이 무조건적인 학살로 끝을 보는 무시무시한 자들이었죠. 이들은 부처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는 주인에게 의리로서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무사들이 정권을 잡게 되는 시대를 일본사에서 중세라고 부릅니다. 그럼 이제 일본 고대사 이야기를 세세하게 하나 하나 짚어 나가며 내용을 전개해 보겠습니다.

현재의 이야기 위치 : 죠몬시대(석기시대) - 야요이 시대(금속시대) - 야마토시대(일본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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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