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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족

고대 이전 동북아시아의 전투 형태 - (1) 청동기, 철기 우리 민족과 동아시아의 전쟁 양식에 대하여 고대 이전 동북아시아의 전투 형태 (1) 청동기, 철기 우리 민족과 동아시아의 전쟁 양식에 대하여 우리 민족, 그 기원에 대한 논쟁 자,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내용은 고대 동아시아의 전투 양식에 관한 것입니다. 동아시아라고 하면 지금의 중국을 포함하고 있는 동북아시아부터 한반도, 일본열도까지를 다루어야 하지만,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일본에 대한 기록이 일단 없고, 야마토 호족 연합 정권 이전의 일본에는 전쟁다운 전쟁에 대한 기사가 없기 때문이죠. 그럼 시작해 볼까요? 전쟁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 일단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원시시대 만주와 요령지방, 그리고 한반도에는 어떤 계통의 민족이 살고 있었는지 일 것입니다. 일단,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우리 민족.. 더보기
초기 북방국가들의 성장 - 고구려, 부여, 동예, 옥저 초기 북방 국가들의 성장 1. 부여의 등장 부여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전에 등장한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고 합니다. 즉,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국가로서 중국에 알려졌을 것입니다. 부여왕이 후한 광무제에게 서신을 보냈다는 기록으로보아 국제적인 독립국가였을 것입니다. 부여는 송하강 유역의 평야지대에서 5곡의 수학이 풍성하고 금택지이며, 동물자원이 많다고 나옵니다. 반농반목의 농경국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측 기록에도 고구려는 나쁘게 써 놓은 것에 비해, 부여는 사람이 후덕하고 예의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여는 보통 예맥족이 일으킨 예족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이 예족에서 갈라져 나온 예족 계통의 맥족 국가라고 합니다. 2. 고구려의 등장 고구려의 건국은 삼국사.. 더보기
한나라의 분열 정책과 고구려의 책구루 한의 분열정책 - 고구려의 책구루 한나라 때 북치고 피리부는 재주꾼을 주었다. 언제나 현도군으로부터 조복과 의책을 받아갔는데 고구려가 그 명부를 주관하더니 나중에는 점차 교만하고 방자해져서 다시는 군에 나가지 아니하고 동쪽 경계에 작은 성을 쌓고 조복과 의책을 그 가운데 넣어두면 정초에 와서 가져갔다. 지금은 오랑채들이 오히려 이 성에 이름을 붙여 책구루라 하는데 구루는 고구려말로 성이라는 뜻이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 사료해석 : 고조선이 멸망하고 예, 맥, 한족들에게 한족인 분열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예족(부여족)과 한족(3한족)은 그 분열책에 넘어갔지만, 맥족(고구려족)은 분열정책에 넘어가지 않고 고대 국가로 확실하게 성장해갑니다. 조복과 의책을 주는 중국의 분열책에 고구려는 성(구루)을 쌓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