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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 고려사 학습 사료 모음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 태조 26년(943) 여름 4월에 왕이 내전에 나가 앉아 대광 박술희를 불러서 친히 훈요를 주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들으니 순 임금은 역산에서 농사를 지었으나 마침내 요임금의 왕위를 받았으며 한의 고제 패택에서 일어나 한나라의 왕업을 성취하였다고 한다. 나도 역지 한갖 외로운 평 민으로서 그릇되게 여러 사람들의 추대를 받았다 더위와 추위를 무릅쓰고 19년 동안 노심초사한 끝에 삼한을 통일하여 외람스럽게 왕위에 있은 지가 25년이나 되었고 몸도 벌써 늙었다 후손들이 감정과 욕심에 사로 잡혀 나라의 질서를 문란시킬 듯하니 이것이 크게 근심스럽다. 이에 훈계를 써서 후손들에게 전하노니 아침 저녁으로 펼쳐 보아 영구히 모범으로 삼게 하기를 바란다... 더보기
왕건의 출생 관련 사료 왕건의 출생 관련 사료 호경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 성골장군이라고 일컬으며 백두산으로부터 유람하여 부소산(송악) 골짜기에 이르러 자리를 잡았다. 그는 한때 죽을 고비를 맞았으나 호랑이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구하고 나중에 산신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옛 부인을 못잊어 밤에 내려와서 아들을 낳았다. 그의 아들 강충은 예성강 영안촌의 부잣집 딸 구치의라는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풍수장이로부터 "만약 군을 산의 남쪽으로 옮기고 소나무를 심어 바윗돌이 드러나지 않게 하면, 삼한을 통합할 인물이 나리라"는 말을 듣고 소나무를 온산에 두루 심고 그 이름을 송악군이라 고쳤다. 그는 이제건과 보육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고 보육은 형의 딸 덕주를 아내로 삼았다. 보육은 두 딸을 낳았는데 작은 딸 진의는 바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