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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행

고구려 부흥운동 사료 고구려의 부흥운동 사료 3월에 사찬 설오유가 고구려 태대형 고연무와 각각 정병 1만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옥골에 이르렀는데, 말갈병이 먼저 개돈양에 와서 기다렸다. 4월 4일 말갈과 마주 싸워 아군이 크게 이기고 목을 밴 것이 이러 셀수 없었으며 당병이 계속 이르니 아군은 백성에 물러났다. 고구려 수림성(水臨城) 사람인 검모잠(劍牟岑) 대형(大兄)이 유민(遺民)을 수습하여 궁모성(窮牟城)으로부터 패강(浿江)의 남쪽에 이르러 당의 관리와 승려인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여 서해 사야도(史冶島)에 이르러 고구려 대신 연정토(淵淨土)의 아들 안승(安勝)을 만나 한성으로 맞아들여 임금을 삼고 소형(小兄) 다식(多式) 등을 신라에 보내어 호소하였다. … 그리하여 신라의 문무왕은 그들을 나라 서쪽의 .. 더보기
통일 후 나당전쟁 - 신라와 당과의 갈등 고조 통일 후 당과의 갈등 급찬(級瑗) 기진산(祇珍山) 등을 당에 보내어 자석 두 상자를 바치고, 또 각간(角干) 흠순(欽純)과 양도(良圖)를 당에 보내어 사죄하였다. - 삼국사기 6, 신라본기 6, 문무왕 9년 5월 - 문무왕이 고구려의 반란 무리들을 받아들이고, 또 백제의 옛 땅을 점거하여 관인을 보내 지키게 하니, 당 고종이 크게 노하여 왕의 관작을 박탈하고, 당시에 당의 경사(京師)에 있던 왕의 아우 우요위원외대장군임해군공(右饒衛員外大將軍臨海郡公) 인문(仁問)을 세워 신라왕으로 삼아 귀국하게 하고, 좌서자동중서문하삼품(左庶子同中書門下三品) 유인궤(劉仁軌)로 계림도대총관(鷄林道大摠管)을 삼고, 위위경(衛尉卿) 이필(李弼)과 우령군대장군(右領軍大將軍) 이근행(李謹行)으로 부관을 삼아 군사를 발하여 신라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