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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

한나라의 분열정책과 삼한의 책봉 허용 한의 분열정책 - 삼한의 조복과 의책 경초 중에 명제가 비밀히 대방태수 유혼, 낙랑태수 선우사를 보내 바다를 넘어 2군을 평정하고 여러 한국 신지들에게 읍군의 인수를 더 주고, 그 다음 축들에게는 읍장의 인수를 더 주었다. 그 풍속에 의책 입기를 좋아하여 하호들도 군에 알현하러 갈 때는 모두 의책을 빌려 입으며, 자기 인수를 차고 의책을 착용하는 사람이 천여명이나 된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 - 사료해석 : 이 사료는 예, 맥, 한족 중에 마지막으로 한족이 중국 한나라의 분열정책에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염사치 사화, 고구려의 책구루 기사와 같이 읽어보면 중국의 분열정책에 대한 내용이 쉽게 이해가 가실 겁니다. 더보기
한나라의 분열 정책과 고구려의 책구루 한의 분열정책 - 고구려의 책구루 한나라 때 북치고 피리부는 재주꾼을 주었다. 언제나 현도군으로부터 조복과 의책을 받아갔는데 고구려가 그 명부를 주관하더니 나중에는 점차 교만하고 방자해져서 다시는 군에 나가지 아니하고 동쪽 경계에 작은 성을 쌓고 조복과 의책을 그 가운데 넣어두면 정초에 와서 가져갔다. 지금은 오랑채들이 오히려 이 성에 이름을 붙여 책구루라 하는데 구루는 고구려말로 성이라는 뜻이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 사료해석 : 고조선이 멸망하고 예, 맥, 한족들에게 한족인 분열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예족(부여족)과 한족(3한족)은 그 분열책에 넘어갔지만, 맥족(고구려족)은 분열정책에 넘어가지 않고 고대 국가로 확실하게 성장해갑니다. 조복과 의책을 주는 중국의 분열책에 고구려는 성(구루)을 쌓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