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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집권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5) - 왜, 교과서는 천하무적인가?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5) 왜, 교과서는 무적이 되야 하는 것일까? 1. 교과서의 절대성 오늘은 21세기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포스트모던으로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많은 교사들이 포스트모던의 철학으로 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한국 사회의 현실 때문이다. 입시를 위한 역사 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하며, 입시에 강한 역사 교사가 우대받는 공교육에서 어떻게 을 부정하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포스트모던의 역사 철학은 공교육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7차 한국사, 세계사 교과서의 첫 시작은 로 출발한다. 역사를 공부하면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을 쌓게 되며, 과거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다. 이 과거를 바라보는 .. 더보기
신문왕의 전제왕권 2 - 중앙집권화를 위해 귀족권을 억압하다. 신문왕의 전제왕권 2 - 중앙집권화를 위해 귀족권을 억압하다. 이번 파트부터는 통일신라 전제왕권을 완성한 신문왕에 대한 포스팅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로 나누어 다양한 각도에서 포스팅하겠습니다. 신문왕을 자세히 포스팅하는 이유는 신문왕 자체가 통일신라의 문물을 정비하고, 완성한 사람이므로 신문왕을 로 하여 통일신라의 전성기 체제를 바라보면 이해가 쉽기 때문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신문왕기의 정치사를 정리해 봅시다. 1. 전제왕권의 성립 배경 지난 장에서 전제왕권을 정의내릴 때, 국왕의 1인 독재권이 아닌 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럼 이러한 중앙집권적 전제왕권이 성립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삼국통일에서 그 핵심 배경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삼국통일기 신라는 가 계속되었습니다. 고.. 더보기
고중세 역사학의 발달 과정 고중세 역사학의 발달 과정 1. 삼국시대 : 역사학이 성립되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제대로 된 역사학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의거할 때, 한국에서 제대로 된 역사서를 편찬한 시기는 삼국시대로부터 비롯됩니다. 삼국시대의 역사편찬은 왕권의 이데올로기 강화를 목적으로 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역사서를 편찬한 시기가 대체로 강력한 를 확립하는 시기였습니다. 고구려의 유기는 5c 고구려의 강성기에, 백제의 서기는 근초고왕의 전성기에, 신라의 국사는 신라 6세기 진흥왕기에 각각 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사학이라는 학문을 객관적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을 을 홍보하여 왕권에 대한 정당성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본 것입니다. 당시의 역사서들은 남아있는 것들이 없기 때문에 내용을 자세히 알 .. 더보기
중국사17 - 중국 변법운동의 대가 상앙 상앙의 변법운동 1. 변법운동의 배경 변법운동의 배경은 15,16장에서 상세히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상앙이 다른 나라보다 변법을 더 강력히 추진해야 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진나라가 서방의 오랑캐로 불릴 정도로 낙후된 국가라는 점이었죠. 진은 서방 끝에서 시작되어 중화문화에서 상당한 변방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진에게도 큰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중원의 치열한 전쟁에서 벗어난 지역이었다는 점과 위수분지를 중심으로 한 천연의 요새이자, 곡창지대였다는 점입니다. 상앙은 진의 잇점을 살리고, 진의 부국강병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구귀족과 구체제를 모두 없애 버리고, 진의 잇점을 실릴수 있는 효율적인 제민지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진이 외진 곳에 있다는 것은 다른 국가의 눈치와 강압을 피.. 더보기
중국사14 - 춘추전국시대의 패자질서와 회맹적 국제관계 춘추시대 - 춘추5패와 회맹적 국제질서란? 1. 회맹적 국제질서란? 희맹적 국제 질서란 춘추시대 초기에 나타는 를 중심으로 한 연합 질서를 말합니다. 이것은 형식상 주왕실을 받는다는 명문을 가진 패자가 힘이 없는 주 왕실을 대신하여 오랑캐를 무찌르고 를 지킨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성립한 질서입니다. 춘추초기의 과도기적 사회에서 보이는 특이한 질서이지요. 이 질서는 당시에도 존재했던 원시적인 주술관과 봉건제도의 혈연성을 벗어나지 못한 제도입니다. 즉, 주왕실에게 봉토를 받았던 하늘의 후예들이 연대하여 공동의 중화 질서를 지키고, 동일 조상신을 통해 같은 핏줄임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이민족을 무찌를 수 있는 강한 패자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이렇게 주 왕을 받들어 오랑캐를 무찌른다는 .. 더보기
중국사11 - 춘추전국시대는 중국사회의 큰 발전기였다 춘추 전국 시대는 중국의 발전기였다! 1. 춘추 전국시대를 고깝게 보는 유교주의자들 전통적인 중국역사에서 춘추 전국시대는 부정적인 시대였습니다. 이것은 유교적 역사관이 기여한 바가 큰 것이었죠. 공자가 태어난 이 시기는 정말 공자 입장에서는 암흑기였습니다. 전쟁과 살육이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이죠. 윤리에 기초한 사회확립을 주장한 공자의 입장에서는 요, 순 시대의 태평과 선양의 아름다움, 주나라의 봉건제도, 종법제도, 정전제도의 완벽함에 끌렸을 것입니다. 공자는 라는 책에서 당시 시대를 암흑기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공자를 숭배하는 수많은 전통 유교사학자들도 춘추전국시대는 암흑기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유교적 입장에서의 암흑기라는 말을 맞을까요? 역사는 항상 새로운 시대를 추구합니다. 새로운 시.. 더보기
고구려의 대가와 부체제 증거 사료 대가와 부체제 건안(建安) 연간에 공손강(公孫康)이 군대를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읍락을 불태웠다. 발기(拔奇)는 형이면서도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원망하여 연노부(涓奴部)의 가(加)와 함께 각기 하호 3만 여명을 이끌고 강(康)에게 투항하였다가 돌아와서 비류수(沸流水) 유역에 옮겨 살았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 - 자료 참조 : 고구려의 대가에 대한 사료입니다. 발기는 스스로 하호를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 영역을 옮겨 살았습니다. 초기 고구려 사회가 중앙집권이 되기 전에 부체제 상태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