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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의 출생 관련 사료 왕건의 출생 관련 사료 호경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 성골장군이라고 일컬으며 백두산으로부터 유람하여 부소산(송악) 골짜기에 이르러 자리를 잡았다. 그는 한때 죽을 고비를 맞았으나 호랑이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구하고 나중에 산신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옛 부인을 못잊어 밤에 내려와서 아들을 낳았다. 그의 아들 강충은 예성강 영안촌의 부잣집 딸 구치의라는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풍수장이로부터 "만약 군을 산의 남쪽으로 옮기고 소나무를 심어 바윗돌이 드러나지 않게 하면, 삼한을 통합할 인물이 나리라"는 말을 듣고 소나무를 온산에 두루 심고 그 이름을 송악군이라 고쳤다. 그는 이제건과 보육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고 보육은 형의 딸 덕주를 아내로 삼았다. 보육은 두 딸을 낳았는데 작은 딸 진의는 바다 .. 더보기
형사 취수제의 소멸(삼국지 위지 동이전) 형사취수제의 소멸 상산왕은 연호(휘)가 연우이다. 고국천왕의 동생이다. 위서에서 논하기를, 주몽의 손자가 인데, 능히 신이하여 태어날 때 눈을 열고 태어났다고 한다. 이 이 바로 태조이시다. 지금 왕은 태조의 증손인 상산왕인데, 역시 능히 눈을 열고 태어났으니, 증조와 같은 것이다. 고구려에서는 같은 곳을 일컫어 라고 한다. 고로 그 이름이 이 된 것이다. 고국천왕은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연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처음에 고국천왕이 죽었을 때에는 왕후 우씨가 비밀로 하고 상을 치르지 않았다고 한다. 밤에 왕의 다른 동생인 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발우는 왕이 죽은 것을 모르고 대꾸하기를 - 위지 동이전 - 사료해석 : 초기의 고구려에는 형사취수제가 있엇습니다. 이 사료는 이것이 사라지는 것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