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를 위한 역사심리학 (3)

자기주도학습과 조선의 역사

옛날 사람들도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그 대답을 알기 이전에 몇가지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1.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되서 시작되었나?

최근 자기주도학습이 강조되면서 새롭게 뜨는 교육 심리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중지능(MI)와 정서지능(EQ, EI) 인데요. 사실 동양 역사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인데 새로운 것처럼 부각되는 현실이 씁쓸하네요.

한국 교육에서는 최근 100여년 동안 교육의 핵심은 '지식'에 있다라고 믿어왔고, 그 지식이라는 것을 판가름하는 기본 잣대로 지식지능(IQ)라는 것을 강조했답니다.

우리는 학교란, 인성교육과 지식교육, 신체교육을 함께하는 전인교육의 장이라고 말하면서도 지식교육에 올인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죠. 학생의 지적 능력을 서열화시켜서 평가하고, 그 평가 결과를 통해 학생의 인내심, 평정심, 마음가짐, 성공가능성을 모두 규정하는 어처구니 없는 교육을 계속해온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학교에서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준 것이 아닌가라고 위안을 삼아왔습니다. 국가는 학교를 다닌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어찌되었든 요즘 학생들은 학교를 다닐 기회를 다 주고 있고, '자기능력대로, 자기노력대로 서열이 매겨지는 것인데' 뭐가 불만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다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IQ 측정은 학습능력측정도 아닐뿐더러, 공부를 잘한다는 기준도 되지 못합니다. 설사 IQ가 높은 학생이 공부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적 성공으로 연결될 확률(성공예연성)은 절반도 되지 않는답니다. 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낄 예언성도 그것의 절반이 되지 않죠.

그렇다면 IQ와 같은 지식능력으로 학생들을 판단하고 서열화시키는 행동은 우리 고유의 정서이거나 전통일까요?

그렇지도 않답니다. 동양의 학습방법은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가치관을 선호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정서적인 교육이 더 강조되었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 의문점에서 출발합니다. 삼국시대에는, 고려시대에는, 조선시대에는 어떤 교육이 있었을까? 그리고 그 때의 교육이 지금의 입시교육과 많이 다르다면, 지금의 우리 부모세대는 왜 '그래도 서울대'가 자식의 인생에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으로 전환된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시작된 것일까?

단군 시대부터 멀리가면 주제와 동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선 시대부터 시작해서 한국 교육을 한번 정리해 보도록 하죠.

역사 이야기와 심리학 이야기가 함께 공존하기 때문에 자칫 이야기 흐름이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다음 장 이야기는 바로 이어서 전개하도록 해보겠습니다.

조선시대의 왕과 정서교육, 유교교육과 서당교육, 성균관 교육과 다중지능 교육을 한번 짚어보고 휘리릭~ 현대사로 넘어가서 정권에 따른 교육방식을 한번 짚어볼까요?

자료 참조 : 자기주도학습 <큰사람연구소>  http://imentossam.com/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흩어진 글들 주워담기

수  능

2011 사탐(역사과) 마무리 공부방법...

 

제가 회사에서 초고를 정리한 뒤 내일신문과 연합뉴스 등에 올렸던 사탐 1주일 전략인데, 인터넷에 많이 떠돌고 있네요. 글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곳은 자기주도학습 전문회사인 <큰사람연구소>와<맑은소리샘>이고, 제가 쓴 글입니다.

앞으로도 흩어져 있는 제 글들을 모아서 제 블로그에 올려두겠습니다.

   연합뉴스 : http://news.nate.com/view/20111103n24556

   미투데이 : http://www.enewstoday.co.kr/sub_read.html?uid=250302&section=sc7&section2=

   맑은소리샘 : http://blog.naver.com/minsu9200/120144012240

   재수학원 : http://blog.naver.com/msjungang/14014363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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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전 사탐 마무리 공부방법]수능 전 사탐 마무리 공부방법은?

 

 

2012학년 수능이 이제 일주일 남짓 남았습니다.

사탐과목을 선택한 수험생들이 실전에서 가진 실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자기주도학습 전문기관인 큰사람연구소에서 제공한

수험생들이 수능 일주일 전,  꼭 지켜야할 '사탐 마무리 공부방법'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수능 전 사탐 마무리 공부방법 ① 익숙한 교재로 마무리하자!

 

수능에서 EBS를 70% 이상 적용한다는 교과부 지침 때문인지 아직도 미쳐 다 보지 못한 EBS 교재를 막판까지 풀기 위해 고생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이 간과하고 있는 한가지가 있다. EBS는 70%가 출제되지만, 교과서에서는 100%가 출제된다는 점이다. 사실 정치, 경제, 법, 역사사료 등 대부분의 사탐 관련 지문이나 문제유형들은 EBS가 아니더라도 공부했던 부분들이 대부분 중복된다. 수능 마무리 시점에는 그동안 손에 익숙해진 교과서, 문제집, 오답노트, 마인드맵 등을 확인하면서 자신이 취약했던 부분이 어디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좋다.

만약 지금까지 꾸준히 EBS 교재를 공부해왔다면 남은 일주일동안 공부했던 교재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러나, 새로 처음부터 교재를 공부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새로운 EBS 문제를 풀다가 틀린다면, 출제율이 높은 문제를 틀리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시험에 방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능 전 사탐 마무리 공부방법 ② 사탐은 이번 수능에 변수가 될 수 있다!

 

금년 수능에서는 각 영역마다 만점자를 1% 정도에서 맞춘다고 했지만 6월, 9월 모의고사 결과를 보면 사탐과목의 만점자는 다른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수능에서 사탐과목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마무리 공부를 할 때는 일정한 시간을 사탐과목에 투자해서 감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시험막판에 밤을 세운다던가 일주일 전략으로 인강 20강 이상을 듣는 것은 그동안 꾸준히 공부한 내용에 혼란을 주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공부한 것과 기출문제, 모의고사 문제를 다시 보면서 문제 유형을 살펴보는 것이 감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수능 전 사탐 마무리 공부방법 ③ 사탐은 교과의 기본 개념에서 출발한다!

 

사회탐구 과목은 기본적으로 교과서의 기본 개념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중하위권 학생이라면, 기본적인 개념정리가 확실히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수능 공부를 마무리하는 바람직한 과정이다.

특히 국정교과서 한권만 사용하고 있는 윤리는 교과서에 나오는 사상과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정치, 경제 단원도 핵심적인 기본 개념 중에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다. 수능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어려운 개념을 묻는 것이 아니라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사료, 그림, 그래프 등으로 통해 심도있게 물어보기 때문이다.

과탐은 핵심개념을 알고 그것과 관련된 연역적, 귀납적 법칙을 통해 실험, 관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실험탐구형 문제가 많다. 반면 사탐은 핵심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응용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활동을 과학처럼 실험, 통제, 관찰할 수도 없을뿐더러 인간 사회의 특정한 현상을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국사, 세계사, 근현대사의 경우에는 기본적인 정치, 경제, 토지, 사회 개념을 알고 전체 흐름 속에서 그 개념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자신이 정리한 노트나 요약지를 보면서 다시 정리하는 것도 좋다. 다음 몇몇 과목을 통해서 사탐 마무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각자 생각해보자.

 

 

수능 전 사탐 마무리 공부방법 ④ 윤리 마무리 정리

 

윤리를 선택한 수험생들은 남은 기간동안 동서양의 윤리, 철학의 핵심사상이 무엇인지를 개념 정리 해보고, 기출문제나 모의고사를 보면서 각 사상이 서로 어떻게 비교, 정리되는지를 확인해봐야 감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기출될 확률이 높은 다음 문제를 살펴보면서, 이 부분을 알고 있는지 정리해보자.

1. 스토아학파의 이론과 기독교 사상의 공통점을 알고, 스피노자의 사상과 비교해본다.

2.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의 핵심을 알고 각 사상의 핵심인물들의 주장을 비교해본다.

3. 칸트의 사상과 공리주의 사상의 핵심을 알고 두 사상이 어떻게 대비되는지 정리해본다.

윤리를 택한 학생들은 새로운 문제집을 풀지 말고, 기존에 공부했던 교과서, 노트, EBS 교재 등을 보면서 철학과 사상을 비교 분석해보는 것이 좋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현대 윤리 및 시사 부분을 묻는 문제도 출제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금년에는 ‘환경보호원칙와 토지개발정책의 충돌’, ‘세계금융위기와 관련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한계점’ 같은 이슈들을 접해본 적이 있는지 묻는 문제가 출제될 수 있다.

 

 

수능 전 사탐 마무리 공부방법 ⑤ 국사 마무리 정리

 

한국사를 선택한 학생들은 다른 과목보다 생각보다 높은 난이도에 살짝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상위권 학생들도 모의고사에서 만점 비율이 낮았다는 점은 수험생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난이도에 상관없이 국사 과목의 모든 출제 문제와 핵심 개념은 교과서에서 출발한다.

학생들이 어렵다고 느낀 부분은 교과서 외의 부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교과서의 핵심 개념과 내용을 사료 속에 숨겨놓은 부분이다. 국사 교과를 준비하는 수험생은, 자신이 알고 있었던 교과서의 핵심 개념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고 그동안 풀어보았던 EBS교재와 문제집을 다시 보면서 내가 틀린 문제의 사료들이 교과서의 어떤 핵심 개념과 연결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공부감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출제 빈도가 높은 다음 내용을 정리하면서, 수능국사에서 알아야할 핵심개념과 시대개념을 알고 있는지 체크해보자.

1. 신라시대의 녹읍, 관료전, 고려시대의 전시과와 녹과전, 조선시대의 관료전과 직전법 등 수조권과 관련된 토지제도들을 설명해보고 각각의 특징을 비교해보기.

2. 정림사지 5층석탑, 부석사 무량수전, 미륵사지 석탑, 김제 벽골제가 어디에 있으며 어떤 시대의 유물인지 파악하기

3. 정조시대와 세도정치가 각각 몇 세기인지 파악하고, 두 시기에 변화된 정치, 경제, 사회상을 비교해보기.

 

수능 전 사탐 마무리 공부방법 ⑤ 근현대사 마무리 정리

 

근현대사는 1860년대부터 현대까지 약 150년간의 시대가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과목보다 시간순서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그 짧은 시대 안에서 그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 여러 사건을 모두 경험한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 인물들을 정확히 알고 정리하는 것이 마무리 복습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시대별로 정리된 자신의 노트를 2-3일 정도 훝어보면서 정리해두고, 남은 기간 기출문제나 오답노트 등을 통해서 이미 풀어보았던 문제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

특히 근현대사는 누가(인물), 언제(시대), 어디서(장소), 무엇을(사건), 왜(배경), 어떻게(상황) 진행했는지를 정리해야 한다. 흥선대원군이라는 인물이 출제되었다고 해서 금년에는 출제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같은 시대의 같은 인물이라고 해도 <언제>를 묻는 것이 아니라 <왜>라는 것을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제 빈도가 높은 다음 사건과 인물들을 정리하면서 근현대사의 핵심개념과 인물, 시대, 사건을 확실히 알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1. 인물(흥선대원군, 최익현, 김옥균, 전봉준, 양기탁)을 시대순으로 정리하고, 이들과 관련된 몇몇 상황(신미양요, 위정척사운동,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신민회)을 통해 왜 이런 상황(또는 사건)이 발생했는지 정리해보기.

2. 일제시대에 있었던 회사령, 토지조사령, 산미증식시행령, 국가총동원법의 사료를 보고 각각의 시대에 일제 정책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기.

3. 신간회의 창립 배경과 해소 과정을 알고 있는지 체크해보기.

4. 광복 직후의 단체 혹은 사건(조선건국준비위원회, 1차 미소공동위원회, 좌우합작위원회, 남북협상, 대한민국정부)을 시대 순으로 정리하고 관련된 인물(여운형, 김규식, 김구, 이승만)이 어떻게 관련되었는지 확인해보기.

 

 

지금까지 수능 전, 사탐 마무리 공부방법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1주일 남은 수능에서 수험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공부했던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문제풀이의 감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스스로 여태 정리한 노트에서 핵심 개념을 다시 정리하고,

그동안 풀어보았던 문제집과 기출문제를 통해 틀렸던 문제들의 유형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1주일은 매우 짧은 기간입니다.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자신의 본 실력을 100% 발휘하고 수능에서 예상한만큼 성적을 얻도록 수험생 여러분들 끝까지 화이팅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근현대사 이야기 (NO.4)

한국사에서 시대구분이 시작된 시기는?

- 시대구분 이야기 -

자, 이제 서양의 시대구분에 대한 이야기는 끝내자. 이제, 우리 역사에서는 어떻게 <시대 구분>를 하는 지 알아보도록 할꺼야. 자, 칼하나 들고 우리 역사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조각조각 내보면서 <카리스마> 있게 놀아볼까나? (헉... 유치한 개그 ㅋ)

그럼,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할 테니, 한국사에서 근대, 현대라는 개념이 언제 등장했는지 알아봐야겠지? 그 첫 번째, 시간.... First Time.... go!

지난 시간에 서양 <근대인>들이 <중세>와는 다른 자신들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근대>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했잖아. 그런데 말야. 고대-중세-근대라는 서양인들의 구분은 시간에 따라 나눈 구분점이야. 서양 근대인들이 가까운 시간을 자신들의 시간인 <근대>로 파악하면서, 점점 멀어지는 시대를 다른 용어로 표현했었지.

자 그럼 자세히 한번 볼까? <근대>의 사람들은 역사를 이렇게 생각한 거야. 역사는 먼 옛날의 이야기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시간별로 나눈 것이라구.... 하지만, 어떤 시대를 나누었다면, 아무 생각없이 나누진 않았겠지? 당연히 시대마다 그 시대를 상징하는 무언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고 시대를 나누었을 거야. 그렇게 시간이 쭈욱~~ 흐르면서 점점 나은 세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가장 발전한 근대라는 시대까지 왔다고 생각한 거지.

결국, <근대인>들이 시대 구분을 했던 목적은 <세상이 가장 올바르게 발전했다>라는 자부심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는 <서양 근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발전을 똑같이 찾기가 너무 어려운 일이거든. 우리 역사는, <시대에 따라 발전했다>라는 명확한 기준보다 더 확실한 기준점이 있어. 그건 바로 <고조선 - 삼국시대 - 고려 - 조선>과 같이 왕조가 바뀌면서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는 <우리식 기준>이 있다는 거야.

한마디로, 우리 역사에서는 왕조별로 각 시대를 나누는 것이 한 시대를 이해하는데 훨씬 편하거든. 이렇게, 왕조별로 역사가 다 다르고, 발전하는 모습이 다 다른데, 서양식으로 나누는 구분법을 사용하려고 하니깐 너무~ 안 맞는거야.

에구구... 우리 역사는 서양의 기준에 맞추어 표현하기 너무 힘들다. 그런데 옛날 한때.... 이걸 이용해서 우리 역사를 아주~ 비하하는 역사학자들이 짜잔~ 하고 등장했었어. 그 나쁜 사람들이 누구냐구? 바로 우리나라를 점령했던 시기, 즉 일제 식민지 시대의 <일본 역사학자>들이지.

일본 역사학자들은 박은식, 신채호 선생님 같은 민족주의 역사학자 분들이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것을 너무 싫어했어. 조선의 역사 연구가 많이 진행될수록 일본이 조선인들을 <무식한 인종~>으로 몰아세우기가 어려웠거든.

그래서~  일본 총독부에서는 1920년대부터 <조선사 편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조선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지.

그럼 이 <조선사 편수회>는 당연히 뭘 했을까? 당연히~ <일본이 조선을 점령한 것이 너무 잘된 일이다> 라는 글들을 쓰기 시작했겠지, 뭐...  그럼 이 단체의 사람들이 주장한 것들을 한번 쭉~ 들어보고, 그 결론이 뭔지 같이 볼까나?

나쁜넘A : 야... 조선애들은 지들 고대 역사가 없어. 북쪽은 중국애가 내려와서 무슨 기자 고조선을 만들었잖아. 또, 중국 한사군한테도 점령당해서 뚜들겨맞구... 남쪽은 우리 일본에게 점령당해서 임나일본부를 세웠고... (타율성이론)

나쁜넘 B : 뭐, 그 이후에도 거란애들, 여진애들, 몽골애들... 돌아가면서 한반도를 박살냈잖아. 뭐, 만주쪽 이민족들의 역사가 바뀔 때마다 조선 역사가 바뀌니... 이건 뭐, 조센징은 역사가 있긴 있어? (만선사관)

나쁜넘 C : 결국 조선애들의 역사는 한반도를 벗어나보지도 못한 역사야. 뭐? 위대한 대륙 진출? 다 뻥이지 뭐~  중국, 일본, 이민족을 따라하면서 이루어진 역사일 뿐야... 어설픈 따라쟁이의 역사네!! (반도사론, 사대주의론)

나쁜넘 D : 한마디로, 고려니, 조선이니 하는 왕조 교체는 별 의미도 없는거라니까... 얘들은 쭈욱~ 고대 수준이니, 자본주의같은 건 생각도 못한 원시인들이지. 뭐, 우리 일본 아니였으면 영원히 발전도 없는 애들이야.(정체성 이론)

결논내봐 : 결과적으로 원시적인 조선이 식민지가 된 건 천만다행인 거야. 일본덕에 근대화도 된거잖아. 조센징들은 일본의 식민지 교육을 감사해야돼.(식민사관의 결론)

뭐, 이런 논리를 만든거야. 한마디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광고하기 위해 한국사를 연구한거지.

그럼 우리 역사학자들도 본격적으로 <시대 구분>이라는 것을 하면서, 일본의 이상한 주장을 반박해야겠지?

그 때, 짜잔~ 하고 나타나 시대 구분을 시작한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 인물이 바로 <마르크스의 시대구분>을 가지고 일본과 싸웠던 사회주의 역사학자 <백남운>이란 사람이야.

일본학자 : 야... 조선 너네는 왕만 자꾸 바뀌지, 발전도 없고 수준은 계속 고대 수준이고.... 너무 미개하잖아.

백남운 : 아니거든? 우리도 고대-중세-근대 사회가 있었어. 내가 쓴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뭐 이런책 읽어볼래?

일본학자 : 귀찮어. 그 책에서 뭐라고 쭝얼거렸는데? 어쨌든 조선애들은 원시적이라 중세가 없었다니깐?

백남운 : 자, 우리 마르크스 선생님이 말씀하신 시대 구분을 조선에 적용해 볼까? 이걸로 계산해보니깐, 와... 서양 고대처럼 우리 역사에도 노예제도 있었지, 토지생산 있었지.... 서양 고대처럼 중세 봉건제도도 있었고, 넓은 토지를 경작하는 장원제도도 있었네. 거기에도, 지주와 농노라는 계급투쟁도 있고... 와... 아 있다, 다 있어!!! 자료 들춰보니깐 하나하나 증거 다 있다!!!

자, 이렇게 백남운 선생을 시작으로 우리도 시대 구분이라는 걸 시작한 거야. 근데, 이 시대구분은 일본애들의 황당한 헛소리에 대항하기 위해 <마르크스> 이론을 우리 역사에 마구마구 가져다 붙인 거라서, 약간 억지도 좀 있었다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랄까?   

자, 이렇게 시작한 시대구분은,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에게도 퍼지기 시작했지. 그런데,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우리 민족이 찌질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위대한 고대 북방의 역사, 특히 고구려의 역사 연구에 많이 집중하게 되었지. 심지어 어떤 학자는 <고구려>를 <로마제국>과 맞먹는 위대한 고대 제국으로 표현하기도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가 광복을 맞이한 그 기쁜 날...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문제가 생겼어. 사회주의자인 백남운 선생도 북한으로 넘어갔고, 대부분 민족주의 역사가들이 스스로 북한에 갔거나, 납치되서 북한에 넘어가 버린 거지.

그 결과!!! 1950년대 이후, 남한에 남은 역사학자들은 시대구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이 대부분 이였어.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가지고 역사를 연구한다는 입장이였지. 따라서 이들은 민족주의니,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단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해.   

그나마,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시대구분>이라는 말이 빤짝~! 등장하기도 했지. 역사는 <혁명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을 갖는 시민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시대를 구분할까?> 라고 생각한 용감한 역사학자들이 등장하기도 했어.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었구.... 박정희 군사 정권이 시작되자, 또 다시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시대 구분을 하겠다는 용기를 가진 역사학자들은 점점 사라졌지. 교과서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시대구분을 한 학자들은 <재야학자> 소리를 듣기도 했구.

그럼 본격적으로 <시대구분>이란 걸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 그건 바로,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성공한 이후야.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성공한 건,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였으니, 시대구분도 199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교과서(3차 교과서)에 등장하게 된 거지.

자, 그럼 다음 장에서는 1990년대 이후 짜잔~ 하고 연구가 시작된 우리 역사의 시대 구분 기준을 한번 살펴보면서 이야기 해볼까나...


-  다음 정보들을 참조하면 더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어요!  -


중국사시대구분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민두기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1997.08.31
상세보기

한국사 시대구분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차하순
출판 : 소화 1995.04.25
상세보기

조선사회경제사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백남운 / 박광순역
출판 : 범우사 1999.02.10
상세보기

조선민족의 진로 재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백남운
출판 : 종합출판범우(BW범우) 2007.08.15
상세보기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시어도어 래브 / 걍유원,정지인역
출판 : 르네상스 2008.12.29
상세보기


- 유튜브 시대구분 자료들 ....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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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크로스 퀴즈 86회

오늘 퀴즈는 한국사의 중요한 사건 100 가지에 대해 연도를 물어보는 크로스 퀴즈랍니다.

오늘 퀴즈는 한국사를 어느 정도 심도있게 공부하신 분들만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이 퀴즈의 정답을 1/5만 맞추셨어도, 정말 대단한 분이실거에요.

오늘은  100문항이랍니다.  대박~
그럼 신나게 출발해 볼까요?

퀴즈 사용법을 새싹이에게 묻고 싶으시면 이 곳을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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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퍼즐

  1. IMF 구제금융 요청
  2. 조선책략 유입
  3. 정중부의 변란으로 무신정권 시작
  4. 이자겸의 난
  5. 7.4 남북공동성명
  6.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7. 신미양요
  8. 고종 즉위, 흥선대원군 집권 시작
  9. 지하철 1호선 최초 개통.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
  10. 신라의 삼국통일 완성
  11. 임진왜란 시작
  12. 삼국사기 편찬
  13. 나당 동맹 체결
  14. 살수대첩. 을지문덕이 수나라 대파
  15. 갑신정변
  16. 고구려가 평양성으로 수도 천도
  17. 예송논쟁 시작
  18. 일제 패망, 광복
  19. 궁예가 후고구려 건국
  20.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
  21. 대한제국 수립.
  22. 안시성 싸움. 양만춘이 당 태종의 군대 격파
  23. 훈민정음 반포
  24. 광개토대왕 즉위
  25. 월남전 파병
  26. 기원전 *** 년, 위만조선 멸망
  27. 조선 건국
  28. 강감찬의 귀주 대첩
  29. 대조영이 발해 건국
  30. 한일병합조약 체결
  31. 견휜이 후백제 건국
  32. 고려의 개경환도, 삼별초의 항쟁 시작
  33. 대가야 멸망
  34. 사사오입 개헌 실시
  35. 신라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를 점령하고 관할 시작
  36. 고조선 건국. 기원전 **** 년
  37. 한일 월드컵 개최(축구)
  38. 최초의 철도. 경인선 개통
  39. 제주 4.3항쟁, 대한민국 정부 수립
  40.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사살
  41.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 후백제 멸망
  42.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

세로 퍼즐

  1. 서울올림픽 개막
  2. 기원전 ** 년. 주몽이 졸본에서 고구려 건국
  3. 국채보상운동
  4. 4.19 혁명 발생
  5.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와 40년 전쟁 시작
  6. 한일기본 조약으로 일본과 국교 정상화.
  7. 3.1 운동
  8. 경기도에 대동법 실시 시작
  9. 진보당 사건 발생
  10. 기원전 ** 년 신라 혁거세 건국. 사로국 시작
  11.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12. 인조반정
  13. 병자호란 시작
  14. 임술농민봉기
  15.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청일전쟁
  16.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 신라 멸망
  17.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침입한 왜구 격퇴
  18. 병인양요
  19.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
  20. 10.26 사태, 12.12 군사반란
  21. 강화도조약
  22. 관산성 전투. 신라의 배신으로 성왕 전사
  23. 5.18 광주 민주화 운동
  24. 김일성 사망, 김정일 집권 시작
  25. 기원전 ** 년. 온조왕이 백제 건국
  26. 러일전쟁
  27. 광주학생항일운동
  28. 금광산 관광 시작
  29. 고구려 멸망
  30. 6월 항쟁 및 6.29 선언
  31. 계유정란
  32. 6.10 만세운동
  33. 백제 멸망
  34. 홍경래의 난
  35. 신민회 해산 및 105인 사건
  36. 경신환국
  37. 을미사변, 을미의병, 을미개혁, 단발령
  38. 을사조약
  39. 수로왕이 가야(금관가야) 건국
  40. 5.16 군사 쿠테타
  41. 연개소문의 정변
  42. 백제와 신라가 나제동맹 체결
  43. 금관가야 멸망
  44. 6.15 남북 공동 선언
  45. 왕건이 고려 건국
  46. 6.25 전쟁
  47. 임오군란
  48.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 강동 6주 획득

 

This crossword puzzle was created by http://historia.tistory.com/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한국사 2지 선다 퀴즈입니다.
한국사 상식에 관한 문제들이에요.... 몇점이나 나오는지 테스트 해보시기 바랍니다.

배점을 100점으로 해야 하는데 깜빡 300점으로 해버렸네요.. 쩝...
문제마다 음성을 넣는것도 까먹구...
다음부터는 꼼꼼히 확인하고 올리겠습니다. ㅋ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히스토리아 2010 하반기 역사 이야기

무슨 이야기들을 적어볼까?

2010 하반기에 올릴 글 목록들입니다.

매번 이것 저것 잡다한 것들을 올린다고 해놓고, 개인적인 일이나, 먹고사는 일 때문에 블로그 관리는 맨날 뒷전으로 밀리는군요 ㅋ

 - 하반기에 올려보려는 글들...

하반기에 짬짬히 올리려는 목록들입니다.

1. 가로세로 역사퀴즈 <한국근현대사 편>을 틈틈이 올리고 있답니다. 연말이면 완료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시간날 때 열댓개씩 몰아서 만들고, 시간날 때 짬짬히 올리면 될 것 같네요.

2. 돈으로 보는 한국사 - 이건 빠른 시일내에 완료될 것 같습니다.

3. 금년에 꼭 정리하고픈 자료들이 <고려사 노트> 또는 <한국근현대사 노트> 였는데, 상반기에는 손도 못대고 있었네요. 정리해놓은 자료들은 있는데, 정리해서 업로드할 틈이 없었어요. 틈틈이 업로드 하렵니다.

4. 하나퀴즈, 매일퀴즈 처럼 틈틈이 올리던 퀴즈도 시간이 되면 올려볼 거랍니다.

5. 틈틈이 플래시로 만든 학습 동영상을 올릴 거랍니다. 연말이면 아마 2-3개쯤이나 될런지...

 - 도톨이와 새싹이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적어보았는데요. 어려운 문체로 적기도 하고, 매우 쉽게 써보기도 하고, 인터넷 용어로 적기도 하고, 경어체로 적기도 하고....

이제는 도톨이와 새싹이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만들 글들은 이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거랍니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돈으로 보는 한국사 (1)

인류가 화폐을 사용하기 시작하다.

1. 인류가 돈을 사용하기 시작하다.

오늘 이야기 하려는 부분은, <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개화기 이후 일제시대부터 광복이후 현대사회까지의 돈들을 보면서 <돈>으로 역사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자, 그럼 돈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요?

일반적으로 <화폐>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곳은, 세계 4대 문명 지역이었습니다. 즉, 최소한 청동기 시대이후, 돈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화폐라는 것이 등장하려면, 일단 화폐를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마을은 존재해야 하고, 그 마을들간에 장사가 이루어져야 하겠죠? 또, 장사를 할 때,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은, 마을 전체를 세력권으로 삼아서, 강제적으로 화폐를 써라... 라고 말할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해야 합니다.

따라서, 화폐라는 것을 사용한 지역을 보면, 역사상 최초의 문명지역이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국가들, 황하문명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 이집트 지역과 소아시아 국가들, 그리스와 로마 문명 지역에 고루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답니다.

그럼, 돈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당시에 살아보지 않아서 확실한 이유는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인류는 국가가 생기기 이전부터, 서로에게 필요한 물품을 물물교환 하였을 것입니다. 콩과 물고기를 바꾸기도 했을 것이고, 동물 가죽과 기름을 바꾸기도 했겠죠.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서로 부족했기 때문에, 거래를 통해 서로 원하는 물품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4대 문명에서, 문명, 도시, 국가라는 것이 출현하면서, 이러한 물물교환 체제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보통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물품을 교환하였겠지만, 일부 지배자 계급은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재산을 축적할 목적으로 물건을 모을 때, 물물 교환은 한계에 부딪히게 된답니다. 부피가 크거나, 빨리 썩어 버리는 물건은 물물교환으로 적합하지 않고, 보관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개껍질과 같은 유사화폐를 사용하기도 하고, 금이나 보석과 같은 광물을 교환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했죠.

특히, 조개껍질은 단단하면서도 모양이 아름답기 때문에, 기원전 3천년전부터 화폐로 이용되었습니다. 한자에서 돈을 뜻하는 단어에는 대부분 조개 패(貝)자가 부수로 들어가 있는 있답니다. 그런데, 이 조개화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부터, 중앙아시아, 중국, 한반도까지 널리 발견됩니다. 고대에 일반적으로 쓰인 화폐였다는 증거죠. 특히, 기원전 7세기경 낙타 대상인들은 조개 껍데기를 실이나 가죽으로 100개씩 묶어서 물품 교환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화폐로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일정 단위의 화폐로 이용한 것이죠.

하지만 이런 유사 화폐들도 큰 단점이 있었답니다. 먼저 철이나 보석은 멀리 이동할 때 너무 무거웠답니다. 만약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돈을 모은다고 생각해보세요. 몬스터를 1000마리 때려잡고 아이템을 얻었는데, 그 아이템을 다 들고 다닌다면? 게임에서야 인벤토리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답니다.

또, 돌, 뼈, 조개껍질과 같은 유사 화폐는 오래 이동할수록 파손될 확률이 높습니다. 아름다운 모양을 가치로 하는 화폐일수록 기간이 오래될수록 화폐로서의 가치는 점점 사라지겠죠?

그래서 옛 사람들도 모양이 변하지 않고도 아름다우며, 이동할 때 보관이 용이한 형태와 모양의 화폐를 생각하기 시작했답니다. 그것을 세계 최초로 실현한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터키지방(리디아인) 사람들이에요.

위 화폐가 바로 최초의 화폐인 일렉트럼 코인입니다. 이 화폐를 만든 왕국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고대 왕국이었던 리디아랍니다. 이 동전은 천연의 금과 은을 합급해서 만든 것인데, 금 75%에 은 25%를 섞은 합급을 <일렉트럼>이라고 불렀답니다. 이 화폐는 달걀모양의 타원형으로, 실제 크기는 강낭콩만하답니다. 화폐에는 정복전쟁을 상징하는 사자가 새겨져 있고, 금속의 무게와 비율이 적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인장이 찍혀있습니다.

이 화폐를 본 고대 그리스인들이, 주조 방법과 용도에 감탄해서 화폐를 만들기 시작했고, 훗날 로마까지 화폐 주조법이 유행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동전(코인 : coin)은 리디아 화폐를 본따 만들었지만, 둥근 모양과 다양한 상징물을 넣어서 서양 동전의 원형이 되었답니다. 이들은 리디아인의 일렉트럼 기법을 사용하여 금과 은을 합성해서 동전을 만들었는데, 이 합금을 <호박금>이라고 불렀습니다. 보통,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과 함께 신성을 상징하는 조류(새), 지배자의 얼굴을 넣었습니다. 이후, 헬레니즘 시대가 되면서 알렉산더 대왕 사후, 각국의 지배자들이 스스로를 찬양하는 동전을 많이 만들었답니다.


이 헬레니즘의 화폐들이 로마로 이어지면서, 로마 제정시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자신의 얼굴을 화폐에 집어넣으면서 로마 화폐가 황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유통됩니다. 물론, 황제가 바뀔 때마다 황제 스스로가 자신의 얼굴을 화폐에 집어 넣으면서 화폐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게 되었죠.

그런데, 로마 제정이 점차 문란해지고, 게르만 용병들이 늘어나는 시기가 되면 화폐 역시 문란해진답니다. 화폐가 민망해지는 정도로 로마 사회가 점점 타락해가는 것을 수준을 알 수 있답니다.

자, 위 화폐는 로마의 공식 화폐는 아니지만, 일부지역에서 공공연하게 유통되었답니다. 로마가 몰락할 무렵, 군인황제들이 서로 죽이고, 죽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 이 화폐들이 유통되었죠. 

  우리나라에서도, 전두환과 같은 군인이 정권을 잡았을 때, 3s 정책을 했었죠? 군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sport, screen, sex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책 말이죠. 로마 사회에서도, 군인 황제 시기에 극도로 사회가 문란해지면서 이런 화폐가 등장할 수 있었답니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했던 황제가 바로 <디오클레티니아 누스> 였죠. 이 황제는, 국가의 공식 화폐가 아닌, 식민지(속주)의 문란한 화폐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가고 있었죠.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이런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경건하면서도 문란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을 체제에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사회 정화 사업을 하였답니다. 그 결과, 이런 불량 화폐들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죠.

이야기를 하다보니, 서양 화폐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었군요. 그럼 다음 장에서는, 우리 역사에 등장한 동전과 지폐들을 이야기하면서, 화폐로 알 수 있는 역사 이야기들을 전개해 보겠습니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인터넷 개그콘서트 (5)

한국사 역대 최강 아이돌 열전 <고대편>

1. 내 너를 최초의 아이돌이라 부르리니...

21 세기.. 대한민국은 온통 아이돌이 점령하였어. TV를 틀면 짐승돌(?)이라는 애들이 훌렁훌렁 벗어제끼며 식스팩을 자랑하는 시대가 열렸지. 거기에 걸그룹들은 떼거지로 나와서 골반춤을 추는게 일상화된 시대이니, 뭐 모두가 적응하면서 살아야지...

자자... 닉쿤 얼굴 그만보고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지금부터 닉쿤보다 더 파격적인 원조 아이돌을 소개할 순서니까... 한국사에서 최초의 아이돌은 누구일까?

놀라지 마시라... 최초의 아이돌은 짐승돌보다 더 충격적인 <원조 짐승돌, 아니 짐승>이었던 그녀... 바로 <웅녀>이다. 소녀시대와 카라의 덴마크 다이어트? 웅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곰의 평균 수명으로 미루어 웅녀는 10세 전후인 역대 가장 어린 유아돌이였어. 그녀는 어떤 막강한 걸그룹들도 절대 해낼수 없는 쑥과 마늘 다이어트라는 전무 후무한 프로그램을 선보였지. 그 날씬한 몸매를 무기로 당대 최고의 스타 욘사마와 태왕사신기 촬영현장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하게 되니... 단군의 어머니가 아이돌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거니?

2. 아이돌의 홀로 서기...

자자.. 이제 시대를 넘어서서 고구려로 가보자.

고구려의 전신인 부여에서는 막강 그룹 <제국의 아이들>이 버티고 있었지. 부여에서는 인기 절정의 꽃미남들이었어.

이런 맴버들 속에 우리의 자랑스런 <추모돌>이 등장했던 거야...

유화 부인의 뱃속에서 <알까기>라는 보도 듣도 못한 신기술을 선보이며 혜성처럼 등장한 무서운 신인이었지. 그는 <제국의 아이들>의 새로운 맴버로 들어가고 싶어했어.

근데 말이지...  

이 불쌍한 추모돌은 <제국의 아이들> 맴버에 들어가지 못했어. 일단 기존 맴버들과 융합될 수가 없었거든. 그룹은 팀플레이가 생명인데, <알까기> 춤이라던가, 동물과 대화하는 개인기 같은 것들이 기존 맴버들에게 거부감을 주었거든.

거기에 아이돌 데뷔 전, 연습생 시절부터 소속사 궁녀들과의 스캔들이 붉어지니, 더 이상 부여에서 버틸 수가 없었지. 그래서 추모돌은 남쪽으로 내려와 신생 기획사인 <졸본 기획>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유부녀 마케팅 팀장인 <소서노>의 눈에 들어 스타로 크게 된거야.

결국 훗날 부여 기획까지 잡아먹고, <졸본 기획> 최강의 아이돌로 입지를 다지게 되지.

그런데 말야...

추모돌의 핏줄로서 추모와 궁녀의 스캔들로 태어난 부여의 <유리>는 뭐하고 있었을까? <유리>는 아버지가 아이돌이라는 증표로 남긴 반쪽짜리 유산을 들고, <졸본 기획>으로 내려왔다는데...

근데 왠걸... 부여 출신들이 다 아이돌 한번 해보겠다고 줄을 서 있는 거야...

자자.. 그리하여 진짜 유리를 찾기 위한 기획사의 오디션이 시작되었어. 이 오디션에서 이긴 최후의 승자는 소녀시대 유리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지. 

그 이유는 간단해... 오디션 시험 항목이 <황조가>를 귀엽게 부르는 것이었거든?

<펄펄나는 꾀고리가 암수 한쌍 정답게 노는 듯한 목소리>를 가진 자가 진정한 2대 아이돌, <유리왕>으로 볼 수 있는 거지...

3. 최초의 한류 스타는 누구?

자.. 이렇게 해서 <졸본 기획>은 우리 고대사의 최강 기획사가 되었지만, 아직 부족했어. 가장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최대 팬을 확보할 수 있는, 만주와 중국 지역에 진출해야 했거든.

그래서 <졸본 기획>은 <고구려 기획>으로 이름을 바꾸고, 한류를 위한 맞춤형 아이돌 스타를 양성하기 시작했지.

그게 바로 유명한 <담덕돌>이야....

뭐 이렇게 되서 <고구려 기획>은 연간 세금 매수액을 어마어마하게 받아들였어.

한국사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거대 기획사가 된 것이지.

4. 새로운 강자의 등장 <신라 기획>

고구려 다음으로 백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백제 기획>은 솔직히 자료가 없어.

<백제 기획>은 <고구려 기획>에서 갈라져 나왔지. <유리>가 부여에서 내려와 <소녀시대>를 결성하자, 열받은 소서노 부인이 어린 아이돌만 좋아하는 남편에게 질려 버린 거야. 소서노는 아들 비류, 온조를 데리고 아예 독립 기획사를 차린 뒤, 남자 아이돌을 전문적으로 양성했지.

짧은 기록에 따르면, <백제 기획>은 <고구려 기획>보다 먼저 한류 스타를 양성했다고 해. 4세기 근초고돌이라는 아이돌이 있었다나.. 뭐래나...

그리고, 한류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 일본 열도에 연오랑-세오녀라는 듀엣 가수를 파견하면서 일본 시장을 선점했어. 하지만, 점차 <고구려 기획>의 야심작 장수돌에게 밀려서 기획사 자금줄이 끊기게 되지.

반면, 신라는 6세기 <신라 기획>을 창립하고, 다른 기획사와 차별된 전략으로 <걸그룹>을 양성하는 작전을 시도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유명한 아이돌 S.E.S야...

6세기, S.E.S의 눈부신 활약으로 동아시아 아이돌의 새 장을 연 <신라 기획>은 춘추돌, 유신돌 등 기존의 성골 아이돌들과 다른 파격적인 진골 계열 아이돌을 내세워 결국 3국 기획사를 모두 통일한 절대 기획사가 되었어.

4. 노예 계약 파문과 <고려 기획>의 등장...

그런데 말야... 문제가 발생했어.

거대 기획사가 시장을 독점했는데, 연예인을 하겠다고 난리치는 얘들이 너무 많았거든.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게 된거야.

그래서 <신라 기획>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어. 연예계에 <노예 계약 파문>을 일으킨거지.

<신라 기획> <연예계 활동 노예 계약서>

제 1조. 기존 연예계에 지분을 가진 <진골> 아이돌들만 활동이 가능하다.

제 2조. 6두품 아이돌들은 연말 공연과 시상식에 나갈 수 없다.

제 3조. 진골 이하 아이돌은 진골과 같은 무대 의상, 차량, 마이크를 사용할 수 없다.

제 4조. 더 이상 걸그룹은 활동시키지 않는다.

제 5조. 진골 탑스타들은 엄청난 토지와 특권을 보장한다...

 

부칙 : 6두품 이하 아이돌은 천만년 지나도 기획사의 이 계약을 벗어날 수 없다....

자, 기획사는 1개 인데, 연예인 하겠다는 얘들은 많고... 결국, 기획사의 횡포 때문에 많은 아이돌들이 아시아 최고 기획사 <당나라 기획>으로 떠나게 되지.

원효는 당나라 기획으로 가던 도중 해골 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나서, 서민들과 노래하는 길거리의 아이돌이 되고 말잖아. 최초의 언더그라운드에서 활약하는 싱어송 라이터가 된 것이지. 요석공주와 스캔들도 파파라치들에게 다 들키고 말았지만...

  최치원은 당나라에 도착해서 대륙 최고의 월드 아이돌이 돌아왔지만, 신라 기획의 노예계약서 때문에 결국 아이돌을 포기하고 산 속에 은거해 버렸지. 월드 스타도 신라에서는 인정해주지 않았거든...

결국, <신라 기획>은 독단적이고 비효율적인 <아이돌 성장 프로그램> 때문에 망하게 되고, 새로운 기획사 <고려 기획>이 등장하게 되지.

그리고, <고려 기획>의 사장 왕건은, 소속 연예인들이 떠나 버릴 까봐 두려워서 소속사 여자 아이돌 전부와 결혼해버리는 무시무시하면서 부러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는 거야.

자, 대충 고대사의 아이돌들을 살펴 보았어. 다음 편은 <고려> 이후의 아이돌 이야기인데, 과연 시간이 되서 더 연재할 수 있을지는 나도 의문이네... 이거 하나 만드는데 장장 2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으니....

  아래 추천 꾸욱 1방... 역사투표 1표 날려주세요... 그럼 다음 글이 빨리 나온답니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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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chool.kerinet.re.kr/teach/

교육용으로만 활용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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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한국사1

고조선 이야기 - 환단고기와 가림토(1)

1. 한국사....

그동안 다루었던 한국사의 여러 이야기들을 재편집해서 순서대로 기술해볼까 합니다. 낙서처럼 끄적대며 적었던 글들이 많네요. 보통 한국사 하면 구석기 시대부터 쭈욱~ 읽었던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족의 기원부터 시작하면서 석기시대는 좀더 뒤로 미루고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논쟁>거리가 등장하네요. 고조선이라는 최초의 국가는 너무 논란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고조선이 <기록이 없었던 선사시대와, 기록이 전해져오는 역사시대>의 기로에 서 있었던 국가이기 때문이지요. 얼마 안되는 기록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고조선에 대한 모든 기록을 하나 하나 다 파헤쳐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한국사의 시작점에서 환단고기나 가림토 문자 등을 다룬다고 하면, 속이 거북하실 분들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뭐야? 역사 사이트가 아니라 신화 사이트야?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이야?

네... 실제 일어난 일들과 그럴듯하기 꾸민 것들을 구분하느라 머리가 아프시겠죠. 하지만, 가진 기록이 너무 없기 때문에, 고조선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모든 기록을 살피고, 각자가 역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장 빠른 역사 이해 방법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오늘은 환단고기부터 다루고, 다음 장부터는 고조선과 관련된 다른 책들과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글들, 실증주의 사학자들의 이야기와 교과서까지 쭈욱~ 다뤄보려고 합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환단고기를 가지고 민족의 자긍심을 느껴보고 싶다면, 다음 사이트와 영상을 참조하세요.

http://hanpride.kr/ (한민족의 역사)

책 썸네일

시중에 나온 환단고기 - 계연수 저

2. 환단고기 - 완벽한 위서일까? 참고가 가능한 고서일까?

1979년 광오이해사라는 출판사에서 <환단고기>라는 책을 출간하였고, 1985년 일반인을 위한 한글 번역본 환단고기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 책에서는 고조선 이전에 광할한 영토를 가진 우리 민족의 위대한 국가가 있었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하나 하나 적혀 있습니다.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인 것 처럼 광고가 나오기도 했었죠.

그런데, 왜 그런 역사책이 최근에 등장하게 된 것일까요? 그 이유를 환단고기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1910년. 국권이 강탈되고 일제 강점기가 시작됩니다. 나라를 빼앗긴 독립군들은 간도, 민주 등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독립활동을 시작하게 되죠. 독립군이었던 홍범도 장군은 계연수에게 자금을 주어 민족의 역사를 편찬하게 하였고, 1911년 계연수가 기존에 있었던 역사서들을 모아서 <환단고기>라는 이름으로 책을 묶었습니다.

이 책을 집필한 뒤 계연수는 이유립에게 한단고기의 원본을 건네주었는데, 1975년 이유립이 모든 관련자료를 분실했다고 합니다. 1979년 나온 환단고기는 이유립이 기억을 되살려 복원한 책입니다.

하지만, <환단고기>는 끊임없이 위서 논쟁에 시달리고 있는 책이고, 기존의 역사학자들이 인정하지 않는 책입니다. 그 이유를 볼까요?

먼저, 이 책을 만든 이유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1910년대 일제 강점기를 맞이해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1911년에 만든 책이라면, 출판도 되었어야 했고, 누군가가 이 책으로 독립군의 학교에서 수업도 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원본을 분실했는데, 그 방대한 내용을 모두 기억해서 복원했다는 점도 그렇고, 복원한 책에는 후대의 용어, 후대의 학설 등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또, 방대한 고대 환국과 배달국이 존재했다면 아시아 어디선가 그 유물, 유적 등이 발견되고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도 못합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북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공산주의> 사회로 이르기 위해서는 원시사회 - 중세- 근대 자본주의 - 공산주의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환단고기는 이런 세계사의 발전 규칙도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먼 옛날, 치우 황제가 강력한 철기 무기로 전쟁을 이겼다는 것을 북한도 인정할 수 없는 거죠. 북한은 고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였고, 고조선이 평양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평양도읍설>을 주장히기 때문에 <환단고기>의 이야기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남녀평등, 세계만방 등 현대적인 언어를 사용했고, 고려, 몽고 등 당시대와는 맞지 않는 언어가 나오며, 문명이 발생하기 이전의 시대에 철기가 나오는 등 도무지 근거가 없다는 것이죠.

더 이상한 점은 <환단고기>에 나오는 민족주의가 <식민지의 민족>들이 생각하는 민족주의와는 동떨어졌다는 점입니다.

침략당한 민족들은 보통 침략자의 오만함을 비난하고, 민족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민족주의>를 지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환단고기는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아시아 전체가 우리 민족의 영역이었다는 이론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나치의 확장전쟁이나 일본의 대동아경영설을 반박할 수 없는 이상한 민족주의 사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당대의 최남선 문인이 <아시아는 한민족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역사관을 주장했다가 친일파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반대로 이 책이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어느 정도 내용을 첨가했을 수는 있지만, 완벽한 위작을 가지고 국민들을 속이려고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만약,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 만든 책이라면 아주 허황된 내용보다는 보다 믿을 수 있는 <적당한 사기>를 쳤을 것입니다. 또, 일본의 <대동아경영>과 비슷한 이론으로 역사서를 적을 이유도 없었겠지요. 결국,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려고 편찬한 <도가 계열의 작품>인데, 기존의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결합시킨 것이기 때문에 골라 읽어야 한다는 것이죠.

결정적으로는,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너무나 없기 때문에 환단고기의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 역사의 참고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만약 그런 역사적 일들이 정말 사실이라면, 우리 민족의 뿌리가 얼마나 단단하고 대단한 것인지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럼 다음장에서는 환단고기가 주장한 핵심적인 내용 몇가지를 가지고, 고조선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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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낙서 세계사 (1)

역사를 다 아는 자만 돌을 던져라~

1. 아... 교과서같은 역사여~~~

지금부터 일기를 쓰듯이 풀어서 역사를 조잘조잘 써보려고 한다. 그런데 말이지, 책이나 뭔가 보면 그럴듯한 서문들을 앞에 적어 놓잖아. 나도 뭐 그럴 듯한 뭔가를 적어보려고 하는데 말이야. 뭐 폼나는 거 없을까?

생각해보니깐 인터넷으로 역사에 관한 글을 적는다는 건 너무나 자유로운 일이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누구나 기분나쁘면 반박할 수 있는 공간인데, 난 그동안 너무 딱딱하게 샌님처럼 글을 적은 것 같아.

고등학교 때가 생각나는군. 누구나 한번쯤 겪은 일이라 특별할 것도 없는 <아침 화장실의 똥>같은 이야기인데, 아마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T(샘) : 자... 공부했으니 확인해야지? 삼국통일의 의의가 뭐지?

S(우리) : 저기 선생님... 얼마전에 가야도 배웠으니까 사국통일 아닐까요?

T : 그니까... 내가 물어보는 건 말야.. 신라가 통일한 시기를 말하는 거잖아. 삼국통일의 의의가 뭐지?

S : 저기 당나라 도움을 받았다면서요. 그런데 왜 삼국통일이 자주성이 있다고 적혀있어요?

T : 그래서 대학 안갈래? 꼭 너같은 애들 땜에 진도도 안나가고 수업이 안드로메다... 아니 당나라로 날아가잖아. 당나라를 물리쳤으니깐 자주적인 통일이고, 대동강 이남만 통일했으니깐 한계가 있는 통일이죠?

S : 저기요... 진흥왕 때 세운 마운령비, 황초령비가 훨씬 위쪽인데.... 통일하면서 영토가 더 아래로 내려와요?

T : 그래서??? 고구려, 백제가 안 망했니?

S : 저기 발해가 건국되서 남북국이라면서요... 근데 왜 통일이에요? 발해는 남의 나라인가요?

T : 너.... <교과서> 공부는 안하고 뭔 생각만 계속 하는거냐???

그래... 생각해보면 결국 교과서에 적혀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진리가 되는 역사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창의력을 넓혀주려고 열심히 질문을 던지는데, 그 질문이 원하는 건 교과서에 적힌 한줄의 딱딱한 문구 뿐이다.

그래놓고도 교과서는 뻔뻔하다. 고등학교 교과서 첫장을 보면, 역사적으로 생각하는 <역사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한국사를 배운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교과서에 있는 것만 수능에 나온다는데, 교과서를 벗어난 사고력이 대한민국 어디에 존재하는지....

아... 문득 갑자기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난다. 감옥에 갇혀 15년간 만두만 먹은 그 수염긴 파이터.... 우린 그넘과 다를 바가 없는 듯 싶다. 초, 중, 고, 대학.... 15년간 똑같은 내용의 역사책만 배운 우리... 갑자기 따스한 햇살이 그립다.

난 대한민국의 역사선생님들이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분들 역시 참교육을 위해 무진장 애를 쓰고 계신다. 그러나,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입시제도 아래 존재하시는 모든 분들은 <교과서>를 벗어난 역사를 말할 수도 없고, 수능에 안나오는 변두리 역사를 말할수록 유능함에서 멀어지며, 교과서보다 더 깊고 심도있는 역사를 이야기하면 왕따를 당하는 현실이 무섭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2. 역사를 다 아는 자만 내게 돌을 던져라....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교과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교과서를 만든 그 분들과, 역사가 무엇인가를 써 내려가는 그 분들이다. 교과서를 공부하다보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T : 일제시대 우리 조상들의 현명함을 볼까요? 의병항쟁은 총, 칼을 들고 무력으로 일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던 반면, 애국계몽운동은 교육계몽운동을 통해 일본에게 벗어나려고 했던 운동이죠. 안창호, 이승훈 선생님등이 이끈 신민회를 배워볼까요?

S : 저기 의병항쟁은 나쁜거고, 애국계몽운동은 좋은 거에요?

T : 왜???? 왜 그런 생각을 하지?

S : 저기... 의병항쟁은 애국의병항쟁이 아니라 그냥 의병항쟁이구... 계몽운동만 애국계몽운동이잖아요.... 그럼 의병들이 칼들고 일본이랑 싸운건 무식한 짓이고, 교육으로 일본에 저항한 것만 애국인가요?

T : 잉... 그런가?

교과서의 곳곳에는 이런 함정들이 숨어있다. 의병항쟁은 단순히 일본에 저항했던 사건들과 전투들을 나열한 뒤 그 의의만을 적어두지만, 계몽운동은 그 단체들부터 사업에 이르기까지 아주 꼼꼼하게 적어두었으며, 그 명칭을 달리한다. 학생들은 교사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지식을 주입받게 된다.

그래.. 역사를 적는 이들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우리에게 뭔가를 강요하고 있으며, 역사는 이런 것이라는 규정을 미리 만들어 과거를 <칼질>하고 있는 것이다.

에휴... 생각해본다. 역사를 공부할 때 <역사란 무엇인가?>부터 생각하라고 한다. 하지만, <역사란 무엇인가?>를 미리 생각해놓고 책을 적어놓은 사람들은 기존의 역사가들이다. 그 책을 읽으면 누굴 따라가게 되는 것일까?

사실 역사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역사를 누가 먼저 만들어 놓았는가?>이다.

역사는 과거에 일이고 과거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역사 전문가라는 분들이 역사를 연구해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일이 중요한 일인지를 폼나게 글로 남겨 주신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 연구가들이 할 일이시다. 우리는 그냥.... 필요한 관심있는 역사를 골라 있고 그 분들이 만들어놓은 것을 비판하기도 하고, 옹호하기도 하고, 똥을 싸질러놓기도 하고, 반짝반짝 닦아서 아우라를 펼쳐내기도 하고.... 그냥 걍 읽는 사람 맘이다. 그리고 그 짓저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 공간이다.

역사는 백명이 책을 읽을 때 백개의 역사가 머릿속에서 탄생하고, 한명이 글을 적을 때마다 한 개의 역사가 새롭게 탄생한다. 역사를, 역사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다양성이란 것을 인정하면 좋겠다는 뜻이다.

역사 연구가들보다 지식이 부족한 이들이 맘대로 역사를 적을 때, 누군가 뭐라 한다면 이렇게 당당헤게 외치면서 글을 적어야겠다.

너희들 중, 죄없는 자 돌을 던져라.... 가 아니라 <저기요.. 과거 사실을 다 아시는 분만, 다 안다고 생각하시는 분만 분필을 던져주세요...> 라구... 공손하게..... ㅋㅋ

3. 역사는 안드로메다로 가도... 진리라고 말하면 진리가 된다.

예전 사극을 보면, 교과서 한단원보다 더 깊은 공부를 하게 되어있다.

왕 : 아니... 사태가 이런데 경들은 진정 생각이 없는 것이요?

신하 1 : 폐하.... 그래도 아니될 일이옵니다. 한나라의... 어쩌구 저쩌구...

신하 2 : 신 영의정 따발총 아뢰옵니다. 이 사태의 핵심은 ...... 이고.... 이니.... 해서.....

신하 3 : 신 좌의정 반대파 아뢰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는 ..... 하니..... 하옵고.... 그게....

예전 사극의 제작비는 작가가 다 가져갔을 듯 싶다. 걍 왕이 한마디 지껄이면, 신하들이 돌림노래를 부르며 상황 설명을 다 해준다. 시대 배경부터, 사건의 핵심 개요와 대처 방법, 이후에 해야할 일을 대본 3천자로 요약해서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작가님들 파이팅~~~~

그런데 말이지.... 대장금과 주몽이라는 사극이 나오면서 국민들은, 교과서처럼 요약해서 목소리 톤 높은 남자 성우가 나레이션으로 때우는 사극을 더 이상 보지 않는다. 성우.... 재까짓게 아무리 목소리 짱이라고 해도, 얼짱인 송일국이나, 여신 이영애를 어찌해보겠어?

국민들은 대사 길이가 3분 분량만 넘어가도 채널을 돌리는 시대가 왔다. 일단 칼부림 몇 번 해서 채널 안돌아가게 만든 뒤, 주인공이 직접 몸으로 다 때워서 작가의 대본량을 팍팍 줄여준다. 주인공은 레벨 1짜리 겁쟁이 주몽으로 출발해서 해모수의 기를 좀 받고, 모팔모에게 철제 아이템을 좀 받은 뒤, 소금산이나 주변국 등 스테이지 1,2,3를 모두 클리어 해야 한다. 고대 설화에서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성장하듯, 온라인 게임의 레벨업을 마친 주몽은 만랩 파이터 대소와 자웅을 겨룬다. 이것이 현대 역사물이다.

어느 날부터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밝히는 작업보다도,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비교하면서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역사를 비판하는 작업을 더 즐거워한다. 자료가 없는 고대사는 누군가가 갑자기 <미친소와 노사분규, 청년실업과 사교육이 없는 쁘레땅 뿌르국>이 진짜 있었다....라고 해도 쉽게 비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교과서에 없는 역사라던가.... 교과서보다 자 자세한 역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그 작업을 격식없고, 자연스럽게... 때로는 너무 거칠게도 표현해 낼 수 있으며, 인터넷에 올라온 주관적인 모든 글들을 비판하면서 댓글놀이를 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

지금부터 적는 글들은 때로는 너무나 유치해서, 때로는 너무나 황당해서, 때로는 너무나 전문적이여서 비판하기도 힘든 그런 내용들이 적힐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니라고 비판하고, 누군가는 너무 쉽다고 비판하고, 누군가는 이건 너무 어렵고 쓸모 없는 내용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관적인 글이기에 판단은 읽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몫이다.

내가 무슨 역사 전 영역을 통달한 전문가도 아니구... 그냥 일기처럼 쓰고 싶은 내용을 적을 뿐이다. 일단 개념은 안드로메다에 보내고.... 나름 적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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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 H I S T O R I A > (1회) 나의 한국사 기본 상식은 어느 정도일까?

이 테스트지는 한국사의 기본 개념과 이해도를 측정하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의 한국사 상식부분을 상, 중, 하의 문제로 나누어 배점을 달리하여 출제하였습니다. 모든 문제는 O,X와 단답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번 파트는 1회차로 근대 이전 정치사 분야만을 출제하였습니다.

출제기준 : 한국사 상식(두산대백과 사전, 역사사전,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및 각종 한국사 참고서적), 한국사 주관식 문제(한국역사입문, 한국사특강, 한국사통론, 한국사신론, 한국사의 이해, 한국사개론 등 각종 개설서와 전공 서적)

난이도 : 한국사 검정능력시험 3급 ~ 1급 정도의 문제로 문제별 차등 배점

**** 이 문제지는 O,X 문제, 주관식 단답형, 그리고 3-5지 선다형문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제의 성격에 맞게 답을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1. 한국사에서 시대구분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백남운은 식민사관의 정체성 이론에 반박하기 위해 마르크스 사관을 인용하여 원시,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구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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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초로 한반도에 거주했던 이들이 구석기인들이므로 우리 민족은 구석기인들부터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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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애니미즘, 샤머니즘 등 자연과 관련된 신앙 체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시기는 신석기 시대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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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조선의 8조법은 현재 3항의 내용이 한서지리지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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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삼국유사를 적은 일연은 고조선의 중심지가 만주나 요동이 아닌 한반도의 대동강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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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역사의 동력은 정신이라고 주장하였고 정신에 따라 역사는 변한다는 사관을 가진 민족주의 학자이다.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조선1천년래 대사건이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인가?

7.이 사람은 역사를 대하는 방식이 다른 성리학자들과 달랐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도덕이 아닌 세력이라고 주장하면서 조선 후기 가학을 이끌어갔고, 대표적인 저서로는 성호사설이 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8. 초기 고구려 사회가 한의 조복과 의책을 거부하였다는 증거를 암시하는 용어는 책구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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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염사치(염사책) 사화란 가야가 낙랑군과 무역을 하였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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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군장국가란 국왕과 군장이 연맹을 하면서 성립한 국가로 대표적인 국가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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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고조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나오는 우리 역사서는 제왕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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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다음 중 우리 역사의 삼국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던 왕조가 아닌것은?
① 인도의 굽타 왕조
② 중국 남북조의 북위
③ 서유럽의 프랑크 왕국
④ 러시아의 키예프 공국
⑤ 일본의 야마토 정권

13. 을파소의 진대법, 형사취수제의 소멸, 왕권의 부자상속 등은 고국천왕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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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광개토대왕이 사용한 최초의 연호는 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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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중국의 양서백제전에는 고대 백제가 중국 요서를 점령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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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신라에서 김씨 왕위 세습의 기록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왕은 내물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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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다음 기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신라의 왕은 누구인지 3글자로 정확히 적어넣으시오. --- 신라 국호 사용, 우경 시작, 우산국(울릉도) 복속, 순장의 금지

18. 칠지도는 고대 신라와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어떤 관계였는지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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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삼국시대의 삼국은 주요 거점를 군현제도로 다스리면서, 나머지 지역은 촌주의 자치를 허용하는 형태를 유지하였으며, 지방관과 별도로 군사구역을 다스리는 군주를 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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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신라의 골품제도는 수도의 경위인만을 대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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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신라의 골품제는 처음부터 17관등으로 시작하였으며, 6두품은 6C에 시대적 요청에 의해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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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고구려의 수장층인 제가 계급은 나에서 부로 편입되면서 고추가 - 대가 - 소가 등의 3단 서열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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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고구려의 전성기 때 왕으로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이는 광개토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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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7C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독재체제를 구축하면서 대막리지 체제를 버리고 대대로 체제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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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진골로서 신라의 왕이 된 최초의 인물은 선덕여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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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신라에서 당나라의 교육기관에 파견한 유학생들인 숙위학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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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고려의 상수리 제도는 본인이 직접 상수리가 되는 것이지만, 신라의 기인제도는 호족의 자제를 중앙에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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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신라에서 중앙 감찰기구는 사정부, 지방 감찰기구는 외사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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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신라의 신문왕은 관료전을 지급한 후 녹읍을 폐지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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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묘제란 조상에 대한 직조관념을 표출하는 것으로 천자국은 7묘제, 제후국은 5묘제였는데, 신라는 오묘제를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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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통일 후 신라의 지방 행정제도는 9주 5소경제 였고, 발해의 행정구역은 5경 15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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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신라의 토지제도로서 녹읍은 왕실성원과 대공신 등 일부 특정 인사에게만 한정하여 수여한 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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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신라가 삼국통일 후 설치한 <부>란 공신들이 식읍의 재물을 관리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설치한 것으로, 고려시대에 하나의 행정구역을 이루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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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유득공이 남북국 시대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발해를 우리 역사의 하나로 규정한 책의 제목은 무엇입니까?

35. 대조영이 고구려를 계승하여 처음 나라를 세울 때의 국호는 <진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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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발해가 망한 이후 발해를 정복한 거란은 그 곳에 동란국을 세웠고, 발해인들은 후발해국, 정안국, 오사국, 대발해국 등을 세워 200여년간 항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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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발해는 당의 3성6부제를 채택하였으나, 실제 중앙 정치는 도병마사에서 전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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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공신들에게 지급하여 새 지배층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토지제도는 과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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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고려의 국초에 심관 제도로 경주의 본관지역에 사심관으로 발탁된 사람은 신라왕실의 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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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왕규의 난은 태조 왕건 사후 왕실 외척간의 왕위 계승 싸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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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노비안검법을 실시하고 과거제도를 최초로 실시하여 고려의 왕권을 강화하려했던 왕은 성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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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시무 28조를 건의하여 고려의 유교정치 이념을 확립하였으며, 지방관 파견과 신분제 정비 등을 주장하여 고려사회의 운영원리를 제시하였던 학자의 이름을 적으시오.

43. 고려의 도병마사는 중국 송나라, 중추원은 중국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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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고려시대의 대간이란 어사대, 낭사로 임명되었는데, 이들의 업무 중 국왕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권한을 서경권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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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고려 현종 때 정비된 고려의 지방 행정구역을 5도 양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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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고려후기 유향소를 운영했던 유향품관은 원래 왕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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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조선시대에는 특수행정구역으로 향, 부곡, 소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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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고려시대의 향리(장리)는 과거시험에 응시가 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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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고려의 중앙군은 2군 6위였는데, 숙종 때 여진의 침입으로 삼별초, 무신정권 시기에 도방, 별부반으로 개편,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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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고려는 조선시대와는 달리 지속적으로 무과시험을 치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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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좌절시킨 이는 문벌귀족인 이자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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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최씨 무신정권기 최고의 통치기구 이름은 교정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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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가 확보한 당은 동북 9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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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고려시대 기미주란 귀순한 여진족에게 주 이름을 하사하여 다스리게 한 자치주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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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고려가 원나라의 내정 간섭을 받던 시기의 국정 최고 부서의 명칭은 <첨의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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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이 기구의 명칭은 개혁과 관련된 일반용어였으나, 공민왕 때 신돈이 등용되면서 본격적인 개혁기구가 되었다. 이 기구의 이름을 고르시오.
① 편민 18사
② 찰리변위도감
③ 정치도감
④ 사림원
⑤ 전민변정도감

57. 조선의 의정부 서사제도란 6조의 일들을 의정부의 합의없이 국왕이 직접 결제하는 형식의 정치방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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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다음 조선의 왕은 누구인지 적으세요. ---  진관체제, 보법, 직전법, 계유정란, 이시애의 난, 유향소 폐지, 경국대전 편찬 시작

59. 조선시대 국왕과 관원들이 정책을 토론하면서 학문을 연마했던 자리는 경연이였는데, 경연은 주로 홍문관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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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조선시대 한품서용이란 서자, 기술관, 서리, 향리 등에게 관직진출의 한계를  두는 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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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조선시대 당상관이란 국왕과 함께 국사를 논의할 수 있는 정 6품 이상의 관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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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조선 초 중앙군인 5위는 사회변화와 함께 조선 후기 훈련도감군(5군영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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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조선시대 요역이란 신분과 상관없이 개별 민호의 불특정 민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는데, 요역 부과의 기준은 토지소유량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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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조선시대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으로 성종대부터 명종떄까지 일어난 4차례의 사건을 사화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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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다음 내용과 관련된 인물을 적어넣으시오.   - 소격서 폐지, 기묘사화, 향약보급운동, 위훈삭제사건, 현량과의 실시, 방납폐단시정 주장, 경연참여 법제화, 유교적 도덕주의

66. 15세기 훈구파의 훈구파의 성장 배경은 서원활동, 향약보급운동, 유향소의 복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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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조선시대 동서당의 분당은 정여립의 난, 남북당의 분당은 경신환국, 노론과 소론의 분열은 사도세자 사건, 시파와 벽파의 분열은 정철의 세자책봉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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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임진왜란 이후 금나라와 명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친 인물은 광해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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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조선시대 예송논쟁에서 대립했던 당은 노론과 소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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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효종의 북벌론은 성공하여 나선정벌을 통해 청나라를 격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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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조선시대의 삼사란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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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조선시대 국왕도 성리학 이념을 실친해야 한다는 성학군주론을 주장한 저서로는 이언적의 십강십목소, 이황의 성학집요, 이이의 성학십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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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낭관권이란 문반관료의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조정랑과 이조좌랑의 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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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조선초기 요동정벌을 주장했던 대표적인 인물은 정도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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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6세기 삼포왜란 등 일본이 소란을 피우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한 임시 기구인 비변사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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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공명첩이란, 임진왜란 이후 공이 높은 의병장들에게 발급했던 명예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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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병자호란 직전 청이 군신관계를 요구하자 청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주전파의 수장은 최명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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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조선 후기 중앙군제인 5군영은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 훈련도감으로 모두 임진왜란 직후 삼수병으로 구성하여 완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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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조선 후기 연분 9등법의 복잡한 수등이척법을 극복하여 토지 1결당 미곡 4두로 세곡을 고정한 법을 대동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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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족징, 인징, 황구첨정, 백골징포, 선무군관, 결작 등의 용어와 관련있는 조선 후기의 제도는 균역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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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숙종 대 송시열계인 서인이 집권하면서 남인을 탄압한 최초의 환국은 경신환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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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다음과 관련있는 왕은 누구인지 적으시오. - 시파와 벽파의 대립, 척신과의 투쟁, 초계문신제도, 규장각의 설치, 장용영, 수원 화성, 신해통공, 대전통편 편찬, 서얼에 대한 차별 완화

83. 순조기 안동김씨 일문의 노론 세도독재를 막기 위해 국왕을 대신해 대리청정을 했던 사람은 효명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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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19세기 백두산 정계비 이후 간도 귀속문제가 발생하자, 을사조약으로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은 청과 간도협약을 맺어 간도를 청의 영토로 귀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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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제 1회 ICT 히스토리아 역사 능력 시험

출제범위

한국사 전 분야

이름


배   점

100점만점 / 난이도 따른 차등 배점

난의도

상 7 / 중 7 / 하 6 (20문항)

   1. 시험형식은 5지선다 객관식과 단답식입니다.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만 이용하세요.
   2. 문항을 다 푼 뒤 반드시 가명(인터넷아이디)과 점수를 댓글로 달아주세요.(다음 회차 난이도에 참고합니다.)
   5. 문제를 다 푼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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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 그림을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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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의 그림을 보고 당시의 상황을 추론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정일우 : 모두가 같이 일을 하는 것으로 보아 평등한 사회였던거 같아.
② 이민호 : 저렇게 큰 무덤을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 지배자가 있었다는 뜻이야.
③ 강유미 : 분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당시 국가는 성립되지 않았을거야.
④ 나혜미 : 이 때 사용되었던 반달돌칼은 전쟁에 사용되던 도구였다고 해.
⑤ 김범 : 일을 하고 쉬는 시간에는 빗살무늬 토기에 음식을 담아왔을거야.


2. 다음 그림과 내용을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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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인표는 새우와 바닷가재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인표네 마을은 작은 말들이 상당히 많다. 인표의 여자친구인 애라는 집에서 명주로 옷을 만들고 있다. 애라는 이번에 추수감사절인 무천을 맞이하여 인표에게 명주옷과 바다표범 가죽으로 만든 옷을 선물할 예정이다.

인표와 애라는 같은 부족이 아니다. 애라의 부족은 같은 부족끼리 혼인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 애라는 물놀이를 하러 인표네 마을 근처에 갔다가 <옆 마을에 절대 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을 어기고 인표네 마을에 간 적도 있었다. 다행이도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아 인표를 만나기는 했지만, 함부로 다른 부족의 경계에 들어서면 크게 혼날지도 모른다.

인표네 마을은 바닷가재를 잡으면서 생활하고 있는데, 애라네 마을은 주로 농사를 짓는다. 인표네와 애라네는 모두 생활이 풍족하다. 하지만 최근 북쪽에서 야만인들이 내려와 쌀과 말을 약탈해가는 일이 종종 있다고 들어서 걱정이다.

2. 위의 지문에서 제시한 나라를 그림의 기호에서 고르시오.
① 가        ② 나        ③ 다        ④ 라        ⑤ 사

3. 다음 비석은 고대 특정한 사건들이 많이 적힌 유명한 비석이다. 물음에 답하시오.


<비석의 좌우를 클릭할 수 있는 입체영상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석내용에 대한 탁본입니다.>

3. 위 비석의 내용에 실린 인물, 위 비석을 제작한 인물이 살았던 시기의 일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고구려는 적극적인 남하정책으로 한강유역을 점령하였다.
② 신라는 고구려의 도움으로 왜군을 격퇴한 일이 있다.
③ 백제는 수도를 웅진성으로 천도하였다.
④ 중국은 남북조로 분열되어 천하는 여러개로 나뉘어 있었다
⑤ 백제의 성왕은 불교를 일본에 전파하였다.


4. 다음 영상을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4. 위 영상에서 해골의 물을 마시고 신라로 돌아온 사람의 업적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민중을 위해 정토종을 개창하였다.
② 일즉일체다즉일(하나는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은 하나이다)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화엄종을 개창하였다
③ 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와 잠자리를 하여 파계하였다
④ 화쟁사상을 바탕으로 공유논쟁 해결에 앞장섰다.
⑤ 저서로는 십문화쟁론, 대승기신론소 등이 있다.


5. 다음은 신라의 왕호 변천 과정입니다. 잘 보고 빈칸에 들어갈 말을 적어넣으세요.

거서간 : 진말로 왕이라는 뜻이다. 흑은 귀인의 칭호로 쓰이기도 한다.

차차웅 : 무당이라는 뜻이다. 세상사람들은 무당이 귀신의 일을 하고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경외한다. 이것은 존장자의 칭호로서 쓰이게 되었다.

이사금 : 이것은 이빨이라는 뜻이다. 초기 남해왕이 죽자, 아들인 노례는 탈해에게 양위하였다. 탈해가 말하기를 나는 성인에게 이가 많다는 것을 들었소라고 하였다. 이에 떡을 깨물어 이를 세어보니, 이에 따라 이 말이 생겼다.

__________ : 방언으로 말뚝이라는 뜻이다. 말뚝으로서 그 위치를 표시한다. 즉, 왕의 말뚝이 주인이 되고, 신하의 말뚝은 그 아래 나열된다. 그로 인해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

5. 위 지문의 빈칸에 들어갈 말은 <간 중의 간> 혹은 <대군장>의 칭호를 말한다. 이 칭호를 사용한 시기에 있었던 일을 고르시오.
① 고구려의 왕위상속이 부자상속이 되었다.
② 당시 백제의 유명한 문화재로는 무령왕릉이 있다.
③ 신라는 광개토대왕의 도움으로 왜군을 격퇴하였다.
④ 가야는 대가야가 쇠퇴하면서 신라에게 복속되었다.
⑤ 일본은 불교가 전파되고, 율령국가의 기틀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6. 다음 글은 조선후기 어느 실학자가 저술한 책의 서문 중 일부입니다.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고려는 발해사를 짓지 않았다. 이로써 고려가 부진했음을 알겠다. 옛날에 고씨가 북쪽에 있었으니 고구려요, 부여씨가 서남쪽에 있었으니 백제요, 박·석·김씨가 동남쪽에 있었으니 신라다. 이것이 삼국이니 마땅히 삼국사가 있어야 하는데 고려가 이를 지었으니 옳다. 부여씨가 망하고 고씨가 망함에 이르러 김씨가 그 남쪽을 차지했고, 대씨가 그 북쪽을 소유했으니 발해다. 이것을 남북국이라고 하는데 당연히 남북국사가 있어야 하는데 고려가 이를 짓지 않았으니 잘못이다.

무릇 대씨는 어떤 사람인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그가 소유한 땅은 무슨 땅인가? 비로 고구려 땅이다. 그런데 동쪽, 서쪽 그리고 북쪽을 물리쳐서 크게 했을 뿐이다. 무릇 김씨가 망하고 대씨가 망함에 이르러서 왕씨가 이를 통합하여 차지하였으니 고려다. 그 남쪽의 김씨의 땅은 모두 소유했으나 그 북쪽의 대씨의 땅 은 완전히 차지하지 못했다. 어떤 것은 여진으로 들어갔고 어떤 것은 거란에 갔다.

6. 위 지문을 읽고, 위 내용을 적은 이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르시오.
① 신라의 삼국통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② 발해사에 의미를 두어 당시를 남북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③ 발해의 기원을 고구려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④ 부여 또한 우리의 민족사로 보고 있다.
⑤ 발해 문화의 우수성을 이전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7. 다음 글은 고려말기 혼인에 대한 <재상지종 15가문>의 내용입니다.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지금부터 종친 중 동성과 혼인하는 자는 논죄할 터인즉, 종친은 누세에 재상을 지낸 집안의 딸을 아내로 맞아야 하고, 재상 집안의 아들은 종실의 딸과 결혼해야 한다. 가문이 미미한 자는 이 제한에 구애받지 않는다. 경주김씨, 정안 임씨, 언양 김씨, 안산 김씨, 철원 최씨, 해주 최씨, 공암 허씨, 해주 최씨, 공안 허씨, 평강 최씨, 청주 이씨, 당성 홍씨, 황려 민씨, 횡천 조씨, 파평 윤씨, 평양 조씨 등은 모두 누대의 공신이요, 재상지종이니 가히 세세로 혼인을 하여,이들은 종실의 여자에게 장가를 들고 딸은 비로 삼을만 하다. 문무 양반가도 동성간에는 결혼하지 못하나 4촌간은 허용한다.

7. 위 지문은 고려 후기 지배층에 대한 내용이다. 다음 중 고려 후기 지배층의 특징으로 맞는 것을 고르시오.
① 과거시험보다는 현량과를 선호하였다
② 문벌 자체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짙었다
③ 이들은 무신집권기, 원간섭기에 성장한 신진세력들도 있었다
④ 사패에 의한 토지 개간보다는 수조권에 의한 토지 경영을 선호하였다
⑤ 국왕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뭉쳐서 성리학적 유교질서를 구현하려고 하였다.


8. 다음 그림을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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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위 무역이 이루어진 개화기 때의 상황으로 옳지 않는 것은?
① 일본은 영국산 면직물을 우리나라에 팔기 시작하였다
②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쌀, 콩 등을 수입해갔다
③ 조청상민무역장정 이후 내륙 무역이 허가되어 우리 전통 상인인 객주, 여각 등이 몰락하였다
④ 당시 우리와 가장 많은 무역을 했던 나라는 러시아였다
⑤ 조선 시장에 서양 옷감, 석유, 성냥 등 진귀한 물건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9. 다음 그림을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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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위 사건의 결과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을 고르시오.
① 명성황후가 시해당하였다
② 고종은 대한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③ 열강들에 의해 철도부설권, 광산개발권 등을 빼앗기게 되었다
④ 청과 일본은 전쟁을 하게 되었다
⑤ 일본은 을미개혁을 단행하고 단발령을 내렸다


10. 다음 그림을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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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위 그림의 사건에 대하여 엉뚱한 설명을 하고 있는 학생은 누구인가?
① 황메리 : 대구에서 서상돈이 제안을 해서 시작된 운동이지
② 강대구 : 한일합방이 있던 직후에 일어난 운동이야
③ 금나라 : 역시 사채는 쓰면 안돼. 일본에게 빌린 차관을 갚기 위해 일어난 운동이잖아.
④ 이순재 : 난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벗어날 수 있다면 담배도 끊을 거야
⑤ 나문희 : 그럼 저는 은가락지, 은장도, 은비녀를 내 놓을께요. 기생들도 사회활동을 하는 중이라던데...


11. 다음 지도을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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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다음은 발해의 행정구역이다. 이 행정구역을 통해 알수 있는 발해의 특징이 아닌 것은?
① 5경을 중심으로 영토확장에 따라 수도가 이동하였다
② 이 때의 전성기를 중국에서는 해동성국이라고 불렀다
③ 발해의 15부는 각 부족의 자치권을 인정하여, 부족의 경계를 행정구역으로 삼았다.
④ 5경은 15부의 자치세력을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행정 중심지였다
⑤ 기초 행정 구역인 62주는 고구려인이 직접 통솔하였지만, 그 구성원들은 말갈족이였다


12. 다음 표를 보고 빈칸에 들어갈 말을 적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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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위 표는 무신 집권기의 정치상황을 나타낸 표이다. 빈 칸에 들어갈 인물의 이름을 정확한 3글자로 적으시오.


13. 다음 표를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고려의 장리

조선의 향리

1.토지지급권

토지의 지급이 없다.

외역전을 지급한다.

2.향리통제권

봉행 10조, 향리 진급 단계별로 법제화

한품서용제, 적서차별, 신분고정

3.과거응시권

모두 과거응시가 가능함

향직은 세습, 신분이 고정되어 1명만 응시 가능

4.행정자율권

조세, 수취, 역역 등 행정 실무의 담당

수령의 행정을 보조하는 역할

5.군대지휘권

일품군 지휘권이 있음

군역시 지위가 낮고, 지휘권도 없음

13. 위 표에서 고려와 조선의 향리를 잘못 비교한 것은 몇 번인가?
① 1번
② 2번
③ 3번
④ 4번
⑤ 5번


14. 다음 사진를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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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위 사진을 보고 우리 나라의 통일 정책을 잘못 해석한 사람은 누구인가?
① 시아준수 : 남북 정상이 만나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지
② 유노윤호 : 이 사진은 2000년에 찍은 사진이야
③ 믹키유천 : 이 만남 이후에 경의선 복원 사업이 구체화되었어
④ 영웅재중 : 통일원칙을 자주적, 평화적, 민족적 대단결로 잡고 상호 비방을 중지하기로 하였어
⑤ 미키명수 :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 스스로 자주적으로 하기로 합의하였지


15. 다음 지도를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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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위 그림은 조선 후기 조세 운반에 대한 그림이다. 위와 같이 조세 운반을 하였던 제도와 관련이 없는 것은?
① 17세기 광해군 때 경기도에 한하여 실시하였는데, 17세기 말 실학자 김육이 전국적인 실시를 주장하였다.
② 각 지방 특산물 대신 쌀, 화폐, 포 등으로 부담하되, 소유한 토지 면적을 기준으로 부과한 세금제도이다.
③ 함경도, 평안도는 국방비, 사신접대비 등의 이유로 잉류지역을 계속 유지하였다
④ 이 제도는 광해군 이후 즉각적으로 실시되었고, 지배층이 호응하였다
⑤ 진상, 별공 등의 특산물 상납이 여전하였기 때문에 농민 부담이 크게 줄어들지는 못하였다


16. 다음은 어느 단체에 대한 설명이다. 물음에 답하시오.

(1) 3.1운동 이후 자유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 새로운 정치이념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따라서 1920년대의 민족해방운동은 모든 세력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동의 이념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 과제였다. 20년대 초반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기반으로 <민족 총지휘 전선>을 구축하려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20년대 후반 이제는 민족유일당을 조직하여 통일전선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2) 정우회  : 모든 사상과 단체를 통일하고, 실제 투쟁을 통하여 대중적인 노선을 지향한다. 경제투쟁보다는 정치투쟁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는 자치론을 배격하며 비타협적인 민족주의만을 우리의 공생 관계로 삼는다.

(3) 강령 :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함,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함,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함

16. 위에서 설명한 단체의 이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적어넣으시오.


1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한국이 있고야 한국 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고서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또 무슨 단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자주 독립적 통일 정부를 숭립하여야 하는 이 때에 어찌 개인이나 자기 집단의 사리사욕을 탐하여 국가 민족의 백년 대계를 그리칠 자가 있으랴...(중략)...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

-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1948. 2. 10) -

17. 위 지문을 읽고, 위 사람의 업적과 관련 없는 것을 고르시오.
① 임시정부 직할인 한인애국당을 구성하였고, 이봉창, 윤봉길 의사 등의 의거를 지휘하였다.
②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주석제로 개편하였고,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적극 지지하였다.
③ 흥사단을 조직하여 민족의 얼을 살리려 노력하였다
④ 남북협상운동을 전개하여 남한 단독정부수립을 끝까지 반대하였다
⑤ 미소양군의 철수를 주장하다가 반대파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18.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우리는 오직 피흘리지 않는 통일을 원한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파괴한 책임은 6.25전쟁을 범한 북한 공산당에 있다. 그들의 반성과 책임 규명은 평화 통일의 선행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남한의 소위 무력 통일론도 이미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것이다. 평화적 통일에의 길은 오직 하나 남북한에서 평화 통일을 저해하고 있는 요소를 견제하고 민주주의적 진보 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 뿐이다.

- 진보당의 통일 정책(1955년) -

18. 위 지문의 내용으로 볼 때 위 지문을 적은 사람이 누구일지 고르시오.
① 이승만
② 이기붕
③ 장면
④ 신익희
⑤ 조봉암


19. 다음 그림을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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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위 그림의 개혁이 이루어지던 시기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 없는 것은?
① 몽골이 지배하던 쌍성총관부를 탈환하였다.
②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불법으로 노비가 된 이들을 양인으로 해방시켰다.
③ 기철 등 권문세족들을 숙청하기도 하였다
④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여, 개혁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⑤ 요동정벌을 추진하였으나, 명나라에 의해 좌절되었다


20. 다음 그림을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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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조선 시대 서원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서원은 붕당 정치의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② 서원은 학문 연구 외에도 선현 제사의 기능도 하였다.
③ 흥선대원군은 전국의 서원을 48개만 남기고 철폐하였다
④ 국가의 지원없이 스스로 학문을 연구하는 서원을 사액서원이라고 한다.
⑤ 서원은 사림파의 세력 기반 역할을 하였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