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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

수능 근현대사 정리 16 : 민주주의의 발전 1 / 이승만의 독재와 4.19 35. 민주주의의 발전 앞서 살펴보았듯이, 광복 이전에 건국을 준비해오던 단체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건국의 강령으로써 내세웠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꿈꿔오던 단 한 가지 목표였으며, 각종 파벌과 이념으로 갈라져있던 독립운동세력을 아우르는 하나의 매개체였다. 하지만 광복 이후에도 그들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름뿐인 자유와 민주, 자신의 부정부패를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원들과 대통령들― 일제강점기를 억압을 벗어나 순탄할 것만 같았던 우리나라 현대사는 또다시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격동에 휩싸인다. 1) 이승만의 독재와 4.19 이승만 ‘박사’는 과거 임시정부의 대통령직을 맡았던 인물로, ‘이름난’ 독립운동의 ‘거목’이었다. 이승만은 주로 하와이나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였으며,.. 더보기
수능 근현대사 정리 14 :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토지개혁 30. 대한민국의 수립 1) 모그크바 3국 외상 회의과 좌/우 대립 미국, 소련, 영국은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를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라고 한다. 회의의 결과는 한반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그를 지원할 미/소 공동 위원회 설치, 강대국들에 의한 5년 이내의 신탁 통치 실시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론을 통해 신탁 통치에 관련된 내용만이 부각되었다.(물론, 이를 부각시켜 선동한 언론은 조중동이다. 너무 당연한가?) 이에 좌익으로 대표되는 조선 공산당은 초기에 신탁통치를 반대하였으나, 후에 신탁 통치가 점진적으로 한반도 독립을 위한 길임을 깨닫고 찬탁으로 돌아섰다. 반면, 김구, 이승만, 한국 민주당 등의 우익은 열렬하게 반탁을 지지하였으며,.. 더보기
수능 근현대사 정리 13 : 광복과 건국에 대한 노력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일제에 의해 빼앗긴 빛을 되찾아왔다. 광복과 독립, 우리 민족이 약 34년 동안 갈망해온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사의 역사 구분에 의거하여, 흥선대원군의 섭정부터 일제 강점기까지를 근대사(近代史)로, 8. 15 광복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를 현대사(現代史)로 분류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편의를 위한 구별이며, 단순히 딱, 하고 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8.14은 근대이고, 8.15는 현대로,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사적 특징에 해당하는 민중의식의 성장 등은 이미 근대 후반에 나타나서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 Tip : 역사는 흐르는 것으로 칼로 무를 자르듯이 딱딱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