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이 끝났네요. 주몽 드라마를 다시 생각해보니, 역사를 보았다기 보다는 한편의 대하서사 문학을 본 느낌이 많이 듭니다. 드라마가 역사가 될 수 없지만, 역사적으로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뭔가 포스트 하나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글은 말도 안되는 글이지만, 솔직히 보다가 이런 부분들이 눈에 띄어서 그냥 적어봅니다.

1. 주몽의 설정은 고대 서사적 구조의 현대적 해석...

처음부터 주몽을 못봐서 초반 20부 정도는 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 보았습니다. 한 번에 10시간씩 시간을 내서 몰아보았더니, 그 구도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더군요.

초반 주몽의 구조는 고대 서사 구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대 영웅의 구조는 보통 <신이한 탄생 - 어린 시절의 고난 - 위기의 극복 - 다시 찾아오는 위기 - 신화의 완성>이라는 단계로 나가곤 합니다. 저는 주몽 1편을 보면서 작가들이 분명 이 구도를 따라가겠구나... 라고 편견을 가지고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몽의 설정은 단순한 <고대 서사>의 구조가 아니였습니다. 드라마에서의 주몽은 초반에 <망나니>의 역할로 나옵니다. 바보같고, 덜떨어지고,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역할이죠.

오히려, 신화적인 설정으로 구성된 것은 <해모수>였습니다. <해모수>의 역할 구조가 바로 <고대적 영웅 구조>를 그대로 이어간 <멋진 영웅>의 표본으로 그려졌고, 유화가 그 해모수를 사모하는 구조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해모수 역시 신으로 묘사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고구려 유민을 구하려는 <민족적 영웅>으로서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 인물이었죠.

오히려 고대 설화구조에서의 신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신관인 <여미을>과 신녀들에게 모두 몰아줌으로서, 신화라는 고대적인 요소와 <인간적 영웅>이라는 현대적 구조를 잘 버무려 초반을 전개해 나가는 드라마였습니다. 이 신적인 부분과 인간적인 부분을 분리하여 드라마를 전개하는 진행 방식이 극적 요소를 더욱 더 빛나게 해주었다고 생각됩니다.

2. 게임의 법칙이 시작되다

주몽에서 초반 가장 카리스마 있었던 인물은 바로 해모수입니다. 해모수는 이미 처음부터 <영웅>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비운의 영웅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지요. 이 해모수의 <영웅>적 면모를 이어받은 인물이 바로 아들로 설정된 <주몽>입니다. 작가들은 여기서 <설화>라는 초자연적 극 전개를 <있을 법한 인간세계의 드라마>로 재현하려고 하나의 장치를 마련한 듯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게임의 법칙>이었습니다.(정확한 극전개 용어는 모르는 관계로 그냥 편의상 이렇게 부르겠습니다.)

<게임의 법칙>은 이미 드라마 전개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아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만한 극의 전개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요즘 드라마 전개에서 자주 등장하던데, <약한 주인공이 레벨 업>을 하면서 이야기의 스테이지를 한없이 넓혀가는 형태의 전개 방식입니다.

예로, 주몽은 처음에는 대소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 레벨 1의 무력한 캐릭터였습니다. 망나니였고, 오리, 마리한테도 한방감인 캐릭터였죠. 작가들은 이 캐릭터를 <육성>시키면서 시청자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합니다.

주몽에게 해모수의 아들이라는 <명분>을 심어주면서, 레벨 업의 목표의식을 심어준 후, 처음에는 <무송>같은 저레벨의 사부로부터 무술을 전수받습니다. 렙업이 될 때마다 유화와 주변인물들이 주몽에게 <레벨에 맞는 정신교육>을 시켜줍니다. 문제는 초반의 대소가 주몽에게는 엄청난 고레벨이었다는 점입니다.

주몽은 대소에 맞게 속성으로 레벨 업을 해야 했는데, 그것은 바로 친부인 해모수를 만나서 소위 말하는 <경험치>를 몽땅 얻는 방법이었습니다. 해모수에게 검술을 배우는 것으로 모자라서 <해모수>가 주몽에게 <기>를 불어넣어주는 생뚱맞은 장면까지 나오더군요. 이 장면은 인간적인 부분으로 이끌어가던 주몽을 <신화적, 무협적> 캐릭터로 전락시킬 위험을 가진 전개였습니다. 그러나, 작가들은 주몽의 전개상 <신화적> 장면을 최대한 배제시킴으로서 주몽이 <리니지화>되는 것을 막아가면서 극을 전개합니다.

그리고 주몽이 레벨업이 될 때마다, 액션 게임처럼 스테이지가 변경됩니다. 어떤 한 사건을 해결하여 주인공이 성숙할 때마다 조금 더 어려운 시련을 주어 다음 단계로 이끌어가는 것이죠. 그리스 신화에서의 <헤라클래스>처럼 주인공은 항상 조금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소금산>을 찾아 떠나거나, <다물활>을 찾아 떠나는 등 새로운 스테이지를 주어 시청자들을 만족시킵니다.

그리고 끝없는 주변인물과 아템이 쏟아집니다. 다물활과 강철검이라는 아템은 주몽 저레벨들의 선망의 아템입니다. 초반에 반지의 제왕의 나즈굴처럼 몰려다니던 한사군의 병사들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실제 한사군의 철기병들이 강철검을 사용했다는 증거도 없지만, 그냥 있다고 치고 <아템>이 중요함을 강조한 장면들이 계속 나오죠. 초반의 이 무시무시한 아템발의 한사군을 몰아내기 위해 강조되는 것은 곧 무기였습니다. 주몽에서는 <강철검>이라는 것이 <의천도룡기>의 신검처럼 <극을 이끌어가는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주몽에서 이유없이 잘나오는 사람은 연예인협회가 공식으로 밀어준다는 <이계인>씨입니다. 게임에서 <npc>의 역할을 이 모팔모가 하면서 끊임없이 중요한 <아템 공급>을 하며, 강철검, 철갑옷을 마련하게 되고, 막판에는 최고수 지존들만 입는다는 <한나라를 증가하는 철제무기와 갑옷>까지 공급받게 됩니다.

또 RPG게임에서나 나올 만한 오이, 마리, 협보라는 주인공을 돕는 캐릭, 그리고 그 이후 그를 돕는 수많은 캐릭들이 등장하여 극을 <고대적 대서사시>와 <현대적인 게임의 법칙> 속에서 융합시켜 나갑니다. 와우나 리니지에 나오는 <사제>캐릭인 <여미을>은 틈틈이 금와왕과 주몽을 치료까지 하더군요.

주몽이 시청률이 높은 이유는 요즘 시청자들이 이러한 <게임적 요소>에 이미 중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요소가 유치하다면 곧 싫증내고 돌아섰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몽이 성공한 이유는 이러한 게임적 요소를 유치하게 만들지 않기 위하여 <역사 쇼>를 한 덕분입니다.

항상 새로운 스테이지를 만들기 위하여 역사에서는 증명되지 않은 한사군과의 전쟁, 한나라에 조공하면서 한에 고개숙인 부여 등등이 그 역사적 요소입니다. 대소와 주몽의 갈등은 곧 친한파와 반한파의 갈등, 왕권과 신권의 갈등 등으로 첨예하게 대립되어 <설화>가 아닌 <사실>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드라마 주몽을 볼 때 역사왜곡에 대한 이의 제기가 적은 것은 이러한 <드라마적 요소>가 <고대 서사구조>와 상통하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수긍이 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3. 알거리 많은 연개소문이 주몽에 비해 뒤진 이유는....

드라마 연개소문은 제가 보기에도 참 작가가 많이 노력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나 하나 사료를 꼼꼼히 읽고, 대사 하나하나에서도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복식과 말투까지 세세히 신경쓴 흔적이 보입니다.

심지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나 <백석이 김유신을 유인한 이야기> 등의 사료상 모든 이야기들을 다 다루고 있는 듯 보입니다. 어쩔 때는 제 블로그에 있는 고대사 사료를 연개소문이 다 다루었나 검토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증이 철저한 연개소문이 주몽보다 뒤쳐진 이유는 뭘까요?

전통사극에 대한 <시각적 인지도>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영화나 게임>에 적응되어 빨리빨리 전개되는 극의 흐름과 순간순간 바뀌는 상황설정의 변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주몽은 <1시간 또는 3-4시간> 동안 전개될 주제 1개가 명확합니다. 오늘은 <소금산 찾기>, 내일은 <현토군 공격> 등등 어떤 주제 일정에 따라 전개가 팍팍 흘러가고, 그 전개에 대한 명확한 결과를 보여주며, 또 다른 주제를 제시하여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반면, 연개소문은 철저한 고증과 함께 <독자에게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합니다. 전통 사극에서 그러하듯 <나레이션>도 종종 나옵니다. 어떤 목소리 좋은 성우분이 책을 읽어 주시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연개소문식의 사극이 편하게 보기에 좋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듯 합니다. 사극도 <다모> 같이 뭔가 특별한 개성이 있어야 <매니아>를 확보할 수 있고, 그 매니아가 팍팍 늘어가면 <국민 드라마>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또 하나 <고대 사극>을 다룰 때에 중요한 점은 <고대 역사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점입니다. 고대사는 <조선사>처럼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작가의 상상력이 무한으로 발휘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 작가들은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를 극으로 만드는 것보다 <대장금> <서동요> <주몽> <다모> <별순검> 과 같이 거의 알려진 사료가 없는 내용으로 극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극들은 <조선사>를 다룬 일반 사극보다 크게 히트친 작품들이 많습니다.

이전에 조선사를 다룬 사극을 보면, 왕이 한마디 하면 주변에 양쪽으로 나열된 신하들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다 말합니다. <폐하, 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쩌구... 저쩌구...> 그걸로 2-3분 때웁니다. 주 시청층인 중, 고, 대학생들은 그 시간에 문자를 500타 이상 치며, 그 시간이면 스타크레프트 벙커링 1판이나, 4드론 러쉬가 끝날 시간입니다. 솔직히 요즘 세대가 영상 세대이며, 통신 세대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에, 연개소문의 극 전개는 개인적으로는 정말 맘에 들지만, 실제 시청률 면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연개소문은 전통 사극의 <대화>하는 습관을 그대로 따라간 면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현대인들은 딱딱한 사극 보다는 <눈에 확 들어오고, 주인공의 영웅적 면모가 부러운> 사극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네요.

4. 포스트 모던적인 인식은 역사보다 문학이 역시 우위다

주몽을 보고 역사에서 <포스트모던적 사고>를 아무리 외쳐봐도 문학에 비해서는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생각했습니다. 보통 고대사는 <포스트모던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사실상 역사적 사료도 없고, 그 역사적 과거가 진짜 있었는지도 알 길이 없으며, 빠진 역사부분은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부분이 고대사입니다.

고대사를 볼 때 우리는 역사를 <발견>한다기 보다 <발명>한다는 포스트 모던적 시각을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사에서는 이런 <포스트 모던적 시각>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주류학문>과는 거리가 먼 <재야학문>이 되고 맙니다. 아직도 역사는 <정확한 사료>를 가지고, <정확한 판단>을 해서, 가장 근거있는 <정확한 사실과 해석>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적 기록은 그 역사 기록 자체가 저자의 <주관>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고대사의 바이블인 삼국사기 역시 <김부식과 편찬자 12인의 신라중심적 역사관>이 반영되어 저술되었고, 삼국유사 역시 <불교적 입장>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으며, 제왕운기와 동명왕편도 당시 <혼란한 고려시대상의 반영>이라는 측면이 강한 작품들입니다. 중국측 자료들은 거의 대부분 중국인의 시각에서 저술되어 잘 인용하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원 사료가 주관적이고, 인용하는 현대 역사가들이 골라서 인용하는데, 정확한 사실과 해석이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주몽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아주 짧고 간결한 고대 저서들의 1줄, 2줄 또는 1페이지짜리 자료들로 해석하곤 합니다. 그 한줄 한줄을 밑줄 긋고, 그 당시 상황을 추론해가면서 고대사가 이루어집니다.

그 한줄 한줄 밑줄 그은 몇줄짜리, 몇장짜리 기록들을 가지고서, 역사학자들은 고대사의 진실을 말하곤 합니다. 정말 어려운 작업입니다. 자료가 너무 없기에, <역사적 상상>을 총동원하여 아마 <이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갖다 붙이고, 상상하고, 추론하고, 그 추론에 대한 정확도를 측정합니다.

그러나 문학에서는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단 한 줄의 자료 - <장금이의 음식이 맛았었다>라는 기록 만으로도 50편짜리 대장금을 만들 수도 있고, <베어울프 이야기, 아더왕 이야기>라는 영국 설화를 가지고, <반지의 제왕, 드레곤의 전사, 어스시의 마법사>같은 대작들을 마음껏 만들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문학이 훨씬 매력적입니다.

주몽은 그러한 상상력의 결정판입니다. 실제 사료상의 내용과 많이 달라 역사왜곡이라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주몽에서의 역사왜곡은 극의 전개상 필요한 부분들 뿐이었다고 생각듭니다. 그리고, 사료에 없고, 기록도 불일치하는 부분에 대한 작가 나름대로의 해석과 극 전개는 왜곡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왜곡이란 <사실>을 고의적으로 잘못 기술한 것이지 <있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자료의 변형>은 왜곡이라 보기 힘드니깐요.

문제는 주몽이라는 드라마가 해외로 수출된다는 점입니다. 해외에 수출될 때 문제점은 그 나라의 역사와 부합되지 않은 부분들이 <강펀치>를 맞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한사군과 주몽의 항쟁 부분에서 <사실이 아닌 많은 부분>, 철기사용에 관한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부분>들은 <중국, 대만> 등지에서는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설픈 왜곡은 대놓고 베짱으로 나가는 왜곡보다 더 문제될 수 있으니까요.

아예 주몽은 <현토, 임번, 진둔>군과의 동네 싸움이 아닌, 한나라와의 직접 대결구도로 가는 것이 옳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어짜피 드라마 전개상 한나라와의 갈등이라면, 일개 현토군과의 항쟁보다는 <중국황실>과의 일대 접전이 더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키지 않았을까요? 그 부분은 아쉽습니다. 주몽에서 막판 주몽-대소의 연합군 편성 외에는 <지속적으로 한나라 아래 있는 국가>라는 인식이 드라마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으니까요.

정말 대충적인 글이 되어 버렸군요. 써 놓고 보니 뭔말인지.... 원래는 주몽에 대한 <서사적 구조>를 분석하려는 글이었는데, 막 쓰다보니 게임의 법칙만 말하다가 끝나 버렸습니다. 그냥 감상문이 되어 버렸네요. 이제 그만....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1. 이 글은 운영자의 주관적인 글입니다.
   2. 펌글은 가능하나, 퍼가실 땐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일본의 고대 역사서 - 고사기, 일본서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1.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편찬 목적은?

고사기는 최초로 일본 역사를 체계적으로 편찬한 책입니다. 고사기는 712년, 그리고 얼마후에 720년경에 일본서기가 편찬되었지요. 이 2권은 모두 덴무 천황의 명으로 제작됩니다. 덴무천황이 누구인지는 일본사이야기 7번에서 얘기했죠? 가장 유약한 왕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무력을 획득하여 일본 천황가를 중앙집권화 시킨 그 인물입니다.

보통 중앙집권화가 완성되면 그 강력한 왕권에 걸맞는 역사서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가까이 우리 나라만 한번 찾아볼까요? 신라에서 편찬된 국사는 진흥왕이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할 때 신라 왕실의 권위를 알리고, 진골귀족의 계보를 정리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고구려의 유기와 신집도 고구려의 기상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고, 백제의 서기도 백제가 동아시아 상권을 주름잡고, 중국 2군에 영향력을 펼칠 때, 왕실계보를 정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도 덴무천황이라는 가장 강력한 천황권 밑에서 편찬됩니다.(시작은 덴무찬황 때이지만, 워낙 방대한 사업이라 끝나는 것은 후대의 천황대일입니다.) 덴무천황은 황실의 계보를 남기기 위해 전승자를 찾아서 황실계보를 암기시킵니다. 이 황실 계보를 <제기>라고 합니다. 또 <구사>라고 불리는 신화와 설화도 전승자에게 암기시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암기시킨 내용이 이후 유실될 것을 염려하여 암기한 내용을 책으로 적으로 명하였는데, 이것이 <고사기>라는 일본 최초의 역사서입니다.

2. 고사기의 내용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고사기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본 덴무천황기부터 편찬하기 시작한 일본 천황가의 역사라고 보면 됩니다. 이 이야기는 3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 중, 하의 권은 각각 중심 줄거리가 있습니다. 상권은 전설속의 신들의 이야기입니다.(이 신화이야기는 일본사 이야기 2번에서 다루었습니다.) 중권과 하권은 그 신이 천손강림을 하여 지상의 천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천황가의 계보와 황태자들을 중심으로 엮은 이야기입니다. 단군신화와 비슷한 맥락으로 구성된 이야기이지요. 그러나 단군신화와 다른 점은 당시 천손의 후예라는 천황가에서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약간 객관적 근거가 없이 적었다는 점이 좀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초기에는 고사기를 사서로 다루었지만, 지금은 스스로도 상, 중, 하 전체를 한데 묶어 일본 신화이야기로 보는 관점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 고사기의 편찬 목적은 진신의 난(일본사 이야기 7편 참조)을 넘긴 덴무천황이 지방 호족들의 도전을 사전에 차단하고, 천황의 신성함을 대외에 과시할 목적으로 만들었죠. 따라서 이 책은 정사라기 보다는 천황가의 개인적 소장물로 만든 책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당시 일본이 천황권의 전성기이자, 불교문화의 전성기라는 점입니다. 특히, 한반도에서 불교를 전래한 이래로 한반도 불교에서 전래된 설화들이 일본에 많이 유입되었는데, 이러한 측면들이 고사기에는 많이 유입되어 있습니다. 또 이 고사기에 나오는 일본 신화는 각종 세계 신화적인 내용들이 많이 유입되어 있다고 일본측이 주장합니다. 즉, 중국, 한반도, 태평양, 그리스 신화의 내용과 비슷한 내용도 많다고 주장하는데, 일본이 주장하는 그리스 신화까지의 지역확대는 좀 무리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반도 설화가 재일 많다고 보는게 타당하죠.

3. 고사기의 실제 내용

상권의 내용 요약 - 일본의 신화 이야기

천지가 처음 태어날 때 시작인 어둠이었고, 무질서였다. 이 어둠과 무질서 속에서 양과 음이 생겼다. 이 양과 음은 각각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 하늘에서는 천상계가 있어 세 명의 신이 출현하였는데, 이 신들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남매 신을 낳았다.

이 남매 신은 결혼하여 새로운 섬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들이 결혼하면서 낳은 섬들이 바로 지금의 일본 열도가 되었다. 이들은 일본 열도를 만든 뒤 태양의 신(아마테라스), 달과 역법의 신(츠쿠요미), 전투의 신(스사노)를 낳았다. 이자나미는 불의 신도 낳으려 했지만, 그 뜨거운 불의 열기 때문에 호히려 죽고 말았다.

이자나기는 아자나미가 죽자 실의에 빠져 그녀를 만나러 지옥으로 간다. 그러나 지옥에서 무서운 모습으로 변해있는 이자나미를 보고는 놀라서 도망가 버린다. 이자나기는 실의에 빠져 천상계를 아마테라스에게 넘긴다.

아마테라스는 천상계를 잘 다스렸지만, 스사노가 악행을 저지르며 형의 말을 듣지 않자 분노하여 숨어 버렸다. 그래서 태양의 신이 사라진 지상에서는 밤이 계속된다. 신들은 당황해서 아마테라스에게 돌아오라고 사정하였고, 아마테라스는 신들이 주선한 잔치에 감동받아 돌아오게된다. 그리고 아마테라스는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던 동생 스사노를 천상계에서 추방하였다.

스사노는 일본열도로 내려왔다. 그는 사람들을 괴롭하던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하고 영웅이 되었고, 지상은 스사노의 후손인 오쿠니누시가 지배하게 되었다. 오쿠니누시는 지상국가 건설에 힘쓰며 백성들을 잘 다스렸지만, 천상계의 아마테라스는 그 자손인 히노호니니기에게 명하여 지상을 다스리라고 하였다. 히노호니니기는 지상으로 내려와 오쿠니누시의 국가를 물려받고 지상을 다스리게 되었다.

히노호니니기가 천상계의 명령을 받고 내려온 것을 천손강림이라고 한다. 천손강림 이후 일본열도는 하늘의 아들이 지배한다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국가를 다스리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후예가 바로 천황이다. 천황가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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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권의 내용을 우리 나라 사람들 중에서는 한국 신화를 가져다 베낀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조신 아마테리스는 해모수로, 천상계 이야기는 환인이야기로 파악하는 것이 그것인데, 이렇게 까지 비약하는 것은 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동아시아 신화는 다 비슷비슷하거든요. 일본신화가 우리나라 신화를 베낀 것이라고 너무 강하게 주장하면, 우리 신화는 중국이나 러시아 신화를 베낀 것이 됩니다. 사실 시기를 막론하고 동아시아 설화는 다 공통적으로 천손의 강림, 인수교혼(동물과 사람이 결혼하는 것), 곰이 등장하는 설화가 대부분 다 나옵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런 설화를 유도했다고 보는 편이 좋지요. 또는 북방에서 설화가 차츰 남방으로 전승되었다는 견해도 있구요.

중권의 내용 요약 - 진무천황과 신공황후(4대 천황 ~ 15대)

중권의 내용은 천손강림 이후 4대 진무천황이 신의 후손으로서 일본열도에 실력을 행사하였고, 일본 열도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이후 천황가가 발전해 나간다는 내용입니다. 진무천황 이후 후손들 얘기는 그저 그렇고, 중요한 것은 야먀타이국의 히미코(신공황후)의 이야기입니다. 고사기에서는 진구우라는 여자로 나옵니다만, 몇 년뒤 편천된 일본서기에서 신공황후로 격상시킵니다. 신공황후는 일본에서의 강력한 세력을 구가한 이후, 중국에 사신을 보내 일본이라는 나라를 동아시아에 각인시켰고, 한반도 남부를 점령해 200년 동안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고사기의 허황된 면을 발견합니다. 일본 천황가 이야기야 허구이든 진실이든 무시하면 되지만, 한반도 자체를 일본이 점령했다는 이야기는 우리로서는 이 책이 뭐하는 책인가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충분한 소재거리가 됩니다. (일본사 이야기 2편의 야마타이국을 참조하세요)

하권의 내용 요약 - 16대 천황 ~ 33대 천황

하권의 내용은 16대 천황에서 33대 천황까지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관심가는 부분은 이 하권의 주요 줄거리가 야마토 정권에서의 천황가 이야기라는 점인데, 야마토 정권은 일본의 소국들이 뭉쳐서 만든 지방 호족들의 연합국가였다는 점입니다. 천황은 그 연합정권의 수장 성격이었지요. 따라서 천황가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 세력과의 끊임없는 사투를 벌였고, 또 지방 유력 호족의 가문에서 천황이 나오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즉, 당시 호족가문과 천황가는 권력구도에 따라 상호 결혼을 하였고, 당시 남매간에 결혼까지 있었을 정도였기 때문에 유력호족가문에서 천황과 이어지는 핏줄만 있으면 그 기문소속의 천황을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유력한 가문으로 천황가를 휘어잡고, 불교를 수용하여 강력한 유력가문이자 천황가를 겸했던 가문이 바로 소가씨였습니다. (일본사 이야기 6 - 소가씨 이야기 참조) 특히 소가씨의 33대 천황인 스이코(소가노 아마코) 천황은 쇼토쿠 태자(소가노 쇼토쿠)와 함께 아스카 문화를 주도하면서 일본 문화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후 소가논 집단의 멸망 부분은 나오지 않고 끝납니다. 다이카 개신 이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지요.

4. 그럼 일본 서기는 왜 편찬한 거야?

고사기가 편찬된 시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본서기가 편찬됩니다. 이 두 책의 공통점은 고대 신화부터 서술하여 고대 신화가 천황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 서술 방향을 잡아 천황가에 신성성을 부여해 지방호족가문보다 우월함을 과시하고, 국민을 지배함에 있어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역사책의 차이점은 정사인가, 개인적 장서인가의 차이입니다. 고사기는 천황가가 개인적으로 보존할 개인적 장서이므로, 그 후속편이 없고, 이야기도 고대신과 천황가의 족보 연결차원에서 끝납니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당시 중국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하는 분위기에서 중국식 정사와 같이 공식적으로 편찬한 책입니다. 따라서 일본서기 이후에는 속일본기, 일본후기 등등이 계속 편찬되었고, 이러한 일본의 정사들을 한번에 묶어 <육국사>라고 부릅니다. 이 책은 중국사서와 마찬가지로 편년체입니다. 일본이 중세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육국사는 <신의 책>으로 여겨지면서, 심지어 역사가들까지도 이 책을 숭상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세계 2차대전 이전까지는 이 육국사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없이 그저 신성한 책으로서 이 일본서기를 바라보게 된 것이지요. 그 이유는 일본의 천황가의 영향력이 너무 거대하고, 신성화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제는 그냥 신화수준인 고사기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수 있지만, 정사인 일본서기는 우리 한반도의 역사서술 부분에서 우리나라 및 중국측의 기록과 너무 달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본서기가 우리 역사서 및 중국사서를 참조하면서 천황가에 불리한 부분은 삭제하거나 왜곡한 부분이 눈에 많이 띄는데, 일본측에서는 그 부분에 대하여 우리 역사서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주장합니다.

5. 그럼 일본 서기에 기록된 한반도 관련 역사의 논쟁점들...

신공황후기 설화 이야기도 연대 차이가 심하다.

고대 일본 천황가의 기록들은 기원후 150년 이전의 기록들이 우리 사서나 중국사서에 비해 그 연도차가 너무 큽니다.  

삼국유사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가 일본 서기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삼국유사의 이야기에 나오는 세오녀는 잔잔한 사랑이야기 인데, 일본서기에서는 영웅의 면모를 가진 여걸로 나오죠.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기의 왕들이 서로 맞지 않습니다. 거의 50년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우리 설화에 나오는 망부석 이야기도 삼국유사와 일본서기의 기록이 200년 이상 차이나고, 신라와 일본이 전쟁을 했다는 기록들을 살펴보면 맞는 연대가 거의 없습니다. 수많은 기록들이 거의 다 연대가 안 맞습니다. 대체 이 일본서기는 무슨 책을 근거로 연대를 상정한 것일까요?

신공황후의 신라 정복설

일본 서기 신공황후기에는 일본이 신라, 백제를 평정하고 고구려가 일본에 조공을 바쳤다고 합니다. 당시 상황으로 거의 말이 안되는 해석인데요. 또, 일본은 이 기록을 신빙성 있게 하기 위하여 광개토대왕릉비문을 위조하기도 했습니다.(이 이야기는 고구려사 편에 아주아주 자세히 기록할 것이구요, 또 광개토대왕릉비 전문을 한국사 사료방에 전문 다 옮겨 놓았습니다.)

즉, 광개토대왕이 백제와 일본을 공격했다는 비석 내용을 글자 몇글자 바꾸어서, 일본이 바다를 건너 신라를 정벌했다는 이야기로 완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것을 통해 일본은 그들이 고대 한반도 남부를 200년간 경영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삼습니다. 미칠 노릇이지요.

칠지도 문제

칠지도 문제는 고대 한국과 일본사에서 큰 논점이 되는 문제중 하나입니다. 칠지도(일곱가지가 난 칼)라는 칼을 백제 부흥기 때 성왕이 일본에 전해주었는데, 이 전해주었다는 부분의 용어가 과연 <하사하였다>인가 <바쳤다>인가라는 해석을 둘러싼 논쟁입니다. 한자로 <공공>이라는 글자는 주었다라는 뜻인데, 이것은 해석하기 따라서 하사도 되고, 바친 것도 되거든요.

우리는 당연히 당시 역사적 상황으로 보아 백제가 일본에 하사한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일본에서는 이것을 당시 중앙집권화 하던 일본에 바친 것이라고 해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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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점들을 살펴보면 고대 일본서기에서 최소한 신공황후기 이전의 기록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일본 학자들도 일본서기를 볼 때, 신공황후기 이전의 기록은 잘 인용안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라고 하는군요. 일본에서는 국가가 편찬한 정사에서 조차 고대 신화와 실제 역사가 섞여 있으니, 역사가들은 일본 사서를 읽을 때 그 내용을 잘 판단하고, 인용해야 할 듯 싶습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역사왜곡이나, 일본 사서의 문제점을 심도있게 따지지 않고, 그냥 객관적 시선에서 적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고대사편에서 다룰 때는 조목조목 학술적인 근거를 들어 아주 신~~랄하게 비판할 예정입니다. 그렇다고 환단고기와 같이 신화적 성격으로 비판하지는 않을 것이며, 역사적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잘못된 점들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겠습니다. 이만 적고 공부하러 가야겠네요... 오늘은 휴가라 직장을 쉽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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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의 동명왕편 - 영웅의 위기

나이 들어 어른이 되니 재능도 함께 갖추었다. 금와왕에게는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항상 주몽과 같이 사냥을 하면서 놀았다. 왕자와 종자가 40여명인데도 겨우 사슴 한 마리를 잡았으나, 주몽이 잡은 사슴은 아주 많았다. 왕자가 이를 투기하여 주몽을 잡아 나무에 묶어놓고 사슴을 빼앗아가 버리므로 주몽은 나무를 뽑아 버리고 돌아왔다. 태자 대소가 왕에게 말하기를 <주몽이란 놈은 귀신같은 장사고 안목이 비상하옵니다. 이 놈을 일찍 처치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훗날 근심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왕이 주몽으로 하여금 말을 먹이도록 하였으니, 주몽의 참뜻을 떠 보고자 한 것이다. 주몽은 속 마음에 한을 품고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저는 천제의 자손으로 남의 말을 먹인다는 것은 죽음만 같지 못한 노릇이니, 남쪽으로 가서 나라를 세울까 합니다. 그러하오나, 어머니가 계시니 감히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하기를 <이는 내가 밤낮으로 마음 졸인 바이다. 내가 듣기로는 장사가 먼 길을 떠날 때는 꼭 좋은 말이 필요하다. 나는 말을 고를 줄 안다.> 하고 곧 말목장으로 갔다. 그리고는 긴 채찍으로 마구 치니 뭇 말이 놀라 달리는데, 붉고 누름한 말 한 마리가 두 길이나 되는 난간을 뛰어넘었다. 주몽은 훌륭한 말임을 알고 남몰래 바늘을 혀뿌리에 꽂아두었다. 그 말은 혀가 아파 물과 풀을 먹지 못하므로 몹시 야위어갔다. 왕이 말목장을 순행하다가 뭇 말이 모두가 살찐 것을 보고는 크게 기뻐하고 야원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주몽은 그 말을 얻어서 바늘을 뽑고는 잘 먹었다.

주몽은 남으로 내려가고자 하였지만, 강을 건너자니 배가 없고 따라오는 군사들이 닥쳐올까 두려워서 채찍으로 하늘을 가르키며 한숨짓고 탄식하기를 <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자인데 지금 난을 피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황천과 후토는 이 외로운 사람을 살피시어 속히 배와 다리를 마련하소서>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다리를 이루었다. 주몽은 이러하여 건널 수 있었는데, 얼마 안 되어 추격병들이 이러렀다. 추격병이 이르자 물고기와 자라들이 놓은 다리가 즉시 없어졌으므로 다리 위에 있던 군사들은 모두 빠져 죽었다.

주몽이 작별할 때 차마 떠나지 못하니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어미 걱정은 말아다오>하고는 오곡 종자를 싸 주었다. 주몽은 생이별하는 아픔으로 애끓이다가 그만 보리씨를 가져오는 것을 잊어 버렸다. 주몽이 큰 나무에서 쉬고 있었는데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왔다. 주몽이 말하기를 <이는 틀림없이 어머니가 사자를시켜 보리씨를 부쳐온 것이다>하고는 활을 당겨 쏘는 한 살에 다 떨어졌다. 목구멍을 열어 보리씨를 꺼내고는 물을 비둘기에게 뿜자 다시 살아서 날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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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의 동명왕편 - 해모수와 하백

본기(구삼국사 본기인 듯)에 이렇게 적혀 있다.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하여 아들 낳기를 빌러 가는데, 타고 있던 말이 곤연에 이르자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돌을 굴리게 하였더니 금빛 나는 개구리 모양의 작은 아이가 있었다. <왕은 이를 하늘이 내게 아들을 준 것이다.> 라고 거두어 길렀는데, 이름을 금와라 하고 태자로 삼았다. 상 아란불이 말하기를 <일전에 천제가 내게 내려와서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려 하니 너는 여기서 떠나거라"라고 하였는데, 동해 가에 가섭원이란 땅이 있어 오곡이 잘 되니 도읍할 만합니다>라고 하였다. 아란불은 왕을 권하여 옮겨 도읍하고 동부여라 이름하였다. 예전 도읍테에는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이 되어 내려와서 도읍하였다.

한 신작 3년인 임술년에 천제가 태자를 보내 부여왕의 옛 도읍에 내려가 놀게 하였는데, 해모수라는 이였다.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다섯 용이 끄는 수레 오룡거를 탔고, 따르는 이 백여명은 모두 흰 고니를 탔다. 색깔있는 구름이 그들 위에 떴고 음악 소리가 구름 속에서 울려 나왔다. 웅심산에 머물렀다가 10여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내려왔는데, 머리에는 오우의 관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의 칼을 찼다.

그녀들이 왕을 보고는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좌우 신하들이 말하기를 <대왕님은 어찌하여 궁전을 마련하지 않습니까? 여자들이 방에 들거든 문을 닫아서 가로막으시옵소서>라 하니, 왕이 "그러리다"라고 말하고는 말채로 땅에 금을 그으니 동실이 문딕 서서 장관이었다. 방 가운데에 세 자리를 준비하고 통술을 차려놓았다. 그녀들이 각각 자리에 앉아 서로 권하여 술 마시더니 크게 취하였다고들 한다.

하백이 크게 노하여 사자를보내 말하기를 <너는 어떤 사람이길래 내 딸을 붙들어 두었는가?> 하니, 왕이 대답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인데 지금 하백과 혼인을 맺으려 한다.>고 하였다. 하백이 또 사자를 시켜 고하기를 <그대가 천제의 아들로서 나에게 구혼할 뜻이 있다면 마땅히 중매자를 시킬 일이거늘 지금 갑자기 내 딸을 붙들어 두었으니 어찌 그렇게 예의가 없는 것인가?>하므로 왕은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왕은 곧 가서 하백을 뵈옵고자 하였으나, 그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으므로 그녀를 놓아 보낼까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미 왕과 정이 들어 떠나가지 않으려고 하면서 왕에게 권하기를, <만약 용이 끄는 수레만 있으면 하백의 나라에 갈 수가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하늘을 가르켜 고하니 갑자기 오룡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왕이 그녀와 같이 수레에 오르니 바람과 구름이 문득 일어 하백궁에 이르렀다.

하백이 말하기를 왕이 진실로 천제의 아들이라면 무슨 신이한 것을 가졌는가? 하니, 왕이 대답하기를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하백이 뜰 앞 물에서 몸을 변하여 잉어가 되어 물결 타고 노니는데, 왕은 수달이 되어 잡았다. 하백이 또 사슴이 되어 뛰어가니, 왕은 늑대가 되어 쫒았다. 하백이 뀡이 되면 왕은 매가 되어 치매, 하백은 진실로 천제의 아들임을 알고는 예로서 혼례를 치렀다. 왕이 앞으로 딸을 데려갈 마음이 없을까 두려워 풍악을 잡히고 술자리를 차려 왕에게 권하여 만취케 하여 놓고는 딸과 함께 작은 가죽 가마에 넣어 옹거에 실었는데, 같이 하늘에 오르게 하자는 생각에서인 것이다. 수레가 물에서 뜨기도 전에, 왕은 곧 술이 깨서는 그녀의 황금 비녀를 빼서 가죽 가마를 뚫고 그 구멍으로 빠져나와 혼자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하백이 크게 노하여 그녀를 책망하기를, <너는 내 훈계를 따르지 아니하였다가 끝내는 우리 집안을 욕보였다>라고 말하고는 좌우 신하들에게 딸의 입을 쥐어 당기게 시켜 입술 길이를 석자나 되게 하였다. 기여 비복 2명만 주어 우발수 한가운데로 내쫒았다. 우발수는 못 이름인데 지금 태백산 남쪽에 있다.

어부 강력부추가 아뢰기를, <근자에 발 속의 고기를 훔쳐가는 일이 있사온데, 어떤 짐승인지 알 수 없사옵니다>라고 하자, 왕이 어부를 시켜 그물로 끌어올리게 하였으니, 그물이 찢어졌다. 다시 쇠그물을 만들어 당겨내서야 비로소 한 여자를 얻었는데, 돌에 앚아사 나왔다. 여자는 입술이 길어 망을 못하기에 세 번 자르게 한 연후에야 말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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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건국설화

시조 동명성황은성이 고씨이며 이름은 주몽이다..... 부여의 금와왕이 태백산 남쪽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되어 물은 즉, 하백의 딸 유화라 하는지라....... 금와왕이 이상히 여겨 그녀를 방에 가두어 두었는데 햇빛이 따라와 비추었다. 그녀는 몸을 피하였으나 했빛이 따라와 기어이 그녀를 비추었다. 이로 인하여 그녀는 잉태하게 되었고 마침내 알 하나를 낳았다. ... 한 사내아이가 껍데기를 깨고 나왔다.

기골과 모양이 뛰어나고 기이했다. 일곱 살에 의연함이 더하였고, 스스로 활을 만들어 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 하니 이로써 이름을 삼았다. .....

주몽의 어머니가 비밀을 알고 아들에게, <장치 이 나라 사람들이 너를 죽이고자 하니 너의 재간으로 어디 간들 못 살겠느냐, 지체하다가 욕을 당하지 말고 멀리 도망하여 큰 일을 이루어야 한다.>라고 타일렀다. 주몽은 그를 따르는 세 사람과 함께 도망하여 강가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리가 없어 강을 건널 수 없었고, 추격병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주몽이 강물에 고하여 <나는 천제의 아들이고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하여 여기까지 왔으나 추격병이 쫒아오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라고 외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니 주몽이 강을 건널 수 있었다. ..... 주몽은 졸본천으로 갔다. 그 곳 땅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천이 험하였다. 마침내 이 곳에 도읍하기로 하였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고를 그의 성씨로 삼았다.

                                                                                         - 삼국사기  -

사료해석 : 주몽은 부여의 지배 계급 내의 분열과 대립과정에서 박해를 피해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고대 신화의 위기극복구조를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설화입니다. 특히 졸본의 산악지대는 <힘써 일해도 양식이 부족한> 지역인 만큼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소국들을 정복하고 평야지대로 진출해야만 했죠.

이 사료에서 주몽의 아버지는 천제인 해모수이고 어머니 유화부인은 물의 신 하백의 딸입니다. 즉 고구려인들은 선민의식과 천신의식을 지녔음을 알 수 있는데, 후의 고구려인들은 주몽과 유화부인을 시조신으로 모시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고구려 신화와 단군신화는 그 구조가 약간 다른데, 단군신화는 창세기적 요소로서 원시적인 초창기 신화이므로 영웅의 위기극복보다 선악의 대립구조가 강도되었음이 보입니다. 특히 청동기 시기의 전형적인 신비주의가 많이 보이죠. 반면 고구려 설화들는 유이민적인 요소가 보이는 철기시대 신화로서 신비주의는 축소되며, 그 사회상이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로 형제갈등에서 보이는 적장자 상속의 인정, 주몽의 모친에서 볼 수 있는 농업적 지모신 요소 등이 설화에 녹아 그 사회상을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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