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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루

백제의 건국 설화(삼국사기 편) 백제의 건국 설화 백제 시조 온조왕(溫祚王)의 아버지는 추모(鄒牟)로서 주몽(朱蒙)이라고도 하는데, 북부여(北扶餘)로부터 난을 피해 졸본부여(卒本扶餘)에 이르렀다. 졸본부여의 왕에게는 아들이 없고 단지 딸만 셋이 있었다. 왕이 주몽을 보더니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둘째 딸을 시집보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졸본부여의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잇고 두 아들을 낳았다. 맏아들을 비류라 하고 둘째 아들을 온조라고 하였다.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매,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하다가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 등 10명의 신하와 함께 남쪽으로 가니 백성 가운데 따르는 자가 많았다.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 살만한 땅을 바라보았는데.. 더보기
이규보의 동명왕편 - 주몽의 위기 이규보의 동명왕편 - 영웅의 위기 나이 들어 어른이 되니 재능도 함께 갖추었다. 금와왕에게는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항상 주몽과 같이 사냥을 하면서 놀았다. 왕자와 종자가 40여명인데도 겨우 사슴 한 마리를 잡았으나, 주몽이 잡은 사슴은 아주 많았다. 왕자가 이를 투기하여 주몽을 잡아 나무에 묶어놓고 사슴을 빼앗아가 버리므로 주몽은 나무를 뽑아 버리고 돌아왔다. 태자 대소가 왕에게 말하기를 라고 말하였다. 왕이 주몽으로 하여금 말을 먹이도록 하였으니, 주몽의 참뜻을 떠 보고자 한 것이다. 주몽은 속 마음에 한을 품고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하기를 하고 곧 말목장으로 갔다. 그리고는 긴 채찍으로 마구 치니 뭇 말이 놀라 달리는데, 붉고 누름한 말 한 마리가 두 길이나 되는 난.. 더보기
이규보의 동명왕편 - 해모수, 하백 이야기 이규보의 동명왕편 - 해모수와 하백 본기(구삼국사 본기인 듯)에 이렇게 적혀 있다.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하여 아들 낳기를 빌러 가는데, 타고 있던 말이 곤연에 이르자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돌을 굴리게 하였더니 금빛 나는 개구리 모양의 작은 아이가 있었다. 라고 거두어 길렀는데, 이름을 금와라 하고 태자로 삼았다. 상 아란불이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 아란불은 왕을 권하여 옮겨 도읍하고 동부여라 이름하였다. 예전 도읍테에는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이 되어 내려와서 도읍하였다. 한 신작 3년인 임술년에 천제가 태자를 보내 부여왕의 옛 도읍에 내려가 놀게 하였는데, 해모수라는 이였다.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다섯 용이 끄는 수레 오룡거를 탔고, 따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