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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군

고구려의 정복 전쟁과 영토 확장 사료 고구려의 영토 확장 동명성왕 2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그 땅을 다물도로 삼고 송양을 그 곳의 주로 봉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 부여왕 사촌 동생이 만여명을 데리고 투항해 오니 대무신왕이 왕으로 봉하고 연나부에 안치시켰다. 9년 10월에 왕이 친히 개마국을 정벌하여 왕을 죽이고 백성을 위로하여 노략질을 못하게 하고 군현으로 삼았다. 12월에 구다국왕이 개마가 멸망했다는 말을 듣고 나라를 들어 항복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 태조대왕 11년 8월에 갈사왕 손도두가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도두를 우태로 삼았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 - 9월, 왕이 군사 3만 명을 이끌고 현도군에 침입하여 8천 명을 사로잡아 평양으로 옮겼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미.. 더보기
한나라의 분열 정책과 고구려의 책구루 한의 분열정책 - 고구려의 책구루 한나라 때 북치고 피리부는 재주꾼을 주었다. 언제나 현도군으로부터 조복과 의책을 받아갔는데 고구려가 그 명부를 주관하더니 나중에는 점차 교만하고 방자해져서 다시는 군에 나가지 아니하고 동쪽 경계에 작은 성을 쌓고 조복과 의책을 그 가운데 넣어두면 정초에 와서 가져갔다. 지금은 오랑채들이 오히려 이 성에 이름을 붙여 책구루라 하는데 구루는 고구려말로 성이라는 뜻이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 사료해석 : 고조선이 멸망하고 예, 맥, 한족들에게 한족인 분열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예족(부여족)과 한족(3한족)은 그 분열책에 넘어갔지만, 맥족(고구려족)은 분열정책에 넘어가지 않고 고대 국가로 확실하게 성장해갑니다. 조복과 의책을 주는 중국의 분열책에 고구려는 성(구루)을 쌓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