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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공왕

신문왕의 전제왕권 2 - 중앙집권화를 위해 귀족권을 억압하다. 신문왕의 전제왕권 2 - 중앙집권화를 위해 귀족권을 억압하다. 이번 파트부터는 통일신라 전제왕권을 완성한 신문왕에 대한 포스팅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로 나누어 다양한 각도에서 포스팅하겠습니다. 신문왕을 자세히 포스팅하는 이유는 신문왕 자체가 통일신라의 문물을 정비하고, 완성한 사람이므로 신문왕을 로 하여 통일신라의 전성기 체제를 바라보면 이해가 쉽기 때문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신문왕기의 정치사를 정리해 봅시다. 1. 전제왕권의 성립 배경 지난 장에서 전제왕권을 정의내릴 때, 국왕의 1인 독재권이 아닌 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럼 이러한 중앙집권적 전제왕권이 성립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삼국통일에서 그 핵심 배경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삼국통일기 신라는 가 계속되었습니다. 고.. 더보기
통일신라의 정치사에 대한 개관 통일신라의 정치사에 대한 개관 통일신라에 대한 구체적인 포스팅을 하기 전에 통일신라시대에 대한 개관을 해보겠습니다. 1. 전제왕권이 성립하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는 국가 운영 체제와 영토의 팽창입니다. 삼국통일은 곧 영역의 확대 뿐 아니라 인구,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또 통일로 인하여 유민 세력에 대한 처우 개선, 군사력의 확보, 정치적 안정의 추구, 반신라세력에 대한 탄압 등 국가적 과제가 많았습니다. 즉, 국가적으로 팽창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과제들을 해결할 정치적 역량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신라의 왕권은 이러한 새 시대의 과업을 를 통해 효율적으로 해결하였습니다.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충신의 왕으로서 새 시대를 위한 체제 개선을 .. 더보기
혜공왕 대 귀족들의 반란으로 김유신계 귀족도 제거되다 혜공왕 대 귀족들의 반란으로 김유신계 귀족도 제거되다 37대 혜공왕 때, 대력 14년 기미 4월에 문득 회오리 바람이 김유신 공의 무덤에서 일어났다. 그 바람 속에 준마를 탄 한 사람은 장군의 모습과 같았으며, 갑옷을입고 모기를 든 사람 40여 명쯤이 뒤를 따라와서 죽현릉(미추왕릉)으로 들어갔다. 조금 뒤에 능 속에서 진동하며 우는 소리가 나는 듯하고 호소하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말은 이러했다. [ 신은 평생에 난국을 구제하고 삼국을 통일한 공이 있었으며, 지금은 혼백이 되어서도 나라를 진호하여 재앙을 없애고, 환란을 구제하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나간 경술년에 신의 자손이 아무론 죄도 없이 죽음을 당했으니, 이는 군신들이 저의 공열을 생각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은 다른 곳으로 멀리 옮.. 더보기
96각간의 난, 김지정의 난 96 각간의 난과 김지정의 난 혜공왕(惠恭王) 4년 7월 3일에 대공(大恭) 각간(角干)의 적도(賊徒)가 일어나자 왕도(王都) 및 5도(道)·주군(州郡)의 도합 96각간들이 서로 싸우게 되어 크게 어지러워졌다. 대공 각간의 집이 망하매 그 집에 있던 보물과 비단 등 가재(家財)를 왕궁(王宮)으로 옮겼다. 신성(新城)의 장창(長倉)이 불에 탔으므로 역당(逆黨)의 보물과 곡식 중 사량리(沙梁里)·모량리(牟梁里) 등에 있던 것을 또한 왕궁으로 실어 날랐다. 난리는 석달이 지나서야 그쳤다. - 삼국유사 기이편 2, 혜공왕 - [혜공왕 6년] 가을 8월에 대아찬(大阿瑗) 김융(金融)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복주(伏誅)되었다. …… 11년 여름 6월에 이찬(伊瑗) 김은거(金隱居)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복주되었으며, 가을.. 더보기
신라 하대로 접어들면서 신라가 무너져가다 - 96 각간의 난 96각간의 난 "신라가 점차 귀족연립사회로 접어들면서 친왕파와 반왕파의 치열한 대립으로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신라중대의 전제 왕권이 무너지는 시기적 상황에서 일어난 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라 중대의 강력한 왕권은 신문왕과 성덕왕을 거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되었는데요. 신문왕 때 실시한 관료전과 성덕왕 대의 정전제도 등 일련의 조치들은 귀족들의 강한 반발을 사게 됩니다. 경덕왕 대에는 결국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는 왕과 귀족집단과의 타협접을 찾게 됩니다. 경덕왕 대의 한화정책도 그런 측면이 가미되어 있고, 녹읍이 부활된 것도 그러한 시대 상황과 연관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후 혜공왕대의 상황입니다. 점차 왕권이 약해지는 상황속에서 친왕파와 반왕파의 대립이 있게되는데, 이 것이 96각간의 난의 시작입..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