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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령

중세 독일의 발전 3편 - 12c 호엔쉬타우펜 왕조 ~ 15세기 합스부르크왕조 중세 독일의 발전 3편 - 12c 호엔쉬타우펜 왕조 ~ 15세기 합스부르크왕조 중세 독일사 1,2편에서 다루었던 핵심적인 내용은 작센제후의 신성로마제국이었습니다. 오토 1세의 신성로마제국은 보편적인 황제권과 독일 국민의 국왕권이라는 2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독일내 통일국가 + 로마제국의 세계국가를 동시에 실현항려고 하였죠. 그 결과 교황권과 크게 충돌하게 되었고, 결국 카노샤의 굴욕, 보름스 협약 등을 거치면서 교황권과 어느 정도 타협하게 됩니다. 교황권과의 대대적인 마찰이 끝난 후 신성로마제국은 이제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국의 국내문제라는 것도, 항상 교황청이 있는 와 연관이 되는 관계로, 역사가 평탄치만은 않습니다. 그럼 12-13세기의 신성로마제국의 왕들인 프리드.. 더보기
중세유럽사4 - 샤를마뉴(카롤루스, 카알) 대제 시대의 프랑크 왕국 샤를마뉴 대제(카롤루스 대제, 카알 대제) 1. 광대한 영토 확장 사업 샤를마뉴 대제는 피핀의 아들입니다. 그는 피핀이 교황령을 분배하여 적극적인 교황 옹호자가 되었고, 교황의 지지를 바탕으로 서유럽 정복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는 정복전쟁에 성직자를 동반하였습니다. 그것은 민심을 수습하는 동시에, 정복지에 새로운 교구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기 위함입니다. 로마 제국이 제국의 행정구역과 교회의 교구를 일치시켰던 것과 같은 맥락이네요. 또 국경에는 변경주라는 것을 설치하여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국경을 경계하고 서유럽을 크리스트교의 전초기지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샤를마뉴는 우선 교황령을 위협하는 롬바르드족을 완전 소멸시키고, 북으로는 섹슨족을 정벌하여 카톨릭으로 개종시킵니다. 동쪽으로는 엘베강 유역으로 진출하.. 더보기
중세 이야기 3 - 카롤링거 왕조의 성립과 로마 교황령의 시작 카롤링거 왕조의 성립과 교황령의 시작 1. 7c의 혼란 프랑크 왕국의 건국자 클로비스의 메로빙거 왕조가 성립된 후 150여년이 지났습니다. 100년 이상이 지나는 동안 프랑크 왕국은 앞 장에서 설명했듯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망하지 않고 근근히 국가 형태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7c가 되면서 프랑크 왕국은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 이유는 프랑크족의 관습때문이였습니다. 프랑크족들은 재산을 상속할 때, 장자 상속제가 아니라 균등 상속제입니다. 즉, 왕자들이 많다면 그 왕자 사이에 일정한 비율로 영지를 분할하는 것이 그들의 제도였습니다. 이것은 왕위 상속을 놓고, 왕자들간의 내분이 일어날 소지가 많은 제도였습니다. 결국 내분과 갈등이 지속되는 동안, 왕국의 실권을 잡은 것은 궁재(재상) 마르텔이였습니다. 그는 .. 더보기
라벤나의 위치와 역사 라벤나 라벤나는 이탈리아 북동부 에밀리아로마냐 지방 라벤나 주의 주도입니다. 아드리아 해 근처에 있는데, 5세기에 호노리우스 황제가 수도를 옮기면서 서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 후 서로마제국은 멸망하였고, 6~8세기 동고트족의 이탈리아 왕국과 비잔틴 제국령 이탈리아의 수도가 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입니다. 라벤나에 최초로 정착한 주민은 BC 1400년경 아퀼레이아에서 남하한 이탈리아 반도의 종족들로 추측되며 에트루리아인(人)과 갈리아인이 차례로 점령했었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이곳에서 약 5㎞ 떨어진 곳에 클라시스 항구를 건설했고 BC 1세기 경 라벤나는 로마의 중요한 해군기지였습니다. 402년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가 수도로 삼아 웅장한 기념물을 많이 세웠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