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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고대 이전 동북아시아의 전투 형태 - (1) 청동기, 철기 우리 민족과 동아시아의 전쟁 양식에 대하여 고대 이전 동북아시아의 전투 형태 (1) 청동기, 철기 우리 민족과 동아시아의 전쟁 양식에 대하여 우리 민족, 그 기원에 대한 논쟁 자,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내용은 고대 동아시아의 전투 양식에 관한 것입니다. 동아시아라고 하면 지금의 중국을 포함하고 있는 동북아시아부터 한반도, 일본열도까지를 다루어야 하지만,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일본에 대한 기록이 일단 없고, 야마토 호족 연합 정권 이전의 일본에는 전쟁다운 전쟁에 대한 기사가 없기 때문이죠. 그럼 시작해 볼까요? 전쟁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 일단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원시시대 만주와 요령지방, 그리고 한반도에는 어떤 계통의 민족이 살고 있었는지 일 것입니다. 일단,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우리 민족.. 더보기
5만원, 10만원권 고액 화폐권 2차후보 역사인물 10명 5만원, 10만원권 고액 화폐권 2차후보 역사인물 10명 1. 어떤 사람이 후보가 되었을까? 한국은행에서는 2009년부터 발행될 5만원권, 10만원권 지폐의 인물 후보를 10명으로 압축해서 2차로 발표했습니다. 그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구, 김정희, 신사임당, 안창호, 유관순, 장보고, 장영실, 정약용, 주시경, 한용운 2차로 발표된 인물에 대한 각기 평가가 너무 상이하기도 합니다. 예로,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 1위를 차지한 광개토대왕은 아예 평가후보에서 빠졌습니다. 국민들은 광개토대왕을 원한다고 하지만, 중국의 동북공정 등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아예 처음부터 삭제한 것이지요. 여성사이트에서는 신사임당, 유관순, 허난설헌, 김만덕 등의 역사 속 여성들이 많은 표를 차지했지만 신사임당과 .. 더보기
5호 16국 시대의 개막 - 5호가 내려와 진을 몰아내다 5호 16국 시대의 개막 - 5호가 내려와 진을 몰아내다 이번 장에서는 5호 16국 시대가 시작된 배경은 5호의 중국 진출에 대한 내용을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5호란 흉노, 선비, 저, 갈, 강족을 말합니다. 1. 만리장성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다투다 5호는 고대 사회 이래 중국이 선진 문물을 수용하지 못한 미개민족으로 분류한 를 말합니다. 주나라 시대 의 기틀이 마련된 이후 에 소속되지 못한 비문명 지역을 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춘추시대 이후 양자강 유역의 개발이 시작되면서, 양자강 유역의 오, 월, 초 등이 중화문명에 소속되었고, 서방의 진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중화 문명권은 서방의 진 ~ 남방의 양자강 ~ 북부 황하유역을 경계로 삼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명권을 벗어난 지역은 모두 의 지역이.. 더보기
서양 인류의 기원설과 중국의 인류기원 다지역설 인류의 기원과 유럽의 선사시대 1. 인류는 언제 등장하였는가? 우리가 보통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나눌 때 그 기준점을 문자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로 잡습니다. 즉, 문자 기록이 있었던 시대는 역사시대, 문자 기록이 없어서 유물이나 유적으로 그 시대상을 파악해야 하는 시기는 선사시대로 잡는 것이죠. 따라서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라도 해도 그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면 선사시대로 간주하게 됩니다. 중근대 유럽인들은 전설속의 발달된 기독교 왕국인 아틸란티스나 뮤를 상상하기도 했지만, 설사 그런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만약 역사적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면 선사시대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도 글자 기록이 없으면 선사시대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구석기, 신석기 문명은 따라.. 더보기
고구려와 당과의 전쟁 관련 사료 고구려와 당의 전쟁 (당태종)은 형부상서 장량(張亮)으로 평양도행군대총관(平壤道行軍大總管)을 삼아 강*회*영*협의 병사 4만을 거느리게 하고, 장안과 낙양에서 병사 3천을 모집하였으며, 전함 500척은 내주(萊州)에서 바다를 건너 평양으로 가게 하였다. 또 이세적(李世勣)으로 요동도행군대총관(遼東道行軍大總管)을 삼아 보병과 기병 6만과 난주와 하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요동으로 가게 하니, 양군은 합세하여 유주(幽州)에 집결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 강하왕(江夏王) 도종(道宗)이 군사를 독려하여 안시성의 동남 구석에 토산(土山)을 쌓고 성을 압박하니 성 안에서도 성의 높이를 더하여 막았다. ... 도종은 주야로 쉬지 않고 60여일, 연인원 5만을 동원하여 토산 쌓기를 계속하여 성 안을 아래로 굽어보.. 더보기
고구려와 수와의 전쟁 사료 - 을지문덕의 오언시, 살수대첩 포함 고구려와 수의 전쟁 이듬해 원이 말갈기병 만여명을 거느리고 요서에 침입하였는데, 영주들이 총관 위충을 물리쳤다. 수나라 고조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한왕 양을 원수로 삼고 수군과 육군을 총동원하여 고구려를 치게 하는 한편, 조서를 내려 고구려왕의 작위를 빼앗았다. 그러나 이때 군량 수송이 중단되어 6군의 먹을 것이 거의 떨어지고, 군대가 임유관을 나오자 전염병마저 번져 수나라 군대는 기세를 떨치지 못하였다. - 수서 동이열전, 고려 - 양제(煬帝)가 조를 내려 고구려 공격을 명하였는데, 그 병사의 수는 모두 113만 3,800인이었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 을지문덕의 오언시 신묘한 계책은 천문을 궁구하였고(神策究天文) 기묘한 계획은 지리를 통달하였구나(妙山窮地理) 싸움마다 이겨 공이 이미 높..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