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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국

신라의 성장과정은 정복과정인가, 연합과정인가? 신라의 성장과정은 정복과정인가, 연합과정인가? 신라의 건국은 박혁거세 설화에서 시작합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서로 상반되는 두 사료를 통하여 신라의 성장과정이 어떠한 과정을 겪는 것으로 이해하는지를 파악해보려고 합니다. 전통적인 견해는 을 통한 신라의 발전입니다. 최근의 새로운 견해는 로서의 초기 신라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1. 전통적 견해 : 신라는 정복국가로서 지배체제가 확대되었다. 신라의 발전에 대한 , 즉 과거 한국사통론, 한국사신론의 입장은 신라가 사로 6촌에서 시작하여 를 중심으로 확장해 나갔다는 관점입니다. 신라의 역사는 사로 6촌 - 사로국 - 진한연맹 - 거서간 - 차차웅 - 이사금 - 마림간 - 성골왕 시대 - 왕명 사용시대 - 불교왕명시대 - 진골왕 시대 - 중국식 연호 사용시대 등.. 더보기
대가야와 사로국의 전쟁 대가야와 사로국의 전쟁 탈해이사금 21년(서기 77) 8월에 아찬 길문이 가야 병사와 황산진(양산 낙동강 나루터로 추정) 하구에서 싸워 천여급을 얻었다. 파사 이사금 15년(서기 94) 2월에 가야가 마두성을 에워싸자 아찬 길원이 기병 천명을 거느리고 차니 달아났다. 기마 이사금 4년(서기 115) 8월에 장수를 보내 가야를 치게 하고 왕이 정예병 만명을 거느리고 따르니, 가야가 성에서 나오지 않고 굳게 지켰다. 마침 장마가 와서 돌아왔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 사료해석 : 이 사료는 금관가야의 전성기에 사로국(진한 신라국)과의 전쟁을 담은 사료입니다. 금관국 가야가 적극적으로 사로국과 전쟁을 벌이려고 했던 이유는 아마도 다른 가야 소국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전쟁이라는 수단을 이용했었던 듯 싶습니다. .. 더보기
신라 지증왕대의 급격한 사회변화 지증왕대 사회변화 왕검은 요(堯) 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 4년(503)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라 하였다. 왕이 이에 따랐다. 5년(504) 9월에 역부를 징발하여 팔리(波里)*미실(彌實)*진덕(珍德)*골화(骨火) 등 12성을 쌓았다. 6년(505) 2월에 왕이 친히 국내에 주군현(州郡縣)의 제도를 정하고 실직주(悉直州)를 두어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으니 군주란 이름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 사료해석 : 신라 역사상 큰 변혁기인 지증왕 대 사회변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지증왕대의 사회변화를 약술하면, 1. 국호를 신라로 바꾸고 왕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2. 순장을 금지하였는데, 최근 이 .. 더보기
박혁거세의 진한 육촌 사로국 설화 박혁거세 설화 진한 땅에 옛날에 6촌이 있었다. 전한의 지절 원년인 임자년 3월 초하루에 6부 시조들이 저마다 자제를 이끌고 알천 기슭 위에 모두 모여서 의논하여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 이에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아래 나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내려오더니 백마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가 보니 붉은 알이 하나 있고, 말은 사람을 보고 길게 울다가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알을 깨보니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 아이를 경이롭게 여겨 동천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따라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하였기에 혁거세왕이라 이름하고 위호를 거슬감이라 하였다. 그 때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치하하며 라고.. 더보기
신라 사로국의 건국, 육촌설화(삼국유사) 사로국의 건국 진한 땅에 옛날에 6촌이 있었다. 전한의 지절 원년인 임자년 3월 초하루에 6부 시조들이 저마다 자제를 이끌고 알천 기슭 위에 모두 모여서 의논하여 말하기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