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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트

11세기 - 13세기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유럽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항쟁의 역사 11세기 이베리아 반도의 재정복 운동 이번 장에서는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었던 이베리아 반도를 서유럽 국가가 재탈환하는 시기의 역사를 다뤄볼까 합니다. 이 지역의 역사는 교과서든, 어디든 다 서유럽의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슬람 세력을 유럽이 몰아내고, 크리스트교 세계를 복구하였다라는 것이 이 파트의 내용인데, 상당히 불만입니다.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닐텐데요. 하지만, 제 주관을 배제하고 중세 유럽사의 내용에서 이 파트를 다룬 뒤 이슬람사에서는 이슬람의 입장에서 이 파트를 다른 관점으로 다루겠습니다. 1. 이베리아 반도의 상황 11세기 이전까지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 국가가 지배하였습니다. 7세기 이후 마호메트의 이슬람 세력이 그 위세를 떨칠 무렵 이슬람은 전 유럽을 이슬람의 영역으로 만들고.. 더보기
유럽중세사 1 - 게르만족의 이동 게르만족의 이동과 유럽 중세의 시작 1. 게르만 족이란? 게르만족은 발트해 북유럽 연안에 살던 소수의 야만인(?)입니다. 야만인이라는 것은 당시 로마 제국의 관점이였죠. 로마는 갈리아 정복 이후 춥고, 도움이 안되는 북극쪽의 땅은 정복하지 않습니다. 실제 로마가 현재 프랑스-서부독일-에스파냐를 잇는 갈리아를 정복한 것도 갈리아 지방에 풍부한 유산이 있거나, 갈리아인들이 문명인이라서가 아닙니다. 갈리아 정복은 단지 이베리아 반도를 거치기 위해 필요한 도로를 확장하기 위함이였으니까요. 아무튼, 북유럽의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는 이방인이였습니다. 그러나 게르만족에게 평화가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경작지가 부족해졌습니다. 이것은 게르만인들이 남부로 내려오는 하나의 원인이 됩니다. 게르만족.. 더보기
최후의 철의 여제 갈라 플라키디아, 그리고 로마의 멸망 로마의 마지막 재건노력 - 갈라 플라키디아, 그러고 로마의 멸망 1. 갈라-플라키디아와 아타울푸스 갈라 플라키다아(이후 갈라)는 알라리크에 의해 로마가 함락당하고, 로마의 문명이 폐허가 되었을 때, 인질로서 잡혀간 황제의 여동생이었습니다. 황제인 호노리우스는 로마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자신이 안죽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닭을 키우고 놀았다고 전해집니다. 호노리우스는 자신의 생명보전을 위해 로마를 버리고 라벤나까지 수도를 옮긴 대단한 황제였거든요. 로마가 망하는 것은 그에게는 관심밖의 일이었습니다. 로마를 지켜줄 장군인 스틸리코를 맘에 안든다는 이유로 죽인 황제니, 그 무서움은 치밀하면서도 지독했습니다. 호노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동생 갈라가 잡혀갔다는 사실보다는 황제의 동생을 야만족인 서고트가 잡아갔다.. 더보기
테오도스우스 황제의 죽음과 로마의 멸망 테오도시우스의 죽음과 로마의 멸망 1. 테오도시우스 1세의 죽음과 로마의 변화 동로마의 테오도스우스황제는 테살로니카 폭동을 제대로 진압하고 이민족을 우대하고 이민족과 로마인이 평등하다는 기본 방침에 어긋나는 로마인들을 가차없이 죽였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황제권이 약했던 서로마의 발렌티니아누스는 이런 조화로운 정책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프랑크족 장군인 아르보가스트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르보가스트의 반란은 종교문제 때문입니다. 아르보가스트는 이교도인 게르만이었고, 로마 카톨릭 교회가 아리우스파 등과 싸우은 교리 싸움을 지겹게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경멸하면서 이교도를 믿는 유게니우스를 황제로 옹립하려 했지요. 테오도시우스는 이러한 상황을 묵과할 수 없어서 서로마로 쳐들어갔습니다. .. 더보기
테오도시우스 1세의 기독교 국교화 정책의 이유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와 이민족의 로마 1. 테오도시우스 1세의 이민족 융합 정책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동쪽으로 수도를 옮긴 후 2개의 로마가 되었을 때, 동로마에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했던 황제였습니다. 이당시 서로마 제국에서는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막스무스라는 반란군 때문에 동로마로 피신해 있었는데,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서로마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여동생(갈라티아)에게 반하여 그녀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역적 막시무스를 치기 위해 서로마로 진군했지요. 당시 로마는 이미 고대 제국의 영광이 사라져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동로마, 서로마는 모두 게르만 용병을 동원하여 공격과 수비를 하고 있던 시기였지요. 당시 동로마는 주력부대가 고트족 부대였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