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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

중세유럽의 신분제도와 기사도 중세유럽의 봉건제도와 기사도 1. 브뤼지의 갈버트(Galbert of Bruges)가 목격한 託身과 忠誠의 서약(Commendation and the Oath of Fealty), 12세기 초: 1127년 3월 2일 샤를르佰(Count Charles)이 살해되자 플랑드르伯 기욤이 새 主君(Lord)으로 등장하여 새로이 분봉의식을 거행하였다. ... 샤를르伯으로부터 예전에 봉토(封土)를 수여받았던 사람들은 이전에 획득한 것이 아무리 정당하고 합법적이었든지 간에 이를 새 主君 기욤佰으로 부터 새로이 봉토와 작위로 하사받고 그에게 封臣으로서의 맹세 - homage - 를 하였다. 4월 7일 목요일, 기욤佰에 대한 봉신의 서약은 다시금 행해졌고, 이는 종일동안 다음과 같은 순서로 거행되었다. 우선 그들은 이렇게.. 더보기
중세유럽의 신분제 교설 중세 유럽의 신분제 교설 1. 보름스主敎 부르카르트(Burchard, Bishop of Worms): 신분제에 관한 설교, 1008-1012 ... 최초의 인간이 범한 죄로 인하여 인류에는 신의 뜻으로 隸屬의 罰이 과해졌다. 그리하여 신이 보시기에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 자들은 자비를 베풀어 타인에 예속하도록 하였다. 세례의 은혜로서 모든 신자들에게서 原罪가 벗겨졌지만, 정의로운 神께서는 인간의 삶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隸屬人(servus: 奴)으로 다른 사람은 主人(dominus)으로 만들었는데, 이로써 奴는 그 주인의 힘(postestas)으로 나쁜 짓을 할 가능성이 줄어들게 되었다. 2. 캉브레의 主敎 게르하르트(Gerhard, Bischop of Cambrais): 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