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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도

(근현대사 16장) 1894년 갑오개혁 - 1차 개혁의 내용 1894년 갑오개혁 - 1차 개혁의 내용 1. 갑오개혁은 여러 이권이 맞물려 시작되었다. 보통 갑오개혁을 이야기할 때, 자주적이었는가, 의세의존적이었는가를 많이 이야기 합니다. 1차 갑오개혁은 일본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비교적 조선 관리들에 의해 차분히 진행되었습니다. 1차 개혁으로 조선의 근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은 평가할 만 합니다. 1차 개혁에서 일본의 역할이 왜 축소되었는지는 지난 파트에서 설명하였습니다. 부연하지면, 동학농민운동이 전주화약으로 평화롭게 끝나가는 것을 일본이 방관하지 않았고, 일본은 조선의 개혁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청과 조선이 그것을 적극 반대하였기 때문에 일본은 무력으로 개혁을 강요하였습니다. 조선의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에게 군사적인 협박을 시작한 것이죠. 그러나, .. 더보기
(한국근현대사 5) 1860년대 이후 계속된 위정척사 운동의 흐름 1860년대 이후 위정척사는 계속되었다. 1. 위정척사란? 흥선대원군이 18363년부터 집권하여 안동김씨의 노론 세도 가문을 축출한지 10년... 1873년 민씨가 정권을 잡으면서 대원군이 실각하고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개화정책을 실시합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설명했듯이 개화정책은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조선책략이 유입되면서 구체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화 사상을 우리 전통 유교주의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당연히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반대한 이유는 아무런 근거없이 서양을 싫어해서도, 조선 왕조를 지탱하는 신분질서의 하나인 성리학을 수호하기 위해서만도 아니였습니다. 물론 통상요구가 조선의 신분제와 사회질서의 근간을 흔들기는 하지만, 조선의 유학자들은 그것을 .. 더보기
14세기 중세 유럽엔 봉건제도의 위기가 찾아오다. 14세기 중세 유럽엔 봉건제도의 위기가 찾아오다. 1. 봉건경제 전반이 위축되기 시작하다. 이번 장에서 살펴볼 부분은 중세 봉건제도가 더 이상 시대적 사명을 하지 못하고, 새로운 조류에 밀려 사라지는 단계입니다. 중세사회는 5세기 게르만의 이동기부터 10세기 무렵까지 끊임없는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게르만의 이동, 마자르의 침입, 노르만의 이동, 이슬람 세력의 확대 등 당시 정세가 서유럽의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없는 체제였기 때문입니다. 봉건제도는 이러한 혼란기에 국왕 - 성직자 - 기사계급- 평민으로 이어지는 신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적화된 사회 제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제도는 10세기 이후, 봉건사회가 외부침입으로부터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절정에 이르기 시작합니다. 10-13세기는 봉건제.. 더보기
삼국의 통치제도 정리 삼국의 통치제도 정리 1. 통치체제의 개요 삼국은 모두 부체제 형태의 국가로 시작합니다. 부 체제란, 삼국이전부터 각기 영역을 가지고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하던 각 부가 중앙왕실에 귀속되었지만, 각 부 귀족들은 각자 관리를 거느리고 독자적으로 영역을 지배하는 체제를 말합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 등은 모두 부가 있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5부, 신라는 중앙 6부가 있었죠. 이들 독자적인 부 중에서 힘이 있는 부에서 왕을 배출하였습니다. 이러한 초기 부체제를 보통 역사에서는 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각 부는 중요한 일들을 각 부의 연합회의(귀족회의)에서 결정하였습니다. 고구려의 제가, 백제의 정사암, 신라의 화백 등은 삼국 초기의 부체제를 상징하는 회의들입니다. 국왕은 어떤 명령(교, 칙)을 내릴 때에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