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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사치사화

염사치 사화를 통해 본 한군현의 정책 염사치 사화를 통해 본 한군현의 정책 1. 염사치 사화의 내용 왕망 때에 이르러 염사치가 진한의 우거수가 되었다. 그는 낙랑 땅이 토지가 아름답고 백성들이 부유하게 산다는 말을 듣고, 자기 나라에서 도망해 나와서 그곳에 항복하려고 자기 사는 부락을 나왔다. 이 때 그는 밭 가운데서 참새를 쫓는 남자 한 사람을 보았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말을 들으니 한나라 사람이 아니다. 염사치가 그 까닭을 묻자 그 남자는 말하기를, [우리들은 한나라 사람인데 내 이름은 호래요. 우리들 천오백 명이 나무를 베려고 나왔다가 한나라 사람들에게 붙들려서 모두 머리를 깎고 종이 되어 지금 삼년이 되었읍니다] 한다. 염사치는 묻기를, [그렇다면 나는 지금 한나라 낙랑에 항복하러 가는 길인데 그대들도 같이 가겠는가] 하니 그들은 모.. 더보기
한나라의 분열정책과 삼한의 책봉 허용 한의 분열정책 - 삼한의 조복과 의책 경초 중에 명제가 비밀히 대방태수 유혼, 낙랑태수 선우사를 보내 바다를 넘어 2군을 평정하고 여러 한국 신지들에게 읍군의 인수를 더 주고, 그 다음 축들에게는 읍장의 인수를 더 주었다. 그 풍속에 의책 입기를 좋아하여 하호들도 군에 알현하러 갈 때는 모두 의책을 빌려 입으며, 자기 인수를 차고 의책을 착용하는 사람이 천여명이나 된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 - 사료해석 : 이 사료는 예, 맥, 한족 중에 마지막으로 한족이 중국 한나라의 분열정책에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염사치 사화, 고구려의 책구루 기사와 같이 읽어보면 중국의 분열정책에 대한 내용이 쉽게 이해가 가실 겁니다. 더보기
염사치 사화 염사치의 사화 王莽(왕방) 지황년간(地皇年間) 서기 20~23년에 염사치가 진한우거수(右邊渠帥)로 있을 때 낙랑의 토지가 기름지고 인민이 다 잘 산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투항(歸化)하려 하여 자기의 읍락(邑落)을 탈출(脫出), 순망중(巡亡中), 밭 가운데 새(雀)를 쫓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의 용어가 한인과 다르므로 이유(理由)를 물으니, 남자가 말하되, "우리는 본래 한인인데, 나의 이름은 호래(戶來)라 한다. 우리들 1천5백인이 재목을 벌채하다가 한인에게 잡히어 머리를 깍고 종(奴隸)이 된지 3년이 된다" 라고 하였다. '치( )'가 이르되 내가 지금 낙랑에 투항하러 가는 중이니 너도 같이 가지 아니 하려느냐?하매 호래는 좋다고 하였다. 호래를 데리고 낙랑 함자현(合資縣)에 이르러 사유(事由)..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