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동

6세기 말 고구려와 백제의 바람직하지 못한 대립관계 고구려와 백제의 바림직하지 않은 대립 위덕왕 45년(598) 9월, 왕은 장사 왕변나로 하여금 수나라에 들어가 조공하게 하였다. 왕은 수나라가 요동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을 듣고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려 군의 길잡이가 되기를 청하였다. 황제가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왕년에 고구려가 공물을 바치지 않고 산하로서 예가 없어 장수에게 명하여 죄를 꾸짖게 한 것이다. 그러나 고원(영영왕)의 군신들이 두려워하고 복종하여 죄를 청하기에 짐이 이미 용서하였으니 정벌할 수가 없다} 수나라는 사신을 후히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고구려가 이 사실을 알고 군사로써 국경에 쳐들어와 약탈하였다. 삼국사기 권 27, 백제본기, 위덕왕 45년 -------------------------------------------------.. 더보기
고구려의 정복 전쟁과 영토 확장 사료 고구려의 영토 확장 동명성왕 2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그 땅을 다물도로 삼고 송양을 그 곳의 주로 봉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 부여왕 사촌 동생이 만여명을 데리고 투항해 오니 대무신왕이 왕으로 봉하고 연나부에 안치시켰다. 9년 10월에 왕이 친히 개마국을 정벌하여 왕을 죽이고 백성을 위로하여 노략질을 못하게 하고 군현으로 삼았다. 12월에 구다국왕이 개마가 멸망했다는 말을 듣고 나라를 들어 항복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 태조대왕 11년 8월에 갈사왕 손도두가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도두를 우태로 삼았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 - 9월, 왕이 군사 3만 명을 이끌고 현도군에 침입하여 8천 명을 사로잡아 평양으로 옮겼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