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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편> - 16화. 고구려의 불교 이야기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16화. 고구려의 불교 이야기 1. 불교가 원시 신앙을 대신하다. 자, 이번 회부터의 불교 이야기는 우리 역사 속의 불교 이야기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한반도의 불교 이야기는 인도나 중국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일화로 구성하기가 힘들다. 특히, 고대 불교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등 일부 자료와 중국측 기록 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불교 이야기를 적더라도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일단, 삼국유사에 따르면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전진왕 부견이 승려 순도를 통해 불상과 불경을 전파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뒤 아도화상이라는 스님이 다시 건너오자 성문사에 순도를, 이불란사에 아도를 머물.. 더보기
통일신라 시대의 불교를 총론 형식으로 총정리해 보겠습니다. 통일신라의 불교 사상 이번 장에서는 통일신라에 대한 불교사상을 호국불교의 이념과 대중불교의 이념으로 나누어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중간에 다룬 원광, 자장 대안, 혜숙, 원효와 의상은 이야기는 각 인물 각론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하고, 통일 신라 불교의 개념만 다뤄 보도록 합니다. 1. 초기의 불교 : 호국 불교의 이념 신라의 불교는 호국 불교의 성격이 상당히 강합니다. 법흥왕 때 불교를 공인하면서 불교식 왕명을 사용한 신라에서는, 진흥왕 대에 불교 교단을 정비하면서, 불교 교단을 국가 행정 구역과 일원화 시켰습니다. 마치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교구를 로마 행정 구역과 일원화 하여 크리스트교를 공인하고 세계종교로 전파한 것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동양에서의 종교와 행정구역 일원화는 서구와 같이 와 교.. 더보기
원광의 세속오계 원광의 세속오계 원광법사가 수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가실사에 머물었는데, 그 때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이 때 귀산과 추항은 원광법사를 찾아가 라고 하였다. 원광법사가 말하였다. 고 하였다. - 삼국사기 권 45, 열전 5, 귀산 - 참조글 : 화랑도가 성립하였을 때, 화랑도에는 유불선이 섞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원광의 세속오계는 법사의 가르침임에도 불교의 계율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지도적 위치의 승려가 세속오계의 가르침을 내렸다는 것은 즉, 불교적 가치관이 화랑도의 이념으로 흡수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보편적 가치관인 충성, 효도, 우정 등은 유교적인 가치관이지만, 불교의 이념이 들어가 있고, 자연을 벗삼는다는 도가적 분위기를 통하여 화랑도의 성격을 파.. 더보기
원광 법사 이야기 원광 법사 건복(建福) 30년 계유(癸酉) 가을에 수나라의 사신 왕세의(王世儀)가 오니 황룡사에 백좌도량(百座道場)을 설치하고 여러 고승을 청해다가 강론을 하였는데 원광(圓光)이 가장 윗 자리에 자리하였다. - 삼국유사 4권, 의해5, 원광사학 - 진평왕 30년(608) 왕은 고구려가 여러 번 국경을 침범함을 걱정하여 수나라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치려고, 원광에게 명하여 군사를 청하는 글을 지으라 했다. 원광은 말했다. "자기가 살기를 구해서 남을 멸망시키는 것은 사문이 할 일이 아니나, 빈도는 대왕의 땅에 살면서 대왕의 물과 풀을 먹고 있사오니 감히 명령을 따르지 않겠씁니까." 이에 지어 올렸다. -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진평왕30년 - 진평왕 35년(613)에 황룡사에서 백좌회(百座會)를 설치.. 더보기